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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8:05
제목
110. 삶의 어느 길목에서 돈망명상을 하다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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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길목에서 돈망명상을 하다>

 

삶의 어느 길목에서

세상을 둘러보니 아수라 장 이로구나.

모순투성이구나.

그러나 혼란스럽고 모순인 것은 내가 더 심하다.

머리로 그걸 알아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으니

아, 이 어찌 할꼬.

 

돈망 삼관을 한다.

 

<그냥 있는다.>

그냥 있으려 애를 쓰지만 슬픔에 잠긴 자아가 역력하다.

발버둥 치며 허덕이고 있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처럼 그냥 있는다.

 

<기초수를 그대로 수용한다.>

부정적 느낌의 수용이 잘 안 된다.

나는 마치 실험실 쥐처럼 고통을 받아내며 살고 있는 듯하다.

수용이라기보다는 포기이거나 애씀이다.

다만 견딜만하니 내성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아공법공이니 걸림 없이 그냥 깨어있는 것이 할 일 전부이다.>

아공법공은 논리적으로 수긍되나 해탈감이 충만하지 못하다.

여전히 ‘나’라는 은산철벽에 갇혀 옴짝 달싹 할 수가 없다.

단지 살아 있으니 ‘깨어있다’라고 이름을 붙인다.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듯 슬픔을 고요히 관조한다.

시간이 흐른다.

흥분이 가라앉고 혼란스럽던 감정이 구름처럼 흩어진다.

그리고 사유한다.

 

137억년 우주의 소산,

46억년 지구의 유산,

300만년 인간 유전의 결정체인 ‘나’를 어찌 할 것인가?

수용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삶은 환상인가? 분명 그렇다. 이미 현대 과학이 입증했다.

삶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삶은 연기적 현상이요. 나 있음이란 망상일 뿐이다.

죽음 이후를 믿는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주관적 믿음인가? 아니다.

인류 성인들의 가르침이 그러하며, 나의 사색이 논리적으로 이를 수긍케 한다.

그렇다면 갈 길은 분명하지 않은가?

 

다시 돈망 삼관을 한다.

 

<그냥 있는다.>

이슬 같은 인생, 단지 현상일 뿐인데

스스로 지어낸 자아의 노예가 되어 어리석게 발버둥 치고 있다 생각하니

무위가 궁극임이 가슴에 파고든다. 홀가분하다.

 

<기초수를 그대로 수용한다.>

기초수는 실존, 삶은 인과응보이니 수용함이 마땅하다고 다짐한다.

그것이 순리이다.

부정적 느낌은 대부분은 나의 분별에서 비롯되고 스스로 증폭시킨 것임을 확인한다.

기초수가 수용되며 걸림이 사라지는구나.

걸림 없는 이 의식의 가벼움이여.

 

<아공법공이니 걸림 없이 그냥 깨어있는 것이 할 일 전부이다.>

이제 나를 가둔 은산철벽은 아공 법공이 되어 해탈의 꽃을 피운다.

깨어있음이 주가 되니 오로지 안락과 휴헐이다.

 

나는 삶의 어느 길목에서 또 이렇게 한 고비를 넘는다.

돈망을 깨달았기에 인간으로써의 삶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고

돈망에 의지하며 나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것이다.

돈망 수행으로 의식을 정화하고, 죽음으로써 몸의 탈을 벗어 완전 해탈에 이를 때까지...


글. 정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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