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 중급과정 소감문 현강
2월 지도과정에서 처음 던지셨던 ‘最高 · 最貴 · 最大 · 最重의 일은 무엇인가?’ 라는 사유의 주제와 함께 제 42회 동사섭 중급과정이 시작되었다. 最高 · 最貴 · 最大 · 最重의 일 지도자 과정 때의 나의 답은 ‘없다’ 였다. 그때의 답을 내린 이유는 最高 · 最貴 · 最大 · 最重이 어디에 있는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닌가 따라서’ 最高 · 最貴 · 最大 · 最重 의 일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거울님께서 하신 문도는 ‘最高 · 最貴 · 最大 · 最重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였다. 밖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은 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最高 · 最貴 · 最大 · 最重의 일이 있다면 마음관리일 것이다. 너무나도 그러함이 확연하다. 드러나는 모든 것들이 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인데 마음관리 보다도 우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거울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한번 마음관리의 중요성을 새길수 있었고, 마음관리의 훌륭한 방편인 동사섭을 경험하고 공부하고 있음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기뻤다. 앞으로의 4박5일 중급과정은 동사섭의 마음관리 방편을 다지고 다지는 시간으로 구성될 것이기에 설레임과 동시에 삼엄한 마음가짐으로 중급과정에 임하였다.
행복론 이전의 행복론
‘행복론 이전의 행복론’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신 다음 내용은 ‘ 지금 여기 이렇게 그냥 있는 것이 인생 전부이다.’라는 것이다. ‘그냥 있음’을 확인해 보면 ①혼 ②몸 ③경험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냥 있음’의 3요소인 혼, 몸,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사유해 보면 누구나 다 이러할 것이며, 그가치는 無限寶이다. 어떠한 이도 나와 다름이 없이 이러하며 그 가치를 사유해 보면 無限寶임이 틀림이 없다. ‘그냥 있음’이 이러한데 그럼에도 추락하는 이유는 오직 집착이다. 앞으로의 할 일은 오직 추락할 때 마다 추락임을 알고 ‘그냥 있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뿐이다. 돈망, 지족의 0번지인 ‘그냥 있음’의 자리의 확인이야 말로 무한 긍정의 토대요, 돈망이라는 무위의 세계로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격이니 이 자리에 대한 자각을 알려주심이 기쁘고 감사하다.
주제강의
일반과정에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주제강의’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마음속에 유념하고 있는 강의이다.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삶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은 무엇인가?’ ‘행복론의 기초신념인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의 주체는 누구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의 6가지 문도는 수없이 듣고 해보았음에도 지금도 늘 놓지 않고 사유하는 주제이다. 이 사유를 통해서 인생의 나침반을 제대로 세울 수가 있었다. 특히 ‘행복은 좋은 느낌이다.’를 설명하시면서 구원 혹은 해탈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이다. 구원 혹은 해탈도 좋은 느낌이다. 혹 그 어떤 대단한 무언가 인지 느낌임을 부정하는 이가 있다면 그 어떤 대단한 무언가를 다 넘어선 듯한 좋은 느낌이라는 말씀이 시원하게 다가왔고, 구원, 해탈도 그런 것이라면 결국 일단은 내가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상대를 구원, 해탈케 하는 것 이구나 라는 아하!에 내가 상대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져서 기뻤다. 물론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줌은 물론 상대 스스로가 좋은 느낌을 창출해 낼 수 있게끔 안내하는 일이 남았지만 말이다.
번뇌구조와 수심체계
거울님의 목표가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똥(탐욕, 미움)은 치워 버리고 꼭 필요한 것은 시설하는 일이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들 스스로가 꼭 해나가야 하는 일을 거울님께서도 목표로 하고 계신다는 말씀에 우리를 향한 크나큰 사랑이 느껴져서 너무나 감사하다. 그 똥들을 직접 치워줄 수는 없어도 치우는 방법을 알려주실 수 있다 시며 제목을 붙이시진 않으셨지만 번뇌구조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본래 마음은 텅 빈 허공과 같이 맑고 밝음인데 그 마음에 때가 끼는 추락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추락은 ‘있다 – 좋다 – 싶다 – 썅’이다. 이러한 추락의 순환과정에서 불만사고가 또한 생기게 된다. 이 ‘있다 – 좋다 – 싶다 – 썅 – 불만사고’의 구조를 끊어 버리는 것이 동사섭 수심체계의 조바라밑에 해당한다. ‘있다 – 좋다’는 비아명상으로, ‘싶다’는 죽음명상으로, ‘썅’은 나지사명상으로 ‘불만사고’는 지족명상으로 정화해 나간다. 그 중에서도 ‘불만사고’ 특수성을 지닌다. 바로 ‘불만사고’가 행·불행의 99%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바라밀들을 통해 마음의 때를 벗겨 텅 빈 허공과 같이 맑고 밝은 마음으로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동사섭 중급과정
지족명상
이미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음을 아는 명상이다. 행복 마중물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시간과 지족명상산책을 통해 실습을 하였다. 확인하면 할수록 정말 이미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음이 확연함. 임의형 지족명상을 할 때 특히 한 분 한 분에 대해 감사의 에네지를 보낼 때 따뜻한 충만감이 들었고 그 분들께 보내는 기전향의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감사의 표현을 미루지 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과정에서 표현의 부재는 실체의 부재라고 하지 안았던가…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포장만 해서 전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 떠오르며 지금 내 마음속 깊이 포장된 감사함을 꼭 전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 떠오르며 지금 내 마음속 깊이 포장된 감사함을 꼭 전달해야겠다.
비아명상
‘나’ 라고 할 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환경도 몸도 마음도 식주체도 순수의식도 모유도 내가 아님을 확인하며 쓸어버릴 때 무거운 껍질을 하나씩 벗는 듯이 가벼웠다. 비아명상을 할 때면 예전 중급과정에서 백제의 미소님이 소감 때 말씀 하신 내용이 떠오른다. ‘나’라고 하는 것이 날고자 하는 새의 발목에 묶여 있는 사슬과 같이 느껴졌다고 하셨다. 그 소감은 내가 비아명상을 하며 느낌에 유념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정말 걸림 없이 자유롭게 날고자 힘을 꽉 메어 붙잡고 있는 것이 ‘나’라고 여기니 ‘아니다. 아니다.’ 부정할 때 마다 그 시원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확연히 느껴졌다.
죽음명상
죽음이 왔다. 아무 걸림 없이 갈 수 있겠는가. 죽음명상의 유념점 5가지는 ①실감나게 하라②사슬직면③전환④전환에 따른 느낌유념⑤의미발견이다. 21살 처음 죽음명상인 독배명상을 했을 때 죽어도 못 죽는다며 마음 속으로 부정했다. 시도할 수조차 없는 명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2012년 사고를 통한 경험으로 인하여 죽음명상이 통과되었다. 마지막까지 걸리는 사실을 어머니였지만 가기 전에 따뜻한 기전향을 보내며 걸림 없이 갈 수 있었다.
나지명상
분노를 정화하는 나지사명상. 나지사명상은 현재 직면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기기도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똥까지도 정화할 수 있는 기가막힌 방편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니 그저 여여하고 그 인에 과인 것이고 그 조차도 감사일 뿐이다. 성자놀이를 하다보면 내 인품도 성자에 가까워지리라 기대해 본다.
절명사
해탈이란 主가 客을 만났을 때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 걸리는 대상은 주로 사람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 수옥 걸린다는 말씀은 너무나 와 닿는 말씀이다. 정말 아이러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의 해탈을 방해하는 주요 대상이라는 것이 말이다. 그러니 빅뱅 이후 흙덩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해 온 것만으로도 자체가 신비요 기적이니 신비롭고 경이로운 대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동해에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느끼는 감동을 사람을 보면서 느낄 때까지 동사섭을 하시겠다던 거울님의 예화를 들으며 ‘진정 동해의 일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대상이 바로 사람이구나’해졌다. 그러한 마음으로 잠깐의 명상을 하고 한 분, 한 분께 삼배를 올리고 다시 삼배를 받으면서 말 할 수 없는 숙연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정리해 본 중급과정의 내용 외에도 머리로 가슴으로 ‘아하’했던 내용들이 많다. 무엇보다는 유념할 점 주의 하나는 ‘느낌에 눈을 떠야한다.’라는 점일 것이다. 이제 돌아가 할 일은 느낌에 눈을 뜨고 중급과정을 통해 알게 된 마음정화의 방편에 대한 깨닳음을 漸修하여 관념이 아닌 가슴속에 활구로 살아나게 할 일이다. 우리의 마음의 정화를 위하여 큰 가르침 주신 거울님께 감사드리고, 함께 해주신 모든 도반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중급과 정이 계기가 되어 더욱 건강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뻐 춤을 추겠네!
바람처럼
‘행복론 이전의 행복론’. ‘지족의 0번지’ ‘그냥 있음’이 무한 보물이다. 두눈을 감고 사유를 한다. ‘그냥 있음’ ‘그냥 있음’ 혼, 몸, 경험 3요소이루어진 무한 보물! 철학적 의미가 아니라 실존 그 자체로서의 혼, 몸, 경험으로 이뤄진 존재이지 않던가? 무한 보물로 이뤄진 ‘나’는 그대로 ‘그냥 있음’이다.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던가? 무한 보물인 내가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두 눈이 뜨끈해지고 심장이 요동치며 숨이 가빠진다. ‘그냥 있음’이 한 없는 지족임이 느껴지고 가슴 벅찬 환희를 느낀다.
죽음명상을 한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아이들, 남편,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동생, 친구, 못다 이룬 꿈, 행복, 갖지 못한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죽는가!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이 안타깝지만 죽어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니! 죽을 수 없다! 이대로는 절대 죽을 수 없다.! 가슴이 먹먹해 오고 스라린다. 무엇이 걸린 것일까? 다시 다시 처음부터 떠올려 본다. 친정엄마! 어린 시절 사랑 받지 못하는 자식이라는 생각에 나도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며 살아 왔었다. 다행히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친정엄마가 이해되어 지금은 사이 좋은 모녀지간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걸린 것일까? 무엇이? 아~ 엄마에게 사랑 받지 못해 늘 외로웠던 어린 ‘나’는 그대로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에도 엄마 품에 꼭 안겨 사랑한다는 그 말을 듣지 않고는 안타까워서 죽을 수가 없었다. 마음에서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터지는 울음에 더 이상의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명상을 포기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문득 떠오르는 아하! 지족이구나!이 걸림을 해결하는 방편은 지족이구나 지금 내가 충분히 누리고 있는 엄마의 사랑을 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과거의 못 이룬 것을 안타까워 하며 죽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다니 지금 엄마로부터 받는 사랑을 충분히 누리며 행복하면 될 것을 이미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며 한 없는 행복감이 생긴다.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며 한 없는 행복감이 생긴다.
웃음이 난다. 환희다. 가슴 벅차다. 이것이 지족이로구나! 환희, 가슴 벅참, 흥분되어 들뜨는 마음, 온 몸 가득한 충만함 그런데 또 무엇인가 마음에 떠오른다.
사랑 받지 못했다는 것은 ‘나의 생각’ 이다. ‘생각’이란 건 마음이 하는 수상행식일 뿐 내가 아니다. 더구나 과거 내 느낌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갔으니 없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은 내가 아니고 과거의 나도 내가 아니니, 지금 여기의 나에게 걸릴 것이 무엇이 있으랴? 非我 이다! 蕪我이다!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데 ‘걸림’은 어디 있으며, ‘걸림’이 없는 데 죽음이 아쉬울 것이 무엇 있으랴, 아니 죽음 앞에 서 있는 존재는 다만 혼, 몸, 경험일 뿐 내가 아니니 죽음이 두려울 것이 무엇 있겠는가! 너무나 확연히 깨달아지는 사실에 온몸이 떨려왔다.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진동을 하는 듯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선명한 깨달음 이후에 느껴지는 환희! 기뻐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년 5월 동사섭 일반과정을 다녀와서 수심명산산책을 할 때 마다 기계적으로 외우게 되는 것에 아쉬움이 있었다. 명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문구를 읆조려 봐도 떠오르는 생각도 느낌도 업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었다. 이번 중급과정에서 강의를 듣고 이론을 이해하고 명상을 통해 그 느낌을 확인하니 이보다 선명하고 시원할 수 없었다. 또 이런 벅찬 감정 또한 식주체 기능일 뿐 그 행복감을 충분히 누린 후에는 고요함으로 있는 ‘그냥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거울님 말씀을 듣고 나니 앞으로 마음공부에 더욱 정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기대감으로 설레인다.
선혜 유소림
1. (最高 ◦ 最貴 ◦ 最大 ◦ 最重)의 일 :
“밖으로 드러난 것은 이미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현실의 가능태가 있으니 그것을 잘관리 해야 한다.” 는 서두의 말씀은 수심이야말로 인생에 대한 나의 첫 번째의 무임을 다시 한번 깊이 스며들게 하였다.
2. 돈망, 지족의 0번지, 몸, 혼, 경험세계로 그냥 있기
동사섭을 알기 전까지 인생은 난해하고 복잡하고 끝없이 피로 물질을 생산해내는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이번 중급과정에서 인생은 <몸, 혼, 경험세계>라는 3요소로 압축되면서 더 없이 간결하고 명쾌해졌다.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이며 인생의 모든 것인 이3요소는 그것을 음미할수록 인생이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음을 통감한다. 인생은 몸을 근거지로 삼아 경험으로 그 내용을 채워나가는 동시에 스스로 그 경험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 의식이라는 신비 무궁의 기막힌 도구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의식이라는 신비 무궁의 기막힌 도구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이 우주가 더 이상 내놓을 수 없는 우주 최고의 작품임을 실감한다. 이제 할 일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인생이라는 무한보가 만개하도록 그저 손만 펴면 되는 것이다.
3. 지족명상,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하기
인정욕과 사랑욕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지족명상이라는 가르침은 내 체세포에 그림자처럼 나아 있던 인정과 사랑에 대한 욕구를 깨끗이 지워버린다. 지족, 그것은 마슬로의 욕구위계설에 대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지혜로운 담이다. 이 가르치심과 함께 돈망 지족의 0번지가 함께 어울어들면서 내 안에 남아 있던 무언가 모를 부지족의 찌거기가 말끔히 씻겨나간 느낌이다. 다섯 번째 중급과정에 참석하면서 지족을 바닥까지 뚫겠다. 했던 그 목표가 성취되어서 참으로 기쁘고 뿌듯하다.
4. 지족산책
산책에 나서 낙엽들을 만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낙엽이라는 연기의 그물코로 우주를 경험한다. 낙엽 사이에 새판란 풀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나의 눈은 그이들의 아름다움을 맛보면서 그이들과 소통한다. 나의 의식으로 이 존재의 아름다움을 찬탄하고 기뻐한다. 가슴이 뚫리고 시원하고 행복하다. 경험 그것이 낙의 경험이든 고의 경험이든 그것은 내 인생의 내용이 되면서 내 혼의 성숙에 어떤 인자가 되는 것이다. 부러진 나뭇가지들, 밤나무 그림자들, 진창길, 비행기 소리, 찟어 진 비닐 조각, 혀끝에 남아 있는 커피 사탕의 맛, 모자와 목도리에 촉감 만나는 그 모든 존재들은 그 순간 나의 인생이 되느니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면 나의 인생은 바로 그 사랑이 되리니 나의 인생엔 이다지도 사랑할 것들이 많고 많구나 새로운 것들에 눈떠가고 스스로 그 눈떠감에 기뻐하는 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영혼! 그 영혼의 한자락이 몸에 스며들어 있으니 인생을 어찌 기적이라 하지 아니할 수 있겠 는가. 진정 행복 하려면 생의 근본 요소를 깨닫고 그것을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함을 온몸으로 흡수 한다. 밖으로 뛰어나가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것을 인생으로 여기던 시절에는 맛 볼 수 없었던 이 기쁨과 평화 그리고 감사를 느끼며 지족 명상이란 인생이 기적임을 깨닫는 것임을 깊이 이해한다.
5. 죽음명상
비아명상 끝에 죽음 명상에 들어가니 너무도 간단하다. 죽음이란 <나의 죽음>인데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으니 누가, 무엇이 죽는단 말인가? 우주라는 마당에서는 끝없이 풀꽃이 피고 지고 있음을 그저 바라본다. 죽음 명상을 통해 <나 없음> 뿐임을 몇 번이고 실감한다.
6. 첫 출발로 돌아가기
“가치관 체계가 학습되지 않으면 역사와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이 복잡스럽게 된다. 그 복잡한 관점 자체가 짐이다.” 하시는 말씀에 자신을 돌아본다. 동사섭에 오기 전까지 잔뜩 짊어 지고 있던 잡동사니들 거의 태반이 사라졌다. 의식세계가 간촐 하다는 것 만큼 속 시원한 일이 또 있으랴! 덜어내고 덜어내어 갓난이 보다 더 순수한, 그 태초의 살아 있음 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임이 깊이 이해되면서 점점 가벼워지는 이 기쁨, 이 한가함을 무어라 할 것인가!
7. 42회 중급과정 말씀
- 동사섭 중급과정은 마음의 센터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이다.
- 화가 났으면 화가 난 줄 알고 그냥 처음으로 돌아가라 이 역동적인 삶을 살아라 이것이 곧 수행이다.
- 인문학은 가치관 학습이다.
- 주변 사람들의 기분과 느낌에 얼마나 집중하며 살았는가?
- 무한 우주가 안아질 때 그것이 제대로의 행복이다.
- 긍정적인 느낌을 얻기 위한 방편이 바라밀이다.
- 하루하루 살면서 혼이 더 정화되어야 하는 데 그 만큼 더 오염된다면 어찌 할 것인가? 공부길을 모르면 혼이 더 오염되는 것은 당연하다. 수행표에 동그라미를 치는 시간은 혼이 정화되는 시간이다.
- 내 하루하루의 삶은 우주의 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다.
- 느낌 수렴에 눈뜨지 못하면 관념 불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자아 의식은 하나의 관념이 발달한 것 뿐이다.
- 역할을 하되 이 몸뚱이가 정난미 채임을 알면 된다. 노릇을 하되 깨달음의 바탕 위에서 하는 것이다.
- 무연 중생 따로 없다!
- 비아명상의 시간은 세세생생고통과 전쟁에서 벗어나는 천재일우의 시간이며 영성사에서 혁명적인 시간이다.
- 스스로 나란 무엇인가를 묻고 방하 하라
가르침을 주신 큰 스님께 감사 드립니다. 감사라는 말이 죄송스러울 만큼 많은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께 하는 수 없이 다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귀한 가르침 깊이 사기어나날의 생활에서 숨처럼 쉴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함께 공부하며 소중한 느낌과 경험을 나누어 주신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부디 몸 건강하시고 행복 해탈하소서.
이대로
1. 5요 명상 돈망 명상 지족 비아 나지사 죽음 명상을 실습하여 보니 5요 명상으로는 정체감성이 대원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고 ①지족명상에서는 혼은 근원이다. 이 근원인 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에 이유가 된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에 이유가 된다고 사유해 보니 이 혼의 존재가 있다는 것 만으로 무한 지족이 되었는 데 몸으로 가서 눈, 귀, 코, 몸에 기관들이 건강함에 무한 지족감이 들었다. ②비아 명상으로는 모, 마음을 치워보니 무한 해탈 감이 왔다. 몸은 정, 난, 미, 체요 지, 수, 화, 풍 어디네 내가 있느냐 마음은 수, 상, 행, 식 거기에 어느 것을 짚어서 나라고 할까 하니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님이 이해되어 무한 해탈 감이 왔다. ③나, 지, 사 명상을 해 보니 묵은 체경이 내려가듯 마음이 시원함을 느꼈다. ④죽음명상을 하고 나서는 죽는 데에 걸림이 있다면 두려움 이었으나 이 두려움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2. 행동명상 의, 노, 애, 락 을 하면서 그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어서 해탈 감이 와서 좋았다.
3. 10대 마중물에서는 의식되어 몸만 찾아서 했는데 지족 무한 지족감이 들었다.
4. 사람에 대한 절명상을 하면서 얼굴에 전율이 느껴졌다. 입장이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건강행복(박지혜)
살면서 최고 최중 최귀의 일이 수심이라는 것을 다시 번 느꼈다.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어려운 일임을 알았다. 평소에 나는 내 음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살았나 반성해 본다. 그저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나, 왜 그렇게 나약함을 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한탄만 했다. ‘마음을 다스려라’ 말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다스릴 수 있는지 몰랐다. 마음은 늘 제멋대로이고 어설프게 다스리려 하면 더 크게 저항심이 생겼다. 힘들어서 자신을 방치하며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을 때, 기적같이 불교, 명상, 동사섭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엔 평소 습관대로, 내 마음은 새로운 세게를 알아가는 것을 저항했다.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그때 마음 한 편에서 ‘모든 아집을 내려 놓고 시키는 대로 따라 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저 동사섭에서 배운대로 명상하고 시키는 대로 108배를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내 스스로 많은 것이 변하였음을 느낀다. 내 마음대로 해서 잘 살고 행복했다면 절대 남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하심’이 얼마나 중요한 방편인지 깨닫게 되었다. 동사섭에서 배운 내용을 듣고 잘 따른다면 반드시 나에게 도움이 될 것 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하심하고 따르는 것이 좋은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마음공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확실히 마음 속에 새기게 되었다. 오요명상을 하면서 인생의 목표를 잃고 방황하려는 마음을 다시 다잡으며 일생동안 오요를 구현하며 살아야 겠구나 매일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질땐 돈망명상을 통해 그냥 있음으로 무한 이임을 느낀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내 마음도 허공과 같음을 깨닫고 구름들을 제치며 허골을 노래해 본다
평소 108배를 하면서 지족명상과 비아명상을 한다. 감사한 사람, 사물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일 배를 올리면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면서 감사함이 사무쳐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동사섭에서 말하는 ‘느낌’이란 것이 정말로 중요하구나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절을 하면서 진실로 ‘나’ 라는 독립된 실체는 없고 나의 모든 것을 자연(묘유)으로부터 얻고 자연에 기대어 살아갈 뿐임을 느낀다. ‘나’라고 하는 내 의지와 능력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자연이 만물을 베풀어 준 것에 비하면 0.0001%에도 미치지 못함을 깨달으며 머리를 땅에 닿으면서 나를 완전히 낮추고 에고를 사라지게 한다. 이 일물을 존재하게 하는 모든 연기적 존재(자연)에 무한히 감사함을 느낀다.
죽음에 대해 사유하면서 인간의 생이란 얼마나 짧은 순간인지 느낀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시간 우주의 시간 역시 찰나라면 찰나일 것이다. 미워했던 그 사람 역시 찰나의 존재임을 생각하면 집착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며 좋아하거나 싫어할 대상이 없음을 느낀다. 오히려 찰나 존재에 대한 여민이 들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죽기 싫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사유를 통해 보니 모든 생에 대한 집착이 내 욕심 이었음을 깨닫고 진실로 살아서 해야 할 만한 일이 없음을 알게 되어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해방되는 후련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정말로 살아서 해야 할 만한 일이 있다면 수심, 화합, 작선이(오요) 전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명상을 통해 생에서 가장 중요한 할 일이 수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중도란 무엇인지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양극단에 치우침이 없이 양 극단을 모두 버릴 수도 아님 모두 취소할 수 있으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도라 들었다. 책으로 읽었을 때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거울님 수업 중에 ‘내가 주도할 수도 있고, 남이 하라는 대로 따를 수도 있는 삶, 그것이 중동에 합당한 삶이다.’ 어느 곳에 치우침 없이 치우치는 것은 완벽한 자유는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에 중도가 무엇인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동안 나는 한 가지 삶의 방식, 고정된 내 모습만 고집 했다. 새로운 모습에 대한 어색함 두려움 때문이었다. 늘 어느 것 이든 선택 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외면해 왔던 것 같다. 수심을 위한 명상을 하면서 늘 어느 곳에도 치우침이 없도록 주의해야겠다. 행동명상을 통해 파격선도 단행정화로 치우침 없이 중도로 사는 자유 감을 맛 보았다. 음무 소주 이 생기심 역시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내는 자유로움이다. 마음공부를 성실히 하면서 늘 치우침이 없었는지 머무름이 없어는 지도 점검해 봐야겠다.
두루미 (김진희)
있기 없기
길고 긴 부부싸움을 한밤 내내 하고 왔다. 남편이 내 뜻대로 안되어서 내 욕구대로 안되어서 한 없이 불행한 삶을 살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 동사섭 중급 반 문을 두드렸다. ‘있다 – 좋다 – 싶다 – 썅’의 번뇌구조에서 첫판 ‘있다’를 깨면 뒤의 ‘썅’이 저절로 녹아난다고 하셨다. 이해가 짜증만 난다. 남편도 분명 있고 나도 있고 둘이 알콩달콩 대화하며 살자는 내 욕구도 너무나 정당해 보였다.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근데 동사섭 하룻밤만에 정말 신기하게도 남편은 없었다. 없는 거였다. 마눌과 알콩달콩 대화 나누고 마눌의 감정 잘 받아주는 다정한 남편은 오로지 내 머릿속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엄마말을 잘들어야 하는 아들도 없었고 이정도는 해야 하는 동네 사람도 없고 없고 모두모두 없었다. 헐 이럴수가 허탈하다. 허깨비를 밤새 싸우고 홀로 새벽을 맞이하는 설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 그러면서 남편을 향한 화는 원망은 어느새 스스로 녹아 내렸다. 완전 홀가분하고 남편에겐 미안하고 가르침을 주신 거울님과 도반님들께는 말할 수 없는 고마움 한가득!
중급의 핵심은 수심을 콱 뚫는 것!
우린 원래 개념이전의 탱 빈 의식공간의 ‘그냥 있음’의 존재인데 이렇게 번뇌 추락을 한다. “있다(비아명상) – 좋다(비아명상) – 싶다(죽음명상) – 샹(나지사) – 불만사고(지족)” 이것을 녹여버리는 베스트 솔루션이 바로 정견사유 + 느낌표현! 정사유는 각단계에 맞는 영상이라는 설명 너나 단순 명쾌하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1. ‘있다’를 지대루 녹여버린 非我명상
바람님과 마주앉아 질문과 답을 주고 받았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00은 내가 아닙니다. 순식간에 몰입되는 埸의 기운이 우릴 둘러쌌다.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갈기갈기 찟기는 느낌, 아프고, 슬프고, 허망 했다. 그럼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아둥바둥 산거지? 내가 없는 데? 내 것이라는 할 것도 없는 데 노력하며 성장하며 살 의지가 생기나? 의지도 내가 아니라면? 아무 할일이 없네 이 슬프고 허망함이 한 차례 지나가니 가벼움이 찾아 왔다. 내가 없으니 기쁨이 오면 오롯이 기뻐하고 슬픔이 오면 슬픔일 뿐이고 한 생각 일어 나면 가면 되는 구나 얼떨떨하고 그러면서도 가벼워지는 홀가분함이 있다. 부끄러움, 쭈볏거임 내가 아니구나 저지르면 되는 구나 그러면서도 또다시 “하지만 내 의지가 없이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거지?”하는 막막함 미친년 널뛰듯 감정이 오락가락 햇다. 끝내 해결되지 못한 답답함은 점심시간 식당에서 심월님이 친절한 설명에 담박 시원해지고 말았다. 뻥 뚫린 통쾌함에 아직도 가슴이 뛴다. 연기이고 무아이므로 어차피 ‘나’는 살면 되는 구나! 우주의 중심으로서 중생을 위해 마음을 내고 자연 그대로 응소주이생기심 하며 걸림 없이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오요명상의 바로 그 “정체 – 대원”이었다. 아싸 ‘걸림 없는 의도’가 이거로구나.
2. ‘싶다’를 확실히 깨우쳐준 복종 명상
비아명상에서 느낀 환희심을 와장창 깨는 시간이었다. 남편, 아이, 부모님 아무에게도 복종할 수 없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데 우주의 중심인데 ‘내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하며 상상으로도 복종이 안 되는 게 스스로 놀라웠다. ‘에고가 아닌 공기 같은 존재라면 왜 못하겠는가’ 하시는 말씀에 무조건적 수용은 철저한 我空이 전제되어야 함은 알겠다. 에효~ 갈 길이 멀다 싶어 아득하고 갈 길을 알게 되니 기쁘고
3. ‘썅’의 해결사 나지사
산새님의 공덕으로 다시 한번 세밀한 나지사를 경험하게 되어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 ‘구나’를 나도 모르게 주관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는가 살펴야 겠구나
- ‘그년’을 ‘그 여사’로 바꿔지지 않을 때 ‘그년’에 대해 명상 하며 ‘그년’을 제외한 ‘그 여자’ 전체를 볼 수 없는 나의 미성숙함을 알아차려야 겠구나
- 나지사로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그 다음 행동을 하라는 것이지 행동을 말라는 건 아니로구나 알아지는 것이 반갑고 명료해졌다. 거울님처럼 대학 노트 1권은 채워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스스로 대견하다.
4. 행복행의 99%를 좌우하는 불만사고를 녹여낼 지족명상
일반과정에서 지족명상을 하고 나면 기쁘고 행복하고 힘이 쑥쑥 나는 체험을 했다면 중급에서는 그것이 왜 이토록 필요한지 꼭 필요한 인정의 욕구 사람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Best solution이며 구현행복의 길에서 만나는 스트레스를 확 줄여 즐 만병통치약이 지족명상이었다. 그래서 실습한 ‘행복마중물’ 시간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충족감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지족명상의 0번지를 놓칠 순 없지 도저히 가격을 매길 수 없는 혼과 몸을 가진 이 존재가 경험하는 ‘그냥 있음’의 무한 감사라!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거울님의 거듭된 강조에도 블구 하고 감동의 물결은 오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말씀.(죄송) 대신 이 감동은 절명상으로 흘러왔다. “당신은 기적이고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 순간 기적이 기적에게 절을 하고 우주가 우주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 장엄한 광경에 뭉클한 눈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마 돈망님도 그리하여 참을 수 없으셨던 걸까?
사유와 깨달음 그리고 느낌
4박5일의 여정 마지막 밤이다. 쫑파티는 없어도 마음은 충만하다. 철저한 사유가 얼마나 내 가슴을 시원하고 명쾌하게 해주는지 체험하게 해준 과정이었고 또 깨달음 있는 곳에 느낌있음을 만나는 과정이었다. 수심을 콱 뚫는 첫 경험을 했으니 점수해가는 것은 내 몫이리라 수십수백번 거쳤을 과정임에 누구 보다 열심히 필기하고 써보고 명상하고 똥글뱅이 치시는 거울님과 지도자분덜님께 깊이 머리숙여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끝으로 건의 상황
- 조별학습 : 질의 응답 토론 방식 짱 좋았어요. 시간 더 늘여 주심 좋을 듯!
- 탁아방 운영하면 부부가 오기도 좋을 것 같아요.
도안
나는 무엇인가? 그냥 있는다. 기초수를 수용한다. 걸림 없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나의 생각이 나의 현실을 만든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내가 만들 것인가? 만든 것인가? 내 몸 내 마음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가? 내가 만들지도 않았고 내 맘대로 할 수 없으면서 왜 내 것이라 하는 가? 무엇을 나라고 하는 가?
태초에 한 기운이 있었다. 그 기운이 응축을 거듭하다가 자체의 구심력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다. 우주에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함께 작용한다. 밀고 당기며 평형을 유지한다. 폭발 후 다시 구심력이 작용하여 끼리끼리 모인다. 비슷한 기운끼리 모인다. 가벼운 기운은 하늘이 되고 어느 시절, 어느 인연으로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피를 빌려 나 라고 불리는 한 물건이 생긴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는 내가 만들지 않았다. 부모가 만든 것도 아니다. 생리현상, 자연 현상으로 생긴 것이다. 그러니 자연이다. 어머니 뱃속에서는 어머니가 흡수한 산소와 영양을 빌려 자랐다. 이것은 자연현상이다. 나라고 할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난 뒤에는 산소를 호흡하고 음식은 내가 만들지 않았다. 산소는 하늘에서 음식은 땅에서 빌려온 것이다. 내 몸은 하늘 기운과 땅기운이 얽힌 자연물이다.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환경은 내가 아니다. 몸은 내가 아니다 라고 치우니 가벼워진다. 기쁘다. 내 몸에 깃든 마음도 식 주체 기능도 내가 만들지 않았다. 자연현상일 뿐이다. 마음도 내가 아니다. 식주체 기능도 내가 만들지 않았다. 묘유도 내가 아니다라고 쓸어 내니 더 맑아지는 듯해서 기쁘다.
구나 겠지 감사한다. 내 마음속에 누군가를 알아 놓고 사랑하고 미워하다 사랑하며 나의 생각이다. 그사람을 그 실체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다. 그 사람을 그 실체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을 사랑하고 미워한다. 그 생각을 사랑하며 닮아가고 미워하며 닮아간다. 구나 겠지 감사하며 내 보내니 후련하다. 기쁘다.
그것이 온다 호흡이 그치고 되돌리기가 멈추며 사회적 역할이 끝난다. 간다. 걸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시 슬프다 그들이 슬퍼 할 모습들을 상상하니 더 슬프다 그러나 그들도 자연이다. 자연의 흐름 속에 제 역할을 하다가 갈 것이다. 가벼워 진다. 미소 지으며 안녕 한다. 편안하다. 옛 어른들은 돌아간다고 했다. 왔던 곳으로 고향으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 쉰다고 했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또한 옷을 갈아 입는 것이라고 했다. 한 알 속에서 물고기로 굴재하다가 알을 깨고 나와 땅위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나비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우리도 자궁 속에서 물고기로 살다가 육지 동물로 옷을 갈아 입고 산다. 이 무거운 옷을 벗으면 우주의 한 기운으로 돌아가 유유자적 할 것 같다. 이 또한 자연현상이요 변화 일 뿐이다. 이 변화에 흥미와 호기심이 생긴다. 기쁘다. 결국 이일물이 할일은 자연에 감사하고 인연들에 감사할 일 뿐이다. 혼, 몸, 가정, 직장, 지역사회, 나라, 지구, 공기와 물을 위시할 태양계, 은하계 우주의 대자연에 감사하니 훈훈해 진다.
이런 지혜를 일러주신 거울님과 동사섭 도반들, 역대 스승님들과 조상님들, 만나는 모든 자연술들, 만나는 모든인연들에 감사하며 절을 올린다. 경건한 기쁨이 잔잔하다.
벡타 놀음 중 지금 이 자리에 느껴지는 것이 기초수 이다. 현재 느껴지는 상태와 그것을 아는 식주체를 떼어 놓으니 절로 구나 겠지 감사가 되며 들썩이는 상황과 관계없이 식 주체는 늘 고요하다 기쁘다. 이 모든 자연현상은 그냥 있음, 돌망의 마당위에 펼쳐진다. 마당극이 끝나면 마당을 깨끗이 채워야 한다. 있다. 좋다. 싶다. 썅. 징징을 치우니 그냥 있음이 드러난다. 그냥 있음 에서 출발하여 그냥 있음으로 돌아온다. 고요하고 잔잔하여 기쁘다.
나는 무엇인가? 나라는 실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생과사를 내 맘대로 못하는 나는 이름일 뿐 실체가 없다. 자연일 뿐이다. ‘나는’ 인칭대명사 일 뿐이다. 시원하다.
2014.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