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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작성일 : 2005-03-17 오후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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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회 소감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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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솜사탕 이미자님
첫날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먼 길을 와서인지 몹시 피곤하였다. 7일 오후 4시 법당에서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설레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용타스님을 뵈었다.
상담을 공부하며 들었던, 경청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제몰입 즉, 우리는 어느 순간이든 그 무엇이라는 주제 하(下)에 살고 있는데 그 주제에 몰입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아하’하며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렇다. 인생의 행․불행은 이 주제몰입의 여하에 따라 많이 다르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의 공부, 지인과의 대화,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에 몰입하지 않음으로 정신적․육체적․경제적․정서적 손해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그리고 촌철 한 마디가 인생을 바꾼다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점점 강의에 몰입되었다.
둘째 날, 첫 강의에서 행복창출 3박자를 배웠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정의를 해 보려고 했지만 명확히 잡히지 않았는데 ‘좋은 느낌을 지향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행복 창출 3박자를 모두 다 같이 했지만 너무 인위적이라 어색했지만 자꾸 연습하니 자유로워졌다.
강의의 주제는 마음나누기이다. 평소 주고받기를 비교적 잘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마음을 ‘겉마음과 속마음으로 나누고, 마음을 알고 쓰고, 나누기란 것’이라는 말씀에 명확한 개념이 잡혔다. 그리고 나눔의 공식, 관심, 감지표현, 공감․반응을 실습하였는데 관심, 감지표현, 공감까지는 그런대로 잘 진행되었으나 +∝의 반응은 정말 무척 어려웠다. 연습이 많이 되지 않아서 미세정서가 발달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저녁강의에서의 촌철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다’라는 말씀은 정신이 번쩍 든 ‘아하점’이었다. 지금까지 난 순간순간 ‘아하점’은 발견했으나 나의 삶이 더욱더 긍정적으로 변화되지 못한 것이 이것 때문이었구나! 그래, 반복연습하지 않았던 거야. 부모교육을 받고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반복 연습을 하지 않아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교육비만 갖다 바치고, 상담공부를 하면서도 인간심리와 삶에 대해 그 많은 ‘아하점’을 발견했으면서도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반복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 촌철만은 놓치지 않으리라. 내 인생의 큰 화두로 삼으리라.
그리고 ‘기적의 미세정서’의 설법에서 이것을 놓치면 인생을 놓친다고 하시는 말씀에 공감이 간다. 미세정서를 놓치고 현상적인 큰 것만 바라보고 집착하다가 인생을 송두리째 놓친 남편, 이 작고 아름다운 정서를 소중히 바라보고 다듬어서 인간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감을 심화시키고 혼에 관심을 기울여 성숙한 인격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내 학교의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내가 먼저 미세정서를 표현하여 밝음을 보여 보자. 처음부터 잘 되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말자. ‘내 인생 복습만으로 찬란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별로선도 저절로 좌측으로 가지 않을까? 9일 아침 일찍 일어나 미세정서를 연습하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마음을 집중하니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새소리, 발밑에서 사각대는 자갈소리 등은 베토벤이 ‘전원 교향곡’을 작곡한 힘의 원동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에 무심히 보던 이슬방울이 얼마나 예쁘고 영롱한지, 작은 들꽃 하나하나에서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경이롭다. 역시 인간은 배우고 또 배우고 깨우치고 또 깨우쳐야 하는가 보다.
9일 오전 강의에 앞선 촌철 ‘촐랑대라’
저 근엄하시고 점잖으신 거울님과 학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촐랑대는 모습 정말 고맙고 이 장에 에너지가 충전됨을 느꼈다. 그렇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미세정서도 줄어들고 유연성이 줄어들어 촐랑대지 않아 주위에 밝음을 주지 못했다. 항상 나가 나임을 주장하고 나다움을 지키려고 많이도 애썼다. 이제 그럴 필요 없이 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상황에 맞게 촐랑대기 레퍼토리를 만들어야겠다. 생의 중요한 윤활유인 것 같다. 인생 3박자, 저질러라. 제쳐라, 누려라. 지금까지 살아오며 비교적 잘한 것 같으나 저질러 놓고 제치지 못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나. 그래 지금부터는 제치기 연습을 하고 ‘나 없다’를 반복 연습하는 것이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건지는 것일 거다.
행동명상에서 원리를 손에 쥐어라 행동하면 정서도 따라온단다. 실습으로 춤, 시장상인, 개싸움을 해 보았으나 아직 마음에 걸림돌이 있어서 그런지 행동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슬픔, 분노에 대한 행동명상에 이르러서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이 떠나고 난 후 가장 시원하게 울어본 것 같다. 평소 집에서 울고 싶고 보고 싶어서 아이들 앞에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 싱크대, 세면대 앞에서 수돗물 틀어놓고 가슴에 맺힌 울음을 토해 낸 적이 몇 번이던가.
주전자 명상은 나에게 사물에 대한 생각의 전환점, 유연성 있는 그대로 소중함을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물컵 명상은 지금까지 남의 잘못이나 소속된 곳의 잘못을 보고 고쳐지지 않음을 원망하고 분노하며 괴로워했지만 그 먹물에 맑은 물을 부음으로 깨끗하게 맑아짐을 보고 모든 것은 나 자신의 부정적 생각과 행동으로 인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나지사명상, 독배, 지족, 촛불명상[느낌노트] 등을 통해 정말 양파가 껍질을 벗듯 내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짐을 느꼈다. 집에 가서도 이 명상들을 하며 나 자신도 밝아지고 남에게도 밝음을 주는 생활이 되도록 해야겠다.
이 모든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신 용타스님, 학님, 모든 도반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에게도 나의 맑고 밝음으로 촛불 밝혀 주리라.
2. 동녘 김하동님
그 동안의 건조하고, 피곤하였던 일상의 생활에서 5박 6일의 동사섭 교육을 신청하고 신선한 기대감을 가지고 교육장소에 들어섰다. 기대와는 달리 다소 현대적인 건물에 좁은 숙소에 답답한 감도 없지 않았다.
교육 첫날, 용타스님의 ‘경청하라, 주제몰입’에 대한 촌철을 들으니 나의 심장부에 정확히 꽂혀드는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40여 년의 삶 속에서 남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부족으로 잃은 것이 무척이나 많았기에, 내 인생에 큰 주제로 새삼 깨닫게 되어 시작과 함께 자각의 가슴이 열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삶의 의미와 원리를 몸으로 마음으로 체득하고 깨우치는 과정 속에서 그 동안의 나의 삶이 어떠하였던가?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 없는 삶, 그러한 삶이 갖고 있었던 의미와 가치가 크게 잘못되고 왜곡되었던 부분이 많았었구나 하고 한 순간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삶과 나의 인생의 목적인 행복을 진정으로 취하며 살아왔던가? 나의 가족, 나의 직장 동료 선후배 등, 또한 내가 관련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위한 진정한, 마음을 나누었는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사랑부족, 不지족 사고), 우세한 不지족 사고로 인하여 행복을 외면한 결과를 초래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5일간의 교육을 통하여 동사섭 참가 전에 “마음 속 깊이 답답한 감정을 모두 버리리라”하고 막연히 기대하였던 것에 대한 그 해답을 확연히 얻고 간다.
‘행동으로 먼저 행하고, 나 자신의 마음을 천국으로 만드는 수심을 하고, 가족, 직장, 사회와 화합하여 작선한다.’는 삶의 원리를, 명상을 통하여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지 아니하되 지향하는 자세로 앞으로 나의 삶에 보다 더 충실하게 임하여 행복한 삶으로 만들 수 있겠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생활에서 진정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가운데 답답하였던 나의 가슴에, 이토록 짧은 시간이 촉촉한 단비를 내려주어 소중한 기쁨이 되었던 교육이었다. 처음 경험한, 신선하고, 몰입이 잘 되는 교육의 전 과정을 마치며 처음 내가 얻고자 추구하였던 것을 부족함 없이 습득하여 간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덤이다.
-즐거운 추억을 같이한 여러분께 감사한다.
3. 창조주 유재춘님
마음을 연다는 것.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마음이 하나로 된다는 것.
참으로 가슴 벅차고 기쁘고 아름답다.
동사섭 5박 6일 동안 우리 모두가 정말로 고귀하고 멋진 존재란 걸 느끼고,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또 하나 건진 것은 어머님과의 화해였다. 행동명상 때 어머니를 부르며 울다가 느껴진 어머님의 염체에게 용서를 빌고 사랑한다고 말씀을 드릴 때 정말 울음이 솟아 나왔고 또한 한편으로는 기뻤다.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고 마지막으로 무의식 속에 갇혀있던 그 무언가를 내보낸 느낌이었다.
“이런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느낌들을 교류해준 분들과 거울님, 학님, 길님 그리고 다른 돕는이 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 또 하나 빠진 게 있다. 독배명상을 하면서 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난 나의 선택에 정말 만족하고 이전에 결심한 세상 사람들에게 존재 그 자체의 신성함을 알려주는 교사가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결심한다.
4. 가을 김석중님
감상을 적기가 참으로 어렵다. 행간을 어차피 비워 놓을 수밖에 없구나.
한마디로 놀라운 체험이었다. 무엇보다도 배워서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行)해 봄으로써 체득해 나가도록 이끌어주는 교육과정이 어쩌면 평범하면서도 그 나타나는 성취가 경이로웠다.
마음나누기를 배워 봄에 주기도 잘하고 받기도 잘 해야 함을 체득해 볼 수 있었다. 내 속마음을 감지해서 표현해 내는 것이 이렇듯 별게 아닌데.........
저지르자! 제치자!
참으로 가슴에 깊이 닿는 촌철이다.
저질러보리라. 제쳐보마. 그래서 충만함을 누려보리라.
자아지족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가 존귀함을 깨우치고 또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과의 모든 관계에서 나의 소중함과 그들의 소중함을 함께 느껴본 좋은 시간이었다.
독배명상을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찌 그 숱한 인연의 끈을 버리고 놓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막상 독배명상을 시작하니 그러한 인연의 사슬을 어렵지 않게 끊을 수 있게 됨이 한편으로 신통했지만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나 하는 마음 또한 어찌 할 수 없었다. 오냐 다음 번 독배명상 때는 어떠할지 너 두고 보리라.
자유로운 행동이 자유로운 삶을 끌어낼 수 있단다. 그럴 수가 있구나.
해보니 정말 그렇게 되어갈 법하다. 그렇구나. 그래 그거 해봐야겠다.
가장 놀라운 깨우침! ‘의식의 한복판을 말끔히 비워서 그대로 비워두어라!’이다.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염체가 의식 한복판에 얼씬거리지 않게 해라. 아하! 그래 그거야.
모두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이것이 良場力이구나.
주전자를 채우자. 그리고 맑은 물을 붓자. 감사와 보시, 사과 그리고 관용을.
내가 함께 있음으로 良場力이 되게 하리라. 그렇게 살아가리라!
5. 한기쁨 이창헌님
동사섭에 올 때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전현숙 선생님의 추천이 있었기에 그리고 여름휴가 일정과 맞았기에 왔다. 홈페이지에 수차례 들어가도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회원가입도 할 수 없어서 다소 불안한 면도 있었다. 삼동원에 이르는 길 안내도 부실하고 삼동원에 찾아오는 길도 쉽지 않았기에 좀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삼동원에 와보니 밝은 분위기와 안정된 느낌에 그리고 곳곳에 배어있는 정성들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마음의 안정과 안심을 찾을 수 있었다.
오면서 ‘사람에 대한 공포감을 풀 수 있을까?’가 주된 화두였던 것 같다. 사람과 같이 더불어 살며 사람이 무서운 내 자신이 이상했다. 그 이유라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행동명상을 하면서 그리고 새로 만나는 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속에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고, 조금 씩 조금 씩 그 벽을 허물어 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게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사람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운 것 같아서 무척이나 기쁘다. 그 동안에 알게 모르게 내 몸에 밴 것은 ‘이룬 것’에 대한 집중이었다. 그런 관점이 불편하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지만, 이곳에 와서 그 해답을 찾아 동굴 속을 헤매다가 출입구를 발견하고 희망과 기쁨의 기분이었다.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개시켜준 전현숙 선생님이 감사했다. 그리고 동생이 조금만 일찍이 프로그램을 알았더라면 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내 가슴속에 가득했고, 지금도 가득하다.
혼과 몸에 95를 주라는 것, 그리고 110발상도 신선한 충격이었고, 인생지침이었다. 이제라도 이런 관점을 접한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
‘미세 감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고, 희망이 보였다. 세세한 표현을 하는 도안님과 맑아님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표현의 시작이 감지라는 느낌이 들자 순간순간 내 느낌과 감정에 충실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나도 조금만 집중을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희망이 생긴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차차 조금씩 실천해가야지!
정말 짧은 시간에 나의 관점이 바뀐 것을 느껴서 놀랍다. 행동주의 명상시간에 한참을 울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울면서 눈물 콧물 침이 범벅이 되어서 떨어지는 것을 알았는데 불이 켜지고, 방석이 눈에 들어오자 그 슬픔의 얼룩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2시간 전 만 해도 방석이 왜 이리 지저분하지 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얼룩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의 슬픔의 흔적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되며 나도 많이 편해졌다. 앞에 나가 나눔도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토요일인지 일요일인지는 모르지만 ‘촐랑댈 수 있어라’는 학님의 말씀 또한 많이 와 닿았다. 왠지 모르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고 앞에 나서면 움츠러들고, 얌전함에 너무 많이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닌지! 촐랑대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어색해하고 끄집어내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경우가 왜 그리 많은지. 앞으로는 좀 촐랑대고 살아야지 촐랑댈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지.
지족명상을 하면서는 참 신비한 경험을 했다. 주전자에서 시작한 감사의 마음이 점점 다른 것으로 퍼져나가서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지금 이 순간이 있기까지 있음으로 해서 감사한 것들이 참 많다. 지금 이 소감문을 쓰는 종이가 있기까지, 볼펜이 있기까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다양한 분들의 노력과 다양한 자연의 선물이 있었기에 난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지 않는가? 감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꼈기에 동사섭에 감사한다.
0P확인 P100지향, 이 얼마나 쉬우면서도 의미 있는 말인지, 엄마로부터 많이 듣던, ‘지금 가진 것에 대한 감사’가 논리적이라고 해야 하나, 참으로 명쾌하게 다가왔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무심히 당연하게 넘어가는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고 고맙게 느껴진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0P확인에 그치지 않고 안주하지 않으며 발전적인 지향 또한 있으니 더더욱 좋은 것 같다.
독배명상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감정을 하나 발견하고 한참을 붙들고 있느라고 끝내 독배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다 용서한 줄 알았는데...........다른 세상에 있는 동생의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 오로지 사건을 조속히 처리하려는 경찰들의 무성의함 등이 가슴속에 크게 남아 있었나 보다. 그래서 동사섭이 끝나면 경찰서에 가고자 했던 것일까? 휴가 일정을 다시 잡아야겠다. 집으로 가야할까 보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로................
물컵 강의 시간에는 놀라운 광경을 봤다. 시커먼 잉크 물이 맑은 물을 가득 부어주자 다시 맑은 물로 변하는 것이었다. 잉크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물에 집중하면, 조금 있는 부정적인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보다 많은 긍정에 집중을 하면, 내 주변은 보다 금방 좋은 것으로 바뀌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그 맑은 물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일단은 우리 집에서부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커져 가는 아쉬움이란, 한번에 다 알려주시지 않고 중급과정 고급과정을 나눠서 다음에 또 동사섭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만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지금 마음 같아서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다음에 또 오고 싶다.
동사섭 프로그램을 접해보며 우리나라의 미래에 커다란 희망이 생긴다.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며 생긴 마음의 아픔들을 치유해 나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할만한 정신적인, 영적인 프로그램들이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음에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는 커다란 긍정이 생긴다.
동사섭을 이끌어 주신 명콤비 거울님과 학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그리고 다른 돕는 이 분들에게도 정말 커다란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에너지를 집중해서 쓰시는 거울님과 학님의 건강 또한 진심으로 기원하며 소감문을 마친다. 동사섭이 있기에 우리의 미래는 밝다.
6. 작은거인 최낙문님
동사섭에 들어오기 전까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얻어갈지, 어떻게 느끼고 생활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무척 궁금했다. 평생을 내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그곳이 전부인 양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과연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해, 어떻게 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항상 풀리지 않는 실타래와 같은 어지러움을 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고,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 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를 단 5일간의 훈련으로 조금은 느끼고, 깨우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기쁨이 우러난다. “나는 행복하다.”
우선 이런 기쁨을 줄 수 있도록 이곳에 보내준 회사가 있어 행복하다. 용타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이 있어 행복하다. 대화스님을 만나게 해 준 인연이 있어 행복하다. 같이 공부한 우리 반 멤버들을 만나 행복하다. 여기 모인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6일 동안 이곳에 있으며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건져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많은 경험을 하였다”
내 과거를 보았고, 현재를 보았고, 미래를 보았다. 나를 보았고, 내 주변을 보았고, 우주를 보았다. 나의 생이 소중하고 귀함을 알았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이 소중하고 귀함을 알았다. 행복의 본질을 알았고, 어떻게 행복해 질 것인가를 알았다. “우리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사람끼리 좋은 교류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가자”는 용타스님의 마지막 결연이 요번 수련의 진수인 것 같다.
“나를 버려라”
나 속의 나를 버리고 또 버려나가면 마지막에 空이 남는다 한다. 空을 느껴보려 노력해 보았다. 아직은 느낌이 약하다. 진정 자아가 집착하고 있는가 보다.
과연 무엇을 건져갈 것인가?
문득 이곳에 오기 전 동료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하다보면 느낌이 올 거라고, 그러나 한 1주일 지나면 다시 원 위치 한다고.
먼지와도 같이 보잘 것 없는 것이 나이고, 이런 나를 버려야만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 즉 空과 같은 평안, 이것이 곧 무념무상의 행복이라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존귀한 나와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 나 사이에서 ‘참나’를 찾기 위해 내 속에서 숨바꼭질하듯 지내온 것 같다.
우리 반 산벗님의 말씀 중에 “작년에 왔을 때는 과정만 좇다보니 뚜렷이 건진 것이 없는 것 같았는데 올해 와서 보니 확실히 다른 무엇인가를 깨닫고 간다.”라고. 나도 다시 한번 나를 찾기 위해 와 봐야 할까 보다.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하느라고 열심히 따라온 과정 과정이 모두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몽이메롱님의 재롱과 다야님의 천금같은 말씀 하나하나, 그리고 반원들의 주옥같은 표현 표현들, 이것들이 모두 건지고 가야할 것들 아닌가.
지금 나는 행복하다.
아는 듯하여 행복하고, 알지 못하여 행복하다. 알고자 할 것이고, 실천할 것이다. 이 소중한 생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를 용타스님의 높고 크신 가르침과 대화스님의 깊은 사랑, 자유로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죽어도 잊지 못할 이곳 생활을 접으면서 우리 모두의 맑고 밝은 행복을 빌어본다.
7. 상공 이학수님
뜨거운 여름날 5박 6일,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감사와 기쁨을 많이 느낀 생활이었다. 일상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하루하루와 또 그 속에서의 나의 역할, 정서를 느끼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여유와 자유로움이 부족했던 곳이었다. 아니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생각”이 세상에서 제일 큰 원수가 되고, 때론 은혜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일상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우리 모두의 행복의 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감동이 퍼져온다.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다”는 용타큰스님의 말씀처럼 그 동안의 교육과 실습을 뒤돌아보며 소감을 적어보자.
‘저질러라. 제쳐라, 누려라’의 <인생 3박자>. 아직은 교육전체를 종합해서 깨닫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저지르는 것이 삶이라는 촌철, 남이 뭐라 하든 내가 좋으면(하고 싶으면) 우선 저지르라는 어디선가 보았던 문구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습을 해가며 몸으로 직접 느껴보았다.
‘저질러라!’ 이번 과정에서 가장 크게 와 닿은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저지르기 위해선 평소에 끊임없는 준비와 마음 닦기가 필요하다는, 저질러서 자유로운 행동을 하다보면 자유로워진다.
“촐랑대는 사람은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촐랑댈 수 있는 그것이 힘이다.”
“Here and Now” 몸 있는 곳에 마음도!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마음나누기를 통해 서로 화합하며, 마음을 닦아, 자기의 맡은 책무를 가정을 위해 또 사회를 위해 크게는 우주 전체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인생의 5대 원리를 마음 속 깊이 되새겨 본다.
정말 행복을 위해서는, 지금 존재하고 지금까지 이룬 현재[旣存 • 旣成]에 만족할 줄 아는 지족의 상태가 필수로 여겨진다. 주전자 지족명상을 해나가면서 주변의 모든 사물들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존귀함을 한없이 느꼈으며, 어느 누구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겠다는 지금의 마음이 계속 이어지기를 간절히 강구한다.
우리 모두의 행복, 아주 작게는 나의 행복, 우리 가정의 행복, 내가 소속된 조직의 행복, 국가의 행복, 내가 소속된 곳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5박 6일간 배운 것에 다 녹아 있다. 화합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선 마음 주고 받기를 잘 해야 하겠고, 서로가 지족해야겠으며 결국에는 각자의 마음 염체들을 최대한 제쳐내면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져야겠다.
사람을 볼 때 혼을 보며 존중하고, 이루고 못 이룬 조그만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깨달음을 유지시켜주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자식들의 마음속에 퍼뜨린 먹물을 희석시켜 깨끗하게 하기 위해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다짐해 본다.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으며 그동안 조그만 것도 빠뜨리지 않고 전달하시려고 애쓰시고 신경 써 주신 거울님과 학님께 진정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8. 한별 문성원님
오늘로 4박 5일, 순간순간 참 길게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한 순간인 듯하다. 시간이란 워낙 주관적인 것이라 같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신선한 감동이 많으면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마치 어린 시절 하루가 무척이나 길었던 것처럼. 그런데 마치 한 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또 왜일까? 일상이라는 연속적인 시간선 밖의 외딴 시간 섬 이어서일까? 매순간 몰입했던 동사섭의 시간은 아마 크로니스적으로 길게 늘어진 시간이 아니라,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카이로스적 시간이었나보다.
내가 왜 5개월 전에 신청을 해서까지 동사섭에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것일까? 나흘 전 이곳에 도착해서 쓴 가입 신청서에는 ‘깊은 휴식을 위해서’라고 썼었다. 내가 원했던 ‘깊은 휴식’이 무엇이었을까? 첫 그룹 연습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붙들어 매어 온전히 ‘지금, 여기’를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결론은? 그 이상이다. 순간순간이 “아하!”와 감동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첫날 첫 강의에 4박 5일의 모든 것이 다 있었다.
1. 지금, 바로 행복하라.
2. 그러려면 그냥 행복한 상태로 있어라.(복바가지 바로 놓기)
3. ‘나 없다’의 행복!!!
그런데 그게 머리로 안다고 되던가? 나에게 거울님의 ‘知․行․得으로 자문하라’는 촌철이 가슴에 번개가 되어 꽂힌다. 이것으로도 어쩌면 충분했다. 그래 온 값은 했다. 그래!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다’ - 또 하나의 촌철!
‘5요춤’, ‘행복창출 3박자’ 등 많은 원리와 방편들을 배우고 실습했다. ‘화합 3요’와 ‘마음 나누기 공식’ - 명쾌하다. ‘관심(아마 순수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리라)의 지평위에 감지․표현하고, 공감․반응한다’ 그런데 막상 실습해 보니 어려웠다. 특히 ‘경청 - 공감 - ∝’의 받기는 내가 텅 비어있지 않으면서 진정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애쓰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10년지기처럼 마음을 열고 순수하게 서로를 받아들였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행복 = 知足 =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만으로 내 인생 찬란하다”
주전자에 감사할 것을 써 내려가다 보니,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주전자와 연관되어 있고, 그 알루미늄 주전자는 물론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그것도 내 주위의, 가족들은? 그런데 가족과 진정 화합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아이러니다. 나? 능력도 있고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고 싶었다. 아니 아주 귀하고 찬란한 존재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너? 내가 귀한만큼 너도 귀하다. 삼배를 올리면서 오만한 나를 보았고, 한없이 귀한 너를 보았다. 그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엄마, 아빠에게만 마음 놓고 해보았던 내 자랑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했을 때, 처음엔 개운했고, 받아주시는 분들이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다음엔 왠지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끝날 무렵엔 기뻤다.
- ‘나지사’명상으로 최근 내 삶의 표면에 떠올랐던 몇 가지 분노들을 다루어 보았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 독배명상 - 행복의 걸림돌인 욕구를 제거한다고 했다. 아하! “내가 있고, 내가 뭔가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모든 욕구를 만들어내고, 내 딸, 내 남편, 주위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어리석음에서 나온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제 독배를 마실 수 있겠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모든 이의 우주보다 귀하고, 찬란한 혼을 믿기에........
- ‘비아명상(옴나명상) - 환경도, 몸도, 마음도, 識주체도, 순수의식도, 묘유도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다........계속 지웠다. 가슴의 무거움이 조금 풀린다. 트림이 자꾸 난다. 가벼워진다. 비어간다. 좋다. 가슴의 무거움은 좀처럼 가시지 않지만, 가슴이 훈훈해져온다. 편안하고, 고요하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 물컵 강의를 들었다. 검정 잉크물이 맑은 물을 붓자 금방 맑고 투명한 물로 바뀌었다. 컵 속에 맑은 물이 99.9%, 잉크는 0.1%이다. 새로미야! 새로미 아빠! 당신의 0.1%에 집착하여, 당신을 괴롭힌 것 죄송해요. 용서하세요.
물컵 양 옆에 커다란 두 자루의 양초가 밝혀지고, 참회의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빚진 사람들에게 이 시간을 빌어 진심으로 용서를 빌자. 그리고 이 ‘섬’을 떠나면 맑은 물만 붓는 사람이 되자. 참회를 했다. 이제 시동은 걸었으니, 이제 잘 가면 되겠지.
끝으로, ‘나’를 위해 저토록 안타까워하시고, 안쓰러워하시며, 온갖 방편과 귀한 원리로 깨우쳐 주시느라 한없는 사랑으로 온 존재를 던지시는 거울님, 그리고 학님, 길님, 여러 마스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삼배를 드립니다.
우리 조원님들! 사랑합니다. 늘 지금처럼 행복하세요.
183회 동기 여러분 행복하세요!
9. 태백 곽규대님
너무나 큰 감동과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조금씩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가 나름대로 정하여 찾아가는 중에 이번 동사섭 법회는 눈이 확 트이는, 인생의 길라잡이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씩 되새겨 보면,
1. 촌철1: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다. 촌철2 : 知行得
나름대로 이런 것 저런 것 알게 된 것을 제대로 실행하는 것을 그동안 등한시 한 것이 느껴졌다. 행하지 않으니 얻을 수 있겠는가? 무조건 저지르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2. 받기 3박자(경청, 공감, + ∝, [10대 악성받기 안하기]) 그동안 조금은 흉내는 내었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 멀었다. 확실히 이 원칙을 지켜 가야겠다.
3.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대략 40세까지는 앞만 보고 달려와서인지 [별로선]이 너무 높았다. 근래는 다소 낮아지고 있는 것 같으나 아직도 높다. 하루 빨리 낮추어 기적의 미세정서를 스스럼없이 느끼고, 내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 느낌을 망설임 없이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촐랑대라]
그냥 촐랑대는 것과 득도 후(자유로운 영혼, 깨끗한 / 아름다운 영혼) 촐랑대는 것을, 이번 교육에서 그 차이를 용타스님과 대화스님의 촐랑대는 것을 보고 확연히 알게 되었다. 나도 내 마음을 하루 빨리 정화하면서, 하루 빨리 경박한 촐랑에서 멋있는 촐랑을 행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5. 作善 : 보시 / 감사 / 사과 / 자자청 / 관용
이중에서는 특히 사과와 관용에 스스럼없이 표현하여 내 마음의 한을 남기지 않도록 하고, [자자청]이 없도록 하여 타인의 한을 쌓이지 않도록 해야겠다.
6. 知足구현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치관과 가장 부딪힌 부분으로는, [旣存旣成]을 크게 느끼고 다음을 지향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너무나 큰 감동이다. 거기서 ‘나지사’명상을 더하면 금상첨화 아닌가.
7. [맑은 물 붓기]
나는 행복한 놈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대로 부모님께, 아들놈에게 하느라고 한다고 자부했는데 아직 멀었다. 맑은 물을 꾸준히 부어 처와 함께 모든 부분을 새로이 정립하여야 겠다.
마지막으로 초월명상을 하면서 용타스님의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당신의 수십 년 간 고행으로 얻은 [행복찾기 길라잡이]를 마지막 엑기스까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장한 표정으로 하시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커다란 감동과 함께 [한]이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하기를 내 힘껏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10. 샛별 손경옥님
‘유념만 하고 꼬락서니대로 살아라.’
마음에 다가 온 촌철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 모습을 부정하면서 방황하고 헤매었던 답을 얻은 것 같았다.
‘유념만 하고!’
이것만 기억하고, 그동안 내 집착들을 이제 놓아 평안하다. 결코 나는 너가 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귀한 존재이니까.
‘저질러라, 제쳐라, 누려라’의 <인생 3박자>는 정말 그동안 ‘안다병’에 걸린 나에게 새로운 도전과 버림과 누림으로 다가왔다. 세상의 어떤 것도 인식하지 않고, 저지르고 그러고도 할 수 없는 것은 제치고 그리고 나니 오는 행복감은 누리고, 얼마나 단순한 삶의 진리인가!
좋은 님들과 나누면서 받은 에너지들이 나를 변화시켜 준 것 같다. 대원의 맘으로 저질렀던 많은 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동사섭에서 받은 어느 강의 하나 실습 하나가 의미 없을까 마는 나에게는 0P지족의 행복원리가 와 닿았다. 이 또한 ‘내 인생 복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촌철 그대로일 뿐이다. 이것을 얼마나 많이 귀로 듣고 머리로 새기면서 살았는데...........하지만 삶은 머리가 아니다. 가슴으로 받고 가슴을 느껴야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사물들에게까지 간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 어렸을 적의 동화가 생각이 난다. 정말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네.
이번 동사섭을 통해서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크게 와 닿은, 내가 확실하게 들고 가는 것은 독배명상 시간의 깨달음이다. 나라는 자아가 사라질 때 나를 자유롭게 못하는 것들은 사람이었다. 남편, 딸들, 부모님, 형제, 친척, 친구 그리고 내게 스쳐지나간 모든 인연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솟구치는 눈물과 가슴 터지게 외쳐보고 싶은 말은 “사랑합니다.”였다. 그걸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한 것, 너무 너무 후회됐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 살은 나를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구했다. 그리고 남은 세상을 사랑으로 아름답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를 축복한다고 했다.
그래! 내가 찾던 것이 이것이었던 것 같다. 존재만으로 사랑하고 감사하고, 용서를 구하고 축복하면서 사는 것, 이것을 이루기 위해 명상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한다. ‘나는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그룹원들 사이에서 자랑했고 박수와 격려로 강화받았기에 이 약속을 꼭 지키겠다. 내가 ego의 육체를 버리는 그 날까지.
거울님, 학님, 길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찌 이분들에게만 감사의 말을 올리겠습니까.
한별님, 빅또르장님, 진공묘유님, 오뚜기님, 나우님, 영감님, 가을님, 섬그늘님, 동녘님, 함께님, 바다님, 창조주님, 무애님 그리고 183기 동사섭 모든 수련생님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미 행복하신 그 모습 그대로 내내 행복하십시오.
11. 현찬 정태언님
이번 183회 동사섭 법회에 참가하여 가슴에 깊이 담고 가는 것은 첫째, ‘아하선을 낮추어라’, 둘째 ‘0P를 깨달아라’는 말씀이다.
동사섭 법회에 참가하려고 오는 도중 이번 기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하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몇 가지 문제를 떠올려 보았다. 요사이 부쩍 피폐해진 내게는 너무도 큰 문제들, 다시 말해 내가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인간성의 회복이랄까. 부정적인 내 시야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일, 내 속에 있는 분노를 삭이는 일, 계속 부정해 왔던 내 자신에게 용서를 빌고 그 의지대로 살아보려 했던 점이다.
첫날 동사섭 과정이 시작되면서, 이런 모임에 처음 참가한 나는 어색하여 적응을 잘 못하였다. 그러면서 굳어진 내 마음을 발견하였다.
‘和合’에 대한 거울님의 강의 후 각 방에서 행한 첫 실습은 내 마음을 알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 표현한 문장들 속에서 내가 얼마나 기계적인 사고에 사로 잡혔고, 또 그 안에 들어 있는 부정적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우리 반 구성원들의 정서들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관심을 바탕으로 하는 ‘마음 나눔 공식’을 배우며 그동안 타인과의 대화 중에서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나를 일깨운 점은 우리 마음의 99.99%가 밝고 건강한 것인데 나머지 0.01%가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등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을 오늘밤 거울님의 물컵 강의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별로선’에 대한 거울님의 말씀에서, 그래도 감성적이고 인간적이었다고 생각해 온 내 자신이 우측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는 점을 깨닫고 그 동안 피폐했던 내 삶과 현재의 내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리고 교류4덕의 의미를 살피며 인간관계에서 내가 어땠는지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네 가지 덕목 중 그래도 관용까지는 베풀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세 덕목은 지켜왔다고 자부했으나 요 몇 년 사이 내 주변 인물들의 이기심,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의 행동 속에서 어느 사이 이 세 가지 덕목마저 내 안에서 가물거리고 있는 점을 발견하였다.(물론 그 모든 원인이 내게 있다고 귀착시켜야 하겠지만 아직은 그게 힘들다)
이번 수련기간 동안 가장 어려웠던 때가 ‘행동명상’시간이었다. ‘촐랑거리는 것이 힘’이라는 말씀대로 따르지 못했다. 특히 분노를 표출하는 시간에 내 속에 꿈틀대던 분노, 동사섭에 참가하면서 풀어 보리라던 그 분노가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간직했던 그 분노들이 내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경직되어 ‘행동명상’을 제대로 못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나를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아하선’을 낮추라는 말씀, 그래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따스한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그 말씀이었다. 이것은 내가 동사섭에 참가하여 얻은 값진 수확이요, 아련히 옛날을 떠올려보면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씀은 평생 가슴속에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 인생의 좌우명 같이 가슴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修心의 장에 들어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울님의 말씀이 계셨다. 내 자신에 대한 不知足, 이것은 이번 동사섭에 참가하며 무겁게 가지고 들어 온 문제 중 하나였다. 불행의 원리, 행복의 원리 0P, P100. 이 개념들을 이해하며 내가 그동안 헤맨 곳이 어디인지, 왜 그토록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고, 또 믿지를 못했는지, 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는지 절감했다. 내 자신, 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주변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머리 숙인다.
이번 동사섭 일정을 통해 ‘독배명상’은 색다른 경험이다. 최후의 순간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사슬들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믿음, 내가 없어도 된다는 믿음이 생기며 생각 한 켠으로 물러났다. 내가 이기주의자가 아닌지, 아니면 제대로 ‘독배명상’에 몰입하지 못한 것인지 아직 의문으로 남는다. (나중에 학님은 자기 시체를 떠올려 보라 말씀하셨다. 나중에 다시 한번 해보리라)
오늘 저녁 거울님의 물컵 강의는 아주 선명히 나를 일깨웠다. 그 조그마한 미혹들 0.01%의 부정적 염체들이 99.99%의 깨끗한 맑은 공간을 어떻게 물들이고, 또 많은 이들에게 어떻게 상처를 입히는지를, 그리고 내 자신이 어떻게 상처받는지를. 순간 나는 다시 내 아내와 내 아이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였다. 그 어린 마음에 자리 잡아 그냥 풀지 않고 놔두면 평생을 가지고 갈, 나로 인한 그들의 상처에 괴로워하며 사죄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께 사죄의 말씀을 올렸다. 별로 부모님께 원망이 없다고 믿어왔던 나는 내 의식 깊숙이 자리 잡았던 0.01%의 부정적 염체가 무의식에 잠복해 있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분들을 나도 모르게 원망하지 않았나 느끼며 사죄의 물 잔을 올렸다.
이번 동사섭 법회를 통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수없이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의 은혜, 소중하고 위대한 나라는 깨달음, 이들을 통해 화합하고, 수심하며, 작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지뢰밭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이 다짐들을 꽉 쥐고 놓지 않을지 걱정이다. 부처님께 내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기도 드려본다. 그리고 내가 얻어 가는 말씀을 간직하리라.
거울님의 열정적이시고도 명쾌한, 우리를 구도 하시려는 말씀에 그리고, 학님의 진정성에 머리를 깊이 숙이며 감사드린다. 아울러 우리 반을 이끌어 주신 도안님께도 그리고 나머지 돕는 이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그리고 5박 6일을 함께 했던 우리 반 구성원 여러분께, 그리고 같은 방을 썼던 여러분께 이 과정을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신데 감사드린다.
12. 소나무 최광식님
인생이라는 질곡의 긴 여정 가운데 5박 6일 120시간이라는 시간을 결코 많다 라고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라는 모범답안은 결코 양적인 것이나 부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주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가늠하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이번 수련기간 동안 충분히 많은 것을 느끼게 하여 주었다.
울고, 웃으며, 뒹굴고, 뒤집어지다 결국에는 스스로의 허물이, 허물이 까져버리는 순간순간이 이어지는 격정의 울림, 굉음이었다.
마음 주고 받기, 미세정서, 별로선, 교류사덕 등.............
단어는 생소하나 익히 알고 있으며 스스로에게 익숙했던, 하지만 일상이라는 괴물에게 겁탈 당한 듯 잊고 싶고, 잃어버렸던 추억들이 아니 나의 삶이, 한 점 한 점 꿈틀거리며 되살아나게 하여주었다.
나지사, 독배, 지족 등을 명상하면서는 시커멓게 그늘졌던 얼굴의 이유를 깨닫게 하여 주었고, 가슴 한 켠에 응어리져 있었으면서도 스스로에게조차 잊혀졌었던 듯이 의식의 저편에 깃들어 있으면서 고양이가 쥐를 도사리듯 품고 있던 한을 찾아내어서는 참회하며,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환희를 만끽하게 해 주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일상이라는 계율의 허물을 벗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짐작으로는 이해가 될 듯도 하다. 촐랑거리며 뒹굴고, 통곡하다 박장대소하는 모습은 시체말로 엽기다. 동사섭 초기 발전 단계를 설명하는 학님의 말씀대로 사이비 종교적 행태가 아니면 도저히 연습조차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삼동원 정원의 수목가지에 메말라 붙어 있는 매미의 허물은 동사섭 회향을 하며 뒷모습 남겨놓으려는 나의 흔적이련가
나의 삶을 일깨우는 경구로 ‘승중즉법중, 승경즉법경’이라는 말로서 삼고 있다.
승려가 승려다우면 부처님께서 존경받음이요, 중이 중답지 못하면 부처도 부처대접 못 받는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승려이다.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사실이다. 안일하고 해태하면서 정체되었던 나의 수도적 삶을 미약하나마 정화하고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수련회에 동참하고 있었다.
초발심적 수행자로 거듭 태어나기를 발심 작정하며 해인사, 통도사, 위빠사나 등등 여러 군데를 찾아다니며 신심 다지기를 작정하고, 신분을 일반 수련생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하여 차수하고 삼천배, 삼보일배, 하심, 하심, 하심, 신심, 신심, 신심....
승려라는 허울로서의 나의 승랍(나이)은 안정적인 중진의 신분으로 다가서고 있다. 거울큰스님이나 학스님께서는 가사(승복)의 무게를 잘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이번 동사섭 수련회를 통하여 더욱 존경스러웠고, 존경스럽고, 존경할 것이다.
맑은 물 붓기가 수련의 휘날레를 장식하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동사섭 과정 하나, 둘... 소중하지 않은 바 없지만 지면관계로 웃음을 대신하여 정리하며 이심전심으로 감상을 정리한다.
덧붙이는 말로 거울님, 학님, 돕는 이 여러분 그리고 소중한 도반님들 말씀 솔직하지 못하고 어눌하였던 점 ‘나지사’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거짓은 없었습니다. 엉! 엉! 엉!
13. 바람 조영순님
심신이 지쳐 쉬고 싶었다. 집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오만한 생각과 쉬면서 마음이나 닦자는 불손한 마음으로 동사섭에 참가했다. 꼭 한번 참가하려 했지만 연이 닿지 않았는데 막내 여동생의 간절한 염원이 도와줘서 내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오면서 화두를 정했다. “나는 왜 이리 바람이 많아 내 가슴에 바람을 일으키는지”
첫째 날 강의에서 삶의 5대 원리를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머리’로 이해했다.
“아주 괜찮은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안으로 수심하고, 더불어 화합하고, 작선하며 살겠습니다.” 앞으로 기도의 주제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느낌 주고받기를 할 때는 좀 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삶 속에서 가급적 말을 자제했다. 말로써 죄를 많이 짓는 것 같아, 참고 많이 들으며 마음을 살펴보자고 결심하고 왔기도 하고 정말로 체력이 바닥이라서 수련을 끝내려면 조절을 해야 했다. 이어지는 기적의 미세정서 강의에서 큰 ‘아하’가 왔다. 내 감정의 별로선이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 그동안 너무 높은 것 큰 것만 가치 있게 여겨온 자신을 깊이 들여다봤다. 이어지는 화합을 위한 교류4덕, 별로선이 너무 치우쳐서인지 처음엔 감사할 것도, 사과할 것도 별로 없는 듯 했다. 좀 더 깊이 명상을 해 보면서 너무 부끄러웠다. 감사드려야할 일, 감사드려야할 사람, 사과할 일, 사과할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남은 생 동안 늘 보시하고 관용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행동명상을 통해서 희노애락을 직접 표현해 보면서 내 마음에 맺혔던 것이 풀려나감을 느꼈다. 수심 이론은 참 명쾌했다. 대상에 대한 지족명상을 했다. 주전자를 놓고서, 그냥 무심히 보아오던 주전자를 통해서 나 스스로 그렇게 많은 감사를 드릴 수 있음에 놀랐고, 모둠원들과 나누는 속에서 사람들마다 그렇게 다른 자기마다의 명상이 있음에 놀랐다. 주전자 하나에 우주의 섭리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실로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족명상은 나에게 전율이었다. 시작하기까지는 좀 짜증스럽고 의아했는데, 인산님의 절을 받으면서 오열이 터졌다. 내가 무엇이건데 이렇듯 정중히 대해 주시나? 그동안 목청 높여 인간화 교육을 외치며 기운을 뺏건만 과연 난 이런 정성으로 인간을 대했던가? 정말 부끄러워 울었고 참회하는 맘으로 울었다.
자아 지족명상을 쓸 때는 난감하였고 발표하고는 미안했다. 속으론 꽤 괜찮다고 생각은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다섯째 날이다. 나지사명상을 하면서 ‘아하’를 얻었다. 사람과의 갈등을 날려 보낼 수 있는 멋진 도구이다. 너무 반가웠다. 오늘은 좀 기운이 나서 촐랑대고 조잘대기도 했다. 초월명상의 하나인 독배명상, 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집착의 고리를 끊고 나를 비워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어지는 무아명상에서 경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아의 의미를 깨달았다. 마지막 강의로 이어진 물컵 명상은 나의 혼을 깨우고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나의 행복, 나의 영혼을 위한 여행이었는데 다른 사람의 영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어머니의 가슴속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한이 너무 아프고 시어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너무 아팠다. 그분들의 행복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이번 동사섭에서 얻은 큰 깨달음을 입으로만 말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정성어린 진심을 다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수심하고, 화합하고, 작선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미욱한 중생의 깨달음을 위해 아파하신 거울님, 학님, 인산님, 연기님, 그 외의 돕는 이 여러분과 함께 한 모든 수련생님들께 고마움의 절을 올립니다. 돌아가서 나의 미욱함을 돌아보고 우주의 대원을 위해 깨끗한 물을 붓는 마음으로 108배를 올리렵니다. 깨달음을 得하는 그 날까지.
14. 가화 김성환님
오랜만에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다. 얼마 만에 듣는 아름답고 생소한 단어들인가. 마음나누기, 관심 주고받기, 인생3박자, 미세정서, 교류4덕, 장력, 별로선, 아하, 하물며....
여러 단어들이 억눌려 있던 나의 마음을 훨씬 가벼운 빈 공간으로 벗어나게 한다. 좀 더 배운 것을 돌이켜보면 평상시 주제에 충실하면서 마음의 나눔은 받기 3박자로 하되 10대 악성은 피하는 것. 미세정서로, 풀어지지 않고 경직된 가슴 깊이 먼 곳의 감정을 끄집어내어 순간순간 나의 새로운 감정이 ‘아하!’하고 솟아나게 하는 것. 특히, 저질러라, 제쳐라, 누려라는 향후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을 할 때도 용기의 도구가 될 것이다.
교류4덕에서 베풂, 보시에서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것 중에서 남을 위해 새삼 고마워야할 대상과 사람이 많구나 깨달았다.
수심에서 不지족 사고를 없애고, 된 것은 헤아리고 안 된 것은 버려라와 행복의 원리인 0P확인 P100구현 등에서의 주전자 감사 명상은, 여러 사람이 보는 공통점이 있어 사회가 지탱되고 다양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어 발전되고 개혁 되는구나 했다.
지족명상에서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사람에게 절하는 실습은 인간존엄의 새로운 체험이었고, 나 자신이 이렇게 훌륭하고 긍정점이 많다는 것이 새삼 나를 놀라게 한다.
5일째 되는 날 110발상에서는 분노를 나지사명상으로 없애고, 욕구는 독배명상에서 사고의 전환으로 다룬 일은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특히 옴(옴나)에서 모든 것을 버리는 무언의 명상은 색다를 나를 보게 한다. 하이라이트인 맑은 물 붓기에서는 이제까지의 작은 원망과 욕심, 분노를 모두 털어 버릴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종합해보면 올 때보다 현재의 나는 보이지 않는 내면이 변함을 자신이 느낀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볼 것이며, 나의 어두운 것을 거둬들이고 남의 어두운 것까지도 거둬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별것도 아닌 내 몸, 내 생각을 현재의 것에서 조금만 전환하면 모든 것이 밝게 보이고 남에게도 밝게 보일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행복한 세상추구의 출발점이 아닐까?
끝으로 좋고 참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거울님 그리고 기체조를 가르쳐주신 학님, 우리 반을 이끌어주신 성촌님께 감사를 드리고 체험을 알게 해준 회사에도 감사한다.
이번 기의 모든 동사섭 원들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빌 것을 약속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15. 허수 서상병님
동사섭 법회 도착 첫날 나는 보았다. 텅 빔과 충만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학님의 경이로운 힘을. 경외감이 들었다. 동사섭을 200회쯤 하니 그리되었노라 말씀하셨다. 많은 나눔의 공덕이리라.
<예고편에서 건져라!>는 거울님의 말씀대로, 나는 예고편에서 반 본전 건진 셈이다.
나눔과 명상을 반복하며 소중하고 존귀한 나를 깨닫고, 너무나 행복한 나를 발견하였다. ‘나 없음’으로 더욱 소중해지고, ‘나눔’으로서 더욱 풍족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촐랑댐으로서 더욱 자유스러워짐을 본다.
저질러라! 제쳐라! 누려라!
나를 외롭고 슬프게 하는 것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니라 내 자신임을, 탐진치(貪•瞋•痴)에 찌들어 있는 내 관념의 벽 때문이란 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확연히 느꼈다.
행동명상, 지족명상, 나지사명상에서는 쉽게 감정몰입이 되지 않는 나를 본다. 거울님말씀대로 자꾸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가슴 깊숙이 슬픔도 분노도 있음직 한데 잘 표출되지 않는다.
독배명상에서 주변정리를 하며 하나 둘씩 제치면서 정말 내가 행복한 사람임을 확연히 깨닫고, 마음이 맑은 호수처럼, 담담해짐을 맛보았다. 참 좋은 느낌, 가뿐한 느낌이었다.
5박 6일 동안,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충만감과 행복을 느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이란 대원을 세우시고, 고요한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셔 사바 중생과 같이 뒹굴며 나눔을 베풀어주시는 용타스님에게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학님, 감사합니다. 성촌님 감사합니다. 길님, 도안님, 연기님, 인산님 그리고 5박 6일 같이 공부하며 행복을 나누어주신 도반님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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