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시(同一視)로부터의 해방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이름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다. 동일시로부터 해방한다.
환경이 나인가?
몸이 나인가?
마음이 나인가?
식주체가 나인가?
숨을 죽이듯 가만히 모든 것을 바라본다.
먼저 산재해 있는 나의 소유들을 바라본다. 내 집, 내 자동차, 내 책상, 내 컴퓨터, 내 통장, 내 가족,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그 밖의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의 물품들, 동사섭 문화, 동사섭 수련과 연관된 모든 일들, 동사섭 사무실의 제반 사무들, 등등 그것이 훼해지면 내 마음에 동요가 올 만한 모든 것들을 떠올린다.
이 모든 것들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 의식권에서 "나의 것"으로 되어있고, 나와 동일시 되어있으며, 의식권에서 단단한 무게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다. 곧 그들이 훼해지면 내 마음에 다소 혹은 큰 동요가 일어나기 좋은 집착으로 섞여있다.
이것들이 정말 ‘나의 것’인가 물어보며 가만히 바라본다. 보다 선명히 바라본다. 바라볼수록 조금씩 저만치 멀어져간다. 제대로 본즉, 그것들은 오직 "그것일 뿐" 나의 것이 아니다. 내 의식권에서 분리되어 가는 정도만큼 내 마음이 자유로워져 간다.
몸[육신]을 바라본다. "바라봄"을 오롯이 한다.
이것이 정말 나인가 물어보며 바라본다. 신체의 모양이 그려진다.
더욱 선명히 그려지도록 면밀히 바라본다. 바라다볼수록 신체가 "나의 것"에서 조금씩 멀어져 간다. 몸과 의식이 뒤섞여 있는 듯 체험되던 혼란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더욱 선명히 바라본다. 바라봄이 선명할수록 시간을 지나면서 저만치 멀어지는 육신이 어느듯 "나의 것"이 아니라 "저것" 이 되어있다. "저것"이 되어 저만치 건너다 보인다. 저것은 이제 더 이상 "나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다. 막연히 몸이 나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던 에너지가 녹여지고, 마음이 자유롭고 평온하다.
마음을 바라본다. 知 * 情 * 意 모든 흐름을 바라본다. 바라봄을 오롯이 한다. 이것들이 과연 나인가 하고 냉정히 물어보며 바라본다.
나의 생각도, 나의 느낌도, 내 의지 작용도, 조금씩 멀어져 간다. 더욱 멀리 바라본다. 점차 멀어져 간다. 넒은 의식의 바다에 저만치 멀리서 건너다 보인다. 밀착되어 있던 느낌이 줄어든다. 늘어지는 엿가락처럼 옅어져 가던 집착 에너지가 뚝 끊긴다.
당연히 나라고 여기던 집착 에너지가 녹여지고, 다만 "저것"일 뿐, 더 이상 "나다"라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다. 마음이 자유롭고 평온하다.
이러한 기능을 관장하고 있는 식주체를 떠올린다. 식주체 기능을 바라본다. 식주체 기능은 하나의 기능일 뿐, "나"라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 전체의 흐름을 지켜보며 관장하는 한 기능이다.
정신 차리고 바라본 즉, 식주체만큼은 틀림없는 나일 것이다는 맹신이 허망하게 사라진다. 마음이 자유롭다. 평온하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배제하고, 다 내려놓은 후에 체험되어지는 이 고요로운 느낌을 나라 할 것인가 물어본다.
"나"라는 무엇인가를 이름지어 놓으니 실날같은 집착의 에너지가 잡힌다. 부자유이다. 그 느낌마저도 저 만치 멀리 건너다 본다. 조금씩 멀어져 간다. 이미 "나"라 할 수 없는 먼 곳의 "저것"이 되어 있다. 마음이 더욱 평온하고 자유롭다.
더욱 평온하고 자유로운 이 마음, 이 느낌마져 다 내려놓는다. "이것마저 내가 아니다." 하고 내려놓는다. 더 이상 무엇에도 동일시의 에너지 끈이 없다. 참으로 참으로 평온하다.
환경이 나인가? 아니다!
몸이 나인가? 아니다!
마음이 나인가? 아니다!
식주체가 나인가? 아니다!
위의 어느 것도 내가 아님을 깨달을 때 체험되어지는 고요한 이 느낌이 나인가? 아니다! 이 느낌도 내가 아님을 점두하며 배제할 때 현전하는 지극히 순화된 이 느낌이 나인가? 아니다!
고요한 가운데 호흡만이 감지될 뿐이다. 그 또한 "나 아님[非我]"으로서이다.
나이면 무엇하랴? 나 아니면 무엇하랴?
‘나 아니다!’ 하고 평화로운 이 마음, 이 마음조차에도 착(着)을 놓으며, 환신(幻身)의 나로서 이 세상 평화를 위해 나만큼 씩 기여하리라 보살원을 세우니, 이 또한 맑은 평화로움이 아닌가!
이 깨우침이 더욱 깊어지도록 정진하고 또 정진하리라!
* 앞서 살다 가신 모든 어진 분들의 한결같은 가르치심에 나없다[我空] 세상이 비었다[法空] 하시니 아공법공의 깨달음을 전제한다면, 위의 명상의 깊이가 더욱 선명해지리라 봐진다.
2003년 가을
명상의 집 ; 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