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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연기의 이치를 깨닫고 대각을 선언했다”는 말은 아무리 초보적인 불교 입문서에도 다 나오는 말이다. 연기(緣起)란 말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른 것과 관계해야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緣해야 起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들은 포기하지 말고 사색하고 정사유하라. 여러분들은 연기이다. 여러분들이 나 아무개야 하는 것은 아버지 어머니를 起해서 그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이라고 하는 이 구획되어진 존재를 <나다> 할 수가 없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존재 요소가 함께 묶어져야 이 부분이 행세할 수가 있다면 이 구획된 부분이 정말 나 홀로 잘 났어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아버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어머니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 아버지 어머니를 함께 묶어서 나라고 해야 옳겠는가? 함께 묶어서 나라고 해야 된다. 아버지 어머니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딱 이러고 나야 나, 나 혼자 잘 났어 한다면 얼마나 뻔뻔한 노릇인가. 그래서 고통과 전쟁이 온다.
부처님이 그걸 보셨던 것이다.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인연을 맺을 때 존재한다는 것을 보면서 이 구획된 부분을 실체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뻔뻔한 짓이었구나, 아니구나, 오해였구나, 묶어서 나라고 하자, 하고 보았더니 묶을 것이 몇 가지나 되겠는가? 한정 없이 묶어진다. 자, 아버지 어머니 묶어져야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ㅡ 증조, 고조, 또, 또, 할머니. 할아버지… 그러니 나라고 할 때는 무엇이라고 해야 되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증조, 고조 등등 하고 백대 조, 천대 조, 만대 조 올라가면서 그 모든 존재들이 공기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고 물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고 불도 끌어 와야 되고, 다 끌어와야 된다. 다 끌어 오고 끌어 오고, 끌어오고 하다 보면 어떠한가? 지구만 끌어오면 되는 줄 알았더니 달이 한번 고개만 쳐들면 지구에 해일이 일어난다, 그러니 지구에겐 달이 있어야 되고 그 밖에 수금화목토천해명이 다 있어야 되고… 이것이 제1 태양계이고 제2 태양계, 제3 태양계… 그래서 무한 우주란 중중하게 인연되는 연기적인 존재다. 그러니 모든 것은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처음에는 너무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더 생각해 보고 더 생각해 보면 그 생각의 깊이가 조금씩 더 깊어지고, 깊어지고 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네 하면서 내 속에서 이 구획 되어진 것이 나라고 할 수 없음이 확연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죽는다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겠는가? 그런 명제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면서 깨닫기 이전에는 이것이 나 같았는데 연기로 한 번 관해 봐, 두 번 관해 봐, 몇 번만 그렇게 해보다 보면 이것을 나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님이 딱 온다. 그렇게 되면 <나>라고 말할 때 전체가 함께 보듬어진다. 그래서 이 작은 나에게 집착했던 마음이 해탈되고 전체를 한 덩어리로 안게 되는 큰 사랑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무아(無我) 해탈과 동체대비(同體大悲)가 동시에 구현되는 원리가 연기인 것이다.
- 거울 용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