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드린 마지막 선물
- 어버이날에 부쳐-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화장막이 무너질 듯, 내가 소리할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울며 건네 드린 이 한 마디가, 어머니께 드린 마지막 선물이었다.
입산출가(入山出家) 이후 나는 어머니께 <어머니>라고 불러보지 못했다. 수행자 티를 내느라고 억지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독한 신심(信心)을 가지신 불자(佛子)로서의 어머니께서는 딸 스님에 대하여 수행자 대접을 지극정성으로 다 하셨던 분이셔서, 그 흐름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정이 많으시고 베풀기를 좋아하셨는지라,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도 그러했었지만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욱 어머니 집은 마치 마을회관처럼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서 국수나 보리밥 등의 점심을 해 드시면서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시곤 하는 모임방이 되어 있었다. 내가 불교 종단에서 실시하는 수계(受戒) 의식 절차를 마치고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에, 그날도 어머니 집에는 친구 분들이 10여 분 함께 계셨다. 상냥하고 인사성 바르다고 어른들로부터 예쁨을 받던 나였다. 그러한 친구 딸이 승려 모습을 하고 나타났으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어머니들께서는 내 손을 잡고, “아이쿠 금주야, 네가 우짠 일이고? 어? 와 이렇게 됐누?” 하시며 인사가 법석이었다. 이 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친구들아, 네들은 TV도 안 봤냐? 손자가 왕(王)이 되어도 받드는 법이거늘....이제는 시님한테 이리 하면 안 되는기라!” 그리고는 나를 앉으라 하시고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정성스런 절을 삼 배(拜) 올리시면서, “시님, 우리는 멍청해서 이렇게 살다가 갑니다. 이제 만인의 스승이 되어 만 중생에게 깨우침을 주시는 <큰스님>이 되어주세요!” 라고 하셨다.
그 이후 어머니께서는 2년 전 90 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수행자에 대한 교도(敎徒)로서의 예(禮)를 소홀히 하신 적이 없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교 수행자와 그 교도(敎徒)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틈틈이 법담(法談)을 주고받고, 안으로는 부모자식으로서의 정을 나누면서 아주 보기 좋은 모습의 교류를 하며 삼십 년이 흘렀다. 이렇게 어머니께서는 내 수도 생활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셨다. 이러한 어머니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내가 날[日]로 달[月]로 성숙되어 큰마음을 보여드리는 것이고, 불교 수행 안에서 진정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자주자주 어머니께 얼굴 보여 드리면서, 어머니의 반응과 내가 어머니께 대하는 마음자세를 나의 성숙을 점검받는 현실적 업경대(業鏡臺)로 삼았다. 어머니는 태아 때부터의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고, 또 우리가 아무리 성숙되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긴장과 가식 없이 본심이 가장 잘 드러나지는 편이어서 도의 경지가 금방 들키기 쉬운 관계라고 생각되어서이다.
나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뵈었다. 온천을 즐기시고 여행을 좋아하시는지라, 모시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진한 인생 경륜을 통하여 깊게 배우는 것이 많았고, 어머니께서도 불교교리 공부 및 동사섭 간접 경험을 내게로부터 전달받으며 매우 흡족해 하시면서 승려인 나를, 동사섭 수련으로 생활수행을 실천 안내하는 나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어머니께 감사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많이도 전해 드렸지만, 워낙 정중하시고 수행자에 대한 예의가 깍듯한 분이셔서 나의 마음전달도 자연 정중하고 예의를 담아서 하게 마련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스님> 혹은 <대사님>이라 부르시고, 나는 <보살님>이라고 부르게 된 지 오랜 세월이 되다보니, “보살님, 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아시겠지요?” 라고 격(格)을 갖추어 말씀드리곤 하였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메아리는, “스님, 그런 말씀은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부모라고 이름만 붙었지 해 드린 것이 있어야지요? 아이들이 다 훌륭한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부모가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 해 줘가지고서는........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시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셨던 분이시다. 말씀은 그리 하셔도 내심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짐작이 되었다. 나는 그런 어머님이 더욱 감사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러던 어머니가 가셨다. 자식들에게 죽은 후에까지 짐을 지게 할 수 없다면서, 바쁘게 살다보면 멀리 시골의 산소에 못 찾아오기 쉬운 데, 자식들에게 그런 미안함을 만들어 줄 수 없다면서, 굳이 화장을 하여 허공에 뿌려 달라는 유언까지 남기고서 당신의 꿈대로 소망대로,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에 가셨다.
화장하던 날, 화구에 불을 붙였노라고 안내가 되던 그 순간, 나는 장례식 3일 동안 의연히 재워뒀던 울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 가시는 마지막 길에 <어머니>라고 한번 불러드리고 싶었고,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정말 존경한다고 다시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딸로서 소리 내어 울어드리고 싶었다. 몇 십 년 불러보지 못했던 그 이름 <어머니!>를,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간곡한 마음을 다시 한번, 당신의 딸로서의 애절한 울음을, 어머니 시신이 불에 다 타기 전에 전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온 몸에 꽉 찼다. 그런데 잠시 망설여졌다. 안 불러본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살짝 쑥스러움도 있었고, 가사장삼 법의(法衣)를 걸치고 있는 수행자가 무슨 어머니타령이냐는 평가에 대한 눈치 의식이 일었다. 상(相)이었다. 검불, 체면차림이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만약 이 순간을 놓치고 어머니께 내 마음을 못 전달하고 만다면, 평생 부끄럽고 안타깝게 후회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잽싸게, 그 체면사슬을 단칼로 베고, 나는 소리쳤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맘껏 소리 내어 울었다. 화장터 천정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참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물보자기가 함께 터뜨려졌다. 울음바다가 되었다. 속이 후련했다. 어머니께 무엇인가 작은 보답을 한 듯했다. 어머니께, 어머니가 신봉하는 수행자가 아니라 어머니의 작은 딸로서의 역할이 된 듯, 내 마음은 더욱 낮아지며 훈훈했다. 이것이 내가 어머니께 드린, 마지막 선물이었다. 내 울음과 마음을, 소리 내어 전달했던 그것이, 내 어머니께도 저승 가시는 길에 작은 노자(路資)가 되셨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 이후 나는, 그 사실을 두고두고 만족해한다.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내가 체면치레에 걸려 그 마음표현을 못했다면..........?
동사섭문화에서 강조하는 것 하나가 <표현>이다. 그 표현이 유익하다면, 세상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체면이나 습관 부족의 사슬에 얽매여 있지 말고 저질러서 표현해 보자는 것을 문화운동으로 권유한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실재(實在)가 아니라면서, 사랑과 감사와 배려의 <표현>을 독려한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머니 아버지께 더욱 적극적으로 마음표현을 해 보자고 권장하는 날이다. 어머니 아버지께 있는 우리의 핵심마음은 대체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리라 여겨진다. 그것을 말로도 표현하고, 행동으로도 표현하여 가정과 세상이 보다 더 훈훈한 마당으로 삶의 온도를 더해가자는 날이다. 물론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다, 우리가 만족할 만큼의 배려를 해 주시지 못하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세상 빛을 보여주심만으로도, 그 무엇보다도 그분들에게는 우리 자녀들이 가장 큰 재산이실 터이니만큼, 감사와 사랑을 표현해드리자는 것이 어버이날의 의미가 아닐까! 나날이, 1년 365일을 어버이날로 여기며 효(孝)를 다해야 할 것이지만, 이날 하루는 더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리라!
철부지였던 자식도 언젠가는 또 그의 자식의 어버이가 되고, 어버이가 되고서야 비로소 어버이 마음을 제대로 알아가는 철이 들며, 이렇게 인생은 흘러가는 것 같다.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내일은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가야겠다. 그리고 다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전하리라! 어머니 유언을 극구 어기며 뼛가루라도 모셔야겠다며 아버지와 합장(合葬)해 드린 오라버니의 효심에 새삼 감사한다. 참 도리는 소리와 모양에 속해 있지 않다는 가르침은 모든 성자들의 지고한 깨달음 내용이다. 그런 줄 알면서 소리와 모양에 매이지 아니하고, 또한 소리와 모양을 잘 선용(善用)하여 세상행복이 보다 높아진다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모양을 찾아 행동으로 옮겨보고, 소리를 좇아 말로도 옮겨보자. 얽매임 없다면, 무엇인들 참 아닌 것 있으랴!
2010년 5월 어버이날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daehwa@dongsasu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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