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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주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10에 –33승이 우주 최초의 크기라시며 우주는 한 기운이고 한 덩어리 한 몸이니 밝고 맑은 에너지가 높을수록 좋다 말씀하셨습니다. 우주의 기가 나의 기이니 즉 에너지가 임계선을 넘으면 천국이 된다 하셨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해야 할 일이 많으므로 기의 양장력 수치를 높여야 한다 하셨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모두 태양과 같은 것이고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그 주위를 돌 것이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으니 얼마나 많은 지구와 같은 행성이 존재하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주 어디에도 생물체가 있다 하셨습니다. 2000억 개의 태양계 중에 분명히 생명을 가진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구에만 인간이 산다 생각할 수 없다 하시고 저 넓은 우주를 끌어안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인류에 유형, 무형, 유정, 무정 모든 존재들의 행복 해탈과 맑고 밝은 상생 기운의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비전을 갖고 계시다 하셨고 그렇게 가치관을 정립하셨다 하셨습니다.
젊은 날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려 한 적이 있다 하셨습니다. 음 시각, 즉 부정시각을 발달시켰었다는 말씀이셨지요. 그래서 컨설턴트들을 이해하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고등학교 교사 시절, 모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오후쯤 나타나서는 사사건건 지적했는데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것이 인지되도록 학습하라셨습니다. 긍정시각으로 살 때 감사가 나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플러스(+)로 인지할 수 없으면 삶이 불행해질 수 있다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아들이 국어 점수를 40점을 받아 왔으면 ‘40점이나 받아 왔구나’ 생각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것이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부모이지 ‘40점 밖에’라고 생각하면 정신이 제대로 박히지 못한 부모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것을 플러스(+)화하고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인생의 첫 스텝은 존재론이라 하셨습니다. 혹 가치론으로 추락했더라도 플러스(+)가치로 나가면 엔돌핀이 솟는다 하셨습니다. 감사는 존재 다음의 가치라 하셨습니다. 플러스(+)가치화가 감사이며 그 다음에 다양한 작위를 하게 되고 신나는 마음으로 작위하여야 한다 하셨습니다. 이때 플러스(+)가치를 유념해야 하는데 그것이 깨달음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게 좋다 하셨습니다. 감사는 이론적으로는 1분이면 된다 하시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관행이라 하셨습니다. DNA까지 감사할 수 있도록 관행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생명의 실상>을 쓴 다니구찌와 비슷한 때에 감사를 생각했다 하셨는데 생각해 보니 그 이전이라시며 한 일화를 소개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동광사라는 사찰에서 법회에 참석해 달라 해서 한번 갔는데 충격적인 감동이 있었다 하셨습니다. 법문하신 분이 윤주일 선생이었는데 그 분은 도인이었고 대학시절에 그분으로부터 불교철학 강의를 잠시 들으신 적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 때 그분이 하신 ‘배처사 법문’은 충격이었다 하셨습니다. 배처사가 그날 법당에 앉아 있었음에도 법좌에 앉은 윤주일 선생은 그의 이야기를 담담히 하셨다 하셨습니다.
배처사는 가난했으며 지게를 짊어지고 역전에서 짐을 나르는 짐꾼이었다 하셨습니다. 식구가 내외와 자식이 6명 정도였는데 지나치게 가난해 방 한 칸짜리 집에 세들어 왔다 하셨습니다. 주인 황노인이 보기에 그의 얼굴에 그늘이 없다 생각했고 막내를 낳은 부인은 산후조리가 안 돼 끙끙대고 있는데도 ‘감사하다’ 하니 황노인이 궁금해 했다 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다쳐왔는데도 감사하는 배처사를 보고 황노인은 궁금증이 일었다 하셨습니다. 문지방에 머리를 찧고도 감사하다 하는 배처사를 잡고 물었다 하셨습니다. 황노인이 배처사를 방으로 안내하여 살아온 이야기 하며 배처사에게 감사 이유를 묻자 그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답했다 하셨습니다. 제 부인이 살아 있으니 감사하고 건강하여 지게 품팔이를 할 수 있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였지요. 문지방에 머리를 찧어 이마에 혹이 난 것에 감사한 이유를 물으니 조물주에 감사한다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는 지필묵을 가져와 종이에 뭐라 쓰고는 도장을 찍은 후 금일봉과 함께 배처사에게 주었다 하셨습니다. 그간 황노인은 ‘더더’하며 욕심을 부려 큰 부자가 되었는데 그 논밭의 일부와 금일봉을 주자 배처사는 받지 않겠다 하였다 하셨습니다. 그 배처사가 감사로 스스로 행복을 지켰고 한 사람에게 감화를 줘 쥐고 있던 손을 펴게 만들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큰스님의 감사철학의 효시였다 하셨습니다.
불교의 행복론은 소욕지족이라 하시고서 천둥님의 ‘임강’을 들었습니다. <임장기초신념>을 주제로 한 10분 남짓 큰스님의 강의를 그대로 재연하는 강의를 들었고 천둥님의 강의에 열화와 같은 호응을 하였습니다. 큰스님의 ‘감사’에 대한 강의는 일화를 통해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배처사’ 이야기는 들어도들어도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천둥님의 임강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노력을 한번쯤은 해볼 필요가 있다 여겼습니다. <끝>
글. 한뜻님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