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내내 행복마을에서는 릴레이 수련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돈망학당의 공부인들은 8월을 건너뛰고 9월에야 만났다. 햇밤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초가을, 행복마을 다각실에 공부인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일곱 명. 아이들 운동회며, 친지 간병, 해외여행 등등의 연유로 열성분자(?)들이 한꺼번에 불참한 탓에 인원이 적었다(에고, 아까워라!). 그러나 근래에 드문 특별한 만남이 되었다. 일초님이 부산에서부터 처음으로 돈망학당을 찾아 오셨고 루다님이 신입생의 빵빵한 에너지를 품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 위에 그야말로 오랜만에 큰스님의 말씀도 청해 들었다 (물론 큰스님께 ’문도 당하는 행복‘도 누렸다. 하하).
일곱 명의 부처님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서로에게 삼배를 올린다. 서로를 부처로 섬기며 삼배를 올리는 이 시간만으로도 돈망학당이 좋다고 한다면 너무 성급한 걸까? 아무튼 돈망 학당은 늘 감동과 함께 시작된다.
처음 오신 일초님과 루다님이 계시기에 우선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해보기로 하였다. 일초님은 행복마을과 오래된 인연이고 특히 고급과정 수련시간에 종종 등장하시기도 한다. 어떤 수련생이 “스님, 제가 돈망을 파지한 것은 같은데 별로 재미가 없어요.” 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일초님이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재미없다 하신 그 유명인을 ’친견‘하고 모두들 재미있어 하고 반가워한다. (그 재미없는 돈망공부를 하러 이렇게 오시니 돈망학당은 확실히 어떤 특별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루다님은 이미 돈망선방에서 카리스마 가득한 입장식을 가졌기 때문에 구면으로 느껴진다.
능조님의 자기소개 시간. 예전의 동사섭 홈페이지에 큰스님께서 <D담과 촌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물을 올리시고 계셨다. 능조님은 그 중에서 공리(空理)를 다룬 글에 크게 아하가 되면서 첫 ’열림‘을 경험했다는 것. 그렇게 경험을 한 날, 잠이 전혀 오지 않아 초롱한 눈으로 밤을 지샜단다. 그리곤 그 후로도 그 글을 몇 번이고 사경을 했다(과연 능조님!). 참석자들은 모두 귀를 쫑긋하며 능조님의 <첫 번째 열림>을 경청한다. 능조님이 처음으로 나누어주신 신선하고 감동적인 경험담으로 이야기는 저절로 각자 공부과정에 일어났던 개인적 체험으로 이어졌다.
오랜 시간 수행자의 길을 걸어오신 고향님은 ’이것이 내 살림이다.‘ 하고 내놓을 만 한 것이 없어 무언가 허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사섭에 와서 곧 “바로 이것이구나!” 했지만 일곱, 여덟 번을 돈망 점검에서 ’퇴짜‘를 받고는 답답하셨다. 그렇지만 결국 한달 안에 ’파지’하셨고 이제는 그 헛헛증이 깨끗이 사라지고 없다. 고향님은 “내가 살 길은 돈망밖에 없다”고 하신다. “돈망 명상록 쓰기는 바로 저의 수행입니다.” 이 말씀에 일초님이 반가와라 하신다. “아이고, 매일 아침마다 첫 번째로 명상록 올리시는 분이 바로 스님이시군요!” 일초님의 감사와 감동이 잔잔히 퍼진다.
일초님의 요즘 목표는 기초수를 돈망상태로 하는 것이란다. 돈망선방에 명상록을 올리고 있지는 않으나 그것은 ‘저항’ 때문이 아니라 ‘탐구’중이시기 때문이다. 이어진 보광님, 일우님, 그리고 선혜의 경험담으로 장력이 더욱 빵빵해진다. 각자 걸어온 생생한 체험담을 나누고 있노라니 한사람 한 사람이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우리들이 한 법을 공부하고 있는 도반들임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특별하고도 유일하나 너 나 없이 똑같은 마음이라는 이 신비한 인연! 어느새 밤 10시가 가깝다.
다음날 오전 8시 반. 다시 모여 돈망에 대해 what, why, how (돈망이란 무엇인가, 왜 돈망을 파지하고 관행해야 하는가, 돈망 경험은 어떻게 하는가)를 나눈다. 이 과정에 루다님의 이야기가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저는 30 년 이상을 간호사로 살아왔습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간호사 있으면 나와 보라 할 정도로 최선의 다하여 간호사의 소임에 임해왔습니다. 의료인이기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도 늘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은퇴를 3 년 앞두고 갑자기 간호사의 일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동사섭에 왔고 동사섭에서 이렇게 살아온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에 부딪쳤습니다. 그리고 충실하게 살아온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급과정에 와서 지난 과정들이 모두 스스로가 만들어 왔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 동안 개념놀음 한 것이 허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돈망 관행을 하면서 나는 이미 온전하다는 것이 확연했습니다. 그리고 간호사의 소임에도 다시 열심히 임하게 되었습니다.” 루다님의 말씀은 돈망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정리보다도 더 호소력 있게 왜 돈망을 이해하고 관행해야 하는지를 절절히 전해준다.
이제 남은 시간엔 함께 돈망 관행을 하며 정(正)자표를 써가거나 돈망 점검록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큰스님께 돈망 3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한 감으로 있다는 일초님을 위해 큰스님을 특별초청 게스트로 모시기로 하였다.
“인생은 존재론을 바로 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존재하는 것을 연기시하지 않고 실체시함으로써 인생에서 지옥이 시작된다. 석가모니 또한 그 실체시에 결려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사유를 통해 연기를 발견하시고 인생의 첫단추를 잘 끼어서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언제 들어도 시원한 큰스님 말씀. “돈망 3 관은 퍼펙트한 존재론이다. 제 1 관 그냥 있음은 연기법의 결론인 ‘유식’을 잡게 하고 제 2 관 아공법공은 불교 제일의 가르침인 공(空)을 잡게 한다. 제 3 관 현실수용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지금여기 걸림없음을 잡게 한다. 그러므로 돈망 3 관은 불교의 3 대 산맥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돈망은 용타법이 아니고 불교의 3대 산맥을 용타가 편집한 것이다.” 2 년 전 고급과정에 오셔서 “그냥 있음만으로도 좋은데 왜 아공법공을 해야 하느냐” 하시던 일초님이 입을 연다. “저도 정말 돈망3관을 관행해야겠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물으신다. 돈망 3 관을 왜 파지하고 관행해야 하는가? 그 까닭은 한 마디로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다. 깨끗한 정리 말씀에 속이 개운하다. 동사섭 수련 일반과정 첫 시간에 제시되는 우리 모두의 지고한 행복이라는 목적을 얻는 길은 동사섭 수련의 정점인 돈망공부에서 통합적이고 근본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학당 공부인들은 지금여기 즉석에서 행복해탈케 하는 활불교 동사섭을 만났음에 다시 한번 뿌듯해한다. 말씀에 기울이다보니 어느새 점심 공양 목탁이 울린다. 모두들 큰스님께 합장 올리고 보살님의 맛있는 점심이 준비되어 있는 공양간으로 향한다. 진정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