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씩 그리운 사람들
살아가면서 한번씩 떠오르며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딱히 나와 특별한 인연관계에 있는 사람이어서는 아니다. 유별하게 도타운 정을 나눈 사람들도 아니요, 유난히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들이 건네준 은근한 인품의 향기가 되새김질 되며 향심(向心)되어지는 것이다. 또 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이름난 별인들도 아니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으로서 평범한 서민의 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은경이의 엄마>가 있다. 은경이의 엄마를 줄여서 나는 항상 “은경이 엄마!”로 불렀다. 은경이 엄마는 아마 올해 꼭 40에 이른 것 같다. 내가 장수에 처음 부임해 왔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만 15년 전이었고 은경이 엄마는 갓 스물 다섯의 젊은 새댁이었다. 일찍 결혼을 하여 그때 이미 세 살과 다섯 살 박이인 두 자매의 어머니였고, 2년 후에 다시 아들 하나를 낳아서 손(孫)이 귀한 가문에 대를 이으며 그 벅찬 기쁨이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는 아주 소박한 시골아주머니였다. 은경이네 집은 읍에서 자동차 수리 센터를 하고 있었고, 나는 가끔씩 그곳을 이용하는 고객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은경이 엄마는 남편의 일을 도와 세차와 수리, 그리고 자동차 부품 팔이 등 일반적으로 카센터에서 하는 제반 일을 남편과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은경이 엄마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고 유심히 보게 된 이유가 있었다. 장수에 온 지 그 이듬해쯤에 대학을 갓 졸업한 아가씨 한 분이 명상의 집으로 입산출가(入山出家)를 해 오셨다. 그 사람은 나의 맏이 상좌(上佐)가 되었고 은경이 엄마와 동갑내기였다. 내 상좌는 여느 수행자들의 포부와도 같이 성불도생(成佛度生)의 높은 이상을 안고 젊은 그 나이에 누림직한 모든 특권들을 다 반납하고 거룩한 고행(苦行)의 길을 선택했다. 동갑내기인 은경이 엄마 역시 속사정은 남이 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늘 고생스러워보였다. 언제보아도 허름한 옷차림에 손과 얼굴과 옷에는 거무스레한 기계기름이 잔뜩 얼룩져 있고, 자동차 아래에 기어들어가 차를 수리할 때도 있었으며 추운 날에도 물방울을 온몸에 튕기며 세차를 하고 있었다. 남편의 일을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의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가운데서의 은경이 엄마의 표정과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태도였다. 그녀는 늘 환하게 웃고 있었고, 늘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로 고객들을 응대하며, 아내로서, 주부로서, 엄마로서, 카센터 보조자로서 등 일인다역을 감당하면서도 제반 일에 대하여 고단한 마음이라기보다는 즐거움이 넘치는 듯 임하고 있었다. 늘 보아도 그러하였다. 찡그린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남편은 약주를 좀 즐기는 편인데다가 심성은 곱고 천심인데 성깔이 제법 하기로 소문나 있는 터이다. 평소에 잘 참아뒀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한 방법으로 한번씩 약주 한 잔 하고 성깔을 내기로 하면 온 동네가 시끄럽다. 어찌 보면 금방이라도 일 하나 쯤 저질러버릴 듯 아슬아슬하게 보이기도 한데, 그 부인은 싱글싱글 푸짐한 웃음으로 남편을 토닥거리며 그 주정을 잘 받아넘기기로 또 유명하다. 그래서 그 카센터 고객들은 이 부부를 참 이뻐하고 좋아하며, 한번 고객이 되면 오랜 단골이 되게 마련이었다. 또 은경이 엄마에게 크게 배우며 감동하는 다른 한 구석은 아이들을 키우는 탁월한 육아법에 대해서이다. 그 집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바쁘게 일하시는 낮시간 동안 올망졸망 세 아이가 엇비슷한 나이를 하고는 카센터 마당에 굴러다닌다. 다른 애들에 비해 체구도 작은 편인데다가 어머니가 바빠서 잘 가꾸며 돌볼 여가가 없는 연고로 아이들조차 늘 손과 얼굴과 옷가지들에 꼬장꼬장한 땟국이 가득하며 두 눈망울만 초롱초롱하다. 마당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카센터 장비들과 섞여있노라면 그 아이들도 마치 한 개의 도구들처럼 보인다. 재밌는 현상 하나는 아이들이 자그마한 자동차 장비들을 갖고 놀며 말을 할 정도서부터는 자동차 부품 이름이며, 자동차에 대한 짧은 상식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 고객들에게 깜찍한 즐거움을 준다. 은경이 엄마는 카센터 일을 그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곁에서 아이들은 귀찮을 정도로 많은 질문들을 해댄다. 그 모든 질문에 다 또박또박 대답해주시면서 아이들과 함께한다. 마치 어린이집 실습 담당 선생님 같으시다. 그러한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애들이 곁에서 얼쩡거리며 질문공세를 하면 작업에 방해가 되어 귀찮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친구처럼 어린 아이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면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일하시던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가슴이 뭉클하니 아름답다. 언젠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의 새 자동차에 빗물가리개를 달려고 갔었다. 여섯 살이 된 은경이가 지네 엄마를 돕겠다고 그 부품에 달려있는 부착 테이프를 뜯다가 한 가운데쯤에 금이 갔다. 새 자동차에 새 부품을 달고 싶은 나의 중생심이 조금 상했다. 그런데 그때 은경이 엄마가 은경에게 하시는 말씀은 깊게 인상적이었다. 은경이 엄마 까르르 웃으며 하시는 말씀, “하하하하, 우리 딸도 한몫 했어? 그런데 스님꺼 베려버렸네?”, “스님, 은경이가 했대요. 이쁘게 봐 주세요. 그리고요, 나중에 비 많이 새어 들어오면 새로 하나 갈아 드릴께요. 하하하하!”
이 얼마나 푸짐하고 넉넉한 수용인가! 나도 은경을 매우 좋아하고 그 엄마를 존경하는 마음이어서 크게 상한 것은 아니나, 그나마 조금 일어난 내 중생심을 무색하게 만들며 깨끗이 씻어주는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이 부부는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카센터 조수 역할부터 해 오다가, 이곳 장수에 둥지를 틀면서 농협에 빚을 좀 내어 땅을 빌리고 컨테이너박스 하나를 만들어 이 카센터를 차린 것이란다. 남편이 한 잔 거나해지면 곧잘 농협의 빚이 걱정되어 한숨을 짓곤 하는데, 나이 젊은데 무엇이 두렵냐는 듯 자신만만하고 희망적인 우리 은경이 엄마의 호탕한 웃음은 아직도 내 눈에 선하고 내 귀에 쟁쟁하다. 나이에 비하여 너무도 의연하고 힘찬 한편 곱고도 여린 마음으로 눈물도 많았다. 중학을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서 공장 생활을 하다가 은경이 아빠를 만나 일찌감치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은경이 엄마는 그때나이에 이미 인생을 반 이상은 달관한 듯한 어른이셨다. 그런 은경이 엄마를 나는 은근히 존경하고 좋아했다. 몇 차례 전화로 이런저런 상담을 해 와서 은경이 엄마와 조금 더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고, 내 처소에서도 가능한 자동차 세차를 일부러 은경이네 집으로 하러 가면서 따사롭고 이쁜 그 집 풍경을 한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는 기쁨을 갖기도 하였다.
그 은경이네가 3년 전 어느 날 보이지 않았다. 그때 즈음에는 내가 많이 바빴고, 또 가까운 도시에 법인 사무실이 만들어져 자주 나들이를 하는 바람에 나간 김에 자연히 사무실 근처의 카센터를 이용하게 되기도 하면서 한동안 은경이네 집엘 들리지 못하게 되었다. 은경이네가 이사를 간 것이다. 나에게까지 신고를 하고 갈 리 만무한데도 왠지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었다. 쬐끔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을 이제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지금도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며 그리워진다. 아마 지금은 더 부자도 되었을 것이며, 아이들도 자라서 더욱 성장했을 터이다. 그리고 부부는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숙되었으리라 믿는다. 이 다음에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많이도 반가울 듯한 사람들이다. 내 맏이 상좌도 이제 수행자의 어엿한 태가 익어가면서 보기 좋은 모습의 승려가 되어 있다. 이렇게 동갑내기 두 사람은 각자의 길에서 나름의 상을 지어가고 있었다.
오늘 그 은경이 엄마가 다시 그립고, 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존경의 합장을 올린다. 이 그리움은 또한 이 세상의 그 누구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질 것인가의 자화상을 그려보게 한다. 존경과 사랑의 의존조차 방하(放下)하여야 할 초월적 삶을 지향해 가는 자로 그 누구에게 기억되어질 인생을 그린다기 보다는, 나는 어떤 향기로서 이 세상의 기쁨에 기여할 것인가의 기도(企圖)이다.
봄이 오는 소리 예서제서 들린다. 곧 남기에 새순도 돋고 제비도 돌아올 것이다. 이 화창한 봄날에 걸맞은 환하고 화평한 기운을 만들어 가고 싶다. 하늘이 보시기에 이쁘고 기쁜 모습을 만들어 가리니!
2006년 3월 초순에
명상의 집;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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