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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수련을 밥 먹듯이 하라. 행복해질 것이다.>
출근길, 전철에서 젊은이들이 핸드폰 다루는 모습을 본다. 빠르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놀랍다. 천재 수준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면 저리 빠를까? 감탄스럽다. 그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1990년 후반쯤,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획득이 붐이었다. 그때 나도 그 자격증을 얻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하물며 잠도 마다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비처럼 쏟아지는 단계별 단어와 어구, 문장들을 쉴 새 없이 두들겨 댔다. 그 결과, 워드프로세서 1, 2급 자격증을 동시에 얻었다. 가끔 내가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대는 모습을 보며 4,50대 선배들이 감탄하곤 했었다. 천재네. 그렇게 얘기하는 선배도 있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니 타이핑하는 것이 파도타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리듬 타는 것이 즐거웠다. 책을 옮겨 적기도 하고 그간 써 두었던 잡글들을 옮겨 적는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어 타이핑하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일정 수준에 오른 행위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가끔 학생들이 질문한다. 선생님,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해요. 아니면 여러 권의 책을 한 번씩 읽어야 해요?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여러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좋겠지.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렵잖아. 그렇다면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게 효과적일 거야. 왜냐하면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읽을 때마다 수록된 내용들 하나하나가 살아나서 전체를 제대로 구조화할 수 있게 되거든. 한 번 읽고 말면 전체의 대강은 파악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섬세하게 살려 둔 부분들은 놓치기 일쑤일 테니까. 그러나 대개 학생들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 일단 한 번 읽은 책은 선선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강한 자극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책은 두 번 이상 읽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갖고 읽고 또 읽으면 그 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자주 읽은 사람은 주인공의 대사 한 마디까지 기억하고 필요할 때면 그것을 꺼내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때마다 천재인가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남보다 잘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말이고 시간을 투자했다는 말은 그만큼 반복했다는 말이다. 그 반복이 남보다 탁월한 능력을 갖게 하고 그 탁월함이‘천재’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는 없다. 다만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으며, 사유하고 또 사유한 결과이다.즉 반복으로 천재가 된 것이다.
영화감상 또한 마찬가지이고 스포츠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그러므로 남보다 더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반복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라 한다. 그 ‘꾸준히’와 ‘열심히’와 ‘노력’ 속에는 ‘반복’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그러할진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더욱 그러할 터. 전에 용타 큰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 웃는 모습이 싫었어요. 그래서 거울을 보며 꾸준히 연습을 했지요.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이만하며 괜찮다 할 정도의 미소를 갖게 되었지요. 어때요? 제 미소가 괜찮지 않아요? 옳으신 말씀이다. 큰스님의 미소는 시원하다.거칠 것이 없이 푸른 바다 위를 비상하는 갈매기 같고 백두대간을 질주하는 싱그런 바람 같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상에서 늘 우는 상을 하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우는 상의 얼굴을 갖게 마련이다. 일어나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수용하면 얼굴 또한 화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지당하다. 그러니 웃는 얼굴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보는 나도 행복하고 상대를 행복하게 할 것이며 주위를 밝게 하는 에너지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한 미소를 갖게 될까? 그것은 마음을 잘 알고 다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잘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용타 큰스님께서는 『공(空)』 제6장 「생멸고공」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 생각하면 집착하게 되니 ‘나’를 사라질 존재로 생각하면 텅 빈 모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하면서 “지금은 잠깐 있는 듯한 ‘나’이지만 잠시 후 사라져 영원히 없을 존재가 아닌가!” 하고 거듭 거듭 반복해서 ‘사라져 없는 상태’를 관조하곤 한다면 ‘나’에 대한 실체감이 증발되는 감을 느낄 것이다. 역시 반복 실습이다. 천재란 반복이 낳는다 하지 않는가! ‘나’에 집착하면서 삶의 괴로움에 고통스러워 할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하고 ‘나’라는 존재의 ‘공’함을 지속적으로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설혹 꾸준한 수련으로 어떤 경지를 경험했다 할지라도 꾸준히 반복하지 않으면 그 경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밥 먹듯이, 즉 반복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그 경지를 놓치지 않고 행복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갖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고 그것을 거듭 씹으면 좋다. 껌을 씹듯이. 아니 밥을 먹듯이. 즉, 좋은 것, 가치 있는 것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수백만 개가 있다. 그러나 모든 가치를 수용할 수는 없는 법. 그 중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만 가져오면 된다. 특히 무한 행복을 주는 가치에 집중하라. 그 무한 행복, 그것으로 마음을 알고 다루고 나누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무한 행복을 주는 가치를 정하고 밥 먹듯이 노력하면 지극한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끝>
글. 한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