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일구는 원리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다가 간다. 그 모든 노력들의 목적이 곧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해서이다. "행복이란 마음이 편안한 것, 마음이 기쁜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마음을 편안하고 기쁘게 하는 것들을 행복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의 조건들에 대하여 면밀히 연구하고 사색하며, 그것에 공력을 바쳐야 할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는 많은 것이 있다. 돈, 명예, 건강, 지식, 학벌, 직업, 사랑, 가족, 자식, 사람과의 인연, 영화나 음악 감상 여행 등의 문화생활, 그 밖에 명상 등의 수심(修心)이다. 행복조건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실한 노력이다. 일확천금의 횡재(橫財)를 기대하며 얕은 노력으로 큰 기회를 기웃거리거나, 공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만과 투정의 기도를 해서는 안 되리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며,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소기의 목표가 달성되지 않아서 현실적으로 불편할 때에는 그 상황을 어떻게 수용해야 자신의 마음까지 상하게 되지는 않을지 숙고하여야 한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고, 스스로 기어이 행복해지고자 하며, 주변도 행복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필코 그러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마음공부[수심]가 필요하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수심을 안내하는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녕 세상 사람들이 세간적(世間的)으로도 보다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도 간절하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세간적 복락도 괜찮게 누린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청빈(淸貧)을 가치 있게 여기며 수용할 줄 아는 인격이 되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굳이 청빈을 자초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다. 수행자들의 청빈한 생활은 아름답게 보인다. 아니 수행자들의 청빈한 생활은 필수요청이라 하여도 된다. 불필요한 욕심을 자제하고, 필요이상의 경제활동을 삼가야 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에서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입장의 사람이라면 가족전체의 행복이 필수소임(必須所任)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안정된 행복을 위한 안정된 행복의 조건을 소망함은 당연하다. 부당한 선이 아니라면 보다 윤택한 생활을 꿈꾼다 하여도 허물이 아니다. 오히려 건전한 심리이다. 세상 사람들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크고 작은 소원들도 원만히 이루어져서 따사롭게 행복하기를 빈다.
별로 성실한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마음을 잘 다스릴 의지와 노력까지도 그다지 없는 사람이 복됨을 바란다면 저 하늘이 안타까워하시리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고로 네게 복(福)을 좀 내려주고 싶어도 네가 받을 그릇이 못 되니 안타깝구나!"라고. 그 유사한 말씀이 의상조사의 법성게에 있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이다.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보배비가 허공 가득 내리는데, 중생은 그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는 말씀이다. 성경에도 ‘너희가 구하기 이전에 다 주었노라.’는 말씀이 있다. 모두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가르침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 삶의 지침이 되고 있는 여러 가치관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복의 그릇을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늘마음에 코드를 맞출 수 있을 것인가? 행복을 위하여, 행복의 조건을 닦기 위하여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과제이다.
또한 우리는 가끔씩 본다. 우리 주변인들 가운데에 선량하기도 하고 성실하며, 부당한 욕심을 내는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이 왠지 형편이 잘 풀리지를 않고 가정에 우환이 따르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수용하는 것이 제대로인지, 나아가서 형편이 좋아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진정 간구(懇求)하게 된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우리를 존귀하게 하는 몇 가지의 좋은 생각 체계를 정리해 둔다. 평소에 스스로 늘 묻고 대답하는 몇 개의 개념들이 있어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역할을 한다.
1. 최선을 다 했는가를 묻는다.
* 삶의 모든 순간에 성실하였는가?
* 삶의 모든 순간에 정성스러웠는가?
* 성실과 정성을 다 하되 지혜로워야 하리. 지혜로운 노력을 해 왔는가?
2.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베풀었는가 묻고 살핀다. 사랑과 물질과 봉사와 기도 등등, 내가 세상을 위해 바친 정도만큼 세상이 나에게 화답을 할 것이라는 철리(哲理)를 믿는 까닭에서이다.
3. 참회한다. 모든 것은 인과이려니, 그 어떤 결과라도 자신이 지은 것의 결과라 굳게 믿고 자신의 업장을 참회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금생(今生)은 물론, 전생(前生)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되짚어본다면 자신이 지은 업을 알 수 없는 연고로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참회하고자 한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왜 그토록 회개하여야 함을 강조하는지 이제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4. 감사한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내가 지은 것에 비하여 늘 넘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있다. 자신의 복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기에, 자신이 지은 복덕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기에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지는 모든 것에 지극히 감사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칫 불만하여 복의 그릇이 작아질까 삼가는 마음으로, 오롯이 감사할 것을 다지고 또 다진다.
5. 때[時]를 생각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때가 이르면 이루어질 것이라 여기며 더욱 성실히 정성을 다하며 때를 기다린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 또한 하나의 좋은 촌철 말씀이다.
6. 인연소치(因緣所致)로 여긴다. 끝내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미리 정해둔다. 내 복이 아니라고 여기는, 겸손하고 허심한 생각을 준비한다.
7. 영혼의 고귀함을 놓치지는 않는다. 우리가 부족함이 많아서 그 어떤 불편을 겪더라도, 우리의 성취가 우리를 넘치게 기쁘게 하더라도, 그 부족함과 그 성취가 우리 영혼 자체의 고귀함을 넘지는 못한다는 가치관에서이다. 가진 것이 덜하여 불편한 삶이라도, 가진 것이 많아서 풍족한 삶이라도, 우리 영혼의 가치는 동등하다는 고고한 자존심을 갖는다.
8. 최상의 가치를 간과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자 지고한 행복은 역시 마음에 일체 번뇌가 사라지는 것, 마음이 크게 비는 것이라 여긴다. 마음에 한 줄의 한계도 짓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한 톨의 번뇌도 허용하지 아니하고, 무한(無限)한 허심(虛心)으로 있는 일이다. 그 자체로 지극한 편안함, 지고한 기쁨이다. 니르바나 즉, 법열(法悅)이라 한다. 법열을 향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지존(至尊)의 가치로 여기는 가치관이 있다. 그 맛을 아주 다소라도 맛본다면 누구든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리라.
9. +알파
위의 것들은 나의 행복을 관리해 주는 몇 개의 가치관들이다. 그것들이 일련의 원리를 담고 있으면서 나를 지켜준다. 각자 나름의 원칙들로서 각인의 행복을 일구어 가리라 믿는다. 세상이 보다 행복해지시길 비는 마음이 호들갑스럽지 않게 늘 있음을 본다. 이 조용한 기도가 나에게 은은한 기쁨을 준다.
여름의 막바지이다. 아직 햇살이 따갑고 매미 소리 요란하여도 바람 끝에는 이미 서늘함이 묻어있다. 우리의 고통이 아무리 짙고 소란하여도, 이미 성성(惺惺)한 해탈의 바람이 그 안에 있음을 본다.
2005년 8월의 마지막 날에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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