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가을이다.
하늘이 그지없이 높고 푸르다. 한 낱 티도 없는 듯한 이 맑음이 참으로 좋다. 가을하늘은 업경대(業鏡臺) 같다.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의 푸른 눈 속 같다. 이 하늘 아래 서면, 내 무의식까지의 심경(心境)을 다 비추어 내는 듯한 두려움이 있다. 이 두려움이 나는 좋다. 이 두려움은 나로 하여금 또 한번의 맑은 참회록과 양심선언을 읊조리게 한다. 가만히 무릎을 꿇고 수행자의 양심, 동사섭인의 양심을 다시 점검하며 마음을 다진다. 사람으로 나서 한 전문 수행자로 입문(入門)했다. 수행자로서 나는 무엇을, 왜, 어떻게 살고 있는가? 4반세기 전쯤의 초심입문 당시의 그 시퍼런 각오와 모진 의지를 기억한다. 거듭 출가(出家)의 마음을 내 본다.
첫째, 수행자는 간절한 원(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향하는 바가 분명해야 하고, 나의 願은 지고(至高)한 인격(人格)의 완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한 지향목표 자체만으로도 하늘에 닿는 자부심으로 가슴 골골에서 피어나던 환희를 기억한다. 지금도 그러한가? 至高한 인격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치게 있는가 묻고 또 묻는다.
둘째, 수행자는 치열한 정진(精進)을 요한다. 천(千) 층(層), 만(萬) 층(層), 구만(九萬) 층(層)의 업장과 천(千) 고비, 만(萬) 고비의 장애들을 고스란히 녹여내기 위해서는 죽도록 열심히 닦아야 한다. 일상에 호리의 틈도 없이 닦아야 할 것이거늘, 얼마나 모름지기 정진해 왔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셋째, 수행자는 엄정한 점검(點檢)을 해야 한다.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가,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가, 얼마나 변화되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투철한 점검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敎界의 소의경전(所依經典)에 따른 점검이 필요하고, 앞서서 가고 계시는 눈 밝은 선지식의 지도가 필요하고, 스스로 철저한 자등명적(自燈明) 점검이 필요하다. 얼마나 겸손하고 철저한 점검을 거쳐 왔는가? 그간의 게으름과 오만함을 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넷째, 수행자는 굳건한 믿음[信]을 지녀야 한다. 인간의 본 바탕에 대한 믿음,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반석 같아야 한다. 인간이 도달해 갈 그 심원한 경지가, 인간의 본질에 담고 있지 않는다면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종자(種子)가 있어야 그 열매가 있듯이, 속성이 있어야 그곳에 이르지 않겠는가! 나는 그것을 얼마나 탄탄이 믿고 있는가? 믿는 둥 마는 둥, 이 얼치기 지자(智者)가 아닌가? 다시 깊은 속내를 헤집어 봐야하리!
다섯 째, 수행자는 처절한 고독(孤獨)을 수용해야 한다. 힘껏 외로울 것을 각오하여야 한다. 고의적[선택적] 고립감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여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자신과의 정직한 만남과, 자신과의 치열한 투쟁이 있을 뿐, 구질구질한 인연의 끄나풀들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나는 과연 어떠하였나? 저자 한 가운데의 장사치처럼 소란한 인연의 숲에서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한다.
나는 지금 이 부끄러움이 좋다. 나의 뇌(腦)와 혼(魂)에 신선한 긴장이 온다. 저 20代 30代에 깊은 결심을 할 때면 흔히 행하던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일이랑, 이를 악무는 일이랑은 하지 않지만, 이제 가슴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일고 입가에는 고요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깊은 결심을 할 때면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무릎을 꿇는다.
거의 사 반세기 동안 동사섭 문화에 심신을 담그고 세월을 보냈다. 동사섭의 가치관 아래, 동사섭의 방법론으로 수행을 하며, 동사섭 대중 수련 속에서 긴 대하드라마를 만들어 왔다. 동사섭인(同事攝人)으로서의 본(本)이 되고, 동사섭인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만들어 왔나 양심적으로 짚어본다. 위풍당당한 자화상을 그려 내지는 못 하지만, 참으로 애써 온 흔적은 질펀하여 가슴이 뭉클하다. 그러나 어찌 이에 족할 수 있으리오. 동사섭의 길잡이인 5대 원리에 입각한 보다 철저한 점검이 요해진다. 대원정신(大願精神)과 대원관(大願觀)과 대원행(大願行)의 인격은 어떠한가? 수심의 면밀한 깊이는 어떠하며, 화합과 작선의 자비인격(慈悲人格)은 어느 정도이며,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앎에 있어 얼마나 확연한가? 남은 생(生) 내 호흡과도 같은 과제이다. ‘빙그레’ 미소 한 모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다 적시게 되는 그날까지, 닦고 또 닦아 가리라. 삶의 5대 원리를.
삶의 지침이 뚜렷하고,
오롯이 그곳에 전력할 수 있고,
하면 한 만큼의 수확 있음에,
저 至高함이래야, 겨우 코끝에 달린 숨결 아니겠는가!
2004년 익어가는 가을 한날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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