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회 동사섭 온라인 (줌) 엔카운터- 소감문
화목 이선경
- 두 번째 화상 엔카운터 참여다.
두 번째라서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첫 엔카운터는 온라인이라는 시스템도, 화면으로 보는 도반님들도 낯설고 어색해서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번엔 두 번째라 익숙해서 좋았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이런것이로구나 알게된다. 적응이 해탈이라는 큰스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 엔카를 편안하게 시작했다.
- 무엇하는 자리인가?
거울님께 이 질문을 받을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때로는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몸만 장에 머물때가 있다. 생각이 많고 마음이 바쁠때가 그렇다. 엔카장에서 “무엇하는 자리인가” 라는 질문은 바로 나를 here and now로 인도한다. 이 질문을 통해서 장의 목적성에 부합하는 내안의 간절함을 확인하고 장에 집중할수 있는 힘을 갖게되어 좋았다.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내안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훈련을 한다. 지금 내마음은 어떤 상태인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스스로 묻고 정리해서 장을 살펴가면서 표현한다. 표현이 잘 되면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이다. 그런데 표현하고 싶은 불꽃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어떤 느낌은 찰라처럼 지나가서 놓치고 어떤 느낌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적절한 느낌 단어를 찾을수 없어 침묵권에 있기도 했다. 4일동안 엔카에 참여할때마다 무엇하는 자리인가?를 물으면 마음이 충만해져서 현재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서 좋았다. 이렇게 매번 물어주신 거울님의 질문에 감사하다.
- 인생은 장이다.
나는 항상 장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가정,직장,사회적교류,다양한 만남,모임등등 눈뜨면 만나는 것이 사람이고 공간에서 장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을 만날 때 형식적인 만남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교류가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목표지향적인 성향이 강한편이다. 어떻게 하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할수 있을것인가, 구성원들을 어떻게 설득할것인가, must,와 should.를 가치삼아 살아온 것 같다. 일 중심으로 빠지다보면 사람을 귀한 존재가 아닌 수단으로 대할때가 있다. 부끄럽게도 이런 태도로 일을 한적도 있다. 어느장에서건 편안하고 진솔한 만남을 통해 관계에서 걸림이 없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엔카에서는 나의 느낌과 생각을 선명하게 드러낼수 있는 용기와 솔직함을 배웠다. 거울님께서 00님에게 키가 얼마나 작기에... 대체 키가 몇이나되요? 하고 물으셨을 때 00님이 152입니다! 라고 크게 대답했을 때 정말 통쾌했다. 지극히 사적인 질문(그래서 불편할수도 있는)에 큰소리로 거침없이 답하는 00님이 내게는 영웅으로 보였다. 00님도 키작은 것이 더 이상 컴플랙스가 아니기에 시원하게 답변했고 듣는이들도 팩트(152)보다 순간의 느낌인 시원하다,용감하다에 집중했던 것 같다. 어떤 상황이나 사실도 내가 그것을 더 이상 문제시하거나 걸림이 없으면 주변도 편안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년에 들었던 큰스님의 법문중 ‘마음공부는 우주정화작업이다’라고 하셨을때 너무도 큰그림이고 허황해서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번 엔카장에서 실감하게 되었다. 나의 정화가 우리모두의 정화이고 우주의 정화임을 알게되어 기쁘다.
-스토리텔링의 함정에 빠지다
삼황의 원리를 통해 느낌은 현재에 빛나지만 촛대는 3가지 상황(현황,근황,원황)으로 나눌수 있다는 거울님의 설명을 시작으로 도반님들과 원황을 나누었다.
우리집은 가난해서 부모님이 남의집 일을 해야하는 형편에 나를 단칸방에 가둬두고 일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내가 밥을 챙겨 먹을수 없으니 엄마는 밀가루 과자를 흰 명주실에 꿰어서 내 목에 채워주곤 하셨다. 그것이 내 한끼 밥이었다. 내가 하루는 방에 작은 서랍을 열어서 아빠 면도칼을 만지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손가락 끝이라 지혈이 안되어서 피가 많이 났던 것 같다. 아이 혼자서 아무리 울어도 도와줄사람이 없었고 해질녘 일터에서 돌아오신 부모님이 발견하고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 이후로 내 검지 손가락은 네마디가 되었다. 대충 이렇게 장에 내놓았는데 불꽃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에서 서로 이해하는 바가 달라서 다른 반응이 나왔다. 검지손가락을 장애로 이해한 거울님께서는 ‘지랄한다’라는 표현을 하셨고, 허허님께서는 부모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느끼셨을 가슴아픔을 말씀하셨다. 화자인 내가 스토리 텔링에 집중한 나머지 내가 전하고 싶은 느낌을 선명하게 내놓지 못해서 장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 것이다. 50년전 촛대속에서 현재의 나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야 했다. 나는 이 스토리를 왜 장에 내놓았을까? 가난한 어린시절을 위로받고 싶었는가? 검지손가락 네마디가 불편하다는 건가? 그날 엔카운터가 끝나고 계속 생각이 머물러졌다. 마지막날 토요일에서야 답을 찾았다. 50대의 선경이가 5살 선경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으로 답이되었다. ‘많이 아팠겠구나... 무서웠겠구나... 도움을 못받아서 두려웠겠구나.. 엄마아빠를 많이 기다렸겠구나’ 이렇게 느낌을 살려주면서 스스로 다독이니 눈물이 난다. 당시의 상황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원망할 거리가 없음을 깨닫고 나니 정화가 된다. 나의 상황을 본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 아프셨을까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다음날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며 내 손가락 다친사건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여쭈어보았다. 혹여라도 그것이 아빠에게 가슴아픈 기억은 아닐까 해서 여쭈었는데 아빠는 딴소리를 하신다. ‘ 넌 어릴 때 아주 순해서 잘 안울었어. 너 방에 놓고 일가면서 창틈으로 들여다보면 넌 혼자서 잘 놀았어야...’ 여든셋 연로하신 아빠가 나를 가슴아픈딸이 아니라 순한 딸로 기억해주셔서 다행이다. 이번 엔카에서 과거의 기억속에서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을 수면위로 떠올려 대면하면서 정화하는 시간을 가져서 뿌듯하다. 스토리텔링의 오류에 빠진 것이 오히려 내게는 큰 수확을 본 것이다. 장에서 선명하지 못한 느낌을 지나치지 않고 언급해주신 허허님,거울님께 감사하다.
- 침묵은 나를 만나지는 기쁨이다 (일우님 말씀)
이번 엔카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장면은 거울님께서 일우님께 좌장으로서의 역할을 당부하시면서 쓴소리를 거침없이 하신 부분이었다. 점잖은 표현으로 당부였지만, 직설적인 표현을 하셨기에 나는 조금 당황하였다. 그러나 곧 엔카에서는 ‘폭력말고는 다 해도 된다’는 촌철을 기억하며 엔카이기에 가능하고 그 상황을 교재처럼 우리모두에게 공유해주신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된다. 아무튼 그 결과로 좌장이신 일우님의 등장이 대폭 줄어들어 주로 침묵권에 머무셨다. 중간중간 장의 흐름을 정리해주시던 역할과 유머로 장을 부드럽게 이끌어주신 역할이 없어지면서 장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 엔카에 임하는 구성원들의 몫은 n/1이라고 표현하는데 한사람의 개입이 줄어들면 그 몫이 장의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그렇다고 표현의 빈도를 n/1은 치는 것은아니고 표현의 내용과 질을 포함한다. 적은 출현으로도 큰 파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엔카의 장이다. 엔카장이야 말로 사회의 축소판임을 실감하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감각이 모여 장 전체를 흐른다. 미세하게 장을 조율하는 흐름을 읽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침묵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엔카에서 멋진 촌철을 알려주신 일우님께 감사드린다. ‘침묵은 나를 만나지는 기쁨이다’ 다시한번 곱씹어도 좋은 말이다.
- 4일동안의 엔카를 마치고 나니 뿌듯하다. 시작할때는 4일이라는 시간이 길어보였는데 시작이 되니 그 시간이 기다려지는 기대감이 있어 즐거웠다. 또한 일상에 휩쓸리지 않고 엔카에 집중할수 있는 나의 근기를 확인하니 더없이 좋았다. 엔카장에서 도반님들 한마디 한마디가 내안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양한 느낌을 연출해 내고 그 느낌을 잡아서 장이라는 무대에 내놓는 과정이 즐거웠다. 표현을 통해서 내안의 정화를 경험하고 타인의 것을 완벽히 공감할 때 화자의 치유가 일어남을 다시 확인하게 되어 기쁘다. 진정한 만남은 나도 너도 모두 행복한 자리임을 알게되어 일상에서의 만남을 깨어있는 상태로 임하리라 다짐하니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얼른 만나러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