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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곡리 뜰에 아름다운 가을빛이 가득하다. 투명한 가을 빛살 속에 가만히 서있는데 발밑에서 조그만 털벌레가 부지런히 기어간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무튼 어딘가 자신이 좋아하는 목표 지점을 향해서 열심히 열심히 가고 있다. 조금만 건드려도 즉시 독침으로 쏠 것 같은 몸뚱이에 알록달록 치장도 가득하다. 기특한 것인지, 가엾은 것인지 아무튼 그 조그만 털벌레를 보니 내가 살아온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60 년 동안 끊임 없이 무언가를 해왔다. 물론 무언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은 제 발로 걷고 제 입으로 말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 몸을 제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던 시절에도 제 몸을 제 뜻대로 가누려고 애를 썼을 터이니 좌우지간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무언가를 도모하며 살아 온 것이다. 정말 그랬다. 그렇게 무언가를 행하고 성취하려는 욕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강해졌던 것 같다.
그 시절엔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중학 입시에서 실패한 나는 2 차 중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중학 시절 나의 성취 목표는 일류 여고 입학이었다. 나의 목표 쫓기는 그렇게 시작되어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런 저린 일들이 곧 내 인생의 내용이었다. 뒤돌아보니 나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손에 넣기 위해 제 딴에는 꽤나 꼼지락거리며 살아온 것 같다. 말하자면 태어남이란 빈 자루 하나를 덜렁 받은 것과 같아서 그 속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가득 채워넣는 일, 그것이 인생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인생이 중반기를 넘어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무언가 꽤나 열심히 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늘 알 수 없는 초조감이 따라 다녔다. 설겆이를 해도, 방 청소를 해도 이런 허드렛일은 어서 끝내고 진짜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고 있었다. 책을 읽고 있어도 이 책을 얼른 읽고 다른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무언가 줄곧 좋은 것을 찾으며 왔는데 그 좋은 것 찾기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동사섭을 만났다. 일반과정, 중급과정을 마치고 고급과정에 들어갔다. 고급과정에서 <돈망>을 만났다. <돈망>은 개념 이전의 의식상태였다. 개념은 우주 역사 137억 년의 끝자락인 300 만 년 전에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지구 위에 인간이란 족속이 생겨나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만든 어설픈 도구였다. 사람은 그 도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습에 젖어 눈에 보이는 모든 개별 개별의 것에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매기고 있다. 하지만 빅뱅에서 생겨난 이 우주는 그냥 한 덩어리의 그 무엇일 뿐 애시당초 무슨 이름이, 무슨 가치가 있었겠는가. 모든 이름, 모든 가치를 내려 놓고 그냥 존재할 때의 의식 상태, 그것이 돈망이다. 개념 이전을 이해하고 돈망을 처음 맛보았을 때 참으로 놀라고 놀랐다. 평생을 무언가 <좋은 것>을 추구하고 살았는데, 인생이라는 빈 자루가 그 <좋은 것>으로 쉽게 채워지지 않아 늘 초조했는데 알고 보니 그 <좋은 것>이 순전히 주관적인 허깨비 놀음이었으며 <나쁜 것> 역시 그러했던 것이다!
돈망의 맛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맹물 맛이었다. 이 맹물 맛을 우리는 흔히 <심심하다>고 취급하고는 그 자리에 무언가 좋은 것, 신나는 것을 끌어오려고 기를 쓰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냥 있는 맛은 심심하다. 습관적인 그냥 있음은 그지없이 심심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깨어서 그냥 있어보라. 그것이 바로 니르바나이다. 모든 욕구가 다 타버리고 사라진 열반이다. 깨어서 그냥 있으면 존재란 본디 좋고 나쁨을 넘어선 것으로 그 자체로 온전한 무한 OK임을 깨닫고 통곡이 터질 것이다. 존재의 본래 모습은 인간의 언어가 쏟아내는 온갖 좋고 나쁨에서 훌쩍 벗어나 있는 본래 초월, 본래 온전, 본래 청정, 본래 축복이다. 우리는 평생 좋은 것을 구하며 그것이 구해지면 기뻐하고 그것이 좌절되면 슬퍼하고 분노했다. 돈망의 맛이 맹물이라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 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을 줄기차게 쫓으며 살아온 우리들의 중독 증상이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알코올 기운이 없는 멀쩡한 의식 상태를 견딜 수 없어하듯이 말이다.
그냥 있는다. 바위처럼, 나무처럼, 저 허공중의 천체처럼 그냥 존재한다. 아무런 이름도, 아무런 가치도 붙잡지 않고 그냥 존재한다. 순수하다. 더없이 순수하다. 더없이 살아 있다. 기쁨이라는 흥분도, 분노라는 억눌림도 없다. 좋은 것을 쫓아 평생을 헐떡이던 그 끝없는 피로감, 좋은 것이 잡히지 않아 부글대던 그 억울림에서 모두 해방되어 더 없이 평화롭게, 더없이 순수하게, 더없이 온전하게, 더없이 자유롭게 존재한다. 기쁨도 분노도 없는 이 순수한 존재 본래의 맛. 이 본래의 물을 마시면, 이 본래의 맹물을 마시면 지구위에 생겨나 46 억년을 헤매던 우주의 미아들이 그 즉시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된다. 본래의 맹물을 마시면 응무소주(應無所住)하는 본래 부처로 돌아가고 이생기심(而生其心)하는 본래 보살로 돌아간다. 저 한 그루의 나무처럼, 그저 그 존재 자체로, 아무 자랑도 없이, 아무 상(相)도 없이 그저 숨 쉬며 사는 그것 자체로 이 세상에 청정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저 한 그루 나무처럼.
글.선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