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년!’
- 우리도 언젠가는 그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 되고 말 터 -
2007년 여름 수련회 때에 서울에서 오신 50대(代) 초의 한 남자분[김 모님]이 전해주신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13년 전인 1994년의 어느 봄날, 서울에 있는 성빈센트 병원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화(逸話)라 한다. 그 분은 아내와 함께 응급실에서 누군가를 병문안 하고 있는 중이었고, 바로 그 옆 침대에서는 70대(代) 중반의 할머니께서 곧 숨이 넘어갈 듯한 상황에 처해진 듯 의사와 간호사 분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시며 보호자로 계시는 영감님께 자녀들에게 연락은 취하셨는지, 언제쯤 도착하는지의 여부를 거듭 묻고 있었다 한다. 그러던 중 미처 자녀들이 오기도 전에 할머니께서는 운명(殞命)을 하셨고 이내 하얀 가운으로 덮여졌다 한다. 하늘이 무너진 듯 할말을 잊고 계시던 영감님께서 가운 밑으로 할머니의 양 다리를 잡고 한참만에야 입을 떼고 나지막이 울먹이며 하신 말씀, “나쁜 년!”
가슴 조마조마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 부부는 함께 오열을 터뜨렸다 한다. 그 한 마디 속에 들어있는 영감님의 마음이 천 마디 만 마디보다 더, 대성통곡보다 더 호소력 있게 전해져서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모님 부부는 서로 손을 꼬옥 잡고 몇 차례고 다짐을 했다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기어이 서로에게 나쁜 사람 되고 말 터, 아옹다옹 다투지 말고 서로 깊게 이해하며, 살갑게 살다가 가자.”고. 그 이후 서로는 가끔 다투기도 해 오지만 그럴 때마다 그 얘기를 나누며 화해를 하고, 아직까지 영감님의 그 한 마디에 서려있는 절대적 낙망(落望)과 고독감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눈시울을 적신다고 한다. 마음나누기 시간에 들려주신 이 일화는 구성원 모두를 감동시켰고 눈물바람을 만들었다. 입이 무겁고 덩치가 큰 남정네들도 눈가가 빨개지더니 화장지로 슬쩍 코 푸는 척하며 눈물을 찍어낸다. 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가슴이 저몄던지 아프게 울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마치 그 때 그 장소에서 함께했던 사람마냥 영감님의 그 한 마디가 귓전에 맴돈다. “나쁜 년!”
오랜 세월 동안 어줍지 않게 상담자 역할을 많이 해 왔다. 부부 상담도 더러더러 했다. 오늘도 50대 초의 한 여인이 와서 겨우 인사를 나눈 뒤에 한참 동안 결혼생활 25년의 역사를 토해냈다. 전에는 참고 또 참으며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을 미덕(美德)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 갱년기 건강을 위하여서라도 누군가에게 나누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도 느껴지고, 또 아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스님이기에 만나기도 전에 이미 호감과 신뢰가 충분하여 만나서 좀 토로하고 싶었다 한다. 마치 봇물 터지듯 거침없이 이어지는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지만 그러저러한 상황을 잘 견뎌낸 세월에 대한 존경심이 크게 일었고, 삶의 지혜와 인고(忍苦)의 덕향(德香)이 묻어나는 여인의 고운 눈물에 합장이 올려졌다. 남이 되어 어찌 그 속을 다 알 수 있으리오마는 나름대로 몇 마디 격려와 찬탄의 말씀을 드렸다. 그 중, “젊을 때에는 스님 되어 무슨 큰 도(道)를 닦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선민(選民)이나 된 양 드높은 자부심이 있었는데, 나이 들고 철이 조금씩 두터워져가니 선명히 보이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 도인(道人)들이시구나!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며, 욕구체계도 다른 사람들이 부부가 되어 서로 적응해 가는 일이며, 직장의 상하 그리고 동료들의 관계 적응, 아이들의 교육문제와 생활고 해결 등등 전후(前後), 좌우(左右), 상하((上下)에 온통 지뢰밭 같은 과제들이 산재(散在)해 있으니 도 닦는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찌 배겨내겠습니다.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제대로 도 닦는 분들이십니다.”라는 말에, “스님, 딱 맞는 말씀이십니다. 정말 도 닦는 마음으로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이 나며 위로가 되는군요.”라고 하시며 얼마나 반가워하고, 감사해하며, 속 시원해하시는지 좋은 보시가 된 듯하여 내 마음도 따라 평안해졌다. 다음 기회엔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을 모시고 와서 스님을 만나게 해 드려야겠다고 벼르며 오늘 후련한 정화가 좀 일어났다고, 또 오겠노라고 하시면서 떠나는 뒷모습에서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일상(日常)과 삶의 애환(哀歡)이 더듬어지며 가슴이 시큰했다. 그러면서 다시 영감님의 그 한 마디가 떠올랐다. 저러다가 둘 중 한 분을 먼저 보내고 나면, 몇 십 년의 세월 치룬 농도만큼의 회한(悔恨)이 눈물 되어 흐르겠지! ‘나쁜 사람!’ 하며, 못 다한 살핌과 사과와 용서를 탄식하며 울겠지? 우리도 또한 언젠가 그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할 터, 관계미학(關係美學)에 대한 최선을 한번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하루였다.
푹푹 찌는 더위로 모두 아우성이다. 그러나 따가운 햇볕 사이로 간간이 부는 바람결은 얼마 전과 확연히 다르다. 입추가 지난 까닭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절후(節侯)라는 게 참 묘하다. 절기 하나 씩 바뀔 때마다 그 하루 전과 완연히 다른 느낌을 느끼게 하니 말이다. 낼 모레면 처서(處暑)이니 더위가 한결 식을 것이 틀림없다. 이러다 저러다 한 철 씩 훌쩍 지나곤 한다. 무상(無常)함에 대한 아찔한 두려움이 인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에 대한 책임감이 더 깊숙이 온 몸을 조인다. 이 청량한 부담감이 참 좋다.
무상함이 어찌 세월뿐이랴! 사람의 마음 또한 아니 그러한가! 무상한 인생길에 함께하다 보면 서로서로 들키는 이런저런 못난 모습들, 그것들을 갈구다가 가슴에 생채기가 나고 그늘을 만들곤 한다. 먼저 보내고 나면 다 한없는 한(恨)이 되고 말 터! 마음 공부인이라면 더욱 더 안 그러겠는가! 큰 바다에 이르면 작은 도랑물도 큰 시냇물도, 빗물도, 오물까지도 다 일미(一味)의 짠 바닷물이 되듯, 한 생각 깨우쳐 개아(個我)의 망념(妄念)을 놓으면 망망대해(茫茫大海)와도 같은 법계일심(法界一心)이 열리는 것을! 우직한 갈앙심(渴仰心)으로 막바지의 더위를 잊어나 볼까!
2007년 8월 21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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