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삶
이 세상 모두가 진정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이는 동사섭 문화의 기초 정신이기도 하다. 사단법인 동사섭에서는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한 정신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수련 안내와 수련 후의 지역 후속 모임과 5대 원리를 바탕으로 한 강좌들을 열고 있으며, 다양한 복지 활동 등을 연구 기획하고 있다.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한 중대한 조건 하나로 ‘깨어있음’에 대하여 고찰해 볼까 한다. 여기에서 깨어있음이란 정신 차리고 있음을 의미하며, 깨어있는 삶이란 삶의 모든 순간에 정신 차리고 있는 삶을 말한다.
깨어있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순간순간 새로운 삶을 살기가 어렵다.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자칫 관성에 젖어 살아가게 마련이다. 마침 좋은 습관이 많이 길들여져 있다면 다행한 일이련만, 좋지 못한 습관이 많을 경우 우리가 깨어있지 않는다면 고양의 길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지 못한 습관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에 깨어있을 것인가? 삶의 모든 순간에 깨어있을 일이다. 의식의 전개 과정에 깨어있을 일이요, 자신의 말[言]에 깨어있을 일이요, 자신의 행동에 깨어있을 일이다. 자신의 몸에 깨어있을 일이요, 자신의 일에 깨어있을 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주변의 마음에도, 몸에도, 일에도, 환경에도 깨어있을 수 있다면 좋으리라.
우리의 의식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한 생각 이전 즉, 개념화 작업을 시작하기 전의 순수의식 상태의 영역과 개념화 세계의 영역이 있다. 스스로 깨어있어 순수의식을 의식하며 그 상태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참으로 평온하며 지극히 고요하다. 더없이 행복한 체험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경험해봄직한 가장 최고의 행복이 틀림없다. 누구든 그 체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개념화의 세계로 뛰어듦이 초고속화 되어 있음에 그 지극한 행복을 간과하고 있다. 순수의식을 의식하며 적정(寂靜)한 해탈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동사섭 문화에서는 이 체험을, 연습을 통하여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 아마도 영성문화사에 획기적인 은혜가 될 것임을 자부한다.
개념화의 세계로 나갈 양이면 습관적으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개념화 작업에 들어설 수 있도록 깨어있을 필요가 있다. 개념화의 영역을 몇 단계의 심리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이 세상에 대해 존재부여를 하는 실체시(實體視)의 과정이 있다. 실체시에 이어 곧장 가치부여를 하는 가치시(價値視)가 있다. 가치시는 욕구를 충동질한다. 욕구는 성취를 위한 행동화를 부추긴다. 욕구가 성취되면 기뻐하고[喜] 욕구가 좌절되면 분노[怒]한다. 소위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정서 과정이다. 이러한 전 심리 과정에 우리가 면밀히 깨어있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사고와 욕심과 정서와 언행들의 상호 관계성과 자신의 패턴을 직면하는 기회가 될 것이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다스리고 싶은 의지가 일어날 것이다.
깨어있어 보자. 모든 것에의 의존을 다 벗어난 순수의식을 의식할 때 오는 고요한 열락에 깨어있자. 자신의 의식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에 깨어있자. ‘있구나!’ 하고 실체시하고 있음에 깨어있고, 그 밖의 자신의 일체의 생각들에 깨어있어 보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가는 습관적 생각들을 하고 있지는 않나, 선택적으로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있나, 자신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나, 자신과 타인을 불유쾌하게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지는 않나 깨어있어 보자. ‘좋구나, 나쁘구나!’하고 가치시하고 있음에 깨어있고, 자신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나 깨어있자. ‘(소유하고)싶구나!’하고 욕심내는 과정에 깨어있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욕심내고 있지는 않는지, 부당하고 불합리한 욕심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과 주변을 괴롭혀가면서 욕심을 내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때그때의 자신의 정서[감정]에 깨어있어 보자. 자신의 정서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자신의 정서가 밝음이 많은지 그늘이 많은지 깨어있을 일이다. 그 욕심과 감정이 언행으로 어떻게 표현 혹은 표출되고 있는지 깨어있자. 여타의 일체 언행을 살펴보자. 그때그때 적절한 언행을 하고 있는지, 불필요한 언행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과 주변에 고통을 주는 거칠고 이기적은 언행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깨어있어 보자. 그 정서[감정]가 어디서 왔는지 깨어있자. 그 욕심과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갈지 깨어있어 보자. 나아가서 자신의 몸의 구석구석의 상태에 깨어있자.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몸이 가장 건강하고 평온하도록 역할을 함에 깨어있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깨어있자. 자신의 소임에 깨어있고, 비소임일지라도 자신과 주변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해내고자 함에 깨어있자.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주변 사람들과 일과 환경에도 깨어있어 가자.
이렇게 깨어있는 생활을 해가다 보면, 분명 우리의 행복도가 높아져갈 것이다. 의식이 더 살아나고,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로워지고, 언행이 다듬어지고, 주변과 화해가 깊어지고, 일의 창의력도 높아져 갈 것이다. 우주가 아무리 광활하다손 그 핵심에 내가 있다. 그 "자신"의 모든 것에 깨어있어야 함이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과제일 것이다. 인생의 복잡다단한 모든 행위의 목적이 행복을 위함일진데, 행복의 마스터키(Master Key)라면 단연 이 "깨어있음"이다. 깨어있지 않고서는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마다 대체로 상당히는 깨어있다고 본다. 더욱 더 철저히 깨어있으므로 해서 보다 순도 높은 행복을 지향해 가자는 뜻이다. 그때그때 깨어있는 최선의 모습이 무엇일까? 아마 성자들의 인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수와 석가, 그 밖의 많은 성자들의 인격을 그려보면 한 좋은 모델[本]이 되어줄 것이다.
깨어있을 필요성과 깨어있을 소재들에 깨어있는 글을 써 가다보니, 필자가 얼마나 성글게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이 되며 보다 깨어갈 것을 다짐하니 잔잔히 설레기도 하다. 가을인가보다. 하늘이 점점 높아져 간다. 맑아져 간다. 투명한 가을하늘처럼 깨어있어 볼 것을 기도한다. 세상 행복에 적극적 일조가 되게 하리라 서원한다.
2004년 10월 1일,
명상의 집: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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