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 평(坪) 인심의 기적
“할아버지 복 받으실 거예요!”
욕심 없어 보이는 돌담과 사립문 등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 이곳에 둥지를 틀기로 작정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지나다니.........! 해 바뀔수록 가슴에 새겨지는 한 얼굴이 있다. 떠올리면 금세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조용조용 말씀하시며 언제나 미소 띤 얼굴의 앞집 할아버지, 반(半) 평(坪)의 인심(人心)으로 길이 이웃을 넉넉하게 하신 분이다.동네 맨 끝집에 자리하고 있는 나의 처소는 자그마한 시골집 세 채를 헐어 한 도량으로 만든, 500 여 평 쯤 되는 전원주택 분위기의 사찰이다. 여러 채의 집을 합쳤으니 자연, 어느 방향을 전면(前面) 출입구로 삼을 것인가 숙고(熟考)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가장 우수하기로는 단연 지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되게 하려면 앞집과의 타협이 필요했다. 할아버지네 담을 감고 돌아서 우리 처소로 진입하게 되어 있고 출입문 앞에는 좁은 사 거리가 있어 모든 방향으로 길이 나 있다. 그런데 뾰족하게 튀어나온 할아버지네 담 모서리의 반 평 정도를 안으로 들여서 쌓아야 우리 처소로 들락거리는 자동차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방향으로도 다니기가 편안한 형국이었다.그 당시만 해도 차량이 많질 않아서 조심스럽게 운전을 잘 하면 그냥 그대로 두고서도 다닐 만 했지만, 앞집 할아버지께서 인심을 좀 써 주신다면 우선 명상의 집에서는 매우 감사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부탁을 드려 보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담벼락 땅 반 평 정도만 동네 길로 양보해 주신다면, 저희 명상의 집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많이 수월하고, 동네 다니는 차들도 유익하겠습니다만........쉽지는 않으시겠지요?” 할아버지께서 거절하신다 하더라도 조금도 서운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예나 지금이나 시골 분들에게 있어서의 땅은 마치 본인의 살점과도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청을 드리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님이 필요하담사 해 드려야지요. 그리 하지요, 뭐!”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며 맑은 설움이 복받쳤다. 아직 동네 분들과 면이 익어지지 않은 가운데 집 수리를 하자하니, 그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과 이런저런 일들로 설왕설래 신경 쓰이는 일들이 더러 있어서 제법 심기(心氣)가 불편하던 중 그렇게 후한 인심(人心)을 접하고 보니, 울어볼까 어쩔까 하던 참에 마침 엄마가 나타나니 ‘으앙!’ 하고 울어버리게 되는 아이의 마음과도 같다고나 할까. 나는 어찌나 고맙던지 몇 배의 땅 가격과, 손수 담을 헐고 다시 들여 쌓아주신 할아버지의 충분한 인건비가 되도록 챙겨 드렸지만, 할아버지의 따뜻하고 넉넉한 인정(人情)이 어찌 돈으로 환산되겠는가! 할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다 도시에 나가서 살고 있고 할머니와 단 두 분이서 살고 계셨다. 그 이후 앞집의 두 분과 명상의 집 대중들은 돈독한 이웃이 되었다.
그러구러 마이카 시대가 되었고, 농촌에서도 경운기나 트랙터 등의 농기구 사용이 더욱 활발해졌다. 명상의 집도 널리 알려지게 되어 출입하는 차량이 많아졌고, 그 길을 이용하는 다른 차량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럴수록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는 더욱 커지게 마련이었다. 할아버지네 담을 감고 돌아 도량 안으로 진입해 올 때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의 인사를 잊은 적이 없을 정도다. 다른 차들이 그곳을 지나칠 때에도, “할아버지의 작은 보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유익함을 주고 있다니, 저 세상에서도 복 받으실 거예요.”라는 축복이 절로 나온다. 그 반 평 보시의 있고 없음 차이가 적질 않으니 말이다.
그 일이 있고 약 10년 쯤 지난 어느 날, 하루에도 몇 차례 씩 부처님 전에 인사드리고 또 이런저런 동네 소식을 건네주고 가시는 종구 할머니께서 오셔서 알려주셨다. “시님, 앞집 영감이 지금 숨을 꼴딱꼴딱하고 계셔! 자녀들에게 연락해 놓은 터라 기다리는 것인지 눈을 못 감고 숨을 겨우 견디고 있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봉투에 만 원 권 지폐 몇 장을 챙겨 넣어서 부랴부랴 앞집을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종구 할머니 말씀대로 할아버지는 아직 눈은 뜨고 계셨지만 초점은 내려 놓은 채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가만히 봉투를 쥐어드리며 가슴을 쓸어드렸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말씀 드렸다. “할아버지! 담벼락 들여 쌓아주신 보시만으로도, 저 세상 가셔서도 복(福)되실 거예요. 다시 감사드립니다. 이것으로 노자(路資) 삼아서 잘 가시어요.” 그러면서 눈을 감겨드렸다.
나중에 종구 할머니 다시 와서 하신 말씀, “시님, 시님이 다녀가시고 앞집 영감이 숨을 가라앉히고 가셨어! 시님이 고마워! 시님한테 내가 와서 말하길 잘 했지?”
정말 잘 하신 일이었다. 정말! 아찔한 다행감이 들었다. 종구 할머니 덕택에 할아버지 가시는 마지막 길에 노자도 쬐끔 드리면서 다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내가 다녀간 이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는 말씀에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할아버지 가시고 다시 10년이 지났다. 이제 할아버지 모습은 안 계시지만, 할아버지의 반 평 인심은 오늘도 빛나고 있다. 보시(布施)의 미덕(美德)에 대하여 두고두고 생각게 하는 미담이다. 보시하면 좋을 상황에 즉했을 때에, 아끼지 말고 미루지 말고 즉각 행하게 하는 교훈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돌아오는 기일(忌日)엔 약 주 한 잔 올려드릴 것을 기약하니 어느새 가슴이 촉촉해진다.
“마음공부를 하면, 어떤 변화가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 국면에서의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이웃에게 잘 베풀게 될 것입니다. 마음공부의 목표는 해탈과 자비 인격일 것인 즉, 해탈과 자비 인격 성숙의 척도 하나로 ‘얼마나 잘 나누며 살고 있느냐?’를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번뇌가 녹여진 정도만큼 욕심이 줄 것이요, 욕심이 주는 정도만큼 <내 것>이라는 의식이 <우리 것>으로 넓혀져 갈 것이니 우리가 서로 나눌 일 밖에 더 있겠습니까?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있다면..........참 좋겠지요? 모든 수행의 회향처(回向處))는 베풂, 나눔이 아닐까요?”
할아버지의 주저 없는 맑은 인심을 닮아보고자, 오늘도 나는 내가 지닌 것들의 사회화에 얼마나 최선 다했나를 점검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얼마나 내 마음을 살펴 허공으로 비웠는가, 얼마나 주변 마음을 살펴 주저 없이 베풀었는가? 나의 시간, 물질, 체력, 돈, 사랑, 목숨까지, 아낌없이 다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비우고, 비워가리!
2010년 7월 하순
명상의 집: 대화 합장 (daehwa@dongsasub.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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