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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있는 사람은 퍼내는 일을 하게 되고, 비어 있는 사람은 채우는 일을 하게 된다. 차 있는 사람을 접하면 그 사람 말을 듣게 되고, 비어있는 사람을 접하면 내가 말을 해도 될 분위기에 휩싸인다. 차있는 사람은 자기의 말을 해야 하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여유가 적고, 비어있는 사람은 비어있으니 다른 이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
많이 차 있는 사람과 한 시간을 앉아 있게 되면 그 사람의 말을 59분간 들어야 한다. 무엇의 차있음이요, 무엇의 비어있음이겠는가?
길은 중도이다. 중도는 지혜에 따른다. 지혜는 바른 신념을 낳고 바른 신념은 중도를 연출한다. 지혜의 계발은 어떻게 하면 될까? 우선 두 가지를 유념하는 것이 좋다. 하나는 무아(無我), 공(空)을 깨달아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가는 것이 지혜 계발의 중대한 길이요, 또 하나는 ‘이 순간 나의 최선은 무엇일까?’를 묻는 것이다.
즉한 순간에 그냥 응하면 습관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이 순간 나의 최선은 무엇일까?’하고 한 번 묻게 되면 여유를 찾으면서 잠들어 있을 수 있는 지혜를 일깨워낸다. 눈비비고 일어난 지혜는 답안을 내놓는다. 그 답은 보다 바른 신념이 되고 이어서 보다 바람직한 중도의 삶을 연출해 낸다. 사람과 접했을 때 그냥 응하면, 말하기를 좋아하는 습관이 강한 사람은 하염없이 말하고, 말을 잘 하지 않는 습관이 강한 사람은 듣고만 있음으로써 양자가 답답한 상황을 연출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이 순간 나의 최선은 무엇일까 묻게 되면, 자연히 말이 많은 사람은 듣는 쪽으로, 묵묵한 사람은 말을 하는 쪽으로 역할을 함으로써 그 상황은 중도적인 작품으로 지향되어 나아갈 것이요, 각인의 인격 또한 원융한 인격으로 성숙해 갈 것이다.
– 거울 용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