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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가 된 여인들 : 머리말 ▒
나는 모두의 벗이요 도반이니
모든 존재와 한마음 되어
사랑 가득찬 마음 일구며
해치지 않고 즐거워 하리.
「장로니게·648」
약 3년 전에 필자는 외국 불교계의 동향을 전하는 한 외신을 접하고 여러 가지 감회에 젖어든 적이 있다. 그 외신은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1998년 2월 15일, 인도의 보드가야에서 전세계 불교의 다양한 전통과 종파를 망라하여 합동 수계식이 열릴 예정인데, 이 일은 800여 년간 비구니에게 수계를 해오지 못한 스리랑카·태국·티벳·인도에 비구니 승단이 재건된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을 접한 소감은 대충 두 가지였다. 지구상의 대표적 불교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나라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비구니 승단의 전통이 유지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되는 놀라움과, 그들 국가에 비하면 비구니 전통이 건실하게 자리잡아 오고 있는 우리 한국 불교에 대한 미더움과 고마움이 그것이었다. 더구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달라이 라마와 역시 그 상의 후보에 수없이 올랐던 틱 낫한 스님 같은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들이 이 일에 적극 협조하고 나섰다는 말을 들어보면, 비구니 승단이 없는 나라의 불자들로서는 이 일이 얼마나 간절한 비원이었을까 하고 새삼 공감하게 된다. 또 이 일을 통해서 볼 때, 가장 고귀한 차원에서의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데 있어서는 불교도들이 가장 앞장서서 깨어있다는 자부심도 가지게 된다. 한국의 비구니 스님들과 여성 불자들도 이 소식을 접하면 무언가 느껴지는 점이 있으리라고 본다.
사실 2500여 년전 부처님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예속물로 천시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교육을 통해서 지식을 얻을 기회도 가지지 못했고 정신적 성숙을 위해 종교 활동에 참여할 수도 없는 풍토였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현저하게 상승하게 된 데는 부처님의 영향이 아주 컸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여성들에 대한 처우가 대단히 부당하다고 느끼시고, 여성들도 종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비구니로서 출가하여 비구와 다름없는 청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성들을 적대시하고 금기시하는 풍조를 통렬하게 비판하신 적이 여러 차례나 있다. 「고살라 상유따」경에서는 딸을 낳았을 때보다는 아들을 낳았을 때에 더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믿음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계신다. 부처님께서는 여성이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여성이 사회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너그러운 마음과 큰 도량으로 여성들을 자상하고 정중하게 대우하여 주셨으며, 당신의 비구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고귀한 길을 그들에게도 남김없이 가르쳐주셨다. 언젠가 부처님께서는 “여래에게는 “움켜쥔 손” 같은 것은 없다”하고 말씀하셨다. 비밀스럽게 감추어둔 별도의 가르침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비구니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모든 불법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며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연기법, 사성제, 팔정도가 어찌 남성들에게는 더 중요하고 여성들에게는 덜 중요할 수가 있을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당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던 여인 암바팔리의 공양 초대를 받고 음식을 다 드신 다음에 그녀에게도 가르침을 베푸실 정도로 차별을 모르셨다. 이에 감화를 받은 그 여인은 지금까지의 불성실했던 생활을 청산하고 개과천선하여 비구니로서 높은 도를 이루었다.
초기의 승단은 비구들만의 공동체였지만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5년째 되던 해에는 마침내 비구니 승단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대단히 역사적인 사건으로, 일찍이 여인들만의 수행 공동체가 만들어졌던 일은 다른 종교에도 없었고 불교사에서도 이것이 최초이다. 처음에 부처님께서는 여인들의 출가에 대해 장려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재가 여신도들 가운데에도 세속을 벗어나 청정한 삶을 살기를 갈망하고 있는 신심 깊은 여인들이 많음을 아시고서는 아난다의 청을 받아들여 비구니 수계를 허락하시게 되었다.
비구니 승단이 탄생되자 천태만상의 인생행로를 걸어온 여인들이 속속 승단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 고귀한 비구니들은 해탈의 목표를 향해 진지하게 노력해 나아갔으며, 그들 중 많은 분들이 환희로운 열반락을 맛보기도 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처음에 여인들의 출가에 소극적이셨던 것은 여성의 능력 자체를 문제 삼아서가 아니라, 여성이 승단에 들어온 뒤의 출가 승단의 양상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며 비구 승단의 입장을 배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장로니게」에 아름다운 깨달음의 노래를 남긴 수많은 비구니들이 아라한과를 증득했음을 볼 때, 여성들의 수행 자질이 남성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논리는 올바르지 못하다. 더구나 여성의 몸 그대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말은 부처님의 참뜻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파세나디 왕과 말리카 왕비 사이의 딸인 스리말라(승만부인)에게 “스리말라여, 지금으로부터 2만 아승기겁이 지나면 그대는 보광(普光)이라는 이름의 붓다가 될 것이다.”라고 수기하셨던 점을 우리는 상기해 보아야 한다.
2만 아승기겁을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인류는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연도의 수치가 2000이어서 새 시대가 아니라, 문명의 변화된 내용이 너무도 과거와 다른 것이어서 새 시대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리라. 새 시대에는 고단한 역사의 길을 걸어온 인류가 어머님의 품같은 본향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라한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우리 여성 불자들이 부처님 당시의 위대한 여인들을 좋은 본보기로 삼아서 모든 인류의 참된 행복과 자기 자신의 영적 성숙에 이바지하는 삶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인류에게 주어진 새 시대의 과제는 문명 경쟁의 외향적 활동의 열기를 식히고 내면적 진화를 위한 자기탐구에 착수하는 일일 것이다. 부처님 당시의 위대한 여인들의 삶은 우리가 생명·고향·모성·근원으로 환지본처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이정표를 따라 해탈의 길을 좇아갈 때에 경쟁과 차별의 남성성(masculinity)으로 상처입은 인류의 심성을 포용과 화해의 여성성(femininity)으로 어루만져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 글에 뒤이어 말리카, 케마, 위사카, 소나, 난다, 사마와티, 이시다시 등 불교사의 위대한 여성상을 곰곰이 되새겨보려는 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