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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始作)
한뜻
입춘이다. 바야흐로 봄 문턱에 들어섰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절기이니 진정한 한 해의 시작인 셈이다. 금세 봄이 다가올 듯하다. 봄이 오면 기온이 오르고 대지가 푸르게 뒤덮일 것이고 울긋불긋 꽃들이 다투어 피어 날 것이다. 마음도 조금 들뜬다. 항용 입춘일이면 집안에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춘대길, 건양다경’ 등의 어구를 집 안팎에 붙인다. 한 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시작은 중요하다. 시작을 잘해야 행복해 질 수 있기에 그렇다. 행복한 시작을 위해서 용타 큰스님께서는 ‘인생 3박자’를 말씀하셨다. 행복을 위한 첫 걸음이다.
삶은 어떤 일을 감행하며 시작된다. 단행이란 시작의 다른 말일 수 있는데 용타 큰스님께서는 그것을 ‘저지르라’ 하셨다. 쉬이 말하면 어떤 일을 단행하고 몰입하고 돌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삶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망설이고 주저한다. 당연히 주춤거린다. 그러다 보면 놓치게 된다. 어쩌면 삶은 기회의 파도를 타는 것일진대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두어 번 있었다. 진행 과정의 곤란과 부모형제의 만류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니 안타까움으로 후회하였고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니 행복지수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단행하지 않은 생각은 의미가 반감된다. 그것이 옳다 생각된다면, 그것이 내 삶에서 필요한 것이라면 감행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빠른 때이다. 지금도 나는 영어회화만 생각하면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 30살 시절에 영어 학원을 다녔다. TOEFL공부를 위해 방학 때면 으레 영어학원에 등록하곤 했었다. 그랬더니 원장이 회화 반에도 나와 함께 공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회화반은 대학생이 주축이었다. 그 젊은 학생들 속에 끼어 되지도 않을 영어를 버벅거릴 일이 창피스러워 나가지 않았었는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 후로 영어회화가 두어 번 내 발목을 잡고 말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생들과 나이 차도 나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때 과감히 용기를 내어 열심히 노력했더라면 회화의 단초를 잡았을 터고 몰입했더라면 돌파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단행하고 난 후에는 걸리적거리는 것을 제쳐야 한다. 큰스님께서는 안 되는 것에 매달리지 말라셨다. 나는 50중반에 이르러서야 성악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성악 레슨을 받고 싶었지만 가정 사정상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그때 하지 못한 것을 50 중반의 나이에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파트 대출금과 아이들의 학비를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압박감은 벗어버리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과감하게 레슨을 신청했고 열정을 쏟았다. 기껏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 하는 공부였지만 소리 내는 법을 알고 호흡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소박하게 시작한 쾌감을 느껴 행복했다. 그간 많은 것을 망설이고 주저하며 단행하지 못했는데 과감하게 제쳐 버리자 시원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염려 사항은 떨쳐버려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불상사는 만들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된 것은 누려야 한다. 되지 않은 것에 미련 두지 말고 된 것을 누려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빼앗겨 된 것조차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된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된 것의 의미가 희석되는 법.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아마 된 것을 알면서도 된 것은 된 것으로 젖혀두고 되지 않은 것에 다시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주 작은 것도 꺼내서 누리면 그 즐거움은 배가되는 법이다. 십수 년 전에 몽골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드라마 작가 한 분도 그 무리 중 한 분이셨는데 토속적인 기념품을 사시고는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꺼내어 오래도록 보고 또 보시곤 했다. 대개는 기념품을 사면 곧장 가방 속에 집어 넣어두기 마련인데 그분은 꺼내어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셨다. 그러면서 주변 분들께도 동의를 구하셨다. 이거 보세요. 참 좋지 않아요? 그러니 주변에서는 기쁘게 응대했다. 참 좋네요. 몽골 색깔이 잘 드러나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물건도 잘 고르세요. 그들의 추임새에 기념품은 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고 그 분은 기분이 매우 좋아지셨다. 이미 가진 것, 있는 것에 대한 예의이기도 한 방법이다. 그 후로 나도 여행을 가면 그렇게 하곤 한다. 내가 선택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마음껏 즐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가진 것, 있는 것을 누리는 멋진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봄이 왔다. 첫 걸음이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기 마련인데 그 계획이 유명무실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저지르고 제치고 누려야 한다. 계획을 세워 놓기만 하고 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그 향기는 사라지게 마련이고 누리지 않으면 그 의미는 반감된다. 봄의 향기가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될 때까지 그윽하게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는 시작하며 저지른 것에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 꾸준히 누려야 한다. 온 대지를 휘감고 있는 화사한 이 봄 기운이 오래오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