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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작성일 : 2007-08-21 오후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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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동사섭 중급과정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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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동사섭 중급과정 소감문
1. 일여 이경용님
동사섭! 이름만 들어도 정겹다.
나 나름대로 동사섭인 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제는 제법 동사섭인답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 동사섭 초년생이다. 중급과정을 받은 지가 얼마 안 된다. 지난번 중급은 영성지도자들과 같이 받아서였는지 참으로 보람 있었고 알찼었기에 이번 중급의 명상시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5요명상에서 ‘우주의 모든 것 유형, 무형, 유정, 무정의 행복을 위하여~’ 할 때 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되며 우리 모두의(나와 인연이 있는)정도였고,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는 우선 나부터 행복해져야 하고 내 가족, 내 주위 분들 정도가 나의 대원론이었다.
이번 거울님의 점검차원의 말씀 중에 자아가 사라지면 무한우주의 에너지가 된다는 말씀에 대원기도의 폭이 넓을수록 좋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고, “아~하 그거였구나!”를 반복하면서 기쁨이 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5요 명상에서부터 나 이 작은 꼬락서니가 아닌 전체의식으로 무한우주의 에너지가 되어 기로에 임하려는 자세가 되고 보니 텅 빈 우주에너지가 되어버린 상태를 여러 번 경험하게 되었으며, 지족명상만을 통해 느껴지던 자유, 평등, 평화로움이 5요명상에서부터 길어져 명상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비아명상은 쉽게 잘 되지는 않았지만 짧은 시간에 이 정도도 괜찮지 하며 감사했고, 죽음 명상에서는 평소의 죽음명상을 즐겼던 것을 통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기에 쉽게 잘 됐다. 마지막 나지사명상은 하도 많이 하고 진실로 해서 모든 것이 ‘구나’에서 끝이 났지만 거울님의 말씀대로 ‘겠지’에서도, ‘감사’에서도 새롭게 연결하면서 잘 해냈다.
이번 수련에서 수확이라고 말해야 한다면 한두 가지 아~하를 얻은 것이 아니지만, 개체의식을 전체의식화 해야 한다는 나의 평소 생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님께서 자아가 사라지면 무한우주의 에너지가 된다는 말씀에 그동안 머리에만 있던 것이 가슴이 확 열리면서, 자리만 잡고 잠깐 들면 내 작은 개체는 사라지고 우주의 에너지가 된 마음에 환희로 명상시간마다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고나 할까? 몸은 바로 사라져버리고 곧 우주에너지가 되어버리는 체험으로 반가부좌 자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몇 번이고 깨어나고 싶지 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거울님께 삼배 올려 감사드리며 집에 가서 혼자의 시간에 긴 시간 체험해보고 싶은 열망이 크게 있어 기쁘다.
같이해주신 도반님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리며 이번 중급도반님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맺습니다.
2. 자유 김호연님
늘 마음이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별칭도 자유라 했다. 동사섭 중급과정에 참여한 것도 불편한 마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맑아지고 가벼워지던 뒷머리가 거울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무거워진다. 수행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으면서 익힌 체 하고 앉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 때문이다. 거울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돈망은 커녕 조바라밀 하나도 제대로 잡힌 것이 없으면서 익힌 체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얻은 게 있다. 나지사명상의 "겠지"에서 "그 사람의 아픔"과 "나의 무력함"에서 아하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아내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나는 전형적인 NT (사고형)형이고 아내는 전형적인 NF (감성형)형이다. 나는 직업적으로 무미건조한 논리를 추구하여 논리적인 글을 쓰는 훈련을 받아 그 길만을 추구해 왔다. 반대로 아내는 인간의 마음을 감성을 통하여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을 추구해 왔다. 그러니 내가 아내의 표현 속에 숨어있는 감정의 흐름을 알아채어 적절히 반영해 주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불평에 대한 나의 반응에 아내는 답답해하고 때로는 화를 내고 슬퍼하기까지 한다. 이제야 그 이유를 분명히 알 것 같다. 아내의 말은 불평이 핵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경청과 이해와 공감과 위로였다. 아 나는 참으로 지혜롭지 못했고 자비롭지 못했다. 아내의 불평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설득이나 시키려 했으니 말이다. 이제 아내의 말을 이성적인 논리가 아닌 감성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 그러면 내 마음도 불편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고 아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마치며 동사섭의 경지에 만족하려 한다. 돈망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면 어떠랴. 아내의 마음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
3. 친친 라혜영님
친친이 왜 중급과정을 찾아오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일반과정이 너무 즐겁고 재밌었습니다. ENFP인 친친은 오는 순간부터 해서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관찰하면서 우애롭게 지내는 가운데 서로의 장점을 찾아내고 지족하며 양장력의 기운을 가지고 가는 것이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운을 이어가고 싶었던 게지요.
그리고 둘째는 학님반이었는데 학님반이라서 배운 것들이 너무나 좋았던 것입니다. 순간순간을 정성스럽게, 알뜰하게 진행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하! 나도 저렇게 내가 임하는 장에서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 순간순간을 모아 평생을 저렇게 살뜰하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보니 그 뒤엔 끊임없는 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급과정에서는 "수심"의 방법들을 익히는 과정이라길래 호기심이 잔뜩 발하였던 것입니다.
셋째는 일반과정 이후에 불교 호스피스 교육을 8일간 다녀왔는데 동사섭의 경험과 맞물리면서 인생관이 훤하게 정립되는 기회를 만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새로운 과정을 생각지도 않고 살다가 아~ 내가 준비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참으로 당황스럽고도 안타까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 윤회를 믿게 된 생각, 그리고 내가 나 아닌 것(무아, 비아)들에 대한 앎 등이 이제서야 밀려오면서 진정으로 내가 어떠한 정체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밀려오는 물결들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급과정에는 그 정체를 밝혀가는 수행과 그 방법들을 제대로 한번(저에게는 거의 첫 경험인 셈이지요) 경험해 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친이 중급과정에서 원하고 바랐던 것은 지극한 경지를 꼭 체험하고야 말테야 하는 욕심 따윈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앞에서 동기로 말을 했던 것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초발심을 낸 자의 마음을 가지고 그 방법이라도 자알 접해보고 경험을 통해 기억하고 향후에 좀 양을 늘려갈 수 있는 수행의 길잡이들을 건져보고자 하는 소박함이었더랬지요. 말 그대로 "깜냥껏"-진지하게 몰두를 하되 그릇만큼 채울 수 있는 법이니 그릇만큼 채워서 가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일반과정 이후에 동사섭 홈페이지 명상록 나누기에 나무를 키워 가는데 사실 촛대 불꽃 쓰기가 제일 만만하였고 초월명상, 나지사명상, 죽음 명상 등은 휑~ 하였습니다. 중급을 다녀오면 좀 더 그런 곳을 채워서 양을 늘려나가면서 명상의 깊이를 좀 파들어 가는 방편으로서의 중급과정이었습니다. 혹여나 그런 지극한 낮은 수준의 욕심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하하) 그냥 게으르고 말아서는 안 된다는 경계는 가지고 임하였으니 말 그대로 "깜냥껏"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는 하였습니다.
친친의 중급과정 아하점은?
지족명상은 양을 늘려가면서 점점 즐거움과 재미가 더하였습니다. 주로 지족명상을 할 때에는 "집중형 명상"으로 하나둘 그 때 떠오르는 주제를 잡아 지족할 거리들을 번호를 매겨 작성하여 보았습니다. 첫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그것이 좋아서 "따뜻한 물"에 대한 명상, 잘 모르고 있었는데 손녀딸을 지극히 사랑하시던 "외할머니"에 대한 감사명상, 또래에 비해 나름대로 대견한 나에 대해 생각하다가 "32세"라는 나이의 고마움에 대한 명상, 또 내 삶의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준 "죽음"에 대한 감사명상, 수행점검표에 하나하나 명상의 수를 늘려나갔던 "동그라미"에 대한 지족명상, 폭염경보에 기승을 부리는 "더위"에 대한 명상 등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명상을 하나하나 적고 보니 너무나 훈훈하고 충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평상시에도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다 좋다 고맙다"는 표현을 잘한 편이었지만 그 수를 늘려가며 나열하는 힘을 기르니 감사의 양이 눈에 보이게 점 점 점 커지는 느낌이 실감되어서 좋았고 또한 불만이나 단점이었던 것들이 어느새 옷을 바꾸어 입고 고맙고 감사한 것들로 변신해 있었으며, 저 마음 구석에 숨겨져 있던 귀엽고 이쁜 정서가 살며시 고개를 드는 깜찍함이 참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사실 다른 명상들은 좀 경험의 느낌이 크지 않았는데 지족명상은 하는 즐거움, 익히는 즐거움, 그래서 익어가는 즐거움을 느끼며 자신감마저 느껴졌습니다.
죽음명상은 사실 일반과정 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교 호스피스 교육을 체험하면서 준비하는 죽음이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각인되고 난 뒤라 임하는 마음이 처음에는 뭔가 실감이 날 것 같다 하는 진지함에 오롯이 집중하였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실감하는 과정을 체험하다 보니 제가 "착"하고 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딸에 의지하여 살아오고 계시는 엄마에 대한 연민이 제 발목을 꼬옥 붙들고 있어 애잔함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실 너무나 초탈한 듯 죽음명상에 익어있는 도인 같은 여러 도반님들을 보면서 첫 경험을 하는 제 모습이 미숙하고 부끄러운 감도 느꼈습니다만, 곧 결국 명상의 깊이란 오롯이 개인의 몫인 법이니, 그 첫 과정을 진지하게 잘 경험하고 있는 저에게 따뜻한 격려의 마음을 주었습니다. 처음에 끄달리는 마음이 있더니 2번, 3번 반복을 할수록 홀가분해지고 남겨지는 엄마에 대한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나지사명상은 사실 처음부터 편견이 있었습니다. 나는 화가 잘 나지 않는데... 미운사람도 없는데...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진지하게 임하지 못하고 같은 사례를 놓고 이리저리 말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상 모든 사람들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일 수 있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다 하는 제쳐놓았던 분을 생각의 가운데로 모셔놓아 보았습니다. 했던 나지사명상을 반복하다가 어느 한 순간 그 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는 내가 그 사람에게 기대했던 모습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 인식되고 그 사람이 나름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 속에는 나에게 주는 유익함이 명확히 있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나지사명상의 맛을 살짝이라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아(비아)명상을 하면서는 사실 제가 제 모습의 "아상"에 집착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부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희노애락"게임을 하면서 사실 긴장이 되었습니다. 일반과정 행동명상 때에는 익명성에 묻혀서 무난히(?) 한 고비를 잘 지나가는 느낌이었는데(그게 좋은 게 아니었지요) 사실 "희노애락" 게임에서 심하게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한 과업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아하! 아상에 사로잡힌 내 모습이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체험의 느낌이 선명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과업을 잘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그득하였는데, 이번 참에 실패해보는 경험을 해보기를 나를 위해서는 참으로 좋은 기회다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이게 아상이었구나!” 인정받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나라는 모습! 마음이 부끄러움에서 시원함으로 변하여갔습니다. 앞으로는 "아상"에 대한 밀도 있는 벗어던짐의 기회가 되겠구나하고 감사했습니다.
중급과정은 또한 5요명상의 재발견 시간이었습니다. 문자적으로만 명상을 시작하는 정도로만 인식되던 그 5요명상이 어떤 나인지에 대한 정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 대원의 바람이 사무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진실로 ‘아하!’ 점이었으며 그 뒤로 5요명상의 오묘한 느낌은 참으로 신비한 체험이었습니다.
친친의 앞으로의 삶은?
처음부터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잘 느껴지고 득하여진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일단은 어린 나이에(?) 빨리 접한 것, 빨리 알아차리고자 노력하는 것에 먼저 감사하겠습니다. 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상대방을 의식하는 "아상"을 분명하게 챙겨보고 지우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배운 것들을 익어지는 것으로 다시 닦고 또 닦는 노력만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 초승달 황형섭님
매번 그러합니다만 수련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나는 대만족하고 기분이 참 좋습니다. 나에게 무슨 복이 많아서 이렇게 완벽한 세트 안에서 공부를 하는 복을 누리고 있는지 참으로 부모님 조상님들께 감사 올리고 이 즐거움을 돌려드립니다.
지금 참 행복합니다. 자신이 자신에 대하여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의 검불들이 발견되고 치워져가는 작업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가 쏠쏠합니다. 특히 아주 성능이 좋은 동사섭 도구를 활용하여서 해 가는 작업은 쉽고 기분 좋습니다. ‘삶을 결정하는 요인은 수 억 만 가지로 될 수 있지만 대단히 핵심적인 요인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다. 그 사람의 현재의 삶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결정되므로 지금 행복 하지 않다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재정립 하면 된다.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어도 수심이 약하면 안으로 평화와 자비가 약해지는 것은 자명하고 따라서 수심을 끊임없이 하는 것을 나의 삶으로 하는 것이 나의 인생을 가장 알차고 보람되고 유의미하게 하는 구나.’를 명철하게 안 수확으로 즐겁고 행복합니다.
1 주 바라밀 *돈망
4 조 바라밀 *지족명상
*무아명상
*죽음명상
*나지사명상
@ 세바라밀 *작선
*체조
여기에, 이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재미와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하였으므로 앞으로 또박 또박 정직하게 하겠습니다. 머리로가 아니라 소리를 내어 내 가슴이 훈훈하고 울리는 공부를 해가겠습니다. 모두들 함께 도와주시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면서!
5. 정훈 성희자님
중급과정에서 비아관, 지족명상, 죽음명상, 나지사명상을 주로 하고 5요 명상을 기초로 하고 돈망을 연습하였다.
비아명상 - 환경도 내가 아니요,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환경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또 회피하였지만 부정적인 나의 환경은 나의 일부분인 양 생각하고 있었음을 아~하 하게 되었고 그 쓸어버림이 시원하였다. 몸도 마음도 순수의식도 내가 아니라 그 고요함에서 그저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편안함...이 좋았다.
지족명상 - 체계적으로 모든 것을 감사하거나 떠오르는 대로 감사하는 것이 다소 인위적이지만 우선 감사해놓고 나니 정말 감사하다.
죽음명상 - 내가 죽는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나 놓아지면서 시원함이 있었다.
나지사명상 - 부정정서를 느끼게 된 상황을 하나씩 구나~ 해보니 뚝 떨어져 따로 있었던, 그래서 나와는 관계가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겠지.... 때로는 ‘그 사람의 상처요, 나의 부덕’에서 많은 게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감사는 다소 인위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으나 그래 나에게 보이는 저 면이 저 사람 전체는 아니야." 에서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 확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동사섭을 경험하고 일상생활에서 나는 동사섭적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행함으로 얻어지는 것도 있었고, 그러나 최근 몇 개월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도중에서 우왕좌왕 하거나 길을 잃거나 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삶의 5대원리를 해도 자꾸 답답하기만 하고 애매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부정적 정서는 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어 더욱 답답했다. 이번 중급과정을 하면서 나는 동사섭의 공부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았고, 제대로 행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대충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어 좋았다. "비아명상, 지족명상, 죽음명상, 나지사명상, 그거 좋지. 그래 그렇게 살면 좋지." 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고, "내가 하는 방법이 옳다"하면서 나의 방법에 집착하고 그러지 않은 사람을 보면 답답해하였다. 내가 하자고 하는 방식대로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싫어하고 틀렸다고 하고 나아가서는 미워하기 까지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의식적으로는 좋아하는 것을 끌어당기고 싫어하는 것을 배척하면 안 된다고 지각하고 있으니까 정서는 억압되고 멍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아~하!
그동안 나의 공부 상태는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내가 속았구나 싶으면서 기뻤다. 이번에 배운 네 가지 조바라밀 중에서 "나지사‘를 하루에 세 개 이상 해 봐야겠다. 그동안 화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쉽고 안타까웠던 그 감정의 실체는 분노였던 것을 확인하니 부끄럽지만 시원하다.
이번 중급과정을 마치면서
1. 1년에 월례회를 4번 이상 참석한다.
2. 나지사를 중심으로 비아명상, 지족명상, 죽음명상을 원칙대로 해보자.
3. 그것이 잘 되고 있는지 학님이나 거울님께 확인받는다.
이 세 가지를 다짐한다. 이러한 다짐을 통해 공부인으로의 인격이 갖추어질 것을 생각하니 기쁘다.
6. 까만소 조현우님
198회 초급과정을 마치고 무언가 잡힐 것 같아 기대를 가지고 중급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1개의 주바라밀 돈망과 4개의 조바라밀 지족 무아 죽음 나지사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닦는 과정 간혹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그리고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든다. "돈망" 무엇인지 모르겠다. 수련과정 이전에도 혼자 있으면 느끼는 느낌 "이대로 더 좋을 순 없다는 것" 이외에는 없다. 나의 환상인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연기들이 눈앞을 스치면서 그 속에서 환한 밝음이 터지며 사라지는 현상. 하지만 이 현상은 여기서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생기는 것이라 잘 모르겠다.
"지족명상" 초급 과정에서 느낀 만큼의 환희는 없다. 초급과정에서는 감사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다"는 말을 생각하며 지금껏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며 살려고 노력했기에 큰 것은 없는 것 같다. 허나 삶의 세심한 부분을 바라보게 됨이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다.
"무아명상" 초급 과정에서 큰 체험을 하였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그 느낌 너무도 잊을 수가 없다. 이 느낌은 나를 계속 부정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인데 지금은 그 느낌이 오지 않는다. 아쉽다.
"죽음명상" 초급과정에서 얼마나 울었던가? 죽음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잡히는 것이 없어 출가로 생각했다. 나로 인해 태어난 작은 아이 아현이가 걸렸다. 큰 아이야 마음의 상처가 덜 하겠지만 어린 아현이에게는 상처가 클 것이라 생각하니 도저히 출가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출가"보다 "죽음"을 생각하니 쉽게 끊어버릴 수 있다. "그 녀석 나 빨리 죽으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삶과 죽음의 고뇌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죽음이 다가온다." 받아들일 수 있다. 나 또한 자연이므로 죽음이 다가온다면 굳이 저항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죽는 것에 대헤서 언제나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웃으며 죽을 것이다"라고 원을 가지고 살고 있기에 죽음 명상이 크게 다가오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앞으로 더 준비하고 살아야겠다는 소득이 있어서 좋다.
"나지사명상" 지금까지 "구나" "겠지"는 평소에 잘 하고 사는 편이었다. 그러나 감사 부분이 없었음을 알고 기뻤지만 이 또한 초급과정에서 얻은 것이라 지금은 그 느낌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지사 명상꺼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 아직도 세심하지 못한 탓일까?
"5요명상" 초급과정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찾으려는 삶의 모든 것들이 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어 매누 기뻤다. 어느 보살이 지옥고에 시달리는 중생을 모두 구제하지 않고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글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 "작선하며 살겠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으나 지금은 그 느낌이 덜 해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작선하며 살겠습니다."로 바꿔 그 느낌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래전부터 내가 그리고 내가 꿈꾸는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살았는데 나름대로 실천하며 살았는데 동사섭과 인연을 맺어 더 확연히 알게 되어 기쁘다.
"중급과정" 기대만큼 가지지 못해 아쉬움이 있지만 걸림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지금까지는 수많은 걸림을 다스리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노력이 줄어든 것 같아 좋다. 아쉬움이 있다면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지 못함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들과 같이하지 못함은 아직도 욕심이 많고 두려움이 많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언젠가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생각해 본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7. 물소리 한수현님
일반과정 5박6일이 참 행복했었다. 그래서 그 기억 하나를 의지해 중급과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숨을 곳이 없는 단촐한 인원이며, 범상치 않은 도반님들의 분위기가 나를 기죽게 만들었다. "잘못 왔다"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럽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거울님의 상세하고 명료한 강의와 실습이 이어지면서 또 도반님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서서히 명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1. 돈망
"존재하는 자체로 나는 행복하다." 두 눈을 감고 그대로 따라해 본다. 처음에는 분석해 보고, 왜 그럴까 하는 생각에 집착하다 보니 영 어렵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 거울님이 말씀하신다. 느낌에 유념하라고, 조금만 좋다는 느낌이 와도 명상이 되고 있는 거라고! 맞다! 돈망 상태를 체험하지는 못했어도 뭔가 행복하고 족하다는 느낌은 나지 않는가? 야호! 1차 성공이다 더군다나 돈망은 고급과정에서 다루는 어려운 명상이란다. 다행이다! 이 정도 느낌으로 족하다.
2. 지족명상
일반과정에서 큰 감동을 받은 명상이라 두려움 없이 임했다. 그러나 지족명상을 거듭하다 보니 일반과정에서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느끼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한 지족명상이 일반과정일 때에는 "내가 참 많은 것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외적 조건에서 그쳤던 반면에, 이번에는 긍정적 자아관까지 느끼게 된다. 좋은 엄아,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동사섭에 와서 수련을 하는 나는 얼마나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인가? 내 자신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다.
3. 비아명상
어렵다. 영 되지 않는다. 보충수업까지 받았지만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길을 알았으니, 하나씩 치워 나가면서 조금의 시원함은 느꼈으니 그걸로 족하다. 수련점검표에 열심히 동그라미를 치다 보면 완전한 해방을 얻는 날도 오겠지. 꼭 그럴 것이다. 그러고 싶다.
4. 죽음명상
일반과정에서는 끝까지 죽지 못했다. 어린 자식들 얼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와 죽을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죽음명상을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왜 내가 죽는다고 아이들이 못 살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내 염체에 불과한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태어나면서 그 스스로가 하나의 우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하! 그렇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5. 나지사명상
일반과정에서도 즐거움을 준 명상이었지만. 이번에도 큰 깨달음을 준 명상이었다. 이미 다 이해하고,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상황들을 하나씩 꺼내보니 용서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화가 날 이유도 없어져 버린다. 오히려 내가 용서를 빌어야 할 분도 생긴다. 돌아가자마자 진심을 담아 용서를 빌어야겠다.
큰 감사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수련점검표라는 선물을 가지고. 열심히 수련표에 동그라미를 쳐보겠다. 그래서 고급과정은 준비된 수련생으로 임하겠다.
8. 무심 허영숙님
먼저 저의 삶이 얼마나 잘못된 삶이었는지 이 장을 마련해 깨닫게 해주신 거울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겐 수련 매 시간 시간이 "아하!" 였습니다. 제 느낌이 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는 모릅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자연과 주변의 환경이 응당 당연한 것이라고 당연시하고 누리고 살던 어리석음을 지족과 나지사 명상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매사가 감사거리인 것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범사에 감사를 하고 보니 탐. 진. 치 삼독심이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삼독심이 소멸됨을 느끼니 행복만 남았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행복하니 양장력이 높아짐을 느끼고, 양장력이 높아지니 염체로 인해 집착에 빠져 불행하다는 부정적 사고가 긍정적으로 전환됨을 느끼니 행복합니다. 나라고 여기던 것을 하나 하나 버리고 보니 무아임을 알게 되고, 무아라고 느낀 것도 버리고 보니 평화와 고요가 온다. 행복하다. 아주 행복하다.
이번 수련에서 지족과 나지사 명상은 확실히 깨우치고 갑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하나 깨우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번 수련 과정에서 깨우침에 도움을 주신 도반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새벽에 단잠도 물리치고 조상의 슬기와 문화를 접하게 해주신 춘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9. 한암 임완수님
일반 과정 2회, 중급과정 1회를 하여본 상태에서 나름대로의 만큼을 가지고 중급과정을 다시 참석하게 되었다. 어디에서 "아하점"이 될 것인지ㅡ 지행득 부분에서 제대로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모자라게 행하고 체득 되었는지 거울님의 강의를 경청하여 주제 몰입하여 갔다.
일차적으로 5요명상 中 大願 부분에서 "하늘만큼 무지 행복하지만 없는(非我) 나는" 부분에서 마음 구석구석 구구절절이 사무치고 사무치게 하라시는 부분에 아하가 왔다. 이 미세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그 전에 하던 대원지심 보다 더욱 더 명확하게 와 닿았다.
두 번째는 모든 명상 수행 중 "감각. 인지 과정에는 필히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하였는데, 더욱 더 미세한 느낌이 느껴져 점점 몰입되며 낮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어 무척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셋째는 知足명상 시 지금까지는 체계형으로 지족 10차원을 주로 하였었는데 집중형으로 가족들을 하여보니 더욱 더 소중하고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특히 6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의 큰 보살핌이 느껴져 부모의 그늘이 수만 지름 간다는 옛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고 감사의 마음이 절로 배가되어 기뻤습니다.
넷째는 거울님의 무아명상 시 일례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치우고 치우다 보면 우주에서 치워져 버려 휑하니 비워지는 자유감과 존재감이 더 크게 향상된다고 하심에 반복적으로 행하여 보고 느끼고 체득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또한 저의 요즘 화두로 삼고 있는 "실체가 개념화되면, 존재를 상실한다."는 것으로 순간순간 알아차려 대입, 착안하여 보는 재미가 쏠쏠하며, "이래 있으니 참 좋고 좋아 頓忘天國이요, 나아가니 감사 감사 知足天國이라!"는 기초신념을 확실히 바탕에 깔고 세상사 소임을 하려 하니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삼박 사일의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심전력으로 법문하여 주시고, 한없이 넘치는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용타 큰스님께 감사와 고마움의 삼배를 올리며, 같이 함께하신 18명의 수행 도반님들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느끼신 만큼의 행복을 찾으셨으리라 축배, 찬탄하며, 공양처에서 수고하여주신 보살님, 사무처에서 수고하시는 직원님께도 감사의 삼배를 올립니다. 모두 모두 수고하셨고, 즐거웠었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축원 합장 올립니다.
10. 솔로몬 이종형님
염체는 생각덩어리 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주 많은 분별을 통한 시시비비를 하면서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하루하루의 생활 또한 판단과 결정이라는 단어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이를 슬기롭게 풀어보는 해법이 없기에 서서히 굳어가는 얼굴과 마음을 보면서 고민을 하던 중 이번 동사섭 중급 과정을 통해 5요명상, 돈망, 지족명상, 비아관, 죽음명상, 나지사명상 , 운동, 작선의 내용을 학습하면서 내 삶의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소중하고 중요한 내가, 우리 가족과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나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여기서 나오는 좋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가족과 직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경제적으로나 마음적으로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결심했다.
항상 사물을 볼 때 판단하고 분석하길 즐겨하다 보니 부정적 관점이 발달되었고, 빨리빨리 일처리를 하기 위해 충분하게 상대방에게 경청하여 주지 못하고 처방하고 지적하는 삶 위주로 생활을 하였는데, 거울님의 말의 표현은 상당히 중요하다는 말씀과 태양과 폭풍의 표현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차이를 들으면서 내가 그동안 ‘다 잘 하고 입으로 까먹는다!’에 대해 ‘아!하!’ 할 수 있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버님의 갑작스런 임종과 이를 함께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죄책감과 부담스러움, 이 느낌의 고통이 가득한 상태에서 시작한 나지사명상 시간 속에서 이 사건을 멀리 높이 띠어놓고 50년 전의 사건으로 시계를 돌려서 생각하면서 내 생각 내 삶 속에서 억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중요도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나의 염체에서 오는 생각 느낌의 고통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하게 잡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 좋은 아주 좋은 나에게 흡족한 시간이었다.
11. 춘란 백순동님
몇 年 前 일반과정을 해 보았기 때문에 그냥 저질러 보기로 하고 입소하였다. 그러나 첫날 5요명상부터 모든 것이 새롭다.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성 순서부터 버벅거린다.
정체: ‘나는, 나는, 나는...’ ‘무엇, 무엇, 무엇인 나는’ 할 때마다 ‘덤덤한 나는 이었지’ 느낌이 올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솔로몬과 나누기 할 때 ‘나는’ 이라는 정체가 ‘아! 내가 나지 않아’ 나인 실체를 인식했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할 때 우리는 쉽게 받아 넘기지만 ‘우리 모두’는 우주를 뜻한 거대한 느낌이 왔을 때 가슴이 확 트인 느낌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그리고 행복하니 행복으로 끝남이 아니고 사랑, 기쁨, 희망과 같은 보석들이 덩달아 보너스가 선물로 받아진다.
수심, 무엇으로 내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 부정적인 사고들, 잘못한 일들 모두가 막연하다. 그러다 생각을 비워놓기로 해본다. 하나씩 끄집어내다 보니 많은 것들이 끊임없이 올라옴이 두려울 뿐이다. 그러나 관계하는 모든 것과 참회하면서 더불어 화합하기를 염원하고 이젠 빚진 것에 대한 보상으로 작선으로 하나씩 정리해보니 이제 시작임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돈망명상, 이건 또 무엇인가? 일체 탐. 진. 치를 지워내는 일이 쉽지 않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그 모든 것들.... 허나 지족의 극치가 돈망이라 하니 이 또한 얼마나 설레임인가? 지족에 중심을 두고 모든 것에 감사하니 감사점이 워낙 많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 형제, 아내, 자녀, 조상님들, 26기 중급반 여러분, 용타 큰스님, 행복마을에서 근무하시는 모든 분들께 합장하면서 한분씩 명호를 부르고 감사함으로 돈망의 이름표를 붙여보니 무리는 아닌 성 싶다.
모든 것이 아니다, 아니다, 해서 비아는 몇 번을 해 봐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거울님의 강의 중 환경이 우주라고 설명하신 순간 우주가 공인데 내가 아닌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가? 솔로몬과 나누기에서 5요명상 중 내 실체의 삶 인식함을 이해했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솔로몬님께 다시 한번 미안함을 이 글을 통해 고백하고 싶다. 명상 시작과 동시에 쉽게 죽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늘 해봐야 잘 죽는다. 용타 큰스님께서 잘 죽어도 뭔가 있을 것이니 찾아보라 하시기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여타 번뇌 망상 현실을 도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삶으로부터 도피가 죽음이 아니고 순리란 것이란다. 나지사명상은 인정하기 쉽지 않다. 배려하고 있음과 수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다려보자.
마지막 큰스님 말씀이 떠오른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말씀을...
12. 덕안 이진영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산!
지난 3박4일을 근자들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일반과정에서 공부했던 5요명상과 주바라밀 조바라밀을 하나하나 깊고 정확하게 몰입해서 반복하는 동안 마음 밑바닥 저 깊은 곳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성성적적의 평화는 "아, 이것이 바로 삶의 진정한 행복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기쁨이고, 평화이고, 행복이었습니다. 거듭할수록 무한우주처럼 깊고 넓은 무한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5요명상은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를,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래서 어떤 삶의 결과물이 되도록 살아야 남은 인생을 진정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더욱 깊이 각인시켜주었습니다. 돈망 주바라밀과 지족, 비아, 죽음, 나지사 등 조바라밀 명상은 그런 나의 삶의 가치관을 한층 더 깊고 튼튼하게 세워주었습니다. 아직 돈망의 극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대로 OK하며 개념 이전의 텅 빈 광활한 고요 속에 머무르고 있다 보면 온 세상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깊고 고요하고 담백한 에너지로 꽉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춧돌로 삼아 둘러보는 이 세상 모든 것은 감사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지족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방바닥의 파리가 감사하고, 풀벌레 울음소리가 감사하고, 하늘이 감사하고, 구름이 감사하고, 똥 누는 것이 감사하고, 잠자는 것이 감사하고, 밥 먹는 것이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있는 것이 감사하고, 그냥 이대로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조금만 더, 더, 하고 욕심을 부리며 내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지난날에 참회의 눈물이 났습니다. 어쩜 제가 지금 이렇게 우울증에 시달리며 아픈 것도 바로 내 삶에 대한 그런 감사함의 부족이 연유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돈망, 지족은 의식의 기초 토대로 삼고 명상해 들어가면 갈수록 내가 이렇게 살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고 향처럼 훈훈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양파껍질 벗겨내듯 한 겹, 한 겹, 나의 염체를 벗어 내던지는 비야명상은 그런 나의 기초철학에 더욱 가속도를 붙게 했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진정코 없는데 그동안 나라는 자아와 개인에 사로잡혀 욕심 부리고 성내고 과시하며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허세부리고 우쭐대며 살아왔던 지난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삷이었는지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검불 같은 나를 다 벗어던지고 나자 정말 개운하고 시원하고 유쾌했습니다. 내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져 기뻤습니다.
거듭되는 죽음명상은 내 정신의 진정한 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직면하게 해 준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사형수가 되어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죽음의 바람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큰 두려움과 공포와 생명에 대한 애착심이 나의 내면 깊숙이 또아리를 틀고 숨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돈과 권력과 명예와 명성에 집착하며 쾌락을 쫓고 이기심과 욕구불만과 불평불만에 가득 찬 생활을 했던 그 밑뿌리는 바로 그 생명에 대한 애착심 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명상을 통해 지금 내가 살만큼 살았고 또 목숨을 더 부지함으로써 더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 죽음을 맞이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빨리 새 몸 받아 더 좋은 인연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끝내는 죽음이 행복한 일로까지 전환되었습니다.
나지사명상은 그 동안 내 안에 숨어있던 부정염체를 샅샅이 뒤져보고 직면해보게 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를 이렇게 병들고 고통스럽게 만든 것도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 속에 잉크물처럼 쌓여온 원망과 분노의 염체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뜨거운 눈물이 솟아났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고, 죽고 싶고, 때리고 싶고, 욕하고 싶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싶은 원망과 분노의 마음들이 연기를 피워 올리는 동안 내 마음과 영혼은 찢기고 부러지고 부서져 깊은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번 중급과정 수련을 통해 그럼 부정 염체들을 최소한 한 번씩은 씻어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피아니스트가 한 번의 연주회를 위해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손끝에 피가 나도록 연습하듯이 반복, 반복, 반복해서 내 의식의 저 깊은 밑바닥에 침잠해있는 그런 부정 염체들을 깨끗이 정화해낼 때 그 순간이 바로 지고한 행복 해탈의 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제 삶을 행복하게 하고 또 행복하게 사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돈망, 지족철학을 의식의 주춧돌로 삼고 그 주춧돌 위에 비아, 죽음, 나지사 명상의 기둥을 세워 흔들리지 않는 행복의 큰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살려고 합니다. 허공처럼 텅 빈 마음으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며 이 순명의 길, 행복의 길, 정체 대원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이번 3박4일 동안 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산을 무상으로 받았습니다. 인생의 확실한 황금맥을 붙잡았습니다. 깨달음을 주신 거울님께 엎드려 감사의 삼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3박 4일 동안 함께 수련한 여러 도반님들께도 사무치는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감사의 합장을 올립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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