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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편지

NO1작성일 : 2015-11-06 오후 08:45
제목
초월적 자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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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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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여 많은 것들을 성취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그 행복한 <나>가 백 년 안에 사라지게 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가. 모래사장에 밀물 썰물이 오고 간다. 모래성을 아름답게 쌓아 놓았다. 그리곤 나 잘났다, 나 잘났다 하고 긍정적 자아관 천 날, 만 날 하고 있었는데 밀물 한 번 들어와 버리면 어떠한가? 너나 할 것 없이 싹 가야 한다. 가야 하는 나인데 그 밀물에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늘 불안하다. 그러니 이 자아를, 없는 자아를 왜 있다고 해놓고 그렇게 불안해하는가. 그 ‘자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초월적 자아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방법은 이것저것 많이 있다. 죽음 명상만 해도 초월이 상당히 된다. 그런데 근본적인 방법은 무아(無我)를, 공(空)을, 연기(緣起)를 딱 뚫어 버리는 것이다. 뚫어버리라는 것은 한 3 년 뚫으라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사유를 하라. 8정도 첫머리에 정견, 정사유가 있다. 정견(正見)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사유(正思惟)에서 나온다. 정사유 하고 있으면 아, 알았다 하고 이치를 알게 된다.

인류 역사를 이렇게 발전시킨 것이 무엇인가? 지혜요 사색이다. 사색의 도움으로 이렇게 찬란한 생을 살고 있으면서 왜 사색을 그토록 미워하는가? 사색을 하게 되면 연기가 보이고 무아(無我)가 보이고 자연이 보이고 다 보인다. 그러니 마음에 가려져 있던 ‘나’라고 하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자유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사람으로 태어나 마지막으로 하나만 하고 죽어야 할 것이 있다면 초월적 자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초월적 자아관 하나만 딱 장착하게 되면 이 개아(個我)로 인하여 당해왔던 모든 설움이 끝난다. 모든 갈등이 떠나고 저절로 인간관계에도 평화가 온다. 왜냐하면 ‘나’와 ‘너’의 경계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초월적 자아관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아(無我)가 되어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즉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걸림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 거울 용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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