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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며칠 도둑질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보리수 하에서 깨달으시고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불성을 지녔구나!” 하셨다 한다. 또 어떤 스님은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 부처님 하였다고도 한다. 만약에 그 스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부담스러워서 그 스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달음박질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동사섭 지도자 과정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다.
“도둑질하다가 감방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나는 도둑놈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이 맞을까요? 그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도둑질을 하였다는데 그래 일 년에 며칠이나 도둑질 하셨습니까? 사흘? 일주일? 뭐 도둑질하느라고 낌새도 엿보고 어쩌고 하는 시간까지 다 합해도 도둑질하는 시간은 열흘은 넘지 않았겠지요. 그러면 당신은 일 년 중에 355일은 도둑놈이 아닌 멀쩡한 사람입니다.”
일 년 중 355일은 멀쩡한 사람! 그렇지. 나도 멀쩡할 때가 많아! 자존심 상한다고 낑낑대고 화내고, 남의 탓도 하고 원망도 하지만 365일 24 시간 내내 그러고 있는 건 아니잖아! 때로는 길을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굴기도 하고 집안에 들어온 메뚜기를 살살 잡아서 내보내기도 하고 시장 가는 길에 두부 한 모 더 사서 아랫집 형님에게 건네기도 하면서 좋아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
시내로 가는 길에 아울렛 옷 가게가 하나 생겼다. 그 가게 2 층에 무료 카페가 있어 옷을 사지 않는 사람들도 무상으로 드나드는데 그 곳에서 섹스폰 연주까지 한다. 물론 고객 유치를 위한 수단이겠지만 단순히 선전용이라고만 하기엔 무언가 배려심이 엿보인다. 탁자 위엔 삶은 달걀이며 과자도 놓여 있고 음악 신청을 위한 메모지도 있다. 섹스폰 마스터는 50 대 중반을 훌쩍 넘은 것 같다. 지방 도시의 무료 카페에서 하루 3 시간 씩 연주하고 보수를 얼마나 받을까. 아마도 그냥 섹스폰 연주가 좋아서 그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마스터는 나와 언니들이 신청하는 음악을 성의껏 연주했고 우리가 보내는 박수에 활짝 웃음으로 답례했다. 오랜만에 젊은 시절의 음악에 젖어 행복해진 우리 자매들은 약소한 팁을 드리고 나오면서 사장님과 마스터 분께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사심 없이 마음을 내어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가 부처님이라면 옷 가게 사장님도, 섹스폰 마스터도 분명 부처님, 만큼의 부처님이었다. 무료 카페의 의도 속에 섞여 있는 고객의 기쁨을 위한 순수한 보시행. 섹스폰 마스터의 연주 속에 섞여 있는 음악 보시의 마음, 그것이 부처님 마음 아니고 무엇이랴. 세상의 많은 직업인들이 오로지 돈벌이만을 위해서 그 일을 하지는 아니할 것이다. 이익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어도 무언가 일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것을 ‘보람’이라고 말한다. 보람, 그것은 시정의 많은 이들이 맛보고 있는 가장 순수한 행복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라도 제 자식에게만은 사심 없이 대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아무 사심 없이 무언가를 행하는 순간만큼 순수해지는 때가 또 있을까? 사심없는 행위. 그것은 이기심이라는 끔찍한 속박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존재 본래의 자유, 존재 본래의 행복을 살게 하는 축복의 행위이다. 앞 사람이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는 것, 전철 옆 좌석의 아기에게 방긋 웃어주는 것, 슬퍼하는 친구를 한 번 안아 주는 것, 우리는 이런 일을 그냥 사심 없이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살행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우리는 그 순간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는 부처요 보살인 것이다. 왜 아니랴! 존재는 본디 부처요 보살이거늘.
글. 선혜님(yousor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