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至誠)
시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 조석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한낮에도 습도가 거의 없는 칼칼한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하늘은 더없이 맑다. 따끈한 차 한 잔이 문득 청(請)해지고, 여름날의 늘어진 분주함으로 인해 잠시 소홀했던 사람들도 살갑게 챙겨지며, 막연히 온갖 것들 온갖 사람들이 그리운 때라고들 말한다. 가을이다. 가을엔, 고향에 있어도 향수(鄕愁)가 느껴지는 계절이라 한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 가운데서 유난히 감동했던 몇 토막의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가슴에 훈훈한 온기를 지핀다. 참 좋다.
2대 독자(獨子)인 정 아무개 선생님은 40대 중반의 시골 고등학교 교사이다. 4년 전에 모친께서 72세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근 30년 동안을 병고로 시달리다가 가셨고 그 30년 중 약 10년 정도는 매우 심하게 앓으셨고, 마지막 1년 동안은 중풍을 얻으셔서 대소변까지 수발을 해 드려야 하는 형편이셨다고 한다. 부부가 다 교사였으므로 출근 후에는 간병인이 어머니를 돌보시고 퇴근한 후에는 정 선생 내외가 밤새 병수발을 하면서 어머니를 위해서는 천하의 모든 약과 모든 방법을 다 써 보았다 한다. 정 선생 부부의 효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하는데 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정 선생, “내 목숨을 드려서라도 3년 만 더 살아주셨더라면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더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터인데 너무도 아쉽고 죄송합니다.”라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나는 참으로 감동되었다. 장병(長病)에 효자(孝子) 없다 하였거늘 긴긴 병고(病苦)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고인을 위해서도 돌아가시기를 잘 했다고들 하는데, 정녕 오랜 세월 가장 마음과 몸이 고단하였을 그 자식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죽음을 그토록 안타까워하다니 고인이 되신 어머니께서 깊은 감사와 위로와 감동이 되셨을 것 같아 조용히 합장이 올려졌다. 그 눈물, 그 탄식이 간간히 떠오르며 눈시울이 젖는다. 정 선생의 나이 10살 이후부터는 어머니께서 병약한 당신 몸 추스르기에도 힘이 부치셔서 따스한 모정(母情)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할 정도라 하는데, 하늘이 내려주신 자식 같았다.
고등학교 때의 친구인 영주의 아버지께서는 치매로 약 15여 년 동안 앓다가 지난 2월에 세수 81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자녀들이 다 분가를 하여 각자의 살림이 있는지라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주로 사셨는데,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어머니께서의 마음고생과 노고는 이루 말 할 수 없으셨다 한다. 치매 환자들이 더러 그러하듯 아버지께서도 곧잘 집을 나가시곤 하셔서 그때마다 아버지를 찾아다니시면서 애 태우신 것만 해도 보통이 아니셨다 한다. 그 남편이 이제 세상을 떠났는데, 모두가 호상이라며 큰 시름 내려놓은 듯 했을 텐데 정녕 그토록 심신이 고단하였을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아쉬워하였던지 입관할 때에는 기절을 하셔서 링거를 꽂고 침상에 누어계셨다 한다. 젊어서는 아무리 잉꼬부부로 소문난 두 분이셨지만 오랜 병수발로 지칠 대로 지쳤다고 봐도 될 것인즉, 이제야 긴 고생에서 벗어나 얻은 자유를 맘껏 편안하게 표현하신다 한들 그 누구도 평가하지 못할 마당에, 마지막 가시는 길에 보여준 아내의 애틋한 헌정(獻情)을 받으시고 그 남편께서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셨을까 생각하니 감사하여 울컥 울음이 솟구쳤다. 바람도 쏘여 드릴 겸, 재작년 불탄일(佛誕日)에 아버님을 명상의 집에 친구가 모시고 왔다. 친구의 아버님께서는 우리를 친딸처럼 아끼고 보살펴 주셨던 분이시다. 치매 가운데서도 잠깐 동안 나를 알아보시고 출가 이전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반기시는 모습을 가족들이 신기해하며 좋아하셨는데, 내가 이끌고 있는 수련 기간 중인지라 장례식에 참석은 하지 못하고 친구를 통하여 그 애잔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얼마나 감동하였던지! 떠올릴 때마다 찬미되는 미담이다. 하늘이 점지해 주신 부부인 것 같았다.
지난 10월 3일 영화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일컫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첫 내한 공연이 있었던 서울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의 일이다. 연주회는 시작이 되었는데 우리 일행의 옆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고 그 빈 자리 옆에는 40대 초반의 중년 여성분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1부를 마치고 2부로 들어가기 전의 잠시 쉬는 시간에, 우리의 일행 중 좌석의 가장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가운데 좌석이 비어 있으니 그 자리로 옮기고자 했다. 그때 그 여인이 “이 자리는 임자가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일행은 잠깐 의아했다. 그래서 반문하였다. “오고 계신 모양이지요?”, “아닙니다. 제 남편의 자리랍니다.” 듣고 보니 여인의 남편은 3년 전에 돌아가셨고, 두 분은 음악을 좋아하여 음악회를 자주 다니셨다 한다. 남편이 가신 후에도 여인은 항상 남편의 티켓을 준비하여 그렇게 함께 음악회엘 다닌다는 것이었다. 적잖이 놀라운 것은 그 좌석은 상당한 가격이 되는 vip 좌석이었던 것이다.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얼른 생각하면 어리석은 집착 같이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또한 이 여인이 거기 매달려 어두운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지만, 18세기 즈음의 여인의 아름다운 부덕(婦德)을 접하는 듯한 감동이 남아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대중가요 가사가 있기도 하다. 눈을 뜨고 보면, 하늘이 빚어낸 존재계의 어느 것 하나도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있을 것이며 감동스럽지 않은 것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 우리에게 가장 먼저 감동을 주는 것은 역시 <사람의 고운 모습>인 것 같다. 위의 세 개의 감동적 일화들이 공통적으로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는 메시지가 있을 듯하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선 지성(至誠)을 꼽아 본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을 새삼 떠올린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정성은 누구라도 감동시키는 것 같다.
내 영혼을 다시 한번 순화시켜주면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정 선생과 영주 어머니와, 이름도 모르는 그 여인의 사람에 대한 지극한 정성에 존경과 감사의 합장 올리며 진심으로 복(福)을 빌어드리는 마음이다.
2007년의 시월을 보내며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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