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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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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두 개의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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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횃불

나는 매일 정규적인 수행을 한다. 그리고 수시로 비정규적인 수행을 일삼는다. 수행의 목표는 지고(至高)한 인격이 되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할 것이요, 또한 세상의 행복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일 것이라는 믿음에서이다.

나는 어린 시절 어느 때부터인가 지고한 인격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되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으로 아름답게 가꾸어진 모습을 그려보며, 사람으로서 이를 수 있는 지극한 경지의 사람을 그려보며,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메이고 동시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는 물론 그 이상적 인격의 모습이 상당히 추상적으로 있었다. 교회도 기웃거려보고, 노자  장자에 대한 서적도 들추어보고, 절간에도 얼쩡거리다가 불교의 승려가 되었다. 불교적 방법으로 이상적 인간상에 접근해 가 보자며 방편여행의 닻을 내린 것이다. 지금은 이상적인 인간상의 모습이 나름대로 구도가 잡혀 있으며, 상당히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도 설득력이 있게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이상(理想)을 갖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의 어느 순간들은 각고(刻苦)의 노력도 아끼지 않았지만, 많은 세월들을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정진을 한 것 같지는 않게 보내버린 듯한 양심적 반성을 하며 새로이 마음고삐를 다잡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단호히 결심하고, 나름대로 노력해 보다가, 성에 차지 않아서 반성하고, 또 다시 결심해가고, 또 반성하곤 하며 엮어가는 듯하다. 이 또한 갸륵하고 애틋하다. 한 행복이다.

이렇듯 시행착오의 미완성적 인생행로에서도 끝내 자신을 낭떠러지로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두 개의 횃불이 나에게 있다. 이는 내 생명을 지탱시키는 명줄이다. 이 횃불이 시들지 않도록, 이 횃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는 목숨을 다하여 지키고자 한다. 두 개의 뚜렷한 가치관과 그것들에 따른 선명한 정서이다. 나는 그 두 개의 주제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지고(至高)한 인격(人格)이 되어봄직하다는 고결한 가치관과 진정 그렇게 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다. 다른 하나는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인과율(因果律)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 혹은 믿음과 그 원칙에 대해 겸손히 무릎 꿇는 마음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질 것, 결과란 오직 심은 대로 거둘 뿐이라는 우주섭리를 분명히 깨닫고 그 섭리에 대해 경건한 두려움을 가질 것, 이는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이다.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은 나의 마음을 참 평온하고 떳떳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울 것이고 누구에게든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과(因果)에 대한 믿음과 두려움은 내 마음에 늘 든든함과 여유로움을 준다. 왜냐하면 인과의 세상이므로 좋은 과(果)를 원한다면 좋은 인(因)을 심기만 하면 되며, 그 어떤 과(果)일지라도 반드시 내가 심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내 심기가 덜 떳떳하고 덜 여유롭다. 누군가에 대한, 무엇인가에 대한, 서운함  안타까움  미움 등이 흐르고 있음을 본다. 마음이 다소 느슨해져 있고 게을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고한 인격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약해져 있다는 증거이다. 인과율에 대한 두려움이 희미해졌다는 증거이다. 수행자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무서운 일이다. 단 한번의 기회인 찰나 인생에 참으로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담(茶啖)자리에서나 법석(法席)에서, 이렇게 글로서 자신을 고발해버림으로써 나는 아주 잠깐씩의 면죄(免罪)를 얻는 기분이다.

나이 오십에 이른 자(者)가, 수행생활 4반세기를 보낸 자가, 남은 세월을 느긋하게 여길 것이랴! 벌써 해가 중천을 지난 지가 오래고 서녘을 향해 뉘엿뉘엿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는데, 사래 긴 밭을 언제 다 갈아 마치랴! 쟁기질 서두르는 농부의 손아귀에 진땀이 흐르듯, 마음고삐를 다그쳐잡는 내 마음에 마른 땀이 고인다. 내 인생의 목표야 바뀔 리 만무하지만, 다시 생생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일이 한 과제이다. 인과의 섭리를 거역할 리 만무하지만, 다시 생생한 두려움을 키워내는 일이 한 과제이다. 한 평생, 아니 세세생생 나를 평온히 살게 할 길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동사섭 문화에서 가치관 정립과 정서에 깨어있을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더욱 알겠다.

법계(法界)에 악(惡)파장을 퍼뜨린 한 죄인이, 다시 지고한 인격 완성에 나의 모든 생을 바치리라 거듭 서원(誓願)하며 이만큼의 안심(安心)을 얻는다. 입춘(立春)의 절기를 지난 날씨답게 바람이 훈훈하다. 참 좋다.

2005년 2월 15일
명상의 집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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