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09:59
제목
55. 나의 원(願), 나의 삶
작성자
관리자
파일

나의 원(願), 나의 삶 

   사람이 이 세상에 어떤 경로를 통하여 태어났던지 간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자신의 삶을 애써 살아갈 것이며, 애쓴 보람으로 행복(幸福)이라는 결과를 기대할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참으로 행복해지시길 진심으로 빈다. 나는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무엇을 지향해 가고 있는가? 나의 간절한 원(願)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하여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하고 있는가? 묻고 또 묻고, 답하고 또 다시 답하며 무수한 복습을 해 가고 있는 주제이다. 삶이란, 각자의 원(願)을 향한 꾸준한 노력의 여정(旅程)이다. 원하는 바가  선명하고 간절하여야 확실한 노력을 할 것이며, 튼실한 삶이 영위될 것이다.

내가 정녕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제1 목표는 무엇인가? 새삼 가장 고요한 마음으로, 가장 진지한 의지로, 가장 간곡한 정성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본다.
원(願)이라 이름 붙이고자 한다면, 인생의 제1 목표로 내세우고자 한다면 , <그것>을 떠올릴 때 적어도 오직 희망으로 설레며,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울어지며, <그것>에 대한 정성이 호리라도 소홀했을 때에는 아프게 채찍하며 오롯이 향심(向心)되어지는 열정을 요할 것이다. 혼신을 다하여 사모하며, 있는 것 다 바쳐 헌정하고, 죽기를 불사(不辭)하고 향해질 것이다. 단 한번의 기회 밖에 없다고 볼 수 있는 내 삶의 제1 목표로 삼고자 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 원(願)이 지극히 간절하다면, 밤이나 낮이나, 앉거나 서거나, 길을 걸을 때에나 밥을 먹을 때에나,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도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며, 거기에 걸맞는 노력을 해 가야 할 것이며, 도중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의 헌정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노력에 경건한 치하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다 바쳐야 할 것이다. 자신이 참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나는 원한다. 내 의식 속에 한 점의  검불도 없는 맑디맑은 상태를, 한 올의 번뇌도 없는 지극한 평온을! 물(物)에 쏠리는 에너지가 한 점도 없기를, 명예(名譽)에 치우치는 에너지가 한 점도 없기를, 호리의 만심(慢心)도 없기를, 생(生)을 더 긍정적으로 여기며 죽음을 주저하는 구차함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나는 물욕이 없다는 것을 자부하며 물욕에 배회하는 자들을 시비하는 것을 보면, 아직 물에 대한 자유를 덜 이룬 듯하다. 나는 사람이라는, 구도자(求道者)라는, 동사섭 문화의 책임자라는, 나이 오십을 넘긴 값을 해야 한다는 명예로운 책임감 뒤에 숨어있는 저 히말리야 산 덩치만한 오만을 발견한다. 나는 내 생각이 더 옳다는, 내가 더 잘하고 있다는, 그래서 세상이 성에 차지 않다는 자만으로 아직 노여움과 미움과 하시의 죄를 짓곤 한다.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삶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자유감을 누리지만 어쩌면 아직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양심적 고백을 한다.
그래서 나는 원한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순결한 해탈을! 파란 나이의 20대, 30대에는 스스로에게 단근질을 하며 채찍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고요한 반성과 한결 책임감 있는 결의와,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야 하는 나이임에 더욱 조심스럽고 더욱 희망적이다.

지금 나는 다시 스스로를 점검해 본다. 자신의 원(願)에 대한 열정과, 원하는 것을 얻고자 노력함에 있어서 헌정은 어떠한가를. 대충 원하고, 대충 노력하고, 대충 만족하며, 대충 그럭저럭한 한도인(閑道人)처럼 행세하고 있지는 않는가, 모름지기 노력하지 않고 스스로 게을리 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지는 않는가를.
나는 다시 원을 세워본다. 허허 벌판에 오직 한 그루 나무를 심듯이 나의 파란 원을 세운다. 그리고 시퍼런 각오를 다진다. 죽도록 해 보자는 약조를 해 본다. 천지신명께, 만(萬) 조상들께, 그리고 천지의 만인만물께!

며칠 동안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다. 견뎌내기에 한계를 느낄 정도의 열과 몸앓이를 치루면서, 오직 고통과 생존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오히려 고요한 명상에 잠길 수 있었다. 바깥 경계와 다툴 겨를이 없어지니 오직 자신에 대한 점검만 있을 뿐이었다. 다시금 깊은 반성과 결의와 신선한 시작을 갖게 하는 좋은 체험이었다.

내 의식 속에 한 점 검불도 없는 호호탕탕한 허공을 그리며, 본래 허공임을 고개 끄덕이며, 이를 절대 놓치지 않고자 결연히 다짐하며, 아울러 이 세상 모두의 허공심을 찬양한다. 허공으로 적요(寂寥)한 이 세상을 찬양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크고 작은 소원(所願)이 다 이루어지시길 빈다.

2006년 2월 15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