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돈망, 가장 자연스러운 의식 상태
2011년 여름, 첫 고급과정에서 경험해보려고 무진 애써왔던 돈망이라는 의식 상태가 사실은 애써야 할 그 무엇도 없고, 더해야 할 그 무엇도 필요 없는,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순리적인 의식 상태요 존재 상태임을 깊이깊이 수긍한다. 무한 우주는 본래부터 아무 개념 작용 없이 그냥 있으며, 나다, 너다 하지 않고 무아(無我)로 존재하며, 좋다 나쁘다 하지 않고 여여(如如)하게 존재하지 않는가. 인간이 불행에 빠지는 것은 우주의 이러한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의 이치에서 홀로 떨어져 그냥 있지 않고 개념 작용을 하고, 그 중에서도 나다, 너다 하는 실체 의식으로 살며, 주관적인 잣대로 시비하기 때문임은 참으로 불을 보듯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모든 작위(作爲)를 떠나 그냥 임재하는 존재 상태가 바로 부처임이 몇 번이고 수긍된다. 돈망 3관이라는 방편을 만나 모든 존재들의 고향인 불성의 바다로 회귀하여 본래의 니르바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음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느낀다.
2. 공(空)
우리들의 의식을 본래대로 그냥 순수하게 깨어 있지 못하게 하는 첫 번째이자 최강의 원인이며 근본 원인은 나와 세상이 ‘있다’는 실체의식이다. 아(我)와 법(法)이 본래 공(空)하다는 이치를 얼마만큼 투철하게 이해하고 있는가가 돈망 경험의 핵심 요소임을 몇 번이고 깨우친다. ‘본래 없음’이 뼈 속까지 확연히 이해되지 않고서야 전 인류사를 통해 인류의 99.99999%가 찌들어온 그 실체의식을 어찌 이겨낼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골수에 사무치도록 이해되어야 숙세에 매달려온 <있다-좋다-싶다-썅-불만>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진정 공리의 철저한 반복관행이 있어야 무한 즉비(卽非)로, 무한 차정(遮情)으로, 실체 사고를 뿌리의 뿌리까지 캐어내어 본래청정이라는 표덕(表德)의 의식을 제대로 견지할 수 있음을 깊이 깊이 깨우친다. 큰스님께서 절대 좋음의 논지를 백 번 써보라고 하신 뜻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3. 현실수용
돈망 제 1관과 제 2관을 관행하며 산다고 해도 실생활 속에서는 오랜 습에 의한 갖가지 자질구레한 걸림들에 수없이 맞닥뜨린다. 제 3관은 세상바다 한복판에서 그렇게 난파될 때 무엇보다도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선이 된다.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들은 인과(因果)의 질서에 따른 순리물이다. 그야말로 이 존재계는 터럭 하나 어긋남 없는 진리의 세계이다. 그런데 그 순리물을 주관성의 미숙함으로 시비한다. 아차, 하고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시비의 화살이 쏘아져서 내 가슴이 출렁이고 있다. 어찌 해야 할 것인가. 그 때 또다시 그 인과 질서라는 우주의 대자대비심이 당황하는 이 마음을 그대로 수용해준다. ‘그 미숙함 또한 인과물이요 순리이니 상처에 또다시 화살을 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자비무궁의 이치가 또 있을까. 이 기막힌 이치를 풀어내신 불조(佛祖)들께 무어라고 감사를 올릴꼬. 이렇게 현실수용이라는 제 3관의 이치까지 이해되면 우리의 세계가 그대로 돈법(頓法)의 세계요, 이미 불국토요, 본래 천국임을 천만번이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4. 걸림 없음
처음 고급과정에 입문할 때는 ‘걸림 없음’이라는 의식 상태는 큰스님께서 정하신 궁극의 목적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냥있음. 아공법공. 현실수용. 이라는 돈망 3관을 관행하고 있으면 저절로 존재계의 이치와 합일되면서 진정 걸림 없는 의식을 경험한다. 이 걸림 없음은 무한 존재계의 본래 상태이므로 무의식이, 세포들이 너무도 당연히,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듯, 그렇게 자연스레 향하게 되는 지점임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무한을 파지하여 끝끝내 열려 있는 의식을 경험하지 않고는 우리들의 의식은 결코 쉬지 못하고, 결코 긴장에서 풀려나지 못하며, 결코 평화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 끝을 모르는, 그리하여 결국엔 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유위적인 갈망을 근원적으로 종식시키는 길, 그것은 돈망을, 걸림 없는 무한 의식을 파지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절감한다.
5. 지족과 돈망
돈망은 주관성이 끼어들지 않은 순수의식이다. 이 순수의식을 각성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자아(自我)이다. 이 자아를 근원적으로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무아(無我)를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유위법 차원에서 이 자아가 충분히 사랑받고 충분히 풍족함을 느껴야 우리의 의식은 아쉬움 없이 자아와 결별하고 초월의 다리를 건널 수 있음을 실감한다. 마치 아기들이 충분히 젖을 빨면 저절로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떨어져 나오듯이.
<한 생각 일으키니 범사가 감사요 지족이다 혼이 감사요, 몸이 감사요, 경험이 감사이며 가정과 사회, 나라, 지구, 우주 등 소속 공동체의 모든 존재들이 감사이며, 공기와 물, 태양과 중력 등 대자연이 감사요 지족이다.>
이 지족명상을 반복 읇조리며 충만한 마음으로 자아를 쓸어버린다. 진정 범사(凡事)가 감사이다. 이 무한우주는 138 억년 동안 티끌의 예외도 없이 공평무사하고 공명정대하게 작동해 오고 있지 아니한가. 그 모두가 순리요, 질서요, 진리 아닌가.
제일 먼저 스스로에 대한 지족이다. 이 존재는 이미 혼과 몸이 있으니 무한 파지의 필수 조건은 다 구비되어 있다. 이미 의식을 지니고 있으니 그 의식의 본래 성품만 알아차리면 된다. 스스로의 앎이라는 이 혼, 그리고 이 혼이 깃들어 있는 완벽한 시스템인 이 몸, 이 혼과 몸으로 이제까지 갖가지 유위적 경험을 하고 살았다면 이제는 돈망 명상을 하며 이 혼과 몸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향해 열려간다. 혼과 몸을 지닌 이 존재는 얼마나 복된 존재인가.
그 다음은 사람을 비롯한 존재들에 대한 감사이다. 부족한 이 존재를 친근한 관계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펴주는 여러 소속 공동체의 사람이라는 동지(同志)들,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 새와 나비들. 나무와 꽃들이 이 존재에게 베푸는 아기처럼 천진한 사랑.
그리고 최후로 무한우주의 질서가 아낌없이 쏟아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나아가 이 존재의 감성에 한없는 대답을 보내오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이러한 사랑을 넘치도록 향유해온 이 일물은 이제 아무 여한 없이 그 외로운 자아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냥 무한의 바다로 자연스레 입수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모든 존재들에 대하여 아무 집착 없는, 진정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랑, 자아를 지니고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그런 사랑을 보낼 수 있게 된다.
“해탈을 하겠다면서 행복을 망치지 말라.” 하시던 거울님 말씀이 깊이 스며든다. 지족 위의 돈망, 행복 위의 해탈. 이제는 행복과 해탈이 구태여 구별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 행복, 그것이 진정 행복이요, 해탈이지 아니한가.
6. 반복 관행
언제까지 돈망 명상을 관행할 것인가? 죽을 때까지 한다. 아니, 세세생생 해간다. 빅뱅 이래, 의식이 밟아온 행로를 생각해 본다. 저 아메바로부터 오늘날 인간의 의식에 이르기까지 의식이라는 이 신비한 썸씽은 줄기차게, 잠시도 쉬지 않고, 끈질기게 진화해왔다. 그러면 이 의식은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모른다. 무한으로, 무한으로 끝내 갇히지 않고 그냥 나아가지 아니하겠는가. 의식을 지니고 줄기차게 관행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존재의 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돈망 명상이라는 방편을 쥐고 있는 이 존재가, 무한 의식을 지니고 있는 이 존재가, 더욱 신비하고 숭고하게 여겨지는 한편 더없이 담담하고 고요, 고요해진다.
7.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무한이란 무엇인가. 한(限)이 없는 것, 한정이 없는 것, 어떤 규정도 없는 것, 끝내 실체가 아닌 것. 그 무엇이 아닌 것, 아닌 것, 아닌, 아닌..........아닌 것이다. 무한즉비(無限卽非), 무한차정(無限遮情)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유한의 울타리를 벗어나겠다고 우주 끝까지 달려 나가서는 결국 또다시 울타리를 치고 또 다른 유한 속에 갇히는 꼴이 되고 만다. 무한은 백척간두에 올라서도 허공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돈망이라는 순수 의식으로 그 아무리 해탈감을 경험한다 해도 그 돈망을 실체시 하지 않고, 그것에 안착하지 않고, 그것이 끝내 연기물이요, 우리들의 행복해탈에 도움이 되는 염체뿐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진정 이 가슴이 사원하다, 끝끝내 대자유요, 그야말로 무한 자유, 무한 해탈이다.
큰스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진정 무한 해탈을 경험하게 해주신 스승님,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고득락을 위해 이 경험을 반복, 반복해가며 끝내 이 길을 가겠습니다.
장을 이끌어주신 원장님 고맙습니다. 함께 해주신 도반님들 고맙습니다. 공양을 준비하시며 저희들의 공부를 마음 한가득 응원해주신 후원의 로연님 감사합니다. 동사섭 수행 공동체에서 만난 이 소중한 인연들, 깊이 사랑합니다.
동사섭수련 - 45회 초월명상(고급과정)- 소감문
지훈님 김소영
조금 늦게 참가한 고급과정이었지만 다녀온 보람은 아주 톡톡하다. 이 길이 내가 평생의 핵심소임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시간이어서 더욱 의미있고 지금 그 의미를 다시 떠올려보아도 가슴뭉클하다. 이 길을 안내해주신 큰스님과 도반님들을 비롯한 동사섭 공동체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1. 본래 이미 천하가 그냥 있음을 안다는 것
그냥 있는 일은 그냥 있으려고 애써야 할 구현거리가 아니라 본래 이미 그냥 있기에 발견하고 누리면 되는 것임을 몸으로 알았다. 본래의 의미를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였다면 몸으로 체감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것이기에 가장 편안한 상태임을 이번 고급과정에서 체험한 것 같다. 그냥 있지 못한 걸림을 알고 내려놓기만 하면 이미 본래 그냥 있다는 것을, 아니 본래 공하여 내려놓을 것조차 없이 모든 것이 이대로 그냥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참 위안이 되고 편안하다.
2.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지혜로운 생각
이번 고급과정 전체의 핵심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지혜로운 생각을 하자는 것이고, 그 생각은 유위법적으로는 지족이요, 무위법적으로는 돈망이다. 그리고 그냥 있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지족이 안되어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 있다-좋다-싶다-썅의 번뇌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욕구를 충족시키기를 바라는 마음과 지금의 몸컨디션이 더 좋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돈망으로 더 자연스럽게 그냥 있기 위해서라도 지족은 필수요, 기초라 할 수 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기본적인 조건들( 혼, 몸, 경험, 사회공동체와 대자연 등)을 떠올리며 지족하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당연시하던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들이며 그것을 당연시하며 내쳤기에 스스로에게 그 내친 행위에 대한 댓가가 그냥 있지 못함으로 인한 고통임이 자각이 되었다. 어쩌면 참 단순하디 단순한 것을 이렇게도 몸으로 살기는 쉽지 않았구나. 이제라도 진정으로 알고 살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3. 이루는 삶보다 놓아가는 삶
' 찾으라 놓칠 것이요, 놓아라 찾을 것이다' 는 도가의 말이 있다. 이루지 못하면 절망하고 실망하는 삶에서 이제 놓아가는 삶의 의미와 그 담담한 행복감으로 내 삶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 고급과정이었다. 존재함 자체로 행복할 수 있기에 그 바탕 위에서는 어떤 삶도 조건과 관계없이 행복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4. 이렇게 그냥 있을때 나의 행복도는?
일상 속에서 별 일 없이 있는 순간, 나의 행복도는 얼마일까. 그런 작은 순간들이 이어져 결국 인생이라는 세월을 만들어갈 텐데 말이다. 무슨 행복할 일을 만들어 행복을 채워가기보다는 존재의 기초 자체로 행복하다면 그 위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행복할 일을 만들어 행복해지는 구현쪽에 가 있는 마음이 지금 이대로 이미 행복한 기존기성의 행복쪽으로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어 크게 안심이 되었다. 그 동안 '무심하고 담담한 행복이 좋아' 라고 속으로 생각은 하면서도 실은 아직도 조건적인 유위의 행복이 더 달콤하고 그런 행복쪽에 마음이 많이 향하고 있었음이 자각되었다. 지금 여기 이대로의 삶이 존재함 자체로 무한히 자유롭고 만족스럽다면 그 자유함으로, 그 행복함으로 이미 오케이인 그 상태 위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행복할지 생각만 해도 기쁘다. 아무 일 없이 그냥 이러고 있을 때의 행복도를 누리는 삶은 곧 아무것 더 바랄 것 없는 본연의 자성으로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지금 그냥 있을 때 나의 행복도는 얼마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진다.
5. 그냥 있는 이 의식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도록
어떤 조건에도 관계없는 무한행복을 창출하는 길은 그냥 있는 이 의식에 대한 통찰을 거듭 곱씹는 일이다. 매일 매일 돈망관행을 하면서, 돈망록을 쓰면서 그냥 있는 이 의식에 대한 통찰을 거듭해보고 스스로 정리해보자는 동기가 일어나고 설레어졌다.
6. 탐진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상황적으로 선이고, 상황적으로 악일 뿐이니 그냥 그것일 뿐.
모든 것은 저 밖에 객관적으로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각구조와 주관성에 의해 만들어진 염체다. 스스로 만든 것을 가지고 시비분별하며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다. 주관성을 벗어난 그 자체는 영원히 알 수 없는 불가지, 물 자체, 중중연기이자 여여실상이다. 탐진치 역시 그러한 에너지. 썸씽의 신성한 에너지를 탐진치라고 규정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수행법이 대부분인데 그것은 일어나는 대로 안아주고 경험해줘야 할 에너지일 뿐이다. 모든 탐진치에 대한 규정이 사라지고 마음 속 깊이 차분히 비워진다. 마음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담담히 경험해주고 안아주리라 속으로 읊으니 이 이상의 사랑이 없을 것 같다. 편안하다.
7. 방편으로서의 개념과 추락으로서의 개념
개념을 필요에 의해서 정화와 해탈, 소통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0.1 % 정도인데 있다/좋다/싶다/썅의 번뇌구조의 추락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99.9%라는 큰스님 말씀을 들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혼자 있을 때 정화와 해탈로 개념을 사용하는지, 혼자만의 생각으로 번뇌구조 사이클을 돌리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함께 있을 때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지, 갈등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는지......문득 문득 개념을 사용할 때 정말 진지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8. 추락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우주
의식의 전개를 선택하기도 전에 즉각적으로 번뇌구조의 시스템을 가동시키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의식상태다. 그러나 무심하게 있음으로써, 혹은 수동적으로, 능동적으로 사물을 만나 느낌으로써 개념이전의 마음으로 사물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나는 것이 더 제대로된 만남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서 필요에 의해서 개념을 활용하는 식으로 자신의 의식상태에 깨어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삶이라면 참으로 자유롭겠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마음의 빈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뭔가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느끼고 보듬어주면서도 개념화를 선택할 수 있다면 습관적인 환상을 스스로 곱씹으면서 고통과 갈등을 일으키는 번뇌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리.
9. 그냥 있는 이 의식이 절대로 좋은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라
돈망의식이 절대로 좋다고 답하면서도 문득 문득 삶 속에서 그냥 있지 않고 실체시하고 가치시하면서 번뇌구조를 번복하는 삶을 살게 된다. 무엇때문일까? 어쩌면 번뇌구조를 번복하는 삶이 너무나 깊었다 보니 그냥 있는 돈망의식의 해탈감보다 훨씬 더 가깝고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습관적으로는 그럴 지라도 깨어있으면서 스스로에게 문득 문득 절대좋음의 논지를 물어야 그 습이 더 반복되는 것을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본래 그냥 있으니 그 본래의 힘이 조금만 득력이 되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금도 이미 만큼 자연스럽지만.
어떤 상황이든 간에 그 조건이나 수행 정도와 관계없이 천하는 이대로 오케이다. 본래 이미 그러한 자성으로 이렇게 그냥 있기만하면 무심하고 담담한 천국이 펼쳐지지 않는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지극한 경지를 알고 누릴 수 있으니 복도 많다. 이 복된 실존의 자유함을 모든 존재의 행복해탈에 바친다.
45회 초월명상(고급과정) 소감문
2019.08.25. 보광 조혜윤
마라톤 수련의 끝자락에 맞이하는 고급과정. 시작 부분의 고급과정에 임하는 마음가짐 설문 조사에 응답하고 나니, 고급과정에 대한 동기가 다져져서 좋았다. 번뇌 구조에서 벗어나 진정 해탈을 원하므로 해야 할 일은 돈망3관의 반복 관행뿐임을 자각하게 되어 기쁘다.
이번 고급과정의 소득으로는 큰스님 특강을 통해 돈망의 자연스러움과 순리가 더욱 다가왔다. 인생살이의 여러 경험중의 하나라는 말씀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과정으로 여겨져 부담 없어 좋았다. 또한 강의 마다 이어지는 3인 1조 스피치를 하면서 강의 내용을 거듭 곱씹는 기쁨과 머릿속에 정리된 내용을 점검하게 되는 좋음이 있었다. 한편 초심자분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기본 개념이 더욱 선명해지는 득이 있었다. 돈망 점검록 작성을 돕는 시간에는 초심자분들의 행복해탈을 향한 간절함이 전해져서 뭉클한 감동이 몰려오기도 했다.
변화가 있을 뿐, 죽음이 없긴 하지만, 몸뚱이가 흩어지는 과정을 앞두고 가장 값지고 고귀한 시간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당연히 고급과정 수련 시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할 일들 중에서 최고최중최귀의 할 일은 무위법을 촉하는 것. 그 시간을 행복마을에서 수년째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싶다. 가능하게끔 도와주신 모든 중중한 인연들에게 깊은 감사의 합장을 올린다.
돈망은 무한 확보가 경험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깨달음을 반복적으로 곱씹어서 깨달음 의식 모드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해오주의 수행법으로 할 일이 선명하게 다가와서 기쁘다. 본래 상태로 임재하여 무한을 경험하고 그것이 의식화로 장착 되는 것! 구름과 다툴 시간에 오직 태양을 노래하리라! 번뇌 또한 보리임을 깨달아 그 어디에 무엇을 더 구할 것 없는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 탐진치 패턴 모드에서 벗어날 일은 의식의 돈망 모드임에 수긍하며 반복 관행을 다짐해 본다.
그냥있음
그냥 있음이란 깨어있는 의식을 의식하는 심리과정이다. 의식은 구하고 손에 쥐는 것처럼 그 어디에서 찾을 대상이 아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의식 없는 채로 병원에 누워있지 않으니 이미 깨어있는 것이다. 있어 왔고 지금도 있는 의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무것 하지 않음으로서... 큰스님의 그냥 있음의 안내가 쉽고 선명하여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진다.
그냥 있음을 가로 막는 장애는 생각이다. 그냥 있고자 하는 그 생각마저도 내려놓을 때 그냥 있는 의식은 드러난다. 이미 있는 것을 찾는 것. 기존 중의 기존을 감지하는 것이 그냥 있음이다. 그냥 있음의 존재성과 인식론이 정리되어 뿌듯하다.
아공법공
그냥 있음의 상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래 없는 존재계를 공리를 통해 없음의 이치가 선명해 질 때 안팎으로 갈 곳 없이 그냥 있는 의식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아공법공은 그냥 있음을 지켜주는 호위무사이므로 공리를 파지한 정도만큼 그냥 있을 수 있다.
공이란 실체를 부정하는 관점으로서 성질과 기능을 드러낸다. 실체시를 부정하는 통찰(인식)체계이다. 어떠한 일에 대해서 심각하거나 마이너스 정서를 경험하는 것은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체인 내가 객체인 대상과 분별 상태가 되어 따로 떼어낸 그것을 시비하기 때문이다. 즉, 실체시 하기 때문이다. 실체시는 지옥과 전쟁을 가져오고 세상 사람들의 지옥과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 그러하니 전쟁과 지옥의 원천봉쇄하기 위한 첫 단추가 실체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공부인은 세상을 향한 시비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제라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신다. 분별시비집착에 빠지는 순간 깨어서 “본래 걸릴 대상없음!”과 “거는 주체 또한 공하여 없음!”으로 자유로워지기를 발원해 본다.
현실수용.
큰스님 법문을 통하여 현실 수용이 기존의 경험과 통찰, 구나-겠지-감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된 것이 소득이다. 실은 수용할 현실 자체가 없으니 존재를 그대로 수용한다는 말씀이 크게 아하 되어졌다. 주관적 분별로 시비에 걸려들었으니 그에 따른 괴로운 현실이 펼쳐지는 것뿐이지, 본래 천하는 개념 이전이다. 존재계 자체는 내 의식 내용이라는 점이 깊이 수긍된다. 내가 만들었으니 수용하지 않는 것이 비순리이지 않은가! 수용에 대한 이유가 더욱 선명해진다.
깨달음과 업
구름 제거로 한 세월을 닦아야 할 중생으로 사는 것보다, 지금 바로 부처하여 그저 태양을 노래하리라 하는 마음이 새겨지게 되어 좋았다. 존재계는 불사선 불사악이며 업도 우주의 한 현상일 뿐, 탐진치 삼독도 에너지일 뿐, 그 어디에 시비할 천하가 있을 것인가? 상황적으로 느껴질 뿐, 그 자체는 시비 양변을 초월한 중도연기의 여여실상이다. 무엇이라 할 수 없는 관조의 대상일 뿐이다 하신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점법으로 업장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돈법으로 깨달음을 논하는 것이다. 태양을 노래하면 자연스럽게 구름은 의식권에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난다 하더라도 탐진치라 불리는 진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음의 자성과 불성으로 니르바나를 사는 것. 그것이 부처가 할 일임을 수긍한다. 삶이 가볍고 단순하다. 그리고 완벽하다.
그냥 있음과 무한 만트라
그냥 있는 것만으로 무한 OK가 되는 의식과정이다 라는 말씀이 활구적으로 다가온다. 개념을 초월했으니 한정에서 벗어나 무한이 되는 것이고, 걸릴만한 아유가 공하니 OK로 있을 수밖에 가 더욱 선명해진다. 그냥 있음과 아공법공이 체로, 현실수용이 용이라는 말씀이 아하된다. 한편, 그냥있음 안에 아공법공과 현실수용이 포함되어있고, 아공법공 안에 그냥있음과 현실수용이 녹아져있으며 현실수용이 그냥있음과 아공법공을 전제한 내용으로 정리되어 시원하다.
그리하여 일미 통합감으로 아미타불의 무한만트라를 부르는 것이 수긍되어 좋았다.
이번 고급과정에는 큰스님의 생생한 법문을 특별 선물로 받게 되어 더없이 기뻤다. 돈망이야 말로 진정 자연스러운 것임을 와 닿아 더욱 가볍게 돈망 관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힘 덕분에 돈망 30일 정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돈망 관행을 통해 흔적 없이 살면서 우리 모두의 행복해탈을 위해 세상의 양장력으로 임재 한다고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이생의 최고를 쥐어주신 큰스님 감사합니다. 살뜰하게 고급과정을 챙겨주시며 법리에 쉽고 편하게 다가서도록 과정 이끌어주신 원장님 감사합니다. 수련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공양 간을 담당해주신 로연님 감사합니다. 진지함과 열정으로 함께 해주신 45회 고급과정 모든 도반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