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유(正思惟)와 인생
삶의 목적, 행복과 행복의 조건, 수용(受容)에 관한 정사유
사람의 한 평생에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마는, 그 중 참으로 소중한 것 하나를 들라면 내 개인적으로는 정사유(正思惟)를 들고 싶다. 동물도 식물도 생각을 하고 산다지만 사람이야말로 생각하는 동물의 대표라 일컬어지는데, 생각하는 기능을 극대화(極大化) 시켜 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삶의 겉모습은 언행으로 표현되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언행의 모양새로 인격의 척도를 삼고, 언행의 질(質)에 따라 행복의 중량이 결실된다.
언행 이전의 심리과정은 생각[思]이다. 생각이 말을 하게하며, 생각이 행동을 하게 한다. 고로 생각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의 초석이요, 생각이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짓는 단초가 된다. 원리에 입각하여 체계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 그것을 정사유라 한다. 정사유와 인생은 절대불가결의 관계에 있다.
삶의 현장 모든 상황에 대해 정사유 해야겠지만, 삶의 가치관 몇 가지는 철저한 격물치지(格物致知)적 사유가 요해진다. 그 몇 가지에 대하여 논하여볼까 한다.
첫째, 삶의 목적에 대한 정사유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애쓰면서 산다. 그 모든 행위의 목적이 무엇인가는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그 앎의 깊이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앎의 깊이를 보다 다져간다면 우리 인생에서의 혼동과 갈등을 대폭 줄이고 보다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이란 기분 좋음[좋은 느낌, 기쁜 정서, 좋은 감정, good feeling]을 말한다. 좋은 느낌[정서]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을 정사유를 해야 한다. 느낌에 눈을 뜬 사람의 의식세계는 그 전개과정이 정연하다. 느낌은 삶의 핵심이자 혼(魂)의 핵심이다.
목적에 뚜렷이 깨어있게 되면 하시하처(何時何處)라도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기쁘도록 살 것이다. 기쁘지 않게 하는 순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재빨리 기분전환을 할 것이다. 기분 좋음이 삶의 목적이니까 말이다. 삶의 목적에 뚜렷이 깨어있지 않으면, 욕구에 휘둘리는 습관적인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구함에 있어 그 성취의 끝에 오는 기쁨이 행위의 목적이라는 것을 정사유하지 않으면, 욕구의 내용[財色食名壽]이 삶의 오롯한 목표가 되어 혼동된 삶을 살기 쉽다. 현재도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자. 언제든 행복하자. 지금 바로 행복하자.
둘째, 행복과 행복의 조건의 구별에 대한 정사유이다.
사람의 모든 행위의 목적은 기쁨이다, 만큼의 기쁨을 위함이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많은 조건들이 있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건강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명예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연애와 결혼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일과 과업의 성취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일상 속에서의 사소한 모든 행위 또한 기쁨을 위함이다. 세수를 할 때 기쁘다. 화장을 할 때 기쁘다. 잠을 잘 때 기쁘다. 대소변을 볼 때 기쁘다.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 기쁘다. 여행할 때 기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을 만날 때 기쁘다.
이 모든 것들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을 명확히 정사유할 때에는, 하나의 조건이 부실하여 기쁨이 덜 할 때에는 다른 조건을 통하여서라도 기쁨으로 전환할 것이다. 기쁨이 삶의 목적이니까 말이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을 정사유하고, 행복과 행복의 조건의 구별을 정사유하게 되면, 그때그때 만큼의 행복을 누리며 행복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순발력 있는 노력을 해 갈 것이며, 행복의 조건을 개선해 가고자 하는 의지가 향상될 것이다.
셋째, 수용에 관한 정사유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를 행복하게 하든 덜 행복하게 하든 그 어떤 상황에 임하게 된다. 욕구하기로야 모든 상황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욕구대로 되어지지 않을 경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정사유해야 한다. 정사유하지 않으면 습관대로 살게 마련이다. 우리는 욕구대로만 되어지기를 바란달지, 욕구가 성취되어져야 비로소 기뻐지겠다는 듯이 그 경계가 바뀌기만을 기대한달지, 혹은 불유쾌 정서를 내뿜기만 하고 하소연하며 아무 대책도 없이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우울해하고 원망하고 화를 내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우리는 끝내 수용하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것을 정사유해야 한다. 상황을 수용하지 못할 때에는 괴롭기 때문이요, 괴로움은 삶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요, 괴로움은 상황 전환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요, 그 어떤 상황이든 그것이게 하는 종합적 원인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끝없는 지향의 길이다. 무엇인가의 성취를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며 그 성취는 만큼의 기쁨을 준다. 보다 풍성한 미래의 성취를 위해서 보다 힘찬 도전 의욕이 필요하다. 힘찬 의욕은 괴로움에서보다는 기쁨의 바탕에서 나온다. 힘찬 지향 의욕을 위해서도 끝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길밖에는 다른 묘수가 없다.
이와 같이 인생에 있어서, 행복한 인생을 구함에 있어서 정사유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생각하는 기능의 단련, 그것은 질높은 행복을 얻는 한 길이다. 아마도 최고의 행복을 위한 최고의 생각 활동은 개념이전 즉, 한 생각도 허용하지 않는 순수의식 자체로 깨어있음에 대한 정사유일 것이다. 동사섭 수련회의 마지막[Top] 과정이다. 사유하고 살자. 정사유하고 살자. 모든 것에 앞서 몇 개의 신념은 꼭 깊게 사유하고 살자. 삶의 목적이 행복임을, 행복과 행복의 조건의 구별을, 삶의 목적이 행복인 만큼 지금도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수 있음의 원리인 수용의 미학을 성실히 정사유하자.
위의 명상 주제들에 대하여 필자는 어떠한가?
이러한 주제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의하고 수련을 진행해 온 사람으로 어찌 비로소 사색해 보는 문제일 것이리오마는, 최근에 와서 더욱 명료하게 사유 ∙ 정리됨이 새롭다. 이제야 제대로 아는 듯 뇌리에 깊게 배어든다. 깨달음의 파장이 가슴과 온몸으로 번져가는 듯하다. 짚신이 닳도록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이 깨달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의 삶의 혼동을 최소화시키고, 행복도(幸福度)를 극대화시켜가는 데 조력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생애를 다 바치고 싶다. 간절한 발원 속에 맑은 눈물이 고인다.
2004년 6월 1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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