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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함에 이르는 대화 그 첫번째 시간 후기]
힘겨운 세상일수록 사랑만이 희망일 때가 있습니다.
새들은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울수록
더욱 세찬 날갯짓을 하지요.
꽃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마지막 힘을 다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지요.
마지막 순간에 있는 힘을 다해 하늘을 보는 꽃처럼
먹구름이 내려앉을수록 더 높이 비상하는 새들처럼
사람을 사랑함에 최선을 다해야 해요.
사랑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일 때가 있습니다.
-사랑만이 희망이다 중에서-
어느 날 아침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습니다. 그렇게 가슴 먹먹해져올때 이 세상에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고 그 무엇에도 희망을 걸 수 없을 것 같을 때에 '온전함에 이르는 대화'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현경 선생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놀랍게도 그러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행복마을에서 참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분들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함께 밥먹고 차를 마시면서 저는 행복Lab.을 열어주실 적임자를 만난 느낌이였습니다. 왜 이분이 책의 제목에 '온전함'이라는 단어를 쓰셨을까 짐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아픈만큼 성숙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래요 저 또한 고통이 성스럽다는 것도 알고 아픈만큼 성숙하다는 말도 압니다. 하지만 굳이겪지 않아도 될 아픔이라면 무지함이 불러오는 불필요한 혹은 게으름의 소산인 아픔이라면 우리가 조금 더 부지런히 마음 공부를 하고 배워서 그러한 아픔은 좀 넘어서는 것이 현명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그 한마디가 조금 달라졌다면 아마도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텐데하는 수없는 과거의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선생님은 흔쾌히 아무런 보답도 바라시지 않은채 그저 좋은 의도 하나만으로 행복Lab.의 첫 강의 열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강의는 이러한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어떤 유망한 사업가가 있었는데 그는 엄청난 성공 후에 급작스런 사업 실패와 부도를 겪었다고 합니다. 어디서나 한번쯤 보게되는 그러한 사업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자주 보는 이야기의 전개대로 실패를 감당할 수 없고 좌절감의 무게에 자살을 결심하고는 어느 강가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곧 뛰어내릴 태세였지요.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옆에 계시던 한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자네 그 강물 많이 차가울텐데."
그러자 그 사업가의 머릿속에는 '그래? 이 물이 차갑다고? 그럼 들어가기 좀 그렇겠는데? 뭐라고?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 뭘 이런걸 걱정하고 있지?' 하며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래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을 보면 아직 진짜로 죽고 싶은게 아닌거야. 죽을 힘을 다해서 다시 한 번 해보자.'라고 결심을 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성공했다는 미담을 들려주셨습니다.
한 할아버지의 관심과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린 것이지요. '죽지마. 젊은 양반이 왜 그렇게 패기가 없나. 그깟 실패 하나로 죽음을 선택하다니 그러지 마시게.'라고 강하게 말했었다면, 혹은 그저 무관심하게 아무말도 안하고 지나갔었더라면...어쩌면 그 소중한 한 목숨의 결말은 어찌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따뜻한 관심을 현명하게 담아낼 줄 아는 분이셨던 거지요.
이 예화와 정 반대의 예화도 말씀해 주셨어요. 어릴때에 그저 스쳐 지나가며 이야기했던 부모님의 한 마디,
"넌 그렇게 이쁘지 않아."
라는 말이 한 여자의 인생을 얼마나 망가지게 할 수 있는지 말이지요. 그녀는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부모님의 그 한마디 때문에 이혼도 여러번하고 미국의 갑부들만이 산다는 비버리힐즈에서 성형수술의 중독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물론 그녀의 인생이 비단 그 한마디 때문에 그리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부모님이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전했다면 분명 그 또한 다른 인생을 살게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온전함에 이르는 대화의 영어제목은 Mindfulness Communication입니다. 처음에 영어 제목을 먼저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깨어있기라는 Mindfulness는 산만해진 의식을 하나로 모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알아차리는 일이라고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이 달아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도록 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마음이 깨어있게 되면 보다 더 현존할 수 있고 깊이 알아차리게 되고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특성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깊이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사실 우리가 대화하며 '칭찬'과 '감사'만 할 수 있다고 하면 그 깊이는 자동적으로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동사섭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지사 명상(
우리는 수업 시간에는 서로의 별칭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행복마을 동사섭의 문화이기도 했는데, 이현경 선생님께서 먼저 동그란 이름표를 나눠주시면서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과 어울리는 별칭 '햇살'을 사용하고 계셨네요. 그리고 바람, 편안, 흰사자, 하얀행복, 애니, 대추 등등 각자 고른 별칭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수업은 이어졌습니다.
세션 1은 깨어있기와 의사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와 도입의 이야기였습니다. 늘 접하는 말들도 있었는데 이 날따라 그 이야기들이 더욱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이론과 실습의 적절한 조화가 어우러져서 바로바로 자신의 생각하는 바로 돌아올 수 있는 햇살님만의 비법이 아니였나 생각해봅니다. 세션 1에서 함께 읽었던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를 함께 나누어봅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서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여러분들은 어떤 구절이 와 닿으시나요? 한 번 나누어 주실까요?"
각자 와 닿은 구절에 줄을 치면서 나누어 주는데 정말로 그 구절들이 서로 다 달랐습니다. 우린 이처럼 하나의 시를 마주하고도 가슴에 닿는 구절이 다르고 하나의 글자를 보고 떠올리는 단어가 다르며 다양한 도형에 대한 선호가 다르고 하나의 그림을 해석하는 생각도 다릅니다. 그 다양한 다름은 우리들의 경험만큼이나 다르고 다양한 것이였습니다.
두번째 세션에서는 그러한 다름을 인지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였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은 그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 않은지 모릅니다. 모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해석하고 생각하고 지금 현존이 아닌 과거나 미래에 자주 머물고 있지는 않나요?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눈 앞에 마음에 드는 나무를 하나를 연상해보세요."
전 아주 큰 아름드리 나무를 내 눈 앞에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키도 정확하게 그려보라고 하셨습니다. 잎사귀의 생김새, 촘촘한 정도 등등 세세할 만큼 세세하게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두 명의 참여자에게 어떤 나무를 상상했는가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두분은 역시나 너무나 다른 나무를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랐던 순간은 이 말씀을 하실 때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여러분들이 상상하신 그 나무를 알고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나무들이 자신의 키와 비슷한 정도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아름드리 나무를 상상하셨던 작은 자작나무를 상상하셨던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뿌리의 길이까지 뻗쳐서 생각이 미치지 않으셨을 거예요. 한 번 상상해보세요. 만약 우리가 모래 사장을 파고서 무릎이 땅아래로 내려가도록 서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들의 모습이 모래 사장 위의 모습이 다라고 여긴다면 참 속상하겠죠? 모래 밑에 숨겨진 내 다리의 존재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하면 안돼~라고 말해주고 싶을 거예요."
전 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그렇고 언제나 나무라고 하면 바람에 살랑이는 잎사귀만을 생각했지 뿌리까지 잘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만약 이것이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에 미친다고 생각하니, 수많은 실수와 부족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의 심정을 이렇게까지 온전하게 공감해주고, 제대로 함께 있어주었다면 그러한 오해들이 커지지 않고 잘 마무리될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도형들의 카드를 칠판에 붙이시고는 질문하셨죠.
"가장 마음에 드는 도형을 고르고 그 느낌을 한 번 적어보세요."
그리고는 모두 하나의 도형을 선택했고 그 느낌을 적었습니다.
"왜 동그라미를 선택하셨나요?"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럼 선생님께 세모는 어떤 느낌이죠?"
"글쎄요, 조금 뾰족한 느낌이예요. 찔릴 것 같은 느낌이요."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동그라미가 편안하게 안정감 있게 다가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삼각형이 안정감이 느껴질 수 있다. 동그라미는 자꾸만 굴러갈 것 같아서 불안하다는 답도 있었습니다. 동그라미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러한 답이 죽었다가 개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답일수도 있겠지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답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호 불호가 명확한 만큼 상대에 대한 공감의 정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생각이 흐를수가 없는거예요. 아주 단단한 철벽이 막고 서 있는 것보다도 더한 벽이 보이지 않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지금까지 이러한 세상에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며 살았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서로와 서로의 배려가 아니였다면 불가능했던 것이 아니였을까? 그리고 첫사랑의 기억도 서로 다르게 기억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오늘 수업을 통해서 제대로 하게 되였습니다. 인간의 기본 조건으로까지 생각되었지요. 경청이란 마음의 장막 걷어내기 작업 같습니다. 나의 선그라스를 벗고 상대에게 온전한 귀가 되어주는 것,
'I am all ears.'
내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그 사람과 하나되어 공감하며 듣는것, 그것만이 전부였습니다. 동감은 어쩔때는 도형의 선호가 다르듯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공감은 불가능할 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미성숙의 척도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얼마나 자기 자신을 내려두는가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세명이 짝을 지어서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두 명이 실제로 깊이 있게 듣는 실습을 하는 시간, 그리고 나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 모두 소중했습니다.
예전 첫사랑에게 귀를 기울였을때보다도 더 소중하고 귀한 자세로 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5분동안 집중해서 들어보는 것이 미션이였습니다. 그러면서 순간 순간 알아채고 깨어있기에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말도 하지 말고 듣는 5분. 저는 그 순간동안 내가 평상시에 얼마나 맞짱구를 치기를 좋아하며, 끼여들어서 거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생각없이 상대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온전히 듣기만 하는 것이 면벽 수행보다도 더 어려울 수 있음을 이 짧은 15분간의 실습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니였지요,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서로의 소감을 나누자, 우리들은 더욱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깊이 있게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깊이 사유할 수 있게 되었지요. 수업시간에 함께 읽었던 시 한 편을 갈무리로 나눕니다.
깊이 듣는다는 것은 - 존 폭스
누군가 당신을 깊이 듣는다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지녀온 당신의 이빨 바진 잔을 들고서
시원한 생수를 가득 채워주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
가득찬 물이 잔의 가장자리에 찰랑거릴 때
당신이 이해받고 있음을 느낀다.
가득찬 물이 넘쳐 당신의 피부를 적실 때
당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 당신을 깊이 듣는다는 것은,
당신이 있던 방이 새로운 빛을 띠고
당신이 처음 시를 썼던 곳이
바람처럼 떠오르는 것과 같다.
황금을 발견한 광부의 마음처럼.
누군가 당신을 깊이 듣는다는 것은,
맨발로 대지 위에 서는 것과 같다.
이제-멀리 느껴졌던 그리워했던 대지가
당신의 고향이 된다.
세션 3과 4에서 (신청하러가기-->http://www.wisdo.me/5596) 이어질 꼴라쥬로 알아보는 내마음 그리고 칭찬 담아 말하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마음 정화 작업은 계속 이어집니다. 에어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힘드셨을텐데도 수업에 몰입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이 오래 지속되는 아름다운 공감의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의 지고한 행복을 위하여 행복Lab.의 다양한 실험들은 계속 이어질 거예요.
더운 주말 인사동 일대를 누비며 부채사오고 얼음 사오느라 애써준 대학생 친구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주말인데도 함양 출장건도 포기하시고 남아서 끝까지 행복마을의 행복Lab. 시작을 지켜봐주신 그리고 함께 세세한 관심으로 이것저것 챙겨주신 실상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온전함의 화신!
5월의 마지막 날을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주신 이현경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6월 21일 토요일에 찾아올 행복Lab.에서의 두번째 만남을 학수고대합니다. 배움에서 끝나면 안되겠죠 삶 속에서 온전함의 대화가 실천될 수 있도록 그 때까지 경청의 아름다운 시간들 많이 많이 나누겠습니다.
글. 사진 사샤 (cieljs@gmail.com/ https://www.facebook.com/lotusnc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