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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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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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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들의 의식 세계 속에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며,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더욱 정진하여 복덕이 쌓여 가고 끝내는 모든 업이 소멸되어 갈 것을 기원하고 노력하는 의식 풍토가 있다. 윤회사상을 전제한 하나의 가치관인 셈이다. 보다 바람직한 삶의 의지를 부추기는 좋은 흐름이기도하다. 사람으로 한 생(生) 태어난 김에, 이 한 생(生)이 보다 복(福)되길 바라고 보다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소망함에는 모두가 공통적인 바람일 것이다.

갑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또 지나온 여느 해 때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세말(歲末)에 이르러서는 연초에 결심 결의했던 대로 다 지켜내지는 못한 정산(精算)을 하곤 하지만, 다시 다부진 결의를 하며 <내가 살아 보고 싶은 삶>을 거듭 명상하여 정리하며 엄격하고 엄숙한 서원(誓願)을 했다. 계획했던 만큼의 양(量)은 이수해 내지 못 하더라도, 계획했던 내용의 질(質)에 있어서는 해마다 더 밀도가 높아져 감에서 연륜을 느끼며 다소의 위로를 삼곤 한다. 조용히 자숙하며 결의를 다지는 마음으로 나누어볼까 한다.

-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

1. 삶의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그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이다. 진정 흔들리지 않는 행복이다. 내가 바라는 이 행복은, 이 세상 모두의 소망일 것임이 틀림없다. 내가 이러하듯, 이 세상 모두의 행복도 빈다. 진정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해지길 간절히 빈다. 고로 나의 삶의 목적은, "나와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이다. 이 세상 모두의 마음이 기쁘고 평온하며 화평하기를 빌며, 그것이 나의 삶의 목적임을 잊지 말자.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함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삶의 목적이 분명하게 되면, 목적과 수단[방법, 조건]을 혼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순간순간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는가 점검이 될 것이고, 목적에 위배되는 삶을 살고 있을 시에는 재빨리 목적에 맞게 살려는 전환을 민첩하게 해 갈 것이다.

2. 기도의 인격화, 생활화를 꾀해 간다.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꾸준히 기도한다. 이 세상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며, 각인의 원(願)들이 성취되기를 기도하며, 각자 영성적 계발을 통하여 마음의 번뇌들이 소진되고 넓고 깊은 평온함을 확보해 가시길 빌며, 서로서로 화평 화락한 기운이 오가며 잘 어우러지는 세상을 그리며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을 서원한다.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하기도 하고, 틈틈이 하기도 하고, 길을 가거나 신호대 앞에서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 건널목을 지나는 행인을 위하여 하기도 하며, 할 수만 있다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늘 절로 기도가 되어지는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

기도의 생활화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
기도의 내용이 우리네 삶의 목적이 아닌가! 그 목적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심화해 가자면 반복적인 발원(發願)이 요해지는데, 기도의 실천으로서 삶의 목적이 의식 속에 보다 깊게 뿌리내려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를 인격화해 가다보면, 스스로 마음이 훈훈해지고 넓어지며 세상에 대한 자비로움이 커져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따뜻하고 밝은 기운이 이 세상의 물리적 공간 에너지를 밝게 할 것이 틀림없다.

3. 마음밭을 갈고 닦아가기를 쉬임 없이 해 간다. 하염없이 해 간다. 엄격하게 해 간다.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건강과 돈과 명예와 일[Job]과 사랑과 결혼과 자손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러한 것들이 적당히 충족될 때 우리의 마음은 행복하다. 나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만 해결된다면 일체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밭을 갈고 닦아 이 세상에 맑고 밝은 기운을 보내 드리는 삶을 살고 싶다. 숙세(宿世)의 묵은 번뇌를 다 녹이고, 탐진치의 사슬을 다 끊고, 오직 자유한 마음으로 이 세상에 유익한 존재로 있고 싶다.

마음밭을 가꾸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마음이란 것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습관대로 흘러가는 것이어서, 면밀히 살피며 다잡지 않으면 살아왔던 습관으로 살고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욕구대와 정서대와 사고대의 구조를 잘 살펴보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혹은 전생에서부터 살아온 각자의 탐진치(貪嗔痴)의 얼개가 차곡차곡 나름의 두께를 형성하고 있고 그것은 어떤 경향성을 지니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전자를 업장(業障)이라 하고 후자를 업력(業力)이라 칭한다. 납득이 되고 재미있는 묘사이다.
그 무엇보다, 내가 기뻐야 세상을 기쁘게 할 수 있다. 내가 평온해야 세상을 평온하게 한다. 또한 내가 자유로워야 세상을 자유케 하리라.

4. 사랑의 사도가 되리라.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화평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가 임하는 곳에서 나로 인한 불화(不和)는 일지 않도록 늘 깨어 있는다. 더러 실족을 하여 평화로움[和]을 깨는 역할이 되어지더라도, 즉각 반성하고 사과하며 수심(修心)하여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리라. 평온하고 따사로운 마음의 기운을 이 세상에 보내 드리며 이 세상의 행복에 기여하리라.

화평의 덕성을 갖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다. 어떤 의미에 있어 인생은, ‘사람과 부대끼다가 가는 여정이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가가 인격의 중대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은 이기심과 아집이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에는 일의 능률도 떨어지고, 그곳의 물리적 공간까지도 싫어지고, 나아가서는 살아있기도 싫은 마음까지 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화평한 덕성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사람의 능력을 증대시켜갈 수 있게 하고, 우리가 사는 공간의 물리적 에너지까지 푸근하게 하리라 봐진다.

5. 선(善)한 일을 일삼아 한다.

베풀기를 기꺼이 하고[보시], 범사에 감사하며[감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를 노력하되 어겼을 시에는 반성하며 사과하고[사과], 너그러운 마음을 익혀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관대하며[관용], 일체의 사언행(思言行)이 이 세상에 양장력을 만들어 가도록 깨어있는다.

그 모습은 보기에도 좋고 자신과 세상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6. 이 모든 행위의 주체가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바로 알고, 지고한 인격 완성 구현에 전념한다.

* 상기한 바와 같이 <내가 살아 보고 싶은 삶>은,
1. 나와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2. 항상 기도하며,
3. 수심하고,
4. 화합하고,
5. 작선하며,
6. 자신이 무엇인지 깨어있으며,

그렇게 한 생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인격 향기를 이 세상에 보내는 것이다.

이는 동사섭 수련 학습 주제이기도 하며, 내 삶의 과제이기도 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아봄직한 좋은 모형의 삶이기도 하다.
이 해에는 더욱 더 정진해 보리라 마음먹으며, 연말정산에 자기 만족도가 한결 높아져 있도록 해 보리라 서원한다.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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