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召天)
- 그 믿음이 주는 평온함 -
소천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부름, 하늘에서 부름 등의 뜻으로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특정 종교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누가 제일 먼저 이 말을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이 나는 은은하게 좋다.
대체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깊은 두려움과 큰 저항을 갖고 있는 듯하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앎이 부족한 데서 오는 막연한 불안일 수도 있고, 죽음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어서일 수도 있겠고, 생(生)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부여와 집착에서 오는 심리일 수 있다. 그 죽음을 <하늘의 부르심>이라는 믿음으로 기꺼이, 평온하게, 기쁨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지고 다행한 일이며, 아름다운 일인가! 주변인들 가운데서 “아무개님께서 소천(召天)하셨습니다.”라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아무개님이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보다 마음이 한결 더 푸근하고 평화로우며, 잔잔한 미소가 지어지며 축복의 합장이 되어지곤 한다. 그분의 하늘이 부르셨다니 필시 이곳보다는 더 평온한 곳일 거라는 믿음이 내 안에도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 믿음이 참 좋다.
내가 몸담고 있는 동사섭 수련회에서도 죽음을 평온하고 자유롭게 수용하게 하는 명상법이 있다. 더 엄정하게 말하여서는 죽음이라는 과제 앞에 놓였을 때에 평온하고 자유롭게 죽지 못하게 하는 이유들이 선명하게 잡힐 것인즉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마음 다루기를 하게 하는, 그리하여 살아있을 동안에도 그것들에 매이지 않는 마음을 다듬어가게 하는 명상 안내이다. 마음속의 집착하는 것들을 놓아가게 하는 명상이라고 여기면 된다. 그런데 그 명상에 몰입하다보면 실감적으로 몰입해 가는 정도만큼 정말 지금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듯 느껴지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고 엄숙하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 안의 사슬들을 끊기 위해 분투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 광경들이란 참으로 보기에 좋고 숙연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쯤 전의 일이다. 수련회에 오신 40대 중반의 한 부인의 일화이다. 부인은 고운 자태를 지닌 캐톨릭 교도이셨다. 죽음명상 시간에 유난히 많은 눈물을 흘리시더니, 끝내 죽음명상을 뚫어내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하여 자신에게 있는 귀하디귀한 보배를 다시 확인하게 된 의미가 있었고, 그 보배를 보기 위해 얼른 집에 가고 싶다며 고운 응석을 했던 분이시다. 그 보배인 즉은 그분의 따님이었다. 결혼하여 오랫동안 무슨 이유로 남편과 사이가 덜 좋아 각방을 쓰던 중 화해의 밤을 지냈는데 이쁜 따님을 낳게 되었고, 그 따님의 나이는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따님을 두고 죽을 수가 없었다 하고, 그 이쁜 따님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엄청난 족쇄라는 것도 확인했다며 또한 마음 공부인다운 서늘한 고백도 나누어 주셨다.
그 부인이 집에 가서 명상 체험담을 가족과 나누면서, “딸아, 우리 딸아, 네 때문에 엄마가 죽을 수 없었단다. 우리 딸!”하고 부르면서 따님을 가슴에 꼭 껴안고 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던 중 그 따님의 한 마디 말씀, “엄마, 죽으면 우리는 천국을 가잖아. 하나님 곁으로 가는데 왜 싫어? 왜 울어?” 아이의 말이 얼마나 맑고 또록또록했던지, 또 얼마나 확신에 차 있었던지 엄마도 흠칫 놀랐다 한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고 전해 주셨다. 어린 아이의 마음이라야 천국에 이를 수 있다 하신 그 말씀을 다시금 실감케 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그 아이보다 믿음이 작고 낮습니다그려!” 하며 옹골진 웃음을 나누어 가졌던 터였다.
그러고 난 후 얼마지 않아서 그 이쁜 따님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우리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그 아이가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야속타 하기에는 아이의 야무진 말이 떠올라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비통해 하던 그 여인이 아직도 눈에 선하며 아프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그 아이는 자신의 믿음대로 하늘나라에 갔을 것이라고, 꼭 그랬을 것이라고! 그럴 때에 ‘그 아이는 소천(召天)했다.’고 말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얼마나 뜨겁게 감사하고 평온한지, 펑펑 울고 싶도록 아름다운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다시 그 아이의 천국살이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나는 미소 지으며, 내 천국을 점검한다. 내가 이승을 떠날 때에는 무엇이 될까에 대한 나의 믿음을 더듬어본다.
내 어머니께서는 올해 세수 90이시다. 이제 가족들 모두 그 분의 가심을 확실히 예견하고 마음 준비를 하고 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 정성껏 모시고 있다. 부모님은 아무리 연세가 많이 되셨다 하여도 정녕 가신다고 생각할 적에는 못내 서운하다. 내 아버님이 가실 때에도 그러하였고, 어머니 가시려 하는 지금도 그러하다.
그 분은 또 그분의 신념대로, 그 분의 믿음대로 경험하실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불교인으로서, 이 생의 인연을 다하고서는 다시 환생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다. “다음 생에 나는 대장부로 태어나서, 주변인들을 많이 도우며 좋은 일 많이많이 하고 살고 싶어. 꼭 그리될 거야!”는 것이 내 어머니의 오롯한 염원이시다. 그 아이는 그 아이의 믿음대로 소천되어 하늘을 지키는 천사가 되어 있을 것이며,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의 믿음대로 꼭 그리되실 것이리라. 이러한 우직하고 천진한 내 믿음이 참 좋다.
죽음뿐만이 아니라 살아있을 적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서도, 자신을 평온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신념[믿음] 관리가 필요하리라. 우리네 삶의 모든 순간들의 행복을 위하여!
여기저기서 봄기운이 느껴져 온다.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 보이는 듯, 멀리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기운 만져질 듯, 봄의 향연이 은근하다. 낮에는 읍내 꽃집에 들러 호접란 두 화분을 사서 불단에 공양하고 종내 흐뭇하다. 모든 분들의 가슴에 환한 봄꽃이 피길 빈다.
2008년 2월의 마지막 날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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