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주제다. 1월 정기강좌의 주제이면서 평생 갈고 다듬어야 할 주제이기 때문이다. 용타 큰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깨어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존재 상태를 살펴야 한다. 깨어 있음에 깨어 있음을 확인하는 극한의 행복감, 즉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이고득락이다. 고통에서는 멀어지고 행복감을 얻게 되는 자유.
깨어 있다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다. ‘식’ 주체가 ‘식’ 객체에 대해 깨어 있는 것을 말하고 ‘식’ 대상은 무한 우주 전부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처럼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구획 정리를 하는 것이다. 즉 ‘식’ 주체가 대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 깨어 있음인데 그것이 ‘마음’이다. 그러니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에 걸려들 것 없이 내 인생은 내가 관장하는 자유로움. 그것이 깨어 있음이다.
큰스님께서 제시하신 ‘깨어 있기’ 도표는 산뜻하기조차 하다. ‘존재계-상황-몸-마음’으로 이어지는 인식체계뿐 아니라 ‘마음’에서도 ‘인문학-방편-장애에 깨어 있기 내지 대처하기-최우선적인 깨어 있기’로 나뉘는 분석적 고찰은 섬세하다 못해 위대하기까지 하다. 특히 ‘장애에 깨어 있기 내지 대처하기’에서는 ‘현의식-잠재의식-무의식’으로 분화되는 우리의 의식 세계를, ‘현재 걸림-과거 걸림-미래 걸림’이라는 장애물을 통해 인지하는 것 자체가 ‘조사선’이라는 말씀은 신비롭다.'
‘최우선적인 깨어 있기’ 그것은 이미 있는 긍정에 깨어 있기라 말씀하셨다. 아마도 이것이 1월 정기강좌의 정수일 것이다. ‘자유(초월)’롭기 위한 것, 즉 해탈하는 것이고 조사선을 말한다. 게다가 ‘지족(감사)’은 ‘혼’과 ‘몸’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우리가 9,000조의 ‘풍요로움’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그것에 깨어 있어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개개인은 매우 위대한 존재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유위에 깨어 있는 것이므로 감기가 걸리지 않게 요통으로 시달리지 않도록 몸 관리를 잘해야 하고 ‘지금 여기(here & now)’에서 걸림 없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곧 ‘자유’는 무위이고 ‘지족’은 유위이다.
‘깨어 있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큰스님께서는 수시로 말씀하신다. ‘반복이 천재를 낳는다.’ 반복하면 천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방편을 알고 반복하면 우리는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큰스님께서는 우주적 카리스마로 살아가는 것이 곧 깨어 있음이라 하셨다. ‘우주적 카리스마’란 이 모든 것을 관조하는 힘을 말씀하신 것일 게다. 이 존재계 속에서 천문학, 생물학, 물리학 등 인문학적 공부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느낌에 깨어 있어 윤리학적으로 하자가 발생하지 않고 내 몸이 건강하다면 어렵지 않게 심리학적으로 깨어 있기에 능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마음은 두는 데 있다. ‘지족’과 ‘해탈’에 마음을 두고 반복해서 수련한다면 오래지 않아 무시로 깨어 있어 지극한 행복감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월정기강좌가 끝나고 나면 늘 새롭다. 알고 있는 것들이 환해지는 환희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냥 기쁘다.
– 글: 한뜻 님
– 사진: 신시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