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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정기강좌 ‘사색’ 후기>
연휴의 중간 모두가 평안한 쉼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기를 바라면서 행복마을동사섭도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오늘은 행복한 토요일 월 정기강좌가 열리는 첫번째 토요일이기 때문이지요.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깨자봉 여러분들은 아침 일찍부터 행복마을동사섭을 밝혀주시네요. 진정한 행복인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함께해 주는 것 말이지요.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함께하기에 고마운 분들이십니다. 스스로 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
이제 용타 큰스님은 PPT의 달인이 되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멋지게 영상으로 자료를 준비해서 저희에게 좋은 말씀을 전해주시려고 하시나 봅니다. 더욱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주제 ‘사색’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그럼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전 큰스님께서 장을 깨우는 말씀 ‘반갑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스님의 강연에 앞서 고정 성실 사회자 역할을 기꺼이 맡아주고 계시는 한뜻님께서 좋은 목소리로 센스있게 시낭송을 해주시네요. 제목은 장석주 시인의 ‘대추한알’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굴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오늘 주제는 가을풍경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가을풍경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뭐여요 ‘사색’ 아닙니까 바람을 느끼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얼마나 좋아요. ‘사색’이 오늘 공부 주제입니다.”
짙은 가을이 담겨 있는 사진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쇄신할 수 있게 만드시네요. 그리고 ‘사색’이라는 주제도 한자로 적어두셨습니다. 문득 호기심이 나서 한자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한자들의 조합이군요.思 생각 사 索 찾을 색 즉, 이 두 글자에는 다음과 같은 사전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①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파고들어 깊이 생각함 ② 이론적(理論的)으로 사유(思惟)함
사물의 이치를 따져서 생각해본다는 것이 곧 사람과 동물의 차이라고 강의를 열어주십니다
“사색하면 여러분 어때요? 조금 골똘히 생각해본다가 사색이예요. 사색을 철학자들만 하는 것으로 알아서는 안되어요. 그러면 대단히 억울한 일이 되어요. 사람이란 사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여요. 그건 철학자들만 하는거야하면 내 인생에서 중대한 의식영역을 싹둑 잘라버리는 것 같은 거예요. 인생을 살다보면 머리를 써서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 사색이 일반적인 생각과 비슷한 말이지만 굳이 차별화시키자면 사색은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고 조금 생각을 기울여서 답이 떠오르는 과정을 사색이라 해요.
1+1은 답이 바로 떠오르죠? 주리반특이라는 사람에게는 1+1도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하나 보태기 하나는 둘이다도 사색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건 쉬운일이니 그때는 그냥 생각이라고하면 되는거지요. 생각의 뜻을 넓혀버리면 일반적이고 좁히면 차별이 생기는거죠.”
‘조금 더 골똘히 생각해본다는 것’ 그것이 사색이라는 말씀에 전 오늘 오래 머물게 됩니다. 얼마 전 나누어주신 촌철 ‘놓기전 3초’라는 말과도 무언가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사색의 주제로 삼지는 않지만 그렇게 조금 더 골똘하게 한 번 더 생각해 본 후에 말해서 나쁠 것이 없습니다. 의문속에 새로움이 싹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니까요. ‘조금 더’의 차이가 인품의 깊이를 더욱 넓히고 사물의 이치에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합니다. 지혜가 넓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많은 말들이 짝이 있는데 이 ‘사색’이라는 단어도 짝이 있다 말씀해주시네요. 바로 ‘독서’입니다. 단짝 중의 단짝이지요. 사색없는 독서도 독서없는 사색도 둘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삶의 수레바퀴 같은 거예요. 삶의 두 바퀴 같은거죠. 왜냐면 독서를 하면 사색하게 만들어주고 사색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요 또 사색을 하게 되면 독서를 하면서 사색을 안해버린다 하면 책 속에 글 속에 들어 있는 뜻이 내 머리로 가슴으로 몸으로 스며들지 않아요 아무리 훌륭한 고전을 읽고 있더라도 사색 사유를 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 정보들이 내것이 안됩니다. 깊숙히 내것이 되려고 하면 독서에 바로 접해서 사색을 해야해요 ”
그런데 한 때 마음의 소리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독서를 멀리하지 않을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게 맞을까갸우뚱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의 궁금증을 타심통으로 읽듯이 이어서 금강경 구절을 통해 추가로 설명을 해주십니다.
“금강경에 무유정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굉장한 말이예요. 이 말만 뚫으면 도통합니다. ‘무유’ 있지 않다. ‘정법’ 일정한 법이 있지 않다 하고 물어야 된다고 물어야 또 묻고 또 묻고 잘 뚫리지 않는 것이 무유정법과 같은 높은 정법이예요. 뻥 뚫린 도통이예요. 그 도통이 바로 사유를 통해서 온다는 거예요. ‘도’는 사유를 버려야 도가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이런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말은 부분적으로는 맞기도 한데 그런 생각에 매여서 사유와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인생 땡치는거예요. 사색에 대한 여러분들의 부정적 생각을 싹 쓸어 버리세요.
사색 이것은 사람이냐 아니냐의 결정키입니다. 독서는 또 차차 하더라도 사색은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문제가 생겼다면 사색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내 아이가 공부를 잘 안하고 자꾸 밖으로 나가고 있다 내외간에 사색 사유를 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사유라고 하죠. 그래서 난 사유라는 말을 좋아해요. 사실 같은 말이지요.”
모두가 전문적인 철학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깊은 사유에 머물지 못한다면 개 돼지의 삶과 어찌 다르겠느냐고 열변을 토하십니다. 그도 그럴것이 습관대로 산다는 것 생긴대로 산다는 것은 동물들도 하는 일이니까요. 무섭게 뇌리를 스쳐갑니다. 그러시면서 스님이 되시고 난 초기에 ‘불립문자’라는 말에 매여 많이들 책을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요. 어느 날 켄윌버의 ‘무경계’라는 책을 읽고서 더욱 사색과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느끼게 되셨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도 엄청나게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으로 읽은 책이 등장하여서 참으로 반갑고 또 감사했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무경계’를 읽어봐야겠다 싶네요. 큰스님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씀으로 좀 더 추가 설명을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위의 경지가 언어를 떠나있다는 거예요. 사다리를 타고 지붕을 올라간다고 할 때에 사다리 같은 것이 독서이자 사색입니다.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 좋다 탁 트여서 좋다 그 무위상태가 지혜가 사라지고 문자가 사라지고 개념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생각이 많고 마음 속에 요란한 사람들은 우선 그 마음을 단순하고 고요하게해야 지혜가 드러난다 하십니다. 바로 독서나 사색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아주 단순한 무언가를 반복함으로써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만들고서 독서와 사색을 접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말씀해주시네요.
그리고 사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슈바이처가 생각 나신다고 하시네요. 슈바이처가 한 말을 한 번 들어볼까요?
20세기는 사람들이 사색을 포기해버린 세상. 사색을 하지 않고 산다.
왜냐면, 사색을 안해도 버튼 하나만 눌러도 불이켜지고 물이 쏟아지니…
그래서 20세기에는 사람이 사색을 하지 않은 그 인과를 톡톡히 받을 것이다
– 슈바이처 –
“인과는 다양하게 나옵니다. 인과 중의 최고의 비참한 인과는 지구 속의 생명을 단축시켜 버립니다. 참사 중의 최고의 참사입니다. 지구 위에 우리가 인간으로 살고 있잖아요 사색을 하지 않게 되면 우선 편리한대로 살게 되어요. 편리한대로 사는 많은 삶은 자연을 파괴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구의 온난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머지 않아 지구 위에 빙하가 다 사라져버린다 하면 태양에서 쏟아져오는 이 볕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빙하가 있으므로 볕을 반사시키는데 반사시키지 않고 그 열을 바로 흡수하게 되죠. 태평양 대서양 물이 끓죠. 바다 더 깊은 곳의 가스층이 폭발해서 나오게 되고 그럼 지구는 종말입니다. 이 지구가 자본주의로 인하여 사람들이 편리해져 버렸고 사색 사유를 하지 않으니까 다가오는 지구의 종말이 안보여 버린 거예요. 그래서 슈바이처는 사색을 하지 않은 인과를 톡톡히 받을 것이다 라고 한거죠.”
사색과 지구의 환경까지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 속에서 우리들의 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싯다르타 태자도 보리수하의 대각도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끝없는 사색에서 비롯된 깨달음이였다고 하지요.
존재의 원리는 연기법이예요 그 어떤 것이든 홀로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계를 맺음으로서만 존재해 독립된 실체는 없어 여기저기 걸려 있는거지 우주 전체하고 관계를 맺어야만이 존재하는 것이 보이니까요.
아… 본래 나라는 독립된 실체가 본래 없었구나 세상은 중중연기라는 한덩어리 유기체구나. 내가 죽는다 내가 죽기싫다하던 고뇌가 원래 고뇌할 필요가 없는 거라는 걸 알게 된거지 죽어야할 실체가 없으니까요.
무언가 깨닫는 바가 생긴다면 이 자리에서 깊이 들어가보라고 ‘나라고 하는 독립된 실체는 없고 관계를 맺음으로서만 세상 전체가 존재하는 거예요. 나를 독립된 놈으로 끊어놓고 나의 무엇을 논하는 그것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옳지 않았다는 거예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 이 대목에서 팍 때려야해요. 가슴에 와 닿는게 있어야해요. 사색하는 길 밖에 없다는겁니다. 사색을 하다보면 연기 무아가 깨달아지면서 답답했던 고통이 개운하게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는 말이지요.”
그러시며 자등명 법등명을 말씀해주십니다. 스스로의 지혜를 등불 삼아서 살아가고 법에 의지하여 살아가라는 말씀에서 무언가 큰 용기가 일어납니다. 사색을 통하여 스스로의 지혜에 불을 붙여봅니다.
쉬는 시간에 한뜻님과 열매님의 노래를 듣고는 모두 다시금 기분이 좋아져서 공부에 임할 수 있게 되네요. 사실 깊어지는 법문 속에서 살짝 졸릴 뻔 했었는데 두 분의 고운 음성 덕분에 다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색의 기초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색을 할 수 있는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아주 간단 명료합니다. What Why How입니다. 육하원칙 중 세가지이지요.
“What why how에 깨어서 이것을 유념해서 말하라 이거지요. 저 세가지 틀에 맞춰서 하는거예요. 정의돈수에서 정의돈수가 What이예요 why는 필요성이예요. 왜 그것이 필요한가 how는 방법론이예요. 저 세가지를 얘기하면 됩니다. 저 세가지 밖에 없어요. 다른 범주는 없어요 있다고하면 그 속에 끝내는 특수 케이스가 있을 수는 있어 세가지가 전부예요. 정의돈수에 대해서 얘기하세요 what부터 생각하세요 다 중요해요 철학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why입니다.”
예전 학교에 계실때의 경험담을 통해서 확연하게 그 사유의 기초를 드러내서 설명해 주십니다. 3분 스피치를 한다고해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면 이 생각의 기초에 따라서 무엇이 이슈인지, 그리고 왜 이것을 고민하고 있는지 어떻게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골똘하게 생각하다보면 더욱 지혜가 깊어져 가겠지요. 생활 속 많은 것들이 사색거리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서점도 들려보고, 이것저것 느낌록도 적어보면서 삶의 사색거리들 속으로 푸욱 잠겨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점심도 친환경 도시락으로 라프에서 정성스레 담아와주시고 언제나처럼 모리님은 이쁜 꽃공양을 함께해주시고 깨자봉 여러분들의 부지런한 손길과 마음이 아니였다면 어려웠을 10월의 정기강좌를 전해드립니다. 함께하지 못하신 분들께서 후기를 통해서나마 그 행복과 지혜의 에너지를 나누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오늘 행복마을동사섭 서울센터는 공부의 날이네요. 오전의 정기강좌가 끝나고 지금은 인품포럼이 진행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함께 웃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나눌 수 있음은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열정으로 이끄는 장이여서 그런지 큰스님의 체력에도 정말 놀라고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분들의 삶이 지금 이순간의 가을처럼 더욱 깊어지기를 바래봅니다. 사색의 힘을 믿습니다. 그리고 사색 또한 근육만들기처럼 연습과 훈련이 거듭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서와 사색으로 물드는 풍요로운 가을되세요~!
글. 사샤 (cieljs@gmail.com/ https://www.facebook.com/lotusnciel )
사진. 예비신랑 곧 품절남 신시님 & 사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