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이네 가족은 떠올리기만 하여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가슴이 훈훈해지며, 내 삶의 모든 것들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게 하고, 겸손하고 다소곳한 기도를 올리게 한다. 아마 보람이네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러할 것이라 믿어진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이 가족들과 지인이 되었다. 가끔씩 만나서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어느 듯 정이 들어 가까운 벗이 되었다.
보람이네 가족은 네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 2년인 보람이, 대학 4년인 오빠 희승이, 그리고 시각장애자로서 지압전문가이신 보람이 아빠, 그리고 그 아빠의 평생의 반려자이신 보람이 엄마 미숙씨이다.
보람이네 가족들은 늘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본인들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보람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편안함을 주는 사람, 그러면서도 가장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이 바로 보람이 아빠시란다. 언젠가 보람이가 말했다고 전한다. "아빠, 아빠는 이 시대의 예수님이신가 봐요, 아빠와 함께 있으면 마치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 듯 평온하고 좋아요. 그리고 아빠의 모든 모습이 너무도 배워지고 존경스러워요. 제 평생의 파트너도 아빠와 같으면 좋겠어요."
희승이는 말하기를, "아빠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시고 수용해 주시고 마냥 사랑해 주시기만 하는데도, 그런 아빠가 하염없이 감사하고 사랑되고 편안하면서도, 아빠는 항상 조심스럽고 어려운 분으로 모셔져요. 그런 아빠가 너무도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요."
보람이 엄마인 미숙씨가 전하는 말, " 희승이 아빠는 너무 감동적인 분이세요. 23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늘 자애롭고 부지런하시며, 모든 것에 너그럽고 수용적이며, 자녀들에게도 단 한번도 큰 소리로 나무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답니다. 항상 자녀들을 믿고 묵묵히 지켜봐 주시며, 아내인 나에게 대하여서도 늘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언덕처럼 의지처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흔히 시각장애자와 그의 부인이라는 선입견으로 세상은 우리를 보고 있을 수 있는데, 저는 희승이 아빠가 장애자라는 생각을 미처 할 수도 없을 만큼 모든 것에 오히려 힘이 되어주고 계심에 늘 감동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희승이 아빠를 만나고 싶습니다."
몇 차례고 들은 이야기이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두 분께서 대화 나누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함께하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 이보다 더 고운 음악이 있을까. 이보다 더 따사로운 맛이 있을까 할 정도로 감동된다.
보람이네 가족은 기독교도로서, 보람이 엄마 아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일년 365일 새벽기도를 나가신단다. 4시에 기상을 하여 두 분은 나란히 손을 잡고서, 약 20여 분을 걸어서 교회에 이르러 약 1시간 정도의 예배와 기도를 올리고 돌아오신단다. 주일에는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서 주일 예배를 올리고 조용하고 다정한 휴식을 취하는 듯하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한 분이시라지만 시각장애자로서 생활의 불편함이 있을 것인즉,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안심되는 생활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보람이 엄마 미숙씨는 평생을 그 분의 옆자리에서 멀리 가지도 못하고,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해 보고, 혼자 훌쩍 떠나보는 일이란 아예 상상도 못해 보고, 하루 종일 함께하기를 몇 십 년 해 오셨음에도, 나날이 감동하고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낼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늘 밝고 맑고 경쾌한 그 여인의 목소리와 모습은 진정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존경심과, 무엇인가 알지 못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희승이는 여느 대학생처럼 요즈음의 젊은 친구 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이다. 머리카락에 빨간 물도 들이고 싶고, 온 동네를 다 쓸고 다니는 힙합바지도 입어보고 싶은 희승이가 어느 날 머리에 염색을 하고 힙합바지를 사 들고 들어왔단다. 어머니 미숙씨는 기겁을 하며 등짝을 두들기며 하소연을 하니 그 곁에서 함께하고 계시던 희승이 아빠 曰, “ 멋있는데 뭘 그래? 그리고 그 바지 입으려면 기운깨나 들겠네!” 하며 호탕하게 웃으시더란다. 이렇게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는 희승이와 보람이, 그네들은 가끔씩 아빠와 팔짱을 끼고 쇼핑과 외식을 하러 시내에 나가는 일이 참으로 즐거운 일 중의 하나란다. 어쩌다가 어머니 미숙씨가 교회의 구역모임이 있어 자리를 비울 때면, 안집에서 지압원까지 거리가 약 1킬로미터 쯤 되는데 보람이나 희승이가 어머니 대신 아버지의 퇴근길을 돕는 일이 어릴 적부터의 일이다. 착하고 온순하며 꾸밈없는 보람이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고 천진하며 구김살 없는 희승이의 모습에서 그들의 부모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보람이네 가족의 경제력은 그다지 넉넉한 것도 아니다. 생계의 근원은 오직 보람이 아빠의 지압원에서 나오는 보수가 전부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가 경제에 대하여 불안해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없다. 언젠가 내가 보람이 아빠께 여쭌 적이 있다. " 선생님, IMF 이후에 손님들도 많이 줄고 아이들은 자라서 대학도 가야하고 생활이 빠듯할 텐데 다소 마음이 쓰이네요." 하였더니 선생님 왈,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보살펴 주셨는데 앞으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시겠지요. 그리고 욕심 내지 않으면 됩니다. 욕심이 걱정을 만들지, 주시는 만큼 쓰면서 살아가면 되니까요." 하고 담담하고 고요하게 말씀 하시던 모습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던지.........! 보람이네 가족들은 서로 믿고 존중하며 사랑하고, 각기 제 할 일을 충실히 하면서 하루하루를 엮어가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흔히 말하는 행복의 조건이 다소 열악한 상태이지만 오히려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웃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평화롭고 기쁘게 하며, 이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까? 큰 부자도 아니요, 온전한 신체도 아니요, 권력가 집안도 아니요, 뛰어난 가문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의 보통 사람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다지 행복하게 하며, 무엇이 이들을 이다지 돋보이게 할까?
행복에 대하여, 행복의 조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의 욕심체계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들의 마음 구석구석을 헤집어 반성하게 한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며 우리에게 희망을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사람됨의 자부심을 갖게도 한다.
보람이네 가족들을 위해 가장 정성스런 기도를 올리고 싶다. 새삼 감사와 존경의 합장을 올린다. 가슴에 가득 고이는 맑은 눈물이 내 영혼을 씻어주는 듯 은혜롭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평범한 이웃의 행복한 한 가정을 떠올리며,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간절히 기원하며 이 글을 바친다.
2004년 5월 1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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