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을 생각해보니...>
<생각> 하면 쉽게 떠오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데카르트의 말이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흔히 사람들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다른 생물체와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고등 동물이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석한다. 우리가 인간임에 대해 한껏 존엄성과 자부심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장하석 교수의 <과학과 철학(ebs 특강)>이라는 강의를 듣고 데카르트의 이 위대한 선언이 인간의 인식론적 절망에서 나온 절규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왜 절규하였을까? 강의를 듣고 데카르트가 절규한 인식론적 한계와 본질에 비추어 인생을 생각해본다.
먼저, 생각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점을 되짚어 보았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산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것까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을 열심히 탐색한다. 생각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도구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곧 존재라는 명제가 정말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행복에 대한 생각을 돈 버는 일이나 연애하는 것만큼 철저히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막연하게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을 진정 원한다면 먼저 합리적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삶이 곧 생각이라는데...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철저한 자기 점검과 열린 마음을 견지하는 것이 바른 자세라고 결론지어 본다. 먼저 자기점검이란 내가 행복한지를 전적으로 자신의 내적인 의식 상태를 기준으로 점검해 보는 것을 말한다. 내가 진정으로 얼마나 행복한지는 나밖에 모르는데 그 자기 점검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마치 동물처럼 아니 기계처럼 습관적으로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닌지?
그리고 열린 자세란 한 가지 경직된 신념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굳어 있는 만큼 대립을 불러오고 그것이 지나치면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고 반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종교와 정치얘기를 서로 피하게 되는 것이 이런 경향을 잘 드러내지 주지 않는가? 그러므로 나의 생각이 어떻게 굳어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사는데 매우 중요한 일 인 것 같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는 선언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행복한가?’라는 질문이 아닐지?
항상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살펴서 그 느낌이 부정적이라면 그 안에 나의 어떤 주관적 독선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자기만의 능력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주장이 나와 다를 때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기분 나쁨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나에게 깨어있음이다.
한편, 생각해보니 생각은 맹수와 같아서 먹이 감이 있을 때는 한 곳에 집중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매우 산만하고 복잡하게 전개 되는 것 같다. 명상을 할 때는 생각이 얼마나 복잡하고 산만한지를 느끼곤 하는데 생각은 아지랑이처럼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굶주린 맹수처럼 먹잇감을 찾아 헤맨다. 생각이 일어날 때 마다 그에 상응하는 이런 저런 느낌이 피어난다. 외로워지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는 등... 이와 같은 온갖 행 불행의 느낌에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피어날 때 마다 생각의 노예가 되어 습관적으로 방황하는 것이 삶의 적나라한 모습이구나 하는 자각이 일어난다. 그러니 이런 산만함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면 생각을 지켜 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명상과 기도를 행복의 길로 삼았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은 궁극적 실재를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이며 삶은 생각 작용에 의해 표상된 단지 현상에 불구하다는 데카르트의 절규에 공감해본다. 그리고 생각너머의 실재를 생각해본다. 생각, 개념으로 해석되어지는 모든 인식을 초월한 ‘개념이전’을 상상해 보니 행 불행, 옳고 그름, 좋고 싫음, 선과 악,... 등이 모두 개념의 산물임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 내가 만든 생각에 함몰되어 웃고 우는 어리석음이여~~
따라서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멈추고 지금 그냥 이렇게 존재(being)하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의식에 젖어 본다. 아무 것도 안하기, Non-doing, 노자의 무위(無爲)를 생각하며... 알 듯 모를 듯 어렴풋이 담담한 휴식과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아, 인류의 영적 스승들이 한 결 같이 개념(생각)이전의 세계에 깨어있음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 아닐까? 개념뿐이니 목숨 걸고 달려 갈 곳이 없고 그냥 존재하는 것이 전부다. 선각자들의 가르침이 가슴에 와 닿으며 마치 큰 해탈에 이른 것 같은 시원함이 피어나는구나.
글. 정안님 (kafa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