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부를 굴려 성현을 이루다 : 밧다 쿤달라케사 ▒
밧다에게 장삼을 지어 바친
참으로 지혜로운 시주자여,
밧다는 모든 결박에서 벗어났으니
그대는 가없는 복전을 일구었도다.
|장로니게·111|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는 말이 있지만, 평범한 사람의 일생을 통하여 정말 그토록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란 드물다. 꼭 연극이라 한다면 지루한 연극이라고나 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그저 범상하게 이어지다가 막을 내리고 마는 것은 그 삶이 그만큼 습관의 힘에 이끌려서 향상의 길을 저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처님 당시에 밧다 쿤달라케사라는 한 여성 수행자가 있었는데, 그녀의 삶은 그 역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 같기도 하지만 주체적인 삶의 자세 또한 대단히 감동적이다.
밧다는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가하에서 대부호의 외동딸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났다. 사춘기를 넘기며 얼굴도 예쁜데다 조숙한 몸매와 욕정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부모는 그녀가 너무 일찍 성(性)에 눈떠 말썽이나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하여 저택의 꼭대기층 다락방에 딸을 가두어 놓았다고 한다.
어느 날 다락방에 있던 밧다는 길거리에서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난 소리를 듣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하고 기운 넘치는 한 젊은이가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는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힌 범죄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밧다는 그를 보자마자 가슴속에 애욕이 불타올랐다.
그녀는 상사병에 걸린 채 침대에 누워 그 남자에만 목말라 하면서, 그와 결혼하도록 허락해주지 않으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겠다고 부모에게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녀의 부모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집어치우라고 갖은 설득을 다해 보았으나 딸의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딸이 굶어죽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부모는 간수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고서 그 젊은이를 빼돌려 자기 집으로 일단 데려오도록 일을 꾸몄다. 간수는 그 젊은이 대신 어느 시골에서 폐인이 된 채 버려져있는 불쌍한 사람을 범죄자로 꾸며놓고서 그를 풀어주었다. 부모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가 구사일생의 기회를 잡았으니 이제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새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딸과의 결혼을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일은 여의치 않았다. 결혼식을 치르자마자 신랑은 아내의 온갖 보석과 패물을 가로채고픈 욕망에 눈이 멀어 한 가지 꾀를 내게 된다. 그는 아내에게 꾸며대기를, 자신이 처형장에 끌려가면서 제발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어떻게든 감사의 제사를 올리겠다고 산신에게 맹세를 했으니 그 약속만은 지켜야 다른 불행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산신의 영험이 있다는 가파른 절벽 꼭대기에서 산신제를 올리기로 하고서, 아내에게 모든 패물과 보석을 몸에 지니고 단둘이 제사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절벽에 도착했을 때 이 흉악한 사나이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말하기를, "어차피 너는 내 손에 죽을 몸이니 모든 걸 다 내놓아라" 하고 을러댔다. 밧다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길밖에는 없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패물을 벗어놓은 채 남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뜻이라면 할 수 없지만, 한때 사랑했던 당신을 마지막으로 안아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녀는 사나이를 안자마자 벼랑 끝으로 있는 힘을 다해 밀어붙였고, 일은 한 순간에 끝이 나버렸다.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였지만 살인이라는 중죄를 저질렀다는 자책감 때문에 밧다는 그 뒤로 세속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육체적 쾌락이나 물질적 소유가 이제 뜬구름같이 여겨졌다. 그래서 유랑승이 되어 운수행각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자이나교에 들어갔지만 만족할 만한 가르침을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드넓은 인도땅을 홀로 유랑하며 여러 종파의 경전과 사상을 두루 섭렵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남과 토론하는데 대단한 능력을 갖추어 당시 인도에서는 가장 유명한 논객의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어느 마을을 가든 조그만 모래무덤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나뭇가지를 꽂아놓고서, "누구든지 나랑 토론하고 싶으면 이 모래무덤을 짓밟아 보아라" 하고 자신만만하게 외치고 다녔다고 하니, 그 기개를 짐작할 만하다.
어느 날 그녀는 사위성에 찾아와서 그런 모래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그때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던 사리풋타 존자가 소문을 듣고서 토론에 응하겠다는 표시로 동자를 시켜 모래무덤을 짓밟고 오도록 했다. 그러자 밧다는 승리의 자신감에 찬 채 기원정사를 찾았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수제자와 외도의 여성 수행자 사이에서, 말하자면 희대의 법거량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사리풋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자 사리풋타는 모든 물음에 대해 막힘 없는 대답을 해주었고 마침내 더 이상 물을 것이 없게 되었다. 이제 사리풋타가 그녀에게 질문할 차례가 되었다. "무엇이 그 "하나"인가?"하는 첫 질문부터가 밧다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그 답이 "신(神)"이나 "브라만"이나 "무한자(無限者)" 따위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밧다는 사리풋타에게 답을 물었으나, 사리풋타는 그녀가 불법에 귀의하면 가르쳐 주겠노라고 말하였다. 이에 밧다는 미련없이 외도를 버렸고, 비구니 승단에서 계를 받은 뒤 며칠만에 아라한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증지부경에는 부처님께서 그녀를 가리켜 "재빠른 이해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비구니"라고 칭찬하신 적이 있다.
그녀가 불법에 귀의하게 된 계기가 어떤 경에는 달리 묘사되고 있다. 밧다가 자이나교 교학을 연구하고 있던 어느 날, 노지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있을 때였다. 개 한 마리가 사람의 잘려진 팔뚝 하나를 입에 물고 그녀 곁으로 다가오더니 바로 앞에 그것을 떨구어놓고 가버렸다. 그 팔뚝에 구더기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자 밧다는 일순간 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인연이 자신에게 도대체 무엇을 설하고 있는지를 몰라 어떤 비구에게 자신이 갈 길을 묻자 그 비구가 부처님을 찾아뵙도록 권했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 모두가 대단히 사실적인 활구(活句)여서 어느 하나만을 취하기에는 아까울 정도이다.
힘겨운 고행과 치열한 구도행각을 통해 돈오력(頓悟力)을 얻은 밧다 비구니는 이처럼 범부를 여의고 성현의 길을 걷는 전범성성(轉凡成聖)의 모범이 되었다. 아라한과를 이룬 후에도 북인도 지방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들을 해탈의 길로 이끌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성자다운 삶을 회상하면서, "번뇌를 벗어내고 반백년 세월을 / 나는 앙가국과 마가다국을 행각했네. / 밧지국, 카시국, 코살라국에서도 / 그 땅의 음식을 탁발하고 다녔네.(장로니게·110)" 하고 읊었다. 정말 여장부다운 일갈(一喝)이 아닐 수 없다. 다락방에 갇혀있던 한 말괄량이 아가씨가, 이웃종교의 표현을 빌자면, "광야의 선지자"로 탈바꿈하여 한 여성 수행자의 위대함과 고결함을 이렇게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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