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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통곡했다. 생각하고 울고 또 생각하고 또 울었다. 밭 매다가 울고 들길 가다가 울었다. 사진 보고 울고 추억하며 울었다. 그렇게 운 까닭은 아버지가 떠나서도, 어머니가 떠나서도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을 각오하고 그 애통함의 까닭을 밝혀보면 그것은 내가 기르던 닥스훈트 구름이가 떠났기 때문이었다.
조카가 기르던 구름이가 처음 우리 아파트에 왔을 때만 해도 그 녀석은 그냥 한 마리 개였고 나는 그리 넓지도 않은 아파트에서 목청 우렁찬 그 놈을 돌보아야 하는, 조금 난처해진 개 주인이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가면서 그 놈은 나의 산책길 동무가 되고, 제 어미를 무조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천진무구한 우리 애기가 되고, 어떤 외부인으로부터라도 나를 지키는 용맹무쌍한 호위무사가 되었으며, 심지어 ‘엄마의 남편’에게까지 질투심을 감추지 않는 열렬한 숭배자가 되었다. 우리가 강원도 산골에 집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그 놈은 자동차에 흔들리면서도 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게다가 엄마가 산골 집에 혼자 남게 될 때는 그 놈은 든든한 파수병 노릇을 했다. 그러나 뉘가 알았으랴. 그 놈이 아랫집 할아버지네 암캐를 쫓아다니다가 앞산 절집의 송아지만한 수캐에게 변을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는 꼴을 내보인 것이었다.
구름이가 떠나고 나는 내가 왜 개 한 마리와 이별한 것에 대해 그토록 가슴 아파하는지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예전의 어떤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직장 동료에게 우리집 개와의 ‘러브 스토리’를 들려주었을 때 그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어째서 사람들은 개하고 그렇게 사이가 좋을까?”
“아마도 그건 아무런 기대가 없기 때문일거에요. 개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어요?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충분하잖아요.”
“그건 맞는 말인 것 같네. 그런데 기대감 없음이란 개에게나 해당되지 않을까? 사람 사이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고 하면 어째 서운한 것 같아. 어떤 사람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결론에 대해 반쯤은 수긍한 듯하고 반쯤은 의심을 품은 채로 애매하게 토론을 끝냈는데 그 대화를 돌아보면서 확실해진 것은 바로 ‘기대 없음의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경험한 유일한 ‘기대 없음의 사랑’, ‘존재 자체만으로의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구름이에 대한 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그 개가 즐거워하는 것들을 그냥 함께 한 것. 또한 자연물이었던 그 개는 내가 지니고 있는 그 어떤 조건에도 구애되지 않고 그냥 나와 천연스런 관계를 맺은 것, 바로 그것이었다. 구름이는 나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지, 재력 여하가 어떠한지, 내 인품과 모습이 어떠한지에 일체 관계없이 개의 온 성품을 다해 미처 알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나와의 관계에 충실했던 것이다. 나 또한 나의 까탈스런 기준을 모두 버리고 구름이가 개로써 즐겁고 행복해 할 것들을 그냥 함께 한 것 뿐이었다. 그리하여 한 마리 개와 그 주인은 만남이 줄 수 있는, 관계 맺기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누린 것이었다. 그런데 구름이의 죽음으로 그 행복을 잃은 나는 그토록 슬퍼했던 것이다.
개와는 가능한 그런 관계가 왜 사람 사이에선 잘 되지 않을까. 심지어 기대 없음이 사랑 없음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할까. 그것은 단적으로 ‘욕심’ 때문이다. 상대는 미처 알지도 못하는 제 멋대로의 기대를 이런 저런 모양으로 잔뜩 쌓아 놓고는 그것에 미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고 슬퍼하고 급기야 분노하기까지 한다. 중중연기의 이 세계에서 존재함이란 곧 관계 맺기인데 그 관계 맺기에 나는 얼마큼이나 제대로 깨어있는 걸까, 모든 존재가 시비를 떠나있는 본래 온전, 본래 청정의 존재임을, 본래 부처임을 나는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 걸까.
한겨울, 우주가 보내주는 따스한 햇살 선물 속에서 모든 존재들에게 기전향(起傳向)을 보낸다. 천하의 주인이요, 보살행의 도구이며 밑거름인 이 일물(一物)은 무한 우주에 있는 유형 무형(有形 無形), 유정 무정(有情 無情), 모든 존재들의 행복해탈과 맑고 밝은 상생 기운을 위하여 이 일물(一物)의 전 존재, 전 에너지를 기(起)하여 전(傳)하오니 무량한 복덕이 향상(向上)되소서. 이에 안으로 돈망(頓忘) 명상, 지족(知足) 명상.......
글. 선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