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섭 – 마음씀이 이뻐진다.
멍한 느낌,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삶의 나침반을 잃은 듯한 편치 않는 느낌들은 나를 동사섭 여름 중급과정으로 이끈 가장 주요한 계기였다. ‘구현의 행복에 출사표를 던지고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다짐에서 열정이 식었다는 느낌 또한, 한 몫 했다. 거울님께서 ‘신언서판’이란 인격을 제는 기준을 소개하시는 장에서 이번 과정에 잘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들어 인간관계 안에서 유연함이 덜한 것이 ‘인격 수양의 부족’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근황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표현님께서 소개해 주신 동사섭 수행을 하면 “마음씀이 이뻐진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한 것 웃으며 중급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고의 기도는 간청이 아닌 ‘감사’ - (지족명상)
지족명상을 통하여 오랜 세월 힘들어 하던 나의 두통과 화해를 하게 된 나는 지족명상에 영험을 익히 알고 생활 속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적어 내려가던 감사노트에서 진정성이 빠지고 이에 따른 행복감마저 사라진 것에 대해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이를 해결하고자 일우님을 비롯한 도반님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다시 날이 선명한 지족명상의 방편을 얻게 되었다. 이는 3가지 지족의 방편문인 1)집중형 2) 일체형 3)임의형을 실참하는데 있어 지금껏 ‘나의 사회적 졍제적 성장은 감사와 지족에서 비롯된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는 촌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듭거듭 감사하면 거듭거듭 성장하게 된다.’는 말씀 또한 눈앞에 닥친 구현행복의 환한 미소를 보는 듯했다. 그랬다 나는 너무나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나는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있다-좋다-싶다-썅” (연기관법)에서 얻은 행복
“있다-좋다-싶다-썅” 탐진치를 다른 말로 이르는 말씀으로 만이라 생각했다. 실체사고를 통하여 ‘있다’라는 생각을 내어 ‘좋다’라는 가치사고를 내고, 그에 따라 ‘욕구’를 내며, 얻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다. 결국 이러한 습관들이 썅하여 ‘불만사고’를 만들어 가만히 있어도 불만을 하고 있는 상황에 이른다. 이러한 불만사고를 다루는 데에는 지족명상을 통하여 얻어야 한다는 법리를 배우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거울님의 강의에서 ‘있다-좋다-싶다-
썅’의 법리가 12연기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이론 체계의 부합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였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하신 해탈에 이르셨던 ‘연기관’ 즉 해탈에 들어가는 하나의 문인 연기관의 관법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하룻밤 숙소에서 잠이 들려 하는데 한 도반님께서 취침 중에 탱크를 몰고 있었다. 그리 민감하지 않은 잠귀에도 지난번 중급에서 4일 동안 잠을 잘 청하지 못했던 내 나름의 트라우마를 느끼며 힘든 마음이 들 무렵, 그날 배운 있다-좋다-싶다-썅의 연기론을 생가해 보며 관하기 시작하였다. ‘코골이 소음이 있다’ - ‘코골이 소음이 좋지 않다’ - ‘코골이 없는 고요한 곳에서 자고 싶다.’ - 썅 썅 썅. 이렇게 시작한 관이 오래지 않아 아주 편안히 ‘있다-좋다-싶다-썅’으로만 되었다. 다행이 코골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왔기 때문에 경계에 대한 연기관을 지속할 수 있었다. 있다-좋다-싶다-썅.... 그렇게 수십 회쯤 지나갔을까, 나에겐 이미 코골이는 없고 내 머릿속에 있다-좋다-싶다-썅이라는 연기관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체하지 않는다. 굳이 존재 여부를 떠나서라도 더 이상 내 촉은 소음을 수하여 염체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잠을 청하고자 했던 나는 이와 같은 평온한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으나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통쾌한 무유정법 – 없으니깐 좋으네 (염체론)
있다고 하는 실체사고에서부터 사성제의 ‘고’가 시작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실체사고를 끊어내면 될 것이다. 이처럼 통쾌한 법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내 눈앞에 볼펜이 앞에 있자나”라고 반박하며 고를 끊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없다’라고 하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눈앞에 있는 어머님은 우리의 실체사고 즉 ‘있다’는 사고에서 있는 것이다.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면, 즉 어머님에 대한 염체가 없다면 우리는 인식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물건을 찾을 때 그 물건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으면(염체가 없으면) 찾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또한 거울님의 강의에 따르면 수사관의 이유에서 말하듯이 하나의 물이 각각의 다른 존재 별로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물로, 귀신에게는 불로, 연못 생물에겐 집으로, 천상에 사람들에겐 유리로 보인다는 비유이다. 이렇듯 똑 같은 하나의 객체를 각각의 촉으로 수한 염체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니 딱히 ‘물’이라고 할 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연기론적으로 보아도 역시 여러 가지의 인연에 의해 모였다 흩어졌다 할 뿐 일관성이나 항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실체사고를 끊어 내면 ‘있다’에 나온 고집멸이 사라지게 된다는 관점에서 염체에 대한 즉비는 가히 행복의 길로 이끄는 좋은 방편 수행일 것 같다.
장수만세 종소리 타임
거울님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종소리를 듣고 나는 극도의 행복으로 나를 보내는데 어려웠다. 졸음이 오거나, 최근에 행복의 순간을 떠올리려 해도 ‘극도’라는 최상의 행복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8월 19일 금요일 이날의 종소리는 나를 이곳에 온 목표의 하나라고 해도 될 만큼 큰 기쁨을 안겨 주는 듯 했다. 좀더 큰 고요라고 말하고 싶다. 우주에 시명인 나를 퍼트리고 흩뿌린 후 남아있는 무엇인가 작은 걸림을 내 맘대로 묘유라고 이름하였다. 나를 버리고 비아를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종소리가 머질 무렵 나는 소리가 머지는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는 생각마저 들었다 잠시 후 소리가 멈추고 거울님의 설명이 이어질 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좀 잘되지요?” 나의 고요함을 들키기라도 한 듯한 느낌 혹은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이 시점에서는 원래 잘 되는 것인가?하는 의문까지 다양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는 걸려있는 그 어떤 작은 느낌이 묘유라고 하면 안될까요?’ 라고 여쭐려던 참에 거울님은 “그 고요함 속에서 한 개라도 걸리면 않되요! 아주 티끌도 걸리면 안되요!” 라시며 걸리는 것이 있다면 적어보라 하셨다. 걸리는 그 무언가를 묘유이기를 바라는 잔꾀는 여기서 끝나면서 뭔가를 위대하게 해낸듯한 나의 즐거운 고요는 아쉽게도 미진 그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큰 가르침과 깨달음이 있었다. 명상에서 얻은 가치 있는 가르침은 나지사명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뜻밖의 복명 나지사명상
한때 일반과정에서 나지사명상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던 때가 있다. 객관화, 공감, 그리고 감사로 이어지는 일이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나지사명상이 귀찮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거울님의 지도에 따라 나지사명상 노트를 몇권 사서 한 페이지를 못 채운 것을 보면 꽤나 귀찮았었나보다. 이번 과정 중, 점심 한 때 열매님과 마하님의 나지사명상의 대화에서 문득 “구나”에 어려움을 느끼며 쉽게 되지 않는 것을 느꼈을 때 뭔가 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분반시간에 나에게 있던 나름 거대한(일우님 말씀에 따르면 별표 6개 이상의) 주제로 나지사명상을 통하여 분원들과 함께 풀어보기로 했다. 그 거룩한 주제를 나누었을 때, 처음 생각은 ‘너무 무거운 주제로 장을 깨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저지르자! 함께 공부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처음 그 사건에 대해 들은 도반님들이 염려와 배려로 가득하긴 했으나, 나에게 주는 조언들은 ‘나도 그랬다, 니 생각일 뿐이다.’ 혹은 묵묵부답 등의 5대 악성으로 가득했고 외롭고 혼자가 된 느낌이 되어 이 느낌을 도반들에게 밝혔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되었던 나지사명상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나의 문제를 정안님의 도움으로 객관적인 사실 하나로 추려내는 것으로 시작했고 진정성이 묻어나는 배려와 공감을 담은 ‘겠지’와 ‘감사’로 이어지게 되었고, 나의 얼굴에는 이미 백제의 미소가 뛰게 되었다. 매우 시원한 느낌이었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한 경계에 대한 사건이 함께하는 나지사명상을 통하여 마치 불보살님이나 될법한 존재들이 이끌어 주는 수레에 몸을 실어 달리듯 황홀했다. 나는 이러한 느낌을 다시 표현하고 나눔으로써 또 다시 나의 행복을 두배, 세배로 그리고 분반에 있는 도반님들의 마음에도 이 행복을 전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지사명상 이후 나는 홀로 방에 남겨 졌다. 햇살이 비추이는 방안에 나는 무유정법(만법유심)이란 가르침에 ‘아하’하는 순간을 느꼈다. 대상에서 느꼈던 나의 소외감과 분심은 지극히도 염체에 불과하며 당연 ‘즉비’할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움을 주신 도반님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건 물론, 이러한 큰 가르침이 있는 동사섭의 법리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나지사부터 !!!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지훈 김소영
다른 연수로 좀 늦게 도착해서 저녁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일단 도반님들로 가득찬 강의장이 좋았고 큰스님께서 안내하신 참여자로서의 마음가짐과 보조안내자로서의 정체성을 새겨보니 좋았다. 그리고 준지된 자는 5분내로 득도시킨다시니 나는 어떤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4박 5일 총 소감은 조바라밀을 좀더 섬세하게 맛보는 기회가 되어 흐뭇하다.
둘째 날 지족실습으로 온 몸이 따뜻하고 가슴이 환해져 행복했다. 평소 돈망관행에 집중하다보니 지족관행이 물에 물 탄 듯 뭔가 미진하다고 생각했었다. 돈망관행의 담담한 평상심도 좋지만 지족명상으로 피어오르는 훈훈함이 참 좋았다.
대상이 누구냐에 관계없이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만으로 우주를 밝히고 가슴을 뎁혀 준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혼부터 시작해서 체계형 지족명상을 할 때, 지금까지 138억년이라면 138억년이고, 45년이라면 45년인 혼의 존재에 있는 그대로 감사의 지고한 합장을 올리고 나니 가슴 찡한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몸과 경험 등 가장 가까운 존재부터 감사를 전하고 나니 아주 오랫만에 나라고 이름 붙이면서 함부로 한 것들을 떼어 더 온전히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또한 감격이었다.
지족산책을 할 때에는 그냥 존재 자체로 감사함의 의미가 가슴으로 와 닿았다. 이유 없이 그냥 감사함은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수용 같기도 하고 우주가 우주에게 감사를 전하는 듯하다. 모든 존재가 응무소주 이생기심으로 서로를 보듬는 상생의 우주가 느껴진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온기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행복한 하루였다.
아무 일 없이 감사요 기적임을 일우님께 들으면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모든 것들이 감사로 다가와 훈훈했다. 그 동안 당연악덕에 빠져있었음을 확인하고 빠져나오니 가장 먼저 이 마음이 훈훈하다.
분반스피치 시간에 촉수구조를 스피치 했다. 무엇을 어떻게 촉하며 살까가 행복해탈을 결정한다는 것이 더 선명히 다가오면서 시원했다. 의근으로 법을, 특히 유위법으로는 긍정을 촉하며 행복을, 무위법을 촉함으로 해탈을 가져옴이 선명하니 할 일이 이렇게 단순명백해져서 참 좋다. 동사섭 법리가 모두 그것이니 곱씹기만 하면 주울 수 있는 소득거리 천지에 널렸다. 든든하고 그득하다.
큰스님 오요실에서 울려주시는 좌종 소리. 좌종 칠 필요 없이 극락을 살 정도로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해탈의 인을 심으라는 말씀이 크게 마음을 흔들어 울림이 있었다. 행복해탈을 선택하고 나아가리라는 자유의지의 기치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행복해탈로 나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런 동기가 내 안에 장착된 듯 기쁘다.
이번에 특히 와 닿는 또 하나는 가치관의 중요성이다. 이론과 실습을 5:5로까지 강조하셨는데 가치관 사유와 반복이 곧 관행 아닌가 생각하니 가치관 전환이 공부 전부다 해졌다. 가치관이 삶으로 드러나니 가치관 정립과 반복관행뿐임이 자연스럽다. 138억년의 무의식적인 가치관 습이 이 안에 내장되어 있으나 갈 길 선명하니 걱정도 염려도 없다. 게다가 번뇌 또한 관점놀음일 뿐임을 아니 자유롭다. 번뇌도 흥미롭게 경험하는 놀이일 뿐이다.
마지막 그 어떤 것에도 ‘나’라는 실체시에 떨어지지 마라. 편의상 그것이라 하라. 언어를 쓰되 언어의 피해를 입지 마라는 비아명상 중의 말씀도 큰 울림이 되었다. 나라고 실체시 할 때 고통 전쟁이라면, 굳이 나라 할 이유가 없고, 나라는 말을 생활 중에 쓰고 살더라도 편의상 그것이라고 쓴다고 정리말씀이 시원하다.
죽음명상을 하면서 내 안의 욕구를 들여다보고 직면, 전환하며 다소 무게감 있던 욕구염체를 들어낸 듯하여 가벼웠다. 살더라도 욕구염체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족쇄 끊어낸 듯 시원하다. 많은 깨달은 이들이 욕구를 낮추어라하고 성자들은 욕구제로상태여서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지고한 행복으로 살아가니 행복해탈하지 않은 순간 없음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죽음명상을 매일 잠자리에서 하루를 마무리 할때 해보리라 마음 먹어본다.
바른 가치관 발사대 없이 조바라밀 로케트 뜨지 않는다는 조바라밀 가치관체계의 중요성을 이번 과정에 더욱 강조해 주시니 반가웠다. 바른 가치관의 사유 자체가 해탈의 향기를 가져오는 바탕이다는 말씀도 와 닿았다.
그리고 이미 들은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장애로 작용한다는 말씀은 안다병, 다 안다병과 연관되면서 다시 복습이 되었다. 아, 모든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으로 들어라는 마음자세가 다시 곱씹어졌다.
백백법문 함께 듣고 스피치까지 해보니 정리도 되고 공부도 되어 좋았다. 스피치한 뒤 법리가 더 마음속으로 지행득 되고 메시지의 핵심이 와 닿아서 행복했다. 스피치가 스트레스인 사람이 더 스피치가 필요한 사람이고 표현 잘 하는 것이 인품의 기준이라는 말씀이 표현 동기가 되어주었다.
물컵강의 이미 보았지만 다시 보니 또 좋았고 큰스님께서 핵심문장을 뽑아주시며 메시지까지 정리해 주시니 기뻤다. 붙들고 있지 않으면서 두루 가질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응무소주 이생기심 하는 성자의 삶이 공감이 되고 지향하고 싶어졌다.
또한 이미 아는 법문도 사유하면 할수록 지혜가 되어 가슴의 소리, 몸의 소리가 된다는 말씀, 사유의 중요성이 거듭 새겨지며 좋았다.
행복공식에서 소유로 넘치는 지족을 확인하는 것도 좋지만 궁극에는 소유가 아무리 커져도 상대적으로 욕구가 더 커지면 불행해 지니 행복의 궁극은 욕구 쪽에 있다는 발견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지족초월 기반 위에 구현이고 대의를 위한 구현이니 소유를 이기적으로 늘리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림을 막을 방편이 탄탄하여 다행스러웠다.
공표칠 때마다 찰나가 무량겁인 한 생이 정화되고 있는 중이다는 말씀, 공표치기의 동기가 되어주었다. 분반에서는 만득이님께서 진솔하고 용기있게 자신의 문제를 내주어서 함께 해결해보며 많은 분들의 관점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무심히 구나하고 바라보는 만큼, 겠지 하고 바르게 사유하고 감사하는 만큼, 인품과 여유가 깊어지는 듯 하여 행복했다. 나지사 터널만 지나면 원수도 은인이 되고 악인도 인품자로 거듭난다는 메시지, 화를 잘 풀면 인생이 잘 풀린다는 메시지 거듭 나지사명상의 동기가 되어주었다.
이 볼펜이 여기 사실로 있는가. 생각인가 물으신다. 사실이라 할 때 싸우고, 생각이라 할 때 싸울 이유가 없어진다는 메시지도 좋았다. 이론으로는 생각이라 알지만 생활에서는 사실로 빠져 사니까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공표치기를 거듭 해서 뭔가를 보자마자 연기로 다가오며 대상은 사라져버리는 삶을 살아라는 말씀은 앞으로 향해가야 할 방향이 되어주었다.
물 자체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모든 존재의 관점을 그대로 존중해 주면서도 평등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해탈이 따르는 촉을 하라는 촉수구조법문은 동사섭 법리를 거듭 촉하라는 메세지로 단순하게 정리, 강조되어 좋았다.
이번 과정은 도반님들과의 교류가 가장 많기도 하고 좋기도 한 시간이었다. 행복마중물 시간에 한분 한분의 우구가 새로운 세계로 다가와 그 속으로 여행 다녀온 듯 더 친근해지고 정이 들어 다시 꼭 뵙고 싶은 분들이다. 그냥 넘어가기 아쉬운 부부요가 등 밥값 한 거리가 넘치지만 속으로 거듭 음미하는 추억마중물로 삼으련다.
큰스님과 도반 여러분들, 행복마을 모든 분들 감사드리며 수분각 될 때까지 함께 손 꼭 잡고 정진해 가요. 우리.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생강
시간이 지나고 어떻게 상황이 변환됨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변하므로 “무엇무엇은 = 무엇이다”에 멈춘채 규정지어 변치 않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부정감정이 올라온 경우는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애인이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훗날 원수, 증오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바로 면전 앞에서 한 욕, 또는 달콤한 말이 그 사람이 갑자기 뱃는 말일수도 진실 일수도 거짓일수도 순간을 모면하려는 말일 수도 있고, 현재 달콤하게 느껴진 말이 훗날의 상황 변화에 따라 약정, 비수로 돌아 올수도 있는 것이다.
계속 변하고 있기에 멈춰있는 것이라 기대하고 “무엇”을 욕망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은 것이다.
사물이 마음속에서 지어낸거라 눈밖에 보이는 것이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그림자다. “내 몸 뿐만이 아니고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겉 테두리도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ex) 1) 용타스님의 일화에서 같이 같은 수도가 몇 년간 제자리에 있는데 수도가 그 자리에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심.
2) 내 경우는 등불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길가다 길고양이가 나타나면 알아채는데 동행인에게는 보이지 않음.
3) 사랑하는 사람이 예쁘고, 귀엽고, 잘생기고, 고귀해 보이듯이 내 눈에 꽁깍지가 씌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엔 그 사람은 보통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이 매트릭스다. 내가 보는 세상, 당신이 보는 세상이 다른 것이다. 모두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마음 놀음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규정지어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 조바라밀
지족명상. 비아명상.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각각의 명상은 배울 때는 실체사고-비아, 욕구-죽음, 분노-나지사, 불만사고-지족명상으로 해소하면 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명상을 되풀이 해보며 생각해보니 각각의 명상들은 서로 공통점으로 연결된 부분들이 있어, 부정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4개의 조바라밀을 돌려가며 부정감정을 해소 할 수 있음을 알았다.
ex) 1) 부정피드백은 – 나지사, 비아, 지족, 죽음으로 안 좋은 감정이 드러나는 상황을 녹여낼 수 있다. 욕을 들어도 내가 없는데 무엇이 기분 나쁠 것이며,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며 욕만하고 강도가 칼로 찌르지 않은 게 다행이고 감사하며(욕을 할 만한 입장이겠지 이해하고) 그 정도로 그친 것에 감사하고 지족되는데 무엇이 걸릴 것인가.
물론 약에도 치통, 두통약, 한약, - 항생제가 따로 존재하듯이 정확하게 복용하는 것이 빠른 치료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아픈 상황(몸)에는 약을 빨리 투여하여 좋아지게 하는 것이 목적인만큼 마음이 아픈 경우엔 4가지 조바라밀 명상 중 어떤 것을 이용해도 좋은 것이다.
◎ 염체론에 관련된 사유
선생님은 편하겠다.(연금이 있으니) 부자는 돈이 많아 좋겠다. 친구가 주변에 많으면 좋겠다. →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이것들은 내가 만들어 낸 헛된 마음놀음, 신념이며 속사정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염체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감정들 희노애락에 휘둘리지 않고 바라보고 내가 이것들을 느꼈구나 바라보구나 즐거움이 언제 분노, 기쁨이 어느 시점에 슬픔으로 바뀔지 모르므로 거기에 말릴 필요 없는 것이다. 어떻게 바뀔지 모르므로 내가 느낀 것이 진실 된 것인지 아닌지, 아무것도 아니다.
◎ 죽음명상에 대한 생각
죽음명상이 잘 안 된다는 생각 → 4가지 조바라밀 중 이것이 유독 다가오지 않는구나.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또는 재차에 고민하고 있었구나.
부정감정, 욕심, 탐에 대한 해소는 그나마 관점이 잘 이해되는데 나머지 3개의 조바라밀로 우선 막자. 3가지의 수심도구라도 우선 갖추게 된 것을 감사한다.
동사섭 수련을 통해 내가 행복하고 자유로울려면 5대 원리 중 “정체”의 확고함. 이후 과정은 “대원”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함양수련장만 오면 기운이 밝고 맑은, 걱정을 내려놓게 되는 것은 모두가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문제에 공감하여 울어주고 기쁜 일에 웃으며 공유하니 자연히 웃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걸림이 줄어들었습니다. 나뿐이 아닌 주변을 살피고 같이 자유롭고 행복해 지자의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수심을 통하여 욕구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각각의 상황에서의 내 감정 안 좋은 습관놀이 이렇게 나오는 구나 알아차림을 통해 나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백제의 미소
집에서 돈망 3관을 하다가 행복마을에 와서 직접 큰스님을 뵙고 육성으로 법문을 들으니 그 에너지가 전달되어 왔다. 법리가 더욱 선명해지고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 중에서 “염체론”이 압권이었다. 골백만가지의 관점 중에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실체놀음을 하고 있구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내가 만든 환영이다라는 것이 확연해지면서 우주가(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새의 발목을 묶고 있던 끈을 끊었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나왔다. 해방되었다. 우주는 사라지고 없다. 나는 자유가 되었다.(우주가 내가 만든 것이라는 비밀을 풀은 덕분이었다.)
걸려있던 모든 것들은 내가 만든 것이다. 실체 없음으로 모두 처리되었다.
이 일물이 지금 여기 이렇게 숨 쉬는데 온 우주가 움직이고 도와주고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절대지족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절대지족 절대자유의 니르바나에 살았는데 저승사자가 “가자”한들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공감은 무아~ 절대수용 절대 이완에서 온다. 무아를 관행하고 관행하여 공감능력을 획득할 것이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네) = 서하모니
궁극적 목적은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행복이란 소유/욕구이다. 욕구가 작아질수록 행복해지고 욕구가 0이 되면 초월 된 행복을 느낀다.
지족(불만사고), 비아(실체사고), 나지사(불만), 죽음(욕구)명상을 통해 탐진치에 초월하다. 지족이 가장 중요하며 조바라밀은 돈망파지의 필수 과정이다. 해탈은 걸릴 것 없는 자유, 궁극의 행복이다. 해탈하여 우리 모두의 행복 대원을 이른다.
내 발사대의 부족함을 느끼고 사유하고 살지 않음을 느꼈다. 환경이 내가 아니고, 몸이 내가 아니고, 수상행식이 내가 아니고, 내가 아닌 순수의식만을 남겨 놓았다. 비아에 몰입하여 하염없이 순수체로 놓아두었다. 나라는 것은 있는지 없는지 지각이 없었고 순수 몰입을 느꼈다. 몰입 이후 벅찬 행복이 왔다. 삼엄한 사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삼엄한 사유에 의해서 뚫려 깨달은 것들에 구현 행복감을 느낀다.
물 컵의 무게와 상관없이 들고 있는 시간만큼 고통은 비례한다. 고통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언제 놓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염체란 관념 덩어리이다. 존재 개념의 부정이 아닌 실체성의 무게다. 사색과 관행을 통해 궁극적 깨달음을 얻게 되면 생각 밖에서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 할 때 돈망에 다가선다.
오감과 인지는 느낌을 수반하고 관행을 통해 느낌을 확장시키는 것이 지족의 시작이다.
일반과정을 다시 소화하고 중급과정을 다시 들어야겠다. 중급과정을 깨닫기에 나의 발사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발사대의 존재 목적성을 잃지 않고 내가 다시 중급에 도전할 때, 내 발사대가 충분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진정한 사유를 통해 하나씩 깨달으며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홍세진 다람
올해 1월, 일반과정을 통해 마음에 큰 걸림을 내려놓고 앞으로는 아마도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 길이 더 보일 것 같아, 곧이어 중급과정을 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서 오지 못하고, 망설이던 끝에 2월 고급과정을 하게 되었다. 고급과정의 돈망명상으로 개념 이전의 걸림 없는 자유와 해탈감을 느끼게 되었고, 언제든 그냥 있음으로 있을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러나 돈망명상을 하면서도 유위의 삶에서 나는 다시 실체놀음을 하고 있었고 걸림을 만들어 냈다. 아무래도 미뤄 두었던 중급과정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반과정에서 조금씩 맛 본 4가지 조바라밀은 사실 그 이후 계속 되지 않았던 터라 제대로 배우고 체험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일반과정에서 배웠던 번뇌구조부터 다시 살펴보니, 모든 번뇌의 시작은 있다라는 실체사고였다. 있다고 생각하니 좋고, 싫고의 가치를 매기게 되고, 가치를 매기니 갖고 싶고,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리고 그 욕구가 실현이 안 되면 썅하고 분노가 올라오게 되고 이 분노는 불만사고로 이어진다. 불만사고의 늪에 빠지면서 다시 가치사고를 하게 되고 더욱 더 ‘있다’하고 실체사고가 강화 되게 되어 끝없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번뇌구조를 끊어내는 방법. 그것이 4가지 조바라밀이다.
불만사고를 끊는 지족명상.
지족은 이미 소유라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점을 찾아 불만사고를 감사로 전환하는 것이다. 매일 감사점 3가지씩을 찾아보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지족명상의 도구들을 알게 되니 풍성한 감사를 할 수 있었다. 일단 이미 소유하고 있는 혼, 몸, 경험 9천조의 감사, 그리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10대 행복마중물, 가족 및 소속 공동체에 대한 감사, 물, 공기, 나무, 자동차, 침대, 등등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감사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렇게 지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짚어 나가다 보니 이미 행복할 수 있는 감사들이 지천에 깔려있는데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모든 일에는 음양이 있듯, 행복하지 않은 일에서, 불만이 있었던 일에서 조차 긍정점을 찾아내어 지족할 거리를 찾아낼 수 있으니 이미 행복은 거의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생명의 신비라는 인간 탄생과정의 영상을 보면서, 138억년의 우주 역사에는 수천억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수많은 자연 작용의 도움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 존재한다는 사살이 경이로웠고,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함에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그러니 이미 나는 탄생부터 이미 지족의 대부분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온 것이다.
이런 사유들 속에서 지족산책을 나갔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런 넘치는 행복이 넘쳐나는 세상에 임재 하여 살아가고 있음이 감동이었고, 행복을 보느냐 불행을 보느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왔다.
분노를 다스리는 나지사명상
유위의 삶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분노의 감정일 것이다. 분노의 감정은 나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스스로와 주변을 활활 태워버리게 된다. 나지사명상은 이런 분노를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풀어내는 너무나 훌륭한 도구이다. 일단 ‘구나’를 하기 위해서는 가치평가 없이 여여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구나’ 하나 만으로도 이미 분노는 반 이상 가라앉게 된다. ‘구나’가 되고나면 ‘겠지’로 인과의 순리를 받아들인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연기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사정을 유추해보는 것이다.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겠지’를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입장이 이해가 되고 인과가 수용이 되어 진다. 그래서 결국 그만하니 ‘감사’하게 되는 마음으로 분노를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걸림의 리스트를 적어보고 하나씩 나지사를 해나가다 보니 걸렸던 부분들이 하나씩 해소되어 갔다. 그러면서 나지사는 문제 자체의 해결보다는 내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 그야 말로 분노를 다스리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매우 세삼한 도구라서 보다 구체적인 상황으로 명확히 ‘구나’를 짚어내서 나지사명상 하는게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분노가 올라오는 상황에서 나지사 도구를 쓰면 되겠구나 라는 것이 수행을 통해 확인되니 커다란 무기가 생긴 것 같아 든든했다.
‘싶다’ 욕구를 내려놓는 죽음명상
죽음명상은 실감나게 죽음을 직면하는 상상을 하면서, 죽을 수 없는 걸림들에서 벗어나 자유감을 느끼는, 욕구를 내려놓을 수 있는 명상이다. 행복론에서 욕구는 작을수록 행복이 커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가지고 싶고, 하고 싶고, 살고 싶고, 매 순간 욕구들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죽지 못하는 걸림들의 대표적인 3가지는 싶음에서 오는 욕구, 책임감에서 오는 탐욕, 생명에서 오는 존재욕이다. 나 역시 이 3가지 걸림들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들로 다가왔는데, 그 순간에 ‘여기까지가 내 몫’이라는 부분이 굉장한 자유감을 주었다. 또한 존재욕은 그야말로 본능의 부분이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변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걸림 없는 자유를 누린다고 상상하니 조금이나마 존재욕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명상의 중요한 혜택 중 하나는 걸림을 다 떨궈 내지 못해도 현재 삶에서 소중함과 감사함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죽는다고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삶을 더 행복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실체사고와 가치사고를 날려버리는 비아명상
모든 번뇌는 ‘있다’는 실체사고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나’라는 에고가 걸림돌이 된다. ‘나’가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을 치우기가 매우 힘이 든다. 그리고 진짜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설사 있다는 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행복에 도움이 안 된다면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이 때 ‘나’라는 실체를 날려버릴 방법은 ‘나라고 할 것이 본래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환경, 몸, 마음이 모두 내가 아니므로 순수의식만이 남게 되고 순수의식 마저 내가 아니므로 치워버리면 묘유가 된다. 묘유마저 내가 아닌 순간의 텅 빈 상태로, 그냥 있음의 상태로 있을 때 걸림 없는 자유감, 해탈감을 갖게 된다. 즉비 시명. 편의상 이름을 붙였을 뿐 바로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에 떨어지는 순간 다시 실체사고와 번뇌의 악순환은 계속 된다. 해공 27조와 함께 비아명상을 해나가면서 ‘나라고 할 것이 없음’과 ‘실체 시 할 것이 없음’에 대한 느낌이 확연해 진다. 실체 시 할 것이 없으니 번뇌의 씨앗이 없다. 이대로 걸림 없는 자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필수 인문학
주조바라밀의 도구들을 갖추었다면 그 도구들을 더욱 탄탄히 받쳐줄 신념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 것이 최소한의 필수 인문학이다. 삶의 5대 원리, 행복론, 번뇌구조론, 수심체계론, 촉수구조론, 불가불행의 5단계 법리, 문도 6장, 인생 3박자, OP 100원리, 해오해탈주의 5요, 사생관. 염체론 등의 이론들을 가지고 백백법문 시간을 가져보았다. 백백법문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 다양한 이론들이 모두 행복의 관점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라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훅하고 들어왔다. 동사섭을 처음 할 때부터 소중한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공공연히 알아왔음에도, 그 행복을 내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는 부분을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이론들은 행복의 관점을 볼 수 있는 방법과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중급과정의 핵심인 번뇌구조와 수심체계론을 통해 행복의 관점을 갖는 방법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알려주었고, 촉수구조를 통해 느낌에 눈을 떠 지족법리와 공의법리를 촉하며, 염체론으로 우리가 사실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저 생각덩어리라는 ‘본래 없음’의 깨달음을 통해 또 다시 행복의 관점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주조바라밀과 필수 인문학을 공부하며, ‘삶에서 행복의 관점을 선택하는 일만 잘하면 되겠구나’ 라는 신념이 내 가슴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수확이 있었다. 무거운 컵을 그냥 내려놓으면 될 일이다. 덧붙여 직접 백백법문을 해보면서 더욱 분명하게 이론이 가치관으로 새겨지는 효력이 있었다.
이번 중급과정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1. ‘행복의 관점’을 보고 선택하며 살면 된다는 것을 명확히 발견한 것
2. 4가지의 조바라밀을 통해 모든 걸림들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점
3. 돈망으로 가는 사다리를 더욱 튼튼하게 해주었다는 점
4. 이론의 공덕을 확연히 알게 된 점
5.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수심이 기본 바탕이 됨을 확연히 하게 된 점이다. 주조바라밀의 수행과 필수인문학의 이론을 통해 더욱 더 걸림없는 자유와 행복해탈로 살아가게 되었음에 너무도 든든한 마음이다. 이렇게 완벽히 잘 짜여진 법리를 만드시고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수희의 살아가고 계신 거울님께 무한한 찬탄과 감사를 전한다. 또한 이 법리들과 한 몸이 되어 조금 더 자유의 삶을 살게 도와주시는 지도자님들과 함께 행복의 길을 가며 지지하고 밀어주는 도반들의 소중함을 한껏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 외에도 그간 명상을 하면 되겠지라며 수행점검표를 등한시 했었는데, 수행점검표를 해나가면서 행복의 크기가 커져가는 기쁨과 마음이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만족감이 있었다. 이제 행복의 방편들과 가치관을 장착하였으니, 든든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 작선하며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 지금 여기 나는 행복하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마하 전준모
우선 48회 중급과정을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한 죄송스러움을 전합니다. 또한 지금도 공부에 대한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을 도반들을 생각하며 함께 회향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도 전합니다. 떨어져있어도 함께 동참해서 회향하는 마음으로 제 소감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근황나누기에서도 말씀드린바 있지만, 중급과정으로 오기 전 제 마음은 여러 사정으로 온전히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연초부터 오기로 마음먹었던 중급과정이지만, 이 수련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수련을 가는 대신 그냥 푹 쉬는 것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면 어떨까 하는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원래 마음먹었던 대로 하자’, ‘힘들수록 도망가지 말자’는 마음을 먹고 수련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첫 마당. 거울님께서는 우선 근황나누기를 하자고 제안하셨고, ‘엔카운터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삼엄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삼엄함’이란 단어가 가슴에 꽂혔습니다. 당시의 말씀은 엔카운터에 임하는 자세에 초점이 향해있었지만, ‘삼엄함’이란 단어는 현재의 제 상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엔카운터’ 뿐 아니라, 모든 삶 속에서 ‘삼엄함’, ‘무서울 정도로 깨어있는 의식’ 이것이 필요하구나. 내가 얼마나 방종했었나. 요 근래 내 삶의 흐트러짐의 원인은 이것과 다름 아니다. 삼엄함이 없었구나.’ 하는 자각이 오며 순간 정신이 똘망 똘망해지는 후련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자각이 수련기간 내내 지속되어 전에 없을 수련성과를 가져왔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면 참 좋았겠지만, 역시나 삶은 그렇게 순탄치 않았습니다. 제 느낌상 적어도 수련 시작 후 이틀정도까지는 흐리멍텅한 의식이 지속되어 온전히 수행에 흠뻑 빠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습은 무섭고, 그것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듯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은 그래도 수련 전보다 또렷한 의식이 감지가 됩니다. 늘 정신 차리겠습니다. 거울님 감사합니다.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제 의식 감사합니다.
동사섭 중급과정 수련의 목표는 ‘⓵ 4대 조바라밀을 개념적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⓶ 체험을 온전히 해내어 ⓷ 진정 온전히 걸림없는 자유함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 경험자들은 ⓸ 각 법리의 아하도(度)를 끌어 올리는 것까지 목표로 합니다.
저는 이번 수련을 통해서 ‘⓶ 체험을 온전히 해내는 것’과 ‘⓷ 진정 온전히 걸림없는 자유함을 사는 것’의 성취도에 있어선 많이 부족했다고 자가 평가했습니다. 다만 ‘⓵ 4대 조바라밀을 개념적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에 대해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2014년 3월 처음 동사섭 일반과정을 접하고 좋았던 것은 이론의 논리 정연함이었습니다. 뜬구름 잡는 식으로 ‘하면 된다.’가 아닌 ‘이러이러한 원리로 이렇게 되니 이런 방식의 수행을 하면 된다.’를 제시해 주는 것이 제게 너무나도 사이다 같은 시원함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남짓의 시간이 흘러 이번 수련회에 임하는 저는 그 동안 얼마나 이론적으로 법리를 뚫었고, 그것을 체험하려고 노력했을까요? 체험은커녕 이론을 익히는데도 게을렀습니다. 이것이 제 방종이고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련 기간 내내 거울님께서 강조해주신 부분, ‘이것을 왜 하는가?’ ‘이것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주셨던 것과 ‘원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 ‘원리를 알고 깨닫는 것은 마치 DNA로 친자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와 같은 말씀들은 제게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과 동시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수련 기간 동안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임장기초신념 - ‘이 장의 주인은 나다. 주인인 나는 이 장을 천국으로 만들리라.’입니다. 수련 3일째 저녁마당에서 말씀해 주신 이 내용은 수련회에 임해서도 내내 헤매고 있었던 저를 끌어올려 준 단비와 같은 가르침입니다. 최근의 저의 불건강한 마음, 피로함, 방종. 이 모든 것의 원인이자 처방과도 같은 가르침이었습니다.
‘나는 환자를 치료함에 진정 그 환자의 행복과 치유를 바라면서 진료하는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놓던 침이니 계속 놓고 있는가?’
‘나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진정으로 원하고 그렇게 되도록 행동하는가?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하는가?’
‘내가 마주하는 모든 장에서 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가?’
제 최근의 불행은 이것이었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주인! 우리 모두의 행복! 이것이야 말로 제가 잊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백백법문의 1호이며, 동사섭의 핵심인 5요. 그것의 출발이 되는 임장기초신념. 이것을 잊고 있었다니! 가장 기본인 이것을!
두 번째, ‘맨소리가 참소리 된다.’는 촌철입니다. 저는 동사섭의 이론 체계에 감탄하고 그것이 결정적으로 제가 동사섭 공부를 하게 된 이유이지만, 한편으로는 제 스스로가 너무 머리만 굴리고 체험하고 느끼는 것에는 약하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리는 과정’ 그것이 제게 정말 필요한 과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수련에서 4대 조바라밀을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확 트이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수련을 통해 이론적으로 공고히 하는 과정으로 삼고, 체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맨소리가 참소리 된다.’ 이것을 마음속에 깊이 품고 정진해나가면 되겠다는 확신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가르침을 기본으로 4대 조바라밀에 대한 이해를 더 명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나지사명상’은 이전부터 참 좋은 방법이나 이런식으로 하면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되겠구나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이 장의 주인인 나는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끌어올리리라.’라는 마음을 지니고 보면 ‘나의 부덕이요, 그의 아픔이다.’가 가슴으로 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정말 싫어했던 누군가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싫어할지언정 그를 죽여 버리고 파멸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도 역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존재입니다. 그가 그렇게 남들에게 안 좋은 느낌을 주는 것으로 비춰졌던 것은 그에게도 역시 아픔일겁니다. 온전한 존재로 보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그를 낙인찍고 바라보는 제가 보입니다. ‘이 장의 주인은 나’라는 것과 목표는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것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나지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지족명상’은 ‘맨소리가 참소리 되는 것’으로 꾸준히 진행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리라.’ 그렇게 감사함으로써 오는 제 스스로의 평안감, 솟아오르는 감동과 같은 것이 언뜻 언뜻 느껴졌습니다.
‘비아명상’ 역시도 ‘맨소리가 참소리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공’이네 ‘비유비무’이네 ‘연기’이네 잔뜩 들어가 있으면서도, 정말 내 눈앞의 것들이 실체가 없다고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한 여자로부터 우주까지 다시 소립자까지 들어갔던 과정을 떠올리며 내 눈앞의 것들 역시도 그저 연기적으로 있을 뿐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관행하려합니다.
‘죽음명상’은 그동안 제일 이치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와 닿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다행히 이번 수련을 통해서 이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의의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자’가 선명해져서 좋았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제 방종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이다보니 더 좋았습니다. 저는 당장 오늘 죽을지 모르는데 이렇게 미루고미루고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사섭에 몸 담은지 2년이 넘으면서도 이렇게 법리를 지행득하는데 게을러서는 안되겠습니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정진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성불화
개념원리
OP – 100의 원리는 어떻게 하며 행복을 지향 중점. 우리는 항상 100을 원하지만 현실은 P에 있다. 결국 행복이란 현실 문제가 아니라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깨달은 사람은 앞으로 이루어야 할 P100을 지향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
지족명상
혼, 몸, 경험. 9천조 부자다. 셋 중 어느 하나가 없으면 우주가 무의미함이 신기하다. 지금 이 순간 존재 자체로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가족의 소중함에 감사, 소속공동체에 살 수 있는 감사함. 지역사회, 나라가 있다는 감사함. 나아가 공기, 물, 태양계, 은하계, 우주 등 대자연은 감사 감사 감사 천국이다. 행복하다.
비아명상
번뇌의 뿌리가 되는 “나는 존재 한다.” 실체의 어리석음에서 연기를 깨달으며 지옥에서 자유함을 얻는다. 실체성에 대한 부정이며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나지사명상
분노를 다스리고 마음을 정화한다. 즉 화가 났을 때 ‘구나’로 수용하고, ‘겠지’로 이해하면 더 나쁜 상황이 되지 않음에 감사한다. 명상법이 익어지면 어떤 역경에도 이중화살을 쏘지 않고 마음을 걸리지 않게 관리 한다.
죽음명상
탐, 진, 치. 삼독 중에 탐심을 정화하는 명상이다.
실감 : 지금 당장 내 앞에 저승사자가 와서 가자 상상한다.
직면 : 간다 할 때 무엇에 걸리는지 선명하게 이해한다.
전환 : 집착을 만드는 과정(부정염체 → 긍정염체)로 전환한다.
해탈 : 전환 했을 때 해탈감을 느껴본다.
의미 : 명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해 보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어디에도 없으니 죽음이 가볍다.
감동(느낌 및 아하!점) : 삼세를 믿으니 죽음도 자연스럽다.
실천의지 : 반복관행해서 죽음은 또 다른 우주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촉수구조는 행복론이자 우주론이자 구원론이다.
근, 경, 식. 삼사가 화합하여 법을 촉 했을 때 유위법을 촉하는 과정도 무위법을 촉하는 과정도 삼사화합 과정 밖에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삼사 화합만 하는구나가 아하 된다. 이것이 전부다. 법에 촉했을 때 무위(해탈)로 경험된다. 해탈감을 맛본다. 무한자유함으로...
감동(느낌 아하! 점) : 인생은 삼사 화합을 촉하며 사는 게 전부구나 아하! 된다.
실천의지 : 반복관행만이 해탈감을 얻을 수 있구나!
기타(실습반. 수행점검표. 스피치. 근황나눔 등)
분반 실습반은 인원수가 적어 선생님과 가까와서 질문과 나눔이 좋다. 다른 분들의 염원 공부를 알게 돼서 좋다.
도반님들과 근황, 스피치, 수행점검표 어느 것을 해도 육성으로 하니 친밀감, 미세한 교류가 참 좋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여정
행복·해탈로의 첫걸음
동사섭 중급과정에 오기까지
일반과정에서의 깨달음과 감동이 컸음에도 중급으로 다시 오기까지 1년 반이나 걸렸다는 것이 너무 자신에게 부끄럽다. 하지만 이제라도 ‘저질렀다’는 것에 스스로 감사할 뿐이다.
2. 수심명상산책
이번 수련에서는 있다-좋다-싶다-썅의 불만사고와 번뇌구조를 쓸어버리는 조바라밀 4가지명상에 집중하였다. 4가지 명상의 정확한 의미와 지향점. 논리를 깨닫는 해오의 기쁨이 있었다. 그런 후에 나만의 명상법을 정리하여 수행점검표에 동그라미 치며 명상하는 시간이 그지 없이 행복했다.
(첫째) 지금 이대로 감사하다 - 지족명상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99%에 주목하지 않고 나머지 1%에 괴로워하는 나란 존재, 지족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명상하는 이 순간 만큼은 이대로 지족이다.
(둘째) 연기가 있을 뿐 나란 없다 – 비아명상
환경. 몸 뿐 아니라 마음조차 수상행식일 뿐 내가 아니고, 본래 나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무아(비아)개념이 결코 이해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모든 존재하는 것은 연기적 구조로 존재할 뿐이라는 연기법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다면 나라고 여겨지는 이 존재는 무엇일까? 응무소주 이생기심 하는 보살행의 도구일 뿐이라는 말씀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
(셋째) 일어나는 모든 일들 다 그 인에 그 과이니 그러하겠지 – 나지사명상
나지사명상은 단지 상대방을 이해하고 분노를 잠재우는 방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모든 일은 인과관계 속에서 일어나게 될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가르침에 ‘아’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렇다면 매사를 여여히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 힘드랴? 이 명상은 결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명상임에 틀림없다.
(넷째) 온다. 간다. 걸림이 없다 – 죽음명상
일반과정에서 죽음명상을 할 때 끝까지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식이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내 몫이다’라고 생각해 보라는 말씀에 깨달음이 왔다. 아! 이 명상은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서 살라는 가르침이구나. 그렇다!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 이생을 살 뿐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생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감할 것인가’ 이다.
‘이 마음이 다음 세상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조바라밀 명상을 해야 한다’는 큰 스님의 말씀이 내 머리를 내리친다.
3. ‘지금 여기 걸림없는 자유함’
나를 이 곳 동사섭 장에 이끈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지금 여기 걸림없는 자유함’ 즉 해탈일 것이다.
간절히 원하지만 끊임없이 걸리고 또 걸린다. 걸리지 않기 위한 답. 또 걸렸을 때 빨리 알아차리고 자유함으로 돌아오게 하는 답이 큰 스님의 가르침 속에 모두 있다.
‘무엇이다’라고 하는, 그 중에서도 ‘내가 있다’라고 하는 실체사고에서 벗어나기. 행복론의 공식에서 보듯이 욕구를 줄이고 지족제일부임을 아는 것. 느낌에 눈 뜨고 좋은 느낌과 무한 느낌, 즉 해탈을 위해 좋은 촉을 실행하라는 것. 이것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
4. 감사함
이만한 복을 누릴 자격이 있나 싶게 부끄럽지만 중중연기 속에서 이곳으로 이끌어 준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중생들의 행복 ·해탈을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쉬운 길을 제시해 주시는 큰 스님에 대한 감사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또 기초적인 이론조차 모르는 초심자를 친절히 안내해 준 지도자님들과 도반들께도 감사드린다.
“삶에는 138억년의 오랜 세월 가져온 습관대로 사는 삶과 이고득락을 위한 깨달음을 찾는 삶이 있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우산
지족명상
아하!
더욱더 경이롭고 감사해진 대자연이다.
우리들은 대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 컵의 물이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기까지
인연들 내가 좋아하는 물건 하나하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모든 인연들이 소중하기 그지없다.
그런 인연으로 내가 존재하므로
우리는 이미 자연과 하나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자연과 하나임에....
아하!
자연에 법칙에 순리에 감사할 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이구나!
함께 하여주신 모든 도반 여러분 고맙습니다.
제48회 중급과정 수련소감문
현공 박기주
1. ‘나’란 학습을 통해서 형성된 개념이요, 학습의 산물이라는 말이 비아명상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멘트임을 알게 되었다. 의식이 선명해지는 산뜻함이 있다.
2. ‘걸림 없는 자유로움’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임에 비하여, ‘시비로부터 벗어난 의식 세계’라는 표현으로 구체화되어서 참 좋았다. 정리되는 개운함이 있다.
3. 습관대로 흐름을 좇을 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는 하지만, 138억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의식이어서, 무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생각 바르게 가짐으로써 느낌을 스스로 창출하게 되는 흐름은 지고한 행복을 창출할 수 있는 법열의 순간을 가져 온다. 인위적인 노력(다양한 동사섭의 가르침,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의 바탕) 위에서 그것의 과보로 이대로 OK라는 느낌이 오는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좌종을 치신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지고한 행복으로 들어갈 수 있음이 자랑스럽고 즐겁다.
4. 생명 탄생의 신비를 비디오로 보았다. 남자로서는 오직 머리로 느끼는 신비감에 머물지만, 여자는 온몸으로 체험한 생명 탄생의 신비감이기에 여성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과 경외감,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온몸이 전율할 만큼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5. 묘유인 이 일물은 존재론적으로 공한 것이 그 실상이지만, 존재하는 동안 할 일이란 동체대비의 보살행이 할 일 전부라는 것이 확연하게 인식된다. 이 당연한 일을 작선이라는 덕목으로 삶의 5대 원리에서 강조하듯이 보살행을 하면서 살 일밖에는 없다. 스스로를 비롯한 삼라만상의 제도를 위해 부지런히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6. 나지사명상의 ‘겠지’는 실체주의가 아닌 연기주의에 근거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에 ‘아하’ 하는 깨달음이 있다. 선명해지는 보람이 있었다.
7. 기초수 수용은 법계(인드라 망으로 하나가 되어 연결된)에 흐르는 느낌의 한 줄기인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오직 수용하고 음미하며 감수할 일밖에 없다. 그것이 어떤 빛깔이든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니까. 인연 따라 맞닥뜨리고 인연 따라 사라질 것들뿐이라는 생각이 확연해지며 시원해진다.
8. 염체론을 들으면서, 사실과 염체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 잡는다. 그 무엇을 ‘사실시’한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기를 통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름 붙이기요, 개념화며, 실체시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것은 존재 그 자체를 나타내기에는 억만 분의 일도 될 수 없는, 천리만리 먼 언명(言明)이다. 그것 자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원한 피안의 그 무엇이다. Ding an sich이다. 물자체라는 말이 확연하게 와 닿는다. 무유정법. 개구즉착. 언즉착이라는 말들이 한 줄로 꿰어지는 듯 선명하다 법열로 뛸 듯이 기뻤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선혜 유소림
이번 중급과정은 세째날 오후부터나 참석하게 되어 아쉬움이 크나 나머지 하루 반 동안에 얻은 것들을 정리해 봅니다.
좌종 소리 :
좌종 소리를 들으며 진공을 경험한다. 세세생생 무언가에 걸려있는 상태가 자연스런 것으로 익어져 온 탓에 무언가에 걸려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좌종 소리를 들으며 정신 차려 보면 진정 지금 여기 아무 걸림이 없음을 경험한다. 지금 여기, 텅 비었으되 깨어 있는 의식만은 진정 또렷하다. 근원적으로 걸림없는 본래의 의식, 자성을 느끼며 무한 해탈감을 누린다.
2. 요요의 대원 :
수심의 차원에서 <무아>에 촉하면 깨끗한 해탈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해탈감에서 한발 더 내딛어 대원의 의식 상태가 되면 진정 고귀하고 성스런 행복감을 맛본다. <무아>에 머물렀을 때는 지증보살(智證菩薩)의 기쁨을 맛본다면 대원으로 나아갔을 때는 비증보살(悲證菩薩)의 기쁨을 맛본다고나 할까, 불교에서 단순한 사랑(愛)에 슬픔(悲)을 더하면 자비(慈悲)라는 말을 쓰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그러하면서 동사섭의 가치관 체계가 <무아의 정체관>에 머물지 않고 대원(大願)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행복론임을 실감한다.
3. 염체론 :
동사섭이 나의 생애에서 혁명을 일으켰다면 그것은 염체론의 혁명일 것이다. 다겁생래로 저 밖에 절대 객관 세계가 있다고 철썩같이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저 밖의 그 모든 것들이, <나>라는 것까지 합하여, 진정 나의 염체들임이, 허깨비들임이 확연하다. 0.0001mm도 못되는 약퍅한 껍질에 속아 무한우주를 나의 의식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사섭은 그 은산철벽 같은 0.0001mm를 쳐부수어 주었으며 이제 나는 모든 경계들을 일단 여여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염체론을 생각할 때 마다 우리가 염체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절감되고 염체 관리인 마음공부가 하루 세끼 밥이나 한 가지로 필수적임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서양 학자들이 20세기에나 주목하기 시작한 이 의식, 이 마음에 대해 글자도 없던 이천오백 년 전에 그 무궁한 세계를 경험하시고 가르침으로 남기어주신 불조들께 놀라움과 찬탄을 금할 수 없다. 또한 그 가르침이 현생의 나에게까지 이어지도록 해주신 금생의 스승께 무한 감사 올립니다.
4. 촉수 구조 :
촉수구조로 하여 깨달음의 메카니즘을 이해하게 된 것도 큰 공덕이나 나에게는 이 가르침이 유위적인 행복에 대해서도 눈뜨게 해주었다. 자칫 <해탈>에만 경도되어 싸늘하고 냉소적인 인간이 되어버릴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나에게 촉수 구조는 유위적인 행복거리들에 대해서도 눈뜨게 해주셨다. 촉(觸)에 깨어나면서 경계들에 대해 더 정확한 이해를 하게 되고 수(受)에 깨어나면서 더욱 섬세한 느낌을 누리게 된 것이다. 촉수구조로 하여 육식과 육경 속의 삶이 제공하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행복거리들에 대해 집착없는 누림, 걸림없는 누림에 눈뜨게 되었으니 무어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5. 나지사명상 :
동사섭의 많은 도구들이 그러하듯 나지사명상도 처음 만난 이래 그것을 쓰면 쓸수록 그 함의 풍부함과 효능이 깊어 간다. <지금 걸려있는 것 알아차리고 조바라밀로 해결해 보기>에서 나지사 명상은 커다란 아하를 제공하였다. 가까운 사람이 빠져 있는 불행에 대해서 태평하게 <- 구나>를 할 수는 없겠다는 나의 생각이 그야말로 착오였음을 알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의 불행에 대해 속상해하고 <- 구나>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인식이 깨끗이 부셔져 나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진정 그 사람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나에게 끼친 걱정에 대해 분노하는 것인지도 확연해졌다. 그야말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차분하게 <- 구나> 할 수 있는 심리가 그 사람을 위한 진정한 이생기심의 출발임을 실감하였다.
6. 도반님들과의 나눔
나눔 자체도 좋았지만 나눔으로 해서 우리 모두가 간절히 행복을 갈구하고 있음을 실감하여 그 간절한 서원에 공부심의 정열이 북돋우어주고 연기적 존재로써 함께 함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참으로 축복처럼 느껴졌다.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48회 중급과정의 말씀들
* 이순간이 인생의 전부이다. 이 순간, 최고로 임재하는가를 늘 살펴라.
*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이 순간을 결정한다. 이 순간 최고의 마인드를 가져라. 그러면 감성축으로부터 최고의 응답이 있다.
* 구현 행복론도 눈물겹게 인정해주면서 초월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 <지금 여기 걸림없는 자유함>이 마음공부의 최종 목표이다.
* 나의 걸림이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보여야 한다.
* 죽음명상을 하는 <온다-간다-걸림없다>의 1초간이 한 생을 산 것이다. 그렇게 공표 하나 칠 때마다 한 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 돈망명상이나 비아명상은 일반론이므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그러나 나지사명상을 하는 까닭은 그것을 분석적으로, 구체적으로 튼실하게 해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 <지금 여기 자유하다> 하는 선언에 대하여 엔카운터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깨달음 차원에서 생가하면 그것은 완벽한 답이다.
* 저 밖에 객관적 사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점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는 것이다.
* 촛대란 불꽃을 위하여 있는 것인데 불꽃에 유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계가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일우
1. 중급과정의 목표는 조방편을 이해하고 관행하여 행복과 해탈감을 얻는데 있다. 하셨다. 행복해탈이 어찌 중급과정에 그치랴. 인생의 목적이 이고득락인 것을.
그리고 깨달음은 도구요, 체험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 목적이 되는 행복과 해탈은 깨달음이라는 인의 조건 형성이 되어야 과로서 걸림 없는 자유함이 체험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깨달음이 절체절명으로 중요하다. 라는 강조 말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씀이라고 여겨져서 증사작반이 되지 않을 선오의 중요성을 거듭 다지게 되어 기쁘다.
2. 좌종 소리와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 보라.”
그냥 있어 본다. 왜냐 하면 아공법공이니까 작위 없이 그냥 있는 것이다. 어떻게? 기초수를 수용하면서.... 최소한의 조건을 형성시키는 동안 성성적적한 깨어 있음 상태가 된다. 개념이전의 순수의식을 지켜보는 시간은 지금 이 자리에서 동시에 무한한 우주가 하나로 잡히는 일우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텅 비었으되 가득 찬 느낌이 가져다주는 희열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풍요감, 평화감, 대 긍정이 된다. 혼자서 할 때보다 도반님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짧았지만 크고 넓게 마음이 늘려지는 경험이 있었다. 도반님들에게도 감사하다.
3. 이 느낌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창출의지를 가지고 선택하여 자등명적으로 소화할 때 지금 이 느낌이 내 인생의 현찰이 될 것이다. 이처럼 체험 된 것만이 내 속 살림이 되어 혼의 곡간에 채워지는 것이다. 든든하다.
4. 모든 개념 앞에 수식어로 즉비를 세워라.
일체가 실체성을 가지지 않는 묘들임으로 편의상 시명을 붙여서 그것이 실체가 아닌 연기적인 존재인 줄 알면서 쓰는 삶의 자세로 생활을 하라. 는 말씀과 연기관을 살리면 피아감을 떨칠 수 있다. 라는 말씀에서도 유위세계에서 유위법에 걸리거나 떨어지지 않고 무위법을 촉하여 초월된 해탈감을 누릴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기쁘다.
5. 성자들은 필요한 행동을 하되 소유욕은 없다. 라는 말씀이 삶의 행동지침으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다시금 가다듬게 되며 좋았다.
6. 걸림이 고통의 뿌리다.
대상을 실체 시 하는 것이 어리석음이요, 연기 시 하는 것이 도통이요 깨달음이다. 라는 말씀에서 다시금 대상은 사실이 아니라 의식의 내용임을 명확히 수긍하는 좋음도 있었다.
7. 존재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라고 비아관에 대한 절묘한 표현을 해 주셨다. 사자후와 같은 말씀으로 통쾌함이 느껴지며 좋았다.
8. ‘반 컵’ 동영상에서 예상을 뒤엎는 ‘집착 내려놓기’ 메시지도 거듭 새기게 되어 좋았다.
상식이 되어 버린 관점을 물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무게를, 무게보다도 들고 있는 시간을, 시간보다도 들고 있는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놓아야 해탈’임을 절감케 했고, 반전 메시지에도 신선함을 느끼며 기뻤다.
9. 나이프니치 단자론에서도 우주는 단자로 구성되어 있고 티끌보다 작은 단자는 우주를 표상하고 있음으로 개인이 소유주요, 단자의 개수가 유주의 개수가 된다. 라고 본다는 단자론을 새롭게 이해해서 좋았으며 고로 우주가 무한 수라는 것을 새롭게 이해하는 우주관의 확장이 되는 놀라움이 있었다. 더불어 집착할 것이 없다. 라는 말씀으로 정리해 주시는 설명으로 이해 심도가 깊어지는 기쁨이 있었다.
10. 백백법문은 조방편 관행을 돕는 발사대라는 것을 깊게 수긍하게 된다. 백백법문 1호인 삶의 5요부터 10가지 이상의 주제들을 가지고 스피치를 해 보면서 중언부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뜻을 글과 말로 표현해 보면서 이해도가 깊어졌고, 내면에서 가치관 정립에 도움이 되어 좋았다. 다음엔 보다 이로정연하고 심플하게 다듬는 잔손질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좋음도 있었다.
11. 지족산책을 하면서 이미 충분한 은총 속에 살고 있음을 느끼는 기분으로 좋았다. 뿐만 아니라 태양이 작열하는 정원을 거닐면서 무더위에 대한 촉감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지발동과 도피심리가 대립 되는 심리를 바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시간이 되어 좋았다.
12. 여름은 염천을 잘 드러내야 여름답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더위가 불편하다고 못 마땅하게 여겨지는 심리가 말이 되는가 싶었다. 나 자신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타인의 간섭이나 평가를 싫어하는 이기적인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이 진땀과 함께 흘렀다. 기분은 가볍고 시원했다.
늦여름으로 접어들어 가을 냄새가 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잠시 움직이는 순간에 등줄기와 오목가슴에 땀방울이 맺히는 폭염 속에 자비로운 법비를 내려 주시는 큰스님의 은혜에 심심한 감사를 느낍니다.
2016.08.19. 일우 합장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원경
0. 금번 중급과정에서 최소한의 인문학과 백백법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유익함이 있었고 새로운 차원의 명상을 시도를 해보는 즐거움이 매우 컸다.
1. 엔카운터 근황나누기에서 1) 히어앤나우의 걸림 없는 자유함 2) 활불학당에서 느낌록 쓰기의 설렘 3) 며칠 전 행복마을을 찾은, 37년 만에 해후한 죽마고우와의 즐거운 나눔 4) 마음공부 셋트장에서 도반들을 조우한 기쁨과 기대감 등을 마음소재로 나누면서 반가웠고 행복했다.
2. 중급과정 참여자의 마음가짐에 대한 문도가 있으셨다. 동기에 대한 물음이었다. 1) 왜 참여했는가? 2) 거는 기대는? 3) 진정 해탈을 원하는가? 4) 해탈이란? 5) 왜 해탈해야하는가? 물음에 답을 작성하며 삼엄하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중급과정이라는 별시수행과 마음공부 셋트장의 양장력을 통해 의식의 성장과 지고한 행복을 이루리라 다짐을 하는 시간이 되어 뿌듯했었다.
3. ‘마음공부의 궁극은 인식과 체험이다. 인식은 가치관 작업이다. 바른 가치관을 사유하며 반복관행하면서 깨달음에 이르고 그 깨달음을 통해 니르바나를 체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깨달음은 도구고 체험은 목적이다. 이번 수련은 이론·실습을 5:5의 비율로 실시한다.’라는 말씀이 있으셨다. 깨달음 언저리에 끼어있던 신비가 사라진다. 깨달음을 전제로 한 수행을 강조하는 해오주의의 공덕이다. 개운하고 시원하다.
4. 백백법문은 해오주의 기치를 드러낼 수 있는 독특한 동사섭 문화다. 동사섭법리와 최소한의 인문학에 대한 말씀을 백번 듣고 백번 말하기 운동이다. 백번 들으면서 법리가 확연해지고 명료해지고 백번 전하면서 자연스레 법리가 지행득이 되어 진다. 동사섭이 행복론이자 인품론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자 툴이다. 백백법문을 다시금 리스트업하고 강의안을 만들고 스피치해볼 마음으로 설렌다.
5. 요즈음 걸리는 문제목록을 적어보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5가지 정도가 적어졌다. 1) 요즘 문득문득 느끼는 피로감과 고관절 통증 2) 속가가족에 대한 태도정리 3)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부정염체 4) 공동체 장래에 걱정거리 5) 안식년에 대한 여행계획 등이었다. 각각에 4가지 조바라밀을 배당하여 명상을 차분히 하며 걸림을 치웠으나 한문제가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공동체 장래에 대한 일말의 걱정거리들이었다. 걱정거리로서는 1) 프로그램 숙지와 관리와 계발 2) 동사섭 문화 및 시스템 구축 3) 백산수업 등이었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아 정리 할 수 있었다. 마인드가 현실을 만든다는 지론에 따라 ‘1) 일신상의 이기(利己)가 아닌 대의(大義)에 서서 임한다. 2) 현상 보다는 본질을 고려한다. 3) 구성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교류한다. 4) 게으르지 않게 정진한다.’를 강령으로 채택하였더니 명상이 쉽사리 완료되어 평화로웠다.
6. 생명의 탄생에 대한 영상물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경이를 느끼며 생명의 존엄성이 저절로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놀랍다.
7. 지족명상 “혼·몸·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혼과 몸이 138억년 우주의 역사성과 영상물이 오버랩 되며 더욱 값어치 있게 수긍되며 범사 감사함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경험이라는 삶의 흔적은 필연성과 완전성으로 그 의미가 배가되었다. 존재만으로 지복감이 넘친다.
8. 비아명상 : 천문고공과 원시고공을 함께 이미지화 하면서 명상을 하니 ‘나’의 실체 없음이 더 확연해지며 툭 트인 감이 배가된다.
10. 죽음명상 : 딸 결혼식을 앞두고 가족에 대한 태도정리를 하며 여기까지가 내 역할이지 하는 것이 명료해졌다. 그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전향하며 명상을 마치니 어느 때 보다도 시원하고 개운하였다.
11. ‘마음공부가 왜 의미와 가치가 있느냐? 1) 가치관정립을 하여 궁극적 해탈인 히어앤나우의 걸림 없는 자유감과 무한감을 누리고 2) 다음 세상을 위한 삶을 이루고 3) 거치 염체를 정리하고 4)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며 우주를 정화한다.’는 말씀이 깊은 감동으로 남는다.
끝으로 함께한 도반님들의 양장력과 큰스님의 간절하신 에너지 덕분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깊은 감사합니다.
제48회 중급과정을 마치며
현강 최재홍
이번 중급과정에서도 첫날 첫 강의를 듣고 중급과정에 참석한 보람은 다 챙겼구나 싶었다. 정말 이제부터 더 좋음이 있다면 이는 다 보너스구나 하는 마음으로 첫 강의부터 시원한 사이다와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수련을 마치며 하는 말이지만 그 후의 보너스들도 참으로 어마어마했다.
● 解悟主義(悟와 修, 解悟와 證悟 문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다 맞다. 상황적으로 닭이 먼저일 때도, 달걀이 먼저일 때도 있다. ‘인식과 체험 역시 닭과 달걀의 문제와 같다’라는 말씀에 이은 ‘깨달음은 도구요, 목적은 체험이다’. 깨달음은 理致把持이고, 깨달음 없는 닦음은 蒸沙作昨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동사섭의 가풍인 解悟主義의 측면에서 悟와 修, 解悟와 證悟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참고로 아래의 정리는 지극히 개인적이 관점의 정리이다.
먼저 悟에 대한 정의를 證悟主義에서는 깨달음의 완성인 證悟만을 ‘悟’라고 한다. 끊임 없는닦음을 통한 깨달음의 완성을 ‘悟’라고 하니 이러한 관점에서는 깨달음 이후에는 더 이상의 닦음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성철스님의 ‘頓悟頓修’에서 ‘悟’는 證悟主義적 관점에서의 말씀이 아닌가 싶다. 解悟主義는 깨달음의 완성을 위한 첫 스탭인 理致의 理解를 통한 걸림 없는 자유감, 즉 해탈감의 경험에 ‘悟라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解悟를 바탕으로 證悟를 향해 닦아나간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지눌스님의 ’頓悟漸修‘의 ’悟‘는 解悟主義적 관점의 말씀인 것 같다.
解悟主義, 證悟主義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悟’의 정의에 있어서 廣狹의 문제이고, 목적이 깨달음의 완성인 證悟인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解悟主義의 입장을 따르고 싶다. 끝도 갓도 없는 닦음을 통해 證悟로 나아가는 수행보다는, 물론 이런 표현은 證悟主義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하게 들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순수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니 편하게 글을 이어간다. 理致의 理解를 통한 자유함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證悟를 향해 신나게 나아가고 싶다. 그러한 관점에서 解悟主義의 효율성이 나에게는 證悟主義에 비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솔직한 고백을 덧붙이자면 證悟主義적 닦음을 해나갈 타고난 성품도 부족하고, 자신 없음도 상당 부분 인정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을 개인적인 측면까지 고려하여 표현하면 지고한 인품자가 되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이루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고한 인품자는 證悟를 이룬 자이며, 유가의 君子, 도가의 至人, 불교의 菩薩, 동사섭의 白山을 의미한다. 그러한 우리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解悟主義적 깨달음과 닦음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수레’를 비유로 들어 정리해 본다.
지금 나에게는 없지만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수레가 있다고 하자. 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겠는가? 우선 그러한 수레와 사용설명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 解悟함은 바로 수레와 사용설명서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수레와 사용설명서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는가? 수레와 사용설명서가 ‘悟’라면 수레를 굴러가게 해주는 두 바퀴는 바로 ‘修’이다. 두 바퀴를 굴리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두 바퀴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가? 解悟에 대한 思惟·思索이 하나요. 그 것을 삶에서 行하는 것이 하나이다. 解悟에 대한 思惟·思索을 통해 解悟의 정도가 더욱 깊어지고, 그 行을 통해 신뢰와 확신이 더해진다. 이 둘은 역시 상보적으로 각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게 해준다. 따라서 두 바퀴를 굴려감에 있어서도 어느 쪽에 치우침이 없이 굴려 나갈 때 목적을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 있다. 한쪽 바퀴만 굴린다면 어찌되겠는가? 아무리 부지런히 굴려 나가봤자 제자리만 돌게 된다. 두 바퀴를 끊임없이 굴려가다 보면 수레의 크기도 성능도 향상되어 나 뿐만 아니라 모두를 태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리를 해놓고 나니 좀더 思惟하여 깔끔하게 다듬어야겠다는 필요성이 느껴진다.
● 왜 ‘解脫’을 해야하는가?
이번 중급과정에서 너무나도 좋았던 부분 중의 하나는 ‘왜’를 자꾸 강조하시며 물어주시는 것이었다. 목적에 대한 깨어있음은 정말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늘 그 부분에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데 친절하게 물어주시니 너무나 기쁘고 또 기뻤다.
‘왜 解脫을 해야 하는가’ 첫 번째 이유는 ‘최고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니 우리는 무엇을 하든 ‘행복’을 위해 하고 있음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못함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解脫이라 함은 그냥의 행복이 아닌 걸림없는 자유함과 같이 표현되는 최고의 행복이기에 해탈을 해야 한다. 문제는 두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업의 정화’ 때문이다. 이 표현에서 나는 꽤 걸려있었다. 무언가 대중적으로 확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인 것 같아서 늘 이 부분에 불편함이 있었다. 불교학을 공부하고 따르는 불제자로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불제자가 아닌 분들은 납득하고 수긍하며 받아들이지 못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모두가 수긍하는 표현을 늘 갈구하는 나의 흐름 때문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러한 관점이 지나친 나머지 그 부분에 思惟가 부족하여 그렇게 불편해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業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번뇌구조적인 삶으로 쌓여 온 것이 業이다. 따라서 해탈, 즉 지금 여기 걸림 없는 자유로 있음은 번뇌구조적 삶에서의 벗어남이고, 業의 생성의 역관이니 논리적으로 당연히
업의 정화과정이다.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불편했던 부분이 확연히 정리되니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시원했다. 아니 정말 정말 시원했다.
● 다음 生은 있는가? 없는가?
일단 ‘모른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그토록 목적에 깨어있음을 銘心하려하고 강조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확실한 기준으로써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인생을 표현하는 말 중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말처럼 인생은 늘 선택의 순간에 놓여진다. 그 선택의 순간 목적에 깨어있음은 고민의 시간을 줄여주는 확실한 기준이 된다. 즉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기준에 비추어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來生’에 대한 문제 역시 그러하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보니 ‘來生’이 있다는 관점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어제, 지난 일은 前生이다. 오래 머무르지 말라. 오래 머무른 만큼 苦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씀에 머물러 보았다. 無常을 사유해보니 찰라의 순간 前生, 今生, 來生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來生이 있는가 없는가’의 물음에 ‘모른다’를 답으로 여겼었는데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찰라의 순간에 나는 前生, 今生, 來生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의 기쁨을 마하님과 나누며 서로 고개 끄덕이며 기뻐하였다. 이러한 발견으로 죽음명상의 깊이까지 더욱 깊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삶의5대원리
일단 거울님께서 삶의5대원리를 백백법문(백번 듣고 백번 강의해야할 만큼 중요한 내용)의 2호에서 1호로 올려주셨다는 말씀이 참으로 반가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삶의5대원리야 말로 동사섭의 뼈대요, 큰 울타리다. 나머지는 모두 삶의5대원리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역할이니 단연 1호라 여겨진다. 삶의5대원리의 법문도 좋았지만 이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면서 삶의5대원리를 사유해보면서 아래와 같이 삶의5대원리의 도표를 정리해 보았다.
<도표>
가치관의 體인 정체-대원을 바탕으로 用인 수심-화합-작선을 균형 있게 닦아 나가면 그림과 같이 정체-대원이 하나가 되는, 즉 非我이면서 굳이 있다면 同體임이 확연해져서 體가 완성됨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마지막 그림은 보리방편문의 空·性·相 一如의 모습도 떠오르며 그림을 그리면서 뜻이 확연해져서 기뻤다.
● 觸受構造
촉수구조 또한 다시금 의미를 되새기며 사유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촉수구조의 사유의 내용은 다음의 그림으로 대신한다..
<그림> ...
이번 중급과정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깊이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결과물의 질을 떠나 사유를 통해 큰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기존에 정립해 놓은 내용들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고 각각의 조바라밀을 명상함에 있어서도 새로운 접근법도 시도해 보며 방편이 다듬어지는 즐거움과 방편을 통한 정화의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어 유익하고 행복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법을 설해 주신 거울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함께 해주신 모든 도반님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거울님의 가르침과 함께 해주신 도반님들의 장력에 힘입어 행복했고 만큼 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바람돌
6월말에 일반과정을 화끈하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삼십 몇 년 묵은 감정들을 끄집어내었기에 몸의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수명리듬과 호흡이 흐트러지고 상기증이 생기면서 4조바라밀을 하면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돌이켜 보았다. 치열하게 이틀간은 나지사를 하였으나 아무 변화가 없기에 비아명상을 다시금 해 보았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내가 아니다. 삼일정도를 주문처럼 외웠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호흡이 바로 잡히는 것을 보았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기뻤다. 두달간의 시간을 보내고 중급과정을 하게 되었다.
첫날 저녁시간에 참여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을 때 바로 이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바람돌이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이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평소 쓰는 다음의 별칭이다. 큰스님께서 해탈이란 지금여기 걸림 없는 자유감이라 말씀하셨을 때 바로 아하했다.
그 순간 나는 지금 이 과정에 충실하게 따라가 보리라 다짐했다.
둘째 날 오전 드디어 본격적인 이론 수업과 관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 실존적 괴로움에 당면해 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동사섭엘 왔다. 나의 실존적 괴로움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지족명상 실습시간이 주어졌다 무엇보다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마땅하다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더욱 치열하게 나자신에 몰입하려고 했다. 지족명상은 이미 나는 넘치는 소유 속에 있다는 것에 감사함이다. 우주 만물의 모든 존재에 감사하고 사람들에 감사하고 나에 감사합니다. 마음이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상비약처럼 10대 행복마중물을 갖고 있으면 마음이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금새 마음이 행복해진다. 10대 행복마중물은 전환 포인트를 갖게 해준다. 긍정 포인트를 찾기 위해 나로부터 비롯된 것에서 가족, 소속공동체, 세상속의 존재들에게 감사함이다. 실습시간이 되었다. 한 페이지가 넘도록 지족명상을 하였다.
다시 오요실로 모였다 큰 스님께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는 당연히 적었겠지 라고 말씀 하시는 순간에서야 알았다. 나는 부모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일반과정에서 많이 풀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마음에는 부모의 원망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 문제 해결에만 매달리기로 했다.
셋째 날 오후 실습시간에 나는 부모님의 문제를 두고 나지사명상을 하였다. 일단 혼자서 한번해보고 현공님께서 조언을 얻어서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나지사명상을 하였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날 저녁 물컵 놓기란 영상을 보았다. 저녁 수업을 마치고 현공님이 내 손을 꼬옥 잡아주시면서 저 동영상이 주는 의미가 클거라는 말씀을 해주시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물컵을 들고 있었는지 세삼 알게 되었다. 내가 손을 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너무도 쉽지만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넷째 날 오전 실습시간이 되었다. 부모님 문제에 이어 동생의 문제로 다시 나지사명상을 하게 되었다. 동생의 문제에 겠지로 써내려가는 중에 하나가 걸렸다. 그 부분은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였다. 내가 동생의 의지처가 되어 주지 못해 그렇겠지 이 문장으로 다시 나지사명상을 하였다. 비겁하고 치졸 변명거기들을 쏟아내었다. 지금까지 덮고만 싶었던, 숨기고 싶었던 나의 치졸함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내 속의 마음들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꼈다.
넷째 날 오후에 염체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염체는 생각덩어리이고 관념덩어리라는 것을 그저 이러저러한 생각이 있을 뿐 사실이 없다. 라는 이야기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볼펜이 인간의 눈에만 볼펜으로 보인다는 것. 현미경으로 보거나, 개미가 보거나 하면 다르다는 것, 볼펜이 있다는 생각을 해야 그곳에 볼펜이 있다는 사실성이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말씀은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저 관점이 있을 뿐이라는 말씀은 아하였다.
명상을 하는 과정에 큰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인 ‘과거는 모두 옳다. 그럴만한 상황이었으니 일어났을 거다. 과거를 모두 정리하고 현재로 돌아가서 행복할 수 있는 관점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오후에 명상 실습시간을 하다가 문득 과거에 육아방식의 전환점을 겨졌던 때가 떠올랐다. 자식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내 뜻대로 해서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들에게서 정말 자유로워졌다. 그 존재 자체로 기쁨이었기 사춘기 과정을 겪는 동안에도 잘 자라서 지금 내가 동사섭에 있는 동안에 전혀 걱정 없이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컵을 놓아 보았다는 경험이 있다. 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 나는 지금 내가 당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저녁시간 지족명상을 나누면서 다람님의 모습을 보면서 고급과정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나는 동사섭을 만나서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에 매이지 않을 거란 믿음과 앞으로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겨서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걸림 없는 자유에 대한 믿음’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다온(명원)
우리 모두의 삶의 목적은 행복해탈이다. 행복해탈을 이루기 위해 행복마을 동사섭에서는 “천하의 주인인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수심 잘하여 마음천국 이루고 화합 잘하여 관계천국 이루고 나아가 작선 잘하여 세상천국 이루리라.”하는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이라는 삶의 5대원리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 주바라밀인 돈망과 4대 조바라밀이 수심의 내용인데 중급과정에서는 4대 조바라밀의 이해와 체험에 주력한다. 중급과정은 고급과정인 돈망파지를 위한 필수 과정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먼저 조바라밀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인문학으로 이론체계를 확실히 해오하고, 조바라밀을 관행하여 지금 여기 걸림 없는 자유감을 체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박 5일 동안 진행된 중급과정의 수련 내용을 이론편과 관행편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이론편
진정으로 행복해탈을 원하고, 조바라밀의 이해와 관행으로 걸림 없는 자유를 누리리라 하는 가치관을 확고히 하여 깨달음을 도구로 삼아 해탈감의 체험으로 나아간다.
동사섭 법리 하나하나가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히 번뇌구조론과 수심체계론은 정말 놀랍고 찬탄과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개념이전의 텅빈 깨끗한 본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 좋다 – 싶다 - 썅 – 불만사고”의 굴레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존재하고 내가 있다고 실체시하는 어리석은 착각이 근본 원인이다.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좋고 싫음의 판단, 분별이 이어지고, 좋은 것은 갖고 싶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할 때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싶다”와 “썅”이 반복되면서 불만사고가 마음속에 견고히 자리잡고, 다시 이 불만사고는 “좋다”고 하는 가치사고를 부채질하며 그로 인해 실체사고는 더욱 굳어져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불교에서는 실체사고와 가치사고, 불만사고를 치심, 어리석음이라 하고, “싶다”는 욕구를 탐심, 분노를 진심이라고 한다. 이런 굴레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는 그저 쾌락만 좇으며 동물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이것이 고통임을 자각하고 고통의 원인을 알고 나면 벗어나려는 의지가 생겨나고 그 방법을 찾게 된다. 번뇌구조론은 불교학에서 다소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사성제, 12연기의 핵심을 너무나 현실적이고 가슴에 와 닿게 해석한 거 같아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했다. 너무도 반가웠고 강한 아하!를 동반한 감사를 수없이 되뇌이게 하는 이론이다. 이런 이론체계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유와 고민 끝에 탄생하였을까 생각하니 울컥해졌다.
수심체계론은 탐진치 삼독을 다스려서 행복해탈에 이르는 관행법의 가르침이다. 불만사고는 지족명상으로, 실체사고와 가치사고는 비아명상으로 다스리고, 분노는 나지사명상, 욕구는 죽음명상으로 다스려 해탈케 한다. 이렇게 분명한 이치를 가진 실질적인 관행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미로에서 탈출구를 찾은 것 마냥 뛸 듯이 기쁘다.
해오해탈주의 오요는 사유를 하여 앎에 이르는 5가지 요소이다. 우리의 의식공간은 사유축인 知, 감성축인 情, 의지축인 義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知의 부품이 오요이다. 이치를 깨닫는 성품인 이성으로 사유하여 법을 깨달아 감성을 아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바로 천국이요, 나없음을 깨달으면 그대로 니르바나구나 하여졌다.
염체론 또한 소중한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관념덩어리인 염체는 유식불교의 일체유심조와 같다.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야 사실로 다가오는데 생각을 빼면 사실은 없다. 그러니 일체유심조다.” 라는 말씀에서 아하!가 되었다. 염체의 작용으로 삶이 있고, 관점의 변화에 따라 삶이 달라지니 그 실체성을 말할 수 없음이 분명해져서 안개가 걷히듯 밝아져서 좋았다. 모든 것이 오직 생각이라면 머물지 않고 늘 변화하는 생각에 실체는 없다. 그러므로 일체유심조가 곧 空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유정법이 사실이라는 말이 이해된다.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무유정법이 와 닿지 않았었는데 연기에 의한 변화만 있을 뿐 딱히 정해진 법이 없어서 무유정법이 성립되는 구나 하고 이해되니 시원하고 기쁘다.
촉수구조는 육근인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육식인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육경인 색성향미촉법을 만나 느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삼사화합이 촉하면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항상 수반된다. 그러므로 좋은 느낌을 만드는 촉을 유념하며 살아야 한다.
2. 관행편
좌종명상에서 종이 한번 울릴 때마다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니 공부할 시간이 늘어나고 행복해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남에 감사하고 그냥 있는 고요함이 좋을 뿐이다.
지족명상을 하면서 혼, 몸, 경험으로 이미 9천조 부자로 지족한데 행복마중물을 또 부으니 풍부하고 충만한 지족감 그대로 행복했다. 사람, 사물, 모든 존재, 전우주의 유위, 무위로 명상이 확대되니 무수한 인연들이 존귀하고 경이롭다. 또한 지족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존재들에 대해 찬탄, 감사, 배려를 되뇌이며 걸으니 “한 생각 일으키니 지족천국이로다.”하는 인생삼중주의 한 구절이 떠오르고 범사에 감사함이 지극해져 절로 합장이 되었다.
비아명상을 하면서 “환경은 내가 아니다, 몸은 내가 아니다, 마음은 내가 아니다, 식주체기능은 내가 아니다, 순수의식은 내가 아니다, 묘유는 내가 아니다.” 하고 쓸어버릴 때 시원한감이 있었다. 그래도 뭔가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면 시간적, 공간적으로 ‘나’를 분석해 들어가 보았다. 시간적 측면에서 볼 때, 까마득한 우주의 탄생시부터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늘 변화되고 있는 시간속에서 어느 시간대를 꼭 짚어서 나라고 할 수 있는가. 공간적 측면으로도, 멀리 우주에서 보면 사라지고 없고, 흩어놓고 보아도 텅 빔만 남는다. 또한 나란 존재를 사방팔방 다시점으로 돌려보아도 어느 시점을 콕 짚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역할에 따라, 보여 지는 관점에 따라 이름이 무수히 바뀌니 실체가 없이 空하다. [금강경]에 왜 그리 ‘是名’이 많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라고 할 만한 실체는 정말 없었고 ‘나’로부터 해방되었다. 우주는 그냥 텅 비어 깨끗하였고 담담하고 고요함만 있을 뿐이었다.
나지사명상을 또박또박 해보니 ‘구나’하는 상황이 실감나고 ‘겠지’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깊어졌다.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의 중심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나의 잘못된 고집, 사고방식을 인식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참회로 이어지고 인과법이 확연히 다가왔다. 그리고 ‘감사’를 하면서 그 존재가 행복하여지이다 하고 기 전 향이 저절로 되니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따뜻함으로 가득 찼다.
죽음명상을 하면서 가장 크게 걸린 것은 윤회였다. 불교에서는 완전한 니르바나에 이르지 못하면 三界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완전한 행복해탈을 하지 못하여 다시 윤회할 것이 자명하니 두려워졌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에서 ‘죽은 시점의 수준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윤회다.’ 라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죽는다고 해도 이 좋은 공부를 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니 다음생도 이 공부수준에서 시작할 것이며 행복해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기자 편안해졌다. 또한 생각나지 않지만 내게 상처를 주었던 인연,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모든 인연들에게 지극한 참회를 올리고 나니 인연 지어진 것에 감사하고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죽음명상을 거듭하다보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동사섭의 최종 목표인 개념이전의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을 없애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도 죽음도 습관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염체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일 뿐이라면 변화하는 생각 속에 본래 삶도 죽음도 없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삶도 죽음도 空한 것으로 보아진다.
4대 조바라밀을 관행하면서 연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온 우주는 연기적 관계로 어우러져 흘러가고 있구나 하여졌다. 연기하기에 감사하고, 연기하기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연기하기에 나지사가 가능하며 연기하기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구나 하였다. 존재에 대한 관념의 변화로 세상이 空하다고 여겨지니 편안해졌다.
중급과정 수행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느낌으로 있는지 자주 돌아보는 내가 보였다. 지금 여기 이 순간 행복한가를 확인하고 행복을 창출해 내려 노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깨어있음의 간격이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아 기쁘고 존재의 존귀함에 미소가 지어지니 세상이 아름답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동사섭법리를 ‘만큼 철학’을 끌어들여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한 가지씩 백백법문을 해보는 작선을 하리라 다짐한다. 끝으로 행복마을 동사섭에 인연됨에 지극히 감사하며 큰스님을 비롯한 모든 동사섭식구들과 도반님들께 무한 감사를 올린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열매
조바라밀(지족명상, 비아명상,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1.1 개념 및 원리
o 번뇌 : 나와 인류의 행복을 가로 막는 미성숙한 심리 상태
o 번뇌구조 : 있다. 좋다. 싶다, 썅, 불만사고 - 순수 우리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셨다.
o 실체사고 : 있다. 좋다 - 번뇌의 첫 씨앗
o 조바라밀
- 지족명상 : 불만사고(특수사고)
번뇌의 정화로 해탈
- 실체사고 : 비아명상 ..........
치심
- 욕 구 : 죽음명상 ..........
탐심
분 노 : 나지사명상 .......
진심
※ 고급과정 돈망파지를 위한 필수과정이 중급 조바라밀
※ 죽음명상
걸림 :
⓵ 욕구
⓶ 책임감
⓷ 존재욕, 생명욕
전환 :
강화
여기까지다
본래 본질의 어버지다.
중독
그치자
* 의지+가 자연+로 전환됨.
1.2 감동(느낌 및 아하!점)
⓵ 지족명상을 거듭하다가 불만의 대상이 감사의 대상임을 깨닫게 되어 기뻤다.
⓶ 10대 행복마중물을 적으며 행복해탈의 존재임을 확인했다.
⓷ 비아명상을 하면서 즉비의 해탈감, 시명 ㉯는 보살행의 도구임을 확인하게 되어 기뻤다.
⓸ 나지사명상 겠지 감사로 긍정시각 발달
⓹ 죽음명상으로 사생관에 관심
⓺ 염체 치우면 걸림 없이 갈 수 있음의 가벼움
⓻ 물 컵의 무게 동영상은 아하 해진다!
1.3 실천의지
⓵ 수행점검표 실천의지 굳힘 – 한찰라가 무량겁이다.
⓶ 돈망록 1000번 관행하기
⓷ 꾸준히 엔카운터 수행해가기, 느낌에 깨어 있기
2. 중고급과정 필수 인문학
(번뇌구조, 삶의 오대원리, 해오해탈주의5요, 행복론, 염체론, 단자론, 촉수구조, 등)
2.1. 개념 및 원리
o 삶의 5대원리 – 바른가치관(정견)의 벼리
- 정체, 대원 : 체
- 수심, 화합, 작선 : 용
o 해오해탈주의오요 : ⓵ 이성, ⓶ 사유, ⓷ 법, ⓸ 이해, ⓹정(니르바나)
2.2 감동(느낌 및 아하!점)
⓵ 발사대 인문학 튼실하니 로켓이 높이 뜬다. 에 한 표
⓶ 윤회 - 믿을만한 단서가 있으니 믿는다.
⓷ 윤회하는 주체가 무아이다.
⓸ 마음세계를 최고의 경지로 끌어 올려야 한다!
다음 세상까지 위한 삶을 사는 것 – 다음 세상의 씨앗이 된다는 것.
2.3 실천의지
o 수분각에 이르기까지 수행처에서 얼찐대기(수행하기)
o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롭게 지행득 해가기
3. 기타(분반실습, 수행점검표, 스피치, 근황나눔 등)
⓵ 개인적인 걸림 공유 - 상호간에 도움 주고받음이 유익했다.
⓶ 좌종소리 - 최고의 극락으로 임재하기 - ⓹ 4 3 2 1
종소리 없이도 최고의 행복해탈로 임재하기 – 돈망명상이다.
⓷ 근황나눔으로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넓혀지고 친밀감이 느껴짐
⓸ 수행점검표 방법론의 의문을 해소 할 수 있어 유익했다.
⓹ 법리 스피치가 수행간 체험의 지지대가 되었음을 확인하여 놀랐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法空법공
1. 조바라밀(지족명상, 비아명상,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1.1 개념 및 원리
먼저 거울님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知足. 우주천지 모두다 꽉 차 있는 풍부한 행복감을 배웠다. 혼, 몸, 경험 9000조 부자라는 게 너무 행복입니다.
非我. 地水火風 和合物이며 원자분석 분자분석 나 아니다.
나지사. 사실경계에서 그렇구나 그러겠지 감사합니다. 하니 걸릴게 없네, 가만히 있어도 우주는 흐르며 흘러도 그 자리가 그 자리다.
죽음. 사실 생명이 육체 없어진다는 게 서운했는데 죽는 게 아니라 변할 뿐이다고 생각을 하니 그러려니 하며 마음이 편해졌다. 동사섭 거울님을 뵙고 가르침 받은 거 너무 감사하다.
1.2 감동(느낌 및 아하!점)
諸般 境界 現前에서 조바라밀로 다스리니 걸리거나 막힘이 없다 하니 아하 참 좋은 공부 했다 해서 뿌듯한 마음이다. 번뇌를 놓을 수 있는가 ??을 배운 것 정말 감동이 느껴진다.
1.3 실천의지
日常生活에서 나지사명상을 꼭 현실에서 실천 할 것을 다짐합니다. 있다 좋다 싶다 썅을 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다.
2. 중고급과정 필수 인문학
(번뇌구조, 삶의 오대원리, 해오해탈주의5요, 행복론, 염체론, 단자론, 촉수구조, 등)
2.1. 개념 및 원리
正體, 大願, 修心, 和合, 作善 시 이것이 너무 마음에 와 닿기에 삶에서 더욱 더 행하며 살리라 다짐 또 다짐해 본다.
나지사명상 잘하면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의 뿌리가 염체로 이어져 간다는 말씀 그 뿌리가 느낌이라는 가르침이시다.
2.2 감동(느낌 및 아하!점)
때가 되면 누구나 피할 수 없이 떠나 가는 길 죽음 앞에서 죽는 게 아니라 변할 뿐이라는 게 너무 반갑고 그지없이 감동적이다.
2.3 실천의지
나는 무슨 경계든 나지사명상을 실천하려고 노력 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3. 기타(분반실습, 수행점검표, 스피치, 근황나눔 등)
오전공부 세밀차게 설해주시는 거울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동사섭 공부가 너무 감격적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현공님의 비유 말씀을 다각적으로 이해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행은 그냥 깨어 있음이 내 할 일 전부라는 가르침 너무 쉽고 간단명료합니다.
내 삶에서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사는 기술을 배워갑니다.
오요명상 조바라밀 앞세우고 살라고 마음 깊이 다짐해봅니다.
제48회 중급과정 소감문
보광(조혜윤) 2016.08.20.
참여자의 마음
중급과정 참여 동기를 물으신다. 1) 왜 참여했는가? 2) 거는 기대는? 3) 진정한 해탈을 원하는가? 4) 해탈이란? 5) 왜 해탈을 해야 하는가?
비단 중급과정 뿐 아니라 일반, 고급은 물론 지도자 과정, 활불 학당과 명상 대마다 매순간 물어야할 내용이다. 행복마을 공동체 요원으로서 당연한 참여가 아닌 혼의 진정한 외침에 부응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동기를 물어봐주시니 매너리즘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듯 집중된다. 감사하다. 지도자로서 법리의 아하도를 5로 끌어올릴 목표점을 권해주시니 4대 조바라밀을 개념적으로 세밀하고 치열하게 숙지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솟아난다.
5분 이내 득도 될 준비된 자의 상태를 점검해 본다. 이고득락의 동기가 크고, 지금 여기 자유를 갈망하며, 느낌에 눈 떠있고, 번뇌 시스템을 이해하고 해오주의 5요를 이해하며, 최소한의 인문학을 알고 있는 자. 이러한 6가지 또한 상태를 점검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준점이라 든든하다. 만큼 갖추고 있고 만큼 해나가겠지만 보다 온전한 걸림 없는 자유에 대한 목표점이 생겨서 선명하다.
2. 중급과정의 정체성
일반과정의 수심파트 중에서 초월명상의 복습(심화), 행복해탈이 목적이자 모든 것의 기초요 기본, 주조세 바라밀 중에서 조바라밀, 고급과정의 돈망 파지를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정체성을 말씀해주시니 중급과정의 위상이 선명해져서 생겨서 좋다.
3. 번뇌구조와 수심체계
번뇌 구조는 중생 삶의 MRI인 것처럼 괴로움의 원인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언제 들어도 통쾌하다. 이 구조론 안에 중생의 업장 놀음 및 번뇌에서부터 성자들의 극락의 삶까지 한눈에 구조화 되어 있어 어떤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아도 이안에서 문제도 답도 찾을 수 있다. 지도를 명확히 가지고 있으니 길을 헤맬 필요가 없다. 이 지도만 섬세히 익히고 길을 찾아 나서면 그만이다.
아미타불의 공성상 일여가 하나의 something으로 드러나는 것임이 수긍이 더 되어 존재의 실상을 음미하는 뿌듯함이 있었다. 현상론적으로 상으로 보이는 것 몽환포영이며, 본체론적으로 들여다보면 공으로 비어있고 에너지 적으로 성의 상태로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something일 뿐이다. 정견을 손에 쥐게 된 것은 큰 은혜로움이다. 개념이전의 세계는 피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몇 십 년을 고행해야만 도달하는 곳이 아닌, 깨달음만으로 지금 육근으로 촉하는 그것임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어 시원하다.
4. 지족명상(4단계) 실습, 10대 행복마중물
1단계 혼,몸,경험 9천조 부자. 2단계 나의 10대 행복마중물, 3단계 가족 및 소속공동체, 4단계 세상, 10차원의 지족이 4단계로 더욱 촐개 지어져서 정리되는 기쁨이 있다. 위의 것이면 전부이겠구나 싶어지며 명상하면서 정말 그러함을 느껴서 반가웠다.
1단계인 혼.몸,경험 9천조를 명상하니 혼에서는 한없이 소프트하고 기체이자 에너지 같아서 자유스러움이 느껴졌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몸명상을 했더니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대자연의 메카니즘이 작용하는 신비 자체였다. 경험을 명상하니 혼과 몸을 도구로 체험해 온 수많은 촛대와 불꽃들이 행복감으로 풍성했다.
2단계인 10대 행복마중물을 떠올려보니 동사섭 법리를 만난 기쁨은 이생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법리에서 충족되는 행복마중물로 내생까지 지속가능한 행복이라 튼실하다.
3단계 가족과 행복마을 공동체를 떠올리니, 든든하고 따뜻함이 올라온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부모님의 헌신. 그것을 먹으면서 나는 큰 트라우마 없이 온전히 역할 하는 사람이 되었다. 감사할수록 더 감사하고 부모님과 맺어진 인연이 더없이 소중하다. 행복마을 공동체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부분이 많아져서 다행이다. 공동체 생활을 해 나가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터, 나보다 먼저 오랜 시간을 지켜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함이 올라온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나도 이 자리에 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자기를 지키고 역사를 이뤄나가는 자체로도 감사와 존경이 일어난다.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나지사명상꺼리가 있지만 있고 없음의 차이와 긍정부분을 세어보면 우호감이 더욱 증가되는 추세라 안심이다. 3단계까지 명상을 하고났더니 충만감이 커져서 세상 부분에서는 그저 감사함이 많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어서 감사하고 덜하고 싶은 일을 해주어 감사하다. 그것만으로 이것저것 평가할 일이 없다. 지금 이만큼 이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상에 그저 감사 할 뿐이다.
5. 비아명상
이번 비아명상에서는 식 주체 기능과 순수의식이 공하다는 것을 선명히 알게 되는 큰 소득이 있었다. 아트마니즘이 있을 정도로 가장 ‘나’로 여겨지는 식 주체 기능도 확인이 불가능 하니 있다고 말할 수 없어 공하다는 것이다. 100번 양보하여 확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식 주체 기능의 무상함과 식 주체 기능만 끊어서 역할이 불가능하고 수상행 및 지수화풍이 함께 어우러져야 역할이 가능하니 연기적으로 공하다는 것이 수긍되어 환희롭다. 이와 같은 논리로 순수의식을 접근하니 역시 공하다. 어떤 것이라도 떠오르면 즉비하라. 즉비하면서 딱딱한 실체에 틈을 내고 개념 껍데기를 훌훌 벗어내 버린다. 먼저 즉비하고 편의상 시명하면서 살아갈 때 걸림은 없다. 습관적으로 즉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진언처럼 즉비를 읊조리리라 다짐해본다. 즉비, 즉비, 즉비, 즉비 그리고 즉비. 실체감이 사라져 부딪힐 일이 없다. 자유롭다.
6. 나지사명상
나지사명상은 곱씹을수록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신기하다. 유위권의 중생들에게도 유용하면서도 무위권의 성자들의 의식세계를 드러내기도 하는 나지사명상이 팔방미인처럼 든든하다. 무심하게 화엄삼매를 여여하게 바라다보며 구나하고, 겠지를 통해서 연기를 살피며 감사를 통해 행복을 맛보게 된다. 번뇌가 결국 보리이며 행복해탈임을 구나겠지감사의 시스템만 거치면 알게 되는 명상법이라서 든든하다. 화3요가 수심 화합 작선을 아우르듯이 무위와 유위, 중생과 성자를 아우르는 복합 명상의 의미가 부가되어 흥미롭다.
7. 죽음명상
죽음이라는 절대한계에 맞서서 실감하고 직면하고 전환을 통해서 해탈감을 맛보고 결국 의미발견을 하게 되는 죽음명상은 탐욕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번에는 큰스님께서 욕구를 크게 3가지로 분류하시어 해결방안까지 마련해주시니 삶의 안내 가이드가 제시된 것처럼 든든하다.
장애물이 되는 욕구는 싶음 욕구, 책임감, 존재욕(생명욕)으로 크게 분류된다. 돌이켜 보면 그 동안 직면했던 욕구들도 위의 세 가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이를 통해 삶의 원동력 또한 위의 세 가지로 여겨지니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싶음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이 강화 되어 업장이 두터워지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접근이다. 이를 통해서 욕구를 향해 달려 나가는 엑셀에 브레이크를 밟아서 삶에서도 업장 강화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이 덜해질 것으로 여겨져 다행이다. 두 번째 책임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기까지가 내 몫이다’하며 인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해왔던 죽음명상의 대표 해결방안인 ‘이번 생은 여기까지’의 전환이었다. 대체로 책임감 부분에서 자유롭게 해주니 가족 및 일에 대한 책임감에서도 ‘여기까지’로 범위를 정하며 더욱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마지막은 존재욕에 대해서는 ‘죽음이란 없다. 변화가 있을 뿐이다.’이다 존재 자체에 대한 있음으로 전환하며 벗어나는 것인데 이 또한 변화 안에 죽음이 들어가니 손바닥 뒤집는 듯한 수월하고 가벼움이 있다. 그 어디에도 즉비 죽음, 시명 죽음, 그저 어떤 변화의 흐름 한 단락에 걸쳐져 있는 죽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로 연결된 기분이 들면서 편안하고 안심이다.
8. 삼세윤회
왜 그토록 조바라밀을 하는가? 이유를 선명히 하니 조바라밀이라는 인을 통해서 드러날 과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흐뭇하다. 가장 먼저는 내 마음이 평화로우면 주변에 향기가 퍼져나가 세상에 기여를 하게 되며, 멘토로서 귀감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공부 길에 대한 자극이 된다. 또한 윤회할 때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고 거친 염체를 정화하게 된다. 개인의 행복 해탈이 하나의 유기체인 우주를 밝히는 일과 연결되니 공표치는 횟수만큼 환해질 생각에 흐뭇하다.
‘윤회하는 그 무엇이 무아이다’라는 말씀이 사유를 통해 확연한 논지가 세워지니 기쁘다. 그전에는 윤회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결되는 ‘있음’의 개념이 많았으나 윤회하는 그 대상도 변화하는 흐름에 이합집산 형식으로 생하고 멸하니 윤회는 고통의 주홍글씨가 새겨진 꼬리표가 아닌 가능성으로 열린 의식의 흐름이다. 담담하고 벅차다.
9. 필수인문학 – 이론 & 스피치 실습
스피치를 통해서 이론이 몇 가지 덜 선명한 부분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듣고 말하는 것이 요청됨을 알아서 흐뭇하다. 한번이라도 강의나 스피치를 했던 내용들은 그런대로 기억이 났지만, 해오해탈주의5요의 경우 사유가 적었고 직접 표현해 보지 않았더니 역시 흐릿한 부분이 드러났다. 표현의 공덕을 확인하게 되어 기쁘다.
사생관은 죽음이라는 삶에 대한 관점을 의미한다. 삶에서 시작해서 죽으로 끝나므로 시작과 종료가 별도로 존재하는 느낌의 생사관도 있다. 그러나 생사관과 사생관으로 단어순서 만 바꿨을 뿐인데 죽음이라는 삶에 대한 관점이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편입되는 전환이 신선하다. 이왕이면 이고득락에 도움이 되는 관점을 취해야 할 것이며 죽음 이후 내생에 대해서 알지 못하므로 이생에 도움이 되는 윤회를 수용하는 것이 권장된다는 이론이다. 삼세윤회에 이어서 죽음을 통해서 의미를 찾고 혼을 맑히는 작업이 의식적으로라도 필요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니 삶에 대한 의지가 다져진다. 사생관을 거듭 음미 하면 할수록 죽음이란 삶에서 존재하는 변화의 일부임이 더욱 수긍 되어질 것으로 여겨져 가볍다.
10. 물 컵 놓기 강의 메시지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들고 있는 시간이 문제다. 붙들고 있지 않으면 해탈이다. 물 컵을 놓아라. 걸림 없는 자유다. 메시지가 더욱 선명해서 시원하다. 컵은 갖고 싶고, 하고 싶고, 지키고 싶은 모든 것이다. 좋음도 나쁨도 일단 놓음으로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메시지를 떠 올리며 징징권의 걸림도 빨리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 군침 돈다.
11. 염체론
없음에 대해서 보다 선명한 정리가 새겨져서 좋다. 실체성이 없으며 존재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거듭 시원하다. 존재는 하겠으나 실체성이 없으니 공하므로 붙들 것이 없으므로 걸림도 없다. 공에 대한 의미를 다각도로 음미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 대한 관점이 명확해 져서 돈망이 확연해 진다. 반복 관행의 공덕을 체험하게 되어 기쁘다.
염체에는 감정염체, 욕구염체, 의지염체, 신념염체, 인상염체, 사실염체가 있다. 모든 것이 사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있는 것이다. 사실도 마음의 작용이므로 염체로 전환할 때 의식 구조가 허공처럼 비고 빈다. 모든 것이 염체이므로 지우고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감사하다.
12. 촉수구조
촉수 구조란 식 주체 기능이 6근을 통해 6경을 촉하는 삼사화합을 말한다. 방대하고 엄청나다고 느껴지는 세상의 있음과 없음을 인지하고 느끼는 것이 모두 촉수구조에 달려있다. 마음공부 뿐 아니라 삶의 전부이다. 삶의 전부가 삼사화합의 작용이니 삼사 화합 관리에 따라서 삶을 살고 세계를 인지하고 체험 할 수 있게 된다. 삶이라는 하드웨어에서 삼사화합이라는 기능에 따라 그 모습이 그려진다. 삼사화합 관리를 깨어서 할 일이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모든 감각 인지 과정에는 그에 따른 느낌을 수반한다. 느낌 좋음이 행복이니 느낌 좋은 촉을 실행하자. 이왕이면 이미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음을 깨닫자. 그리고 천하는 이대로 공하니 공한 것을 촉하여 무한한 해탈감을 느끼자. 촉수 구조를 통해서 어디에 촉할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게 되니 선택만이 남았다. 모르면 복잡하고 알면 간단하다는 촌철처럼 인생이 간단하다. 무위법을 촉하고 살아가는 일이 만만한 것은 아니나 쉽고 용이하게 느껴져서 좋다.
제48회 동사섭 중급과정 소감문
(2016. 8. 16 ~ 20)
수선화 김수선
동사섭 중급과정 참가동기
4대 조바라밀의 이론을 온전히 이해하고 체험하여 생활화하여 행복해탈 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 중에서도 비아명상에 대한 이해화 체험이 절실했다.
2. 어떻습니까?
좌종소리를 듣자마자 나의 상태를 극락으로 만들어 버려라. 바로 이 순간의 느낌을 창출한다. 이것을 거듭하다보면 1년 후쯤 언제나 그냥 있어도 좋을 것이다.
좌종소리가 울린다. 그냥 있는다. 몸도 걸림없고 마음도 걸림없이 고요하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그냥있음을 하니 약간의 긴장이 있었지만 거듭할수록 자연스러워지고 깊어진다. 산들바람이 잠시 머물다 가는 듯 청량하고 시원하다. 아~~ 참 좋다!
어떻습니까? 그 답에 명료하게 깨어있어라. 그 답은 ‘지금 여기 자유로운 느낌’이다. 그 인이 바로 공표치기이다. 있다. 좋다. 싶다. 썅!, 불만사고의 수심체계를 이론적으로 딱 이해해서 확연하게 내 속에 활구로 있어야 한다. 거듭 음미하면서 사유하여 알고 잇는 것이 지혜로 거듭나야 한다.
큰 스님 “어떻습니까”는 나를 동사섭으로 계속 발걸음하게 한 핵심 질문이었다. 삶에서 문득문득 “어떻습니까?”하는 큰 스님 목소리가 가슴에서 울려오면 자신을 살펴본다. ‘혼도 몸도 걸림없는 자유로움 속에 있구나!’를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이 크다. 수심체계를 이론적으로 딱 이해하고 거듭 사유해서 알고 있는 것이 지혜가 되도록 하라는 큰 스님 말씀, 정말 그렇다! 공부 목적이 명료해진다.
3. 번뇌구조와 수심체계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어떻게 세트로 구성되어 있나를 보여주는 것이 번뇌구조이고,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이 수심체계이다.
우리의 원래 마음은 개념이전, 텅 빔인데 너다, 나다하고 개념 지으면서 있다라는 실체사고가 시작된다. 또 있다하면 바로 그것이 좋다, 나쁘다고 하는 가치사고로 이어진다. 좋은 것은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니 탐심이다. 싶음 다음에는 그 싶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썅!”하는 분노가 생긴다. 그리고 있다-좋다-싶다-썅!을 반복하면서 불만사고가 생긴다. 불만사고는 지족명상, 있다하는 실체사고와 좋다하는 가치사고는 비아명상, 싶다하는 탐심은 죽음명상, 썅!하는 분노는 나지사명상으로 다스린다.
번뇌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일어나는지, 각각의 번뇌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렇게 명쾌한 설명이 또 있을까? 번뇌구조와 수심체계를 거듭 사유해서 번뇌 척결의 날카로운 도구로 써보겠다 다짐한다.
4. 지족명상
행복마중물 0번은 이 존재의 혼, 몸, 경험이 9000조 부자인 것부터 시작하라. 나의 10대 행복마중물을 정하고 거듭 음미하라. 가족, 직장 등 소속공동체에서 사람들에 대한 행복마중물을 정리하라. 공기, 물, 중력 등 세상을 둘러볼 때 감사하라.
지족명상산책소감: 햇살, 바람, 매미소리. 물소리, 개미들, 메뚜기들, 풀과 밤나무... 내 몸과 혼까지도... 모든 것이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이 우주가 정말 신비롭고 감사했다. 첫 날 저녁에 큰 스님께서 보여주신 태아 동영상이 떠올랐다. 정자가 힘찬 움직임으로 난자와 만나면서부터 생성되기 시작하는 세포와 핏줄, 심장의 움직임은 내가 한 것인가? 우주가 한 것인가? 그것은 그대로 약동하는 우주의 생명력이었다. 내 몸을 보면 모두가 우주에서 온 것이요, 혼도 우주에서 온 것이다. ‘나’라는 존재 어디에도 ‘나’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우주의 생명력을 사유하다보니 저절로 비아로 이어진다. 우주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느껴진다. op가 99.9999%로 마구 올라간다. 아! 좋다!
5. 비아명상
‘나다’라고 생각하면 괴로움이 만들어지니까 ‘나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참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주란 마음, 몸, 환경으로 나눌 수 있다. ‘환경은 내가 아니다.’하면서 의식권에서 던져버릴 때의 느낌에 유념한다. ‘몸은 내가 아니다.’ 지수화풍, 정난미채이다. ‘수상행식’ 마음을 이루는 네가지 구조물일 뿐 내가 아니다. 텅 비어버린다. 순수의식도 순수의식일 뿐 내가 아니다. 더 텅 빈 순수의식도 내가 아니다. 모든 것 앞에 즉비를 붙여라. 묘유도 내가 아니다. 언어를 편의상 쓸 뿐이지 언어를 쓰되 언어의 피해를 입지 마라.
비아명상소감: “없다”의 뜻이 “시간, 공간적으로 불변하는 무엇이 없다.”로 명확해졌다. 그동안 비아명상에서 “있는데 왜 없다고 하지?”하는 의문이 가끔 있었는데 정리되니 시원하다. 또 하나는 나의 해탈이 곧 우주 의식 정화에 기여하고 다음 생의 씨앗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38억년 우주의 역사가 이렇게 이어져 왔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나서 비아명상을 하니 환경 내가 아니다. 지수화풍 내가 아니다, 수상행식 내가 아니다 할 때 텅 빈 공간만 남는다. 나 없음이 이런 맛이었구나! 기쁘고 개운하다.
6. 나지사명상
구나: 아무런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그냥 여여히 바라보는 상태이다. “길동이가 이놈아 하는구나.” 할 때 떨어뜨려 놓고 보면 멀어진 마음이 느껴지는가?
겠지: “길동이가 이놈아 할 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나의 부덕이다, 그의 아픔이다.
감사: 그만하니 감사하다.
나지사명상 소감: 나지사명상을 또박또박 적어가면서 했다. 조금이라도 걸림이 느껴지는 것을 적어 가며 했는데 겠지, 감사를 하면서 연기와 인과로써 이해되며 상대방 존재가 보다 온전히 안아지고 존중되는 따뜻함이 있었다.
7. 죽음명상
⓵ 실감
⓶ 직면: 죽음을 가로막는 염체를 직면하라.(욕구, 책임감, 존재욕, 생명욕)
⓷ 전환(욕구>업장 멈춤, 책임감>여기까지야, 존재욕,생명욕>공성상 일여, 변화가 있을 뿐 본래 생사가 없다. 입자요 에너지다.)
⓸ 해탈
⓹ 의미발견
죽음명상 소감:
⓵ 직면–아이들 때문에 못 죽겠다. 성취욕(돈망파지, 수업전문가) 때문에 못 죽겠다.
⓶ 전환-여기까지야, 업장멈춤.
⓷ 의미발견-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사랑하자. 삶이 목적이 아니라 욕구충족이 목적이었다. 살아있는 동안만큼 즐겁게 구현하자.
⓸느낌: 지족, 비아명상으로 공함이 이해되니 죽음명사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의미발견으로 삶을 좀 더 가볍게 적극적으로 살아갈 의지가 생기니 기쁘다. 부보님의 죽음에 대해 명상하여 부모님의 혼이 행복해탈 하시기를 기원하는 것도 참 좋았다.
8. 수심명상을 왜 하는가? 해탈이 왜 그토록 좋은가?
지금 여기 걸림없는 자유를 누린다. 내 속에 쌓인 염체가 정화가 된다. 내 주변이 나로 인해 평화로워진다. 온 우주가 평화로워진다. 온 우주가 정화된다. 다음 세상의 씨앗이 된다.
삼세윤회: 법신-보신-화신, 공성상 일여, 본체론적-변환대-현상론적
수심명상을 하는 목적을 삼세윤회와 함께 사유하니 우주가 시간축 공간축으로 무한 확장되며 수심명상으로 정화되는 우주가 확연히 느껴져서 정말 좋겠구나가 수긍된다.
9. 바른 가치관의 중요성
로켓의 발사대가 필요하듯이 최소한의 인지체계가 필요하다. 바른 가치관(정견)은 해탈의 조건이다. 해탈의 향기가 피어오르려면 내 마음 바탕이 어떠해야 좋을까? 심뽀가 바로 정립되어 있어야 4대 조바라밀 실습이 잘 이루어진다.
백백법문: 백번 강의를 듣고 백번 강의를 해본다. 정견이 또력하게 정립된다.
바른 가치관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백백법문은 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한 동사섭 문화이다. 이렇게 중요성, 방법, 내용까지 일일이 일러주시는 친절한 큰스님, 우리를 행복해탈로 이끌어 주시려는 간절함이 느껴져서 울컥한다.
10. 해오해탈오요
석가모니와 주리반 특하의 일화: 비로 쓴다, 비로 쓴다, 비로 쓴다... 무엇에 집중해버리면 다른 마음들이 다 가라앉는다.>>지혜가 나온다.
해오주의: 이미 갖추어져 있는 마음의 고요함이 상당히 있다.
사색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what, why, how로 한다. 사유에서 해탈로 나아간다.
격물치지: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여 지식을 얻음.
해오해탈오요: 이성(이치를 깨닫는 성품), 사유(무엇을), 법(대상), 이해(깨달음), 감성
색즉시공: 큰스님 대학교 2학년 때 색즉시공을 깨달으시고 무엇인가 딱딱한 세상이 가벼워지고 보들보들해진 것 같으셨다. 투명 비닐보자기로 쌓여 있던 몸의 비닐보자기를 확 걷어버린 것처럼 뭔가 특 트인 느낌이셨다.
해오해탈오요! 본래있는 이성으로 법을 사유해서 깨달으면 해탈감이 느껴진다! 나아가야할 방향이 확연하니 실천만 남았구나.
11. 사생관
죽음이라는 삶에 대한 관점이다. 이고득락에 도움이 되는 관점을 선택하라, 윤회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이고득락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삶”이라는 관점에 아하!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연기적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속의 한 전환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덜어진다.
12. 이 순간, 최고로 임재하라, 존재하라.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결정한다. 최고의 마인드는 무위의식, 무위느낌이 드러날 수 있는 인이다. 최고의 마인드에 응답하는 감성축(니르바나, 최고의 느낌)이 있다.
최고의 느낌을 가져오는 최고의 인을 촉하라. 그 인은 무위의식이다. 매순간 무위의식을 촉하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의 방편이 확실해서 좋은데 한편 매순간 깨어 있으라로 들려 삼엄하다.
13. 왜 조바라밀 명상을 하느냐?
지금 여기 걸림없는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걸림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을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사라지게 된다.
지족명상: 불만사고 척결로 불만족 염체가 사라져서 행복을 느낌.
비아명상: “나다”라고 하는 에고가 걸림돌이다. 본래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장애물을 치우려면 수고스럽다. 장애물이 원래 없음을 깨달으면 쉽다.
원효대사: 개달음 없는 수행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에 걸려서 고통을 당한다. 걸리는 모든 것을 조바라밀을 적용하여 해결하라.
걸리는 것 마다 그에 맞는 조바라밀을 적용해서 길림을 제거해 보니 해결지점이 선명해지는 재미가 있다.
14. 물컵놓기 강의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들고 있는 시간이 문제다, 붙들고 있지 않으면 해방이다. 물컵을 놓아라! 걸림없는 자유다.
들고 있음은 집착이다. 생명, 가족, 돈, 이름, 명예, 권위, 사랑, 성공 등 갖고 싶은 모든 것, 하고 싶은 모든 것, 지키고 싶은 모든 것.
붙들지 않으면서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루 가질 수 있다. 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다. 성자들은 말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물컵을 들고 있으면 걸림, 물컵을 놓으면 해탈!이 확연하다. 집착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방법 응무소주이생기심이 아하! 되고 그런 삶을 살아야 팔이 안아프고 몸과 마음이 안아플 것 같다.
15. 삶의 5대원리: 백백법문 1호
‘진정 그렇겠네.’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항상 어느 곳에 임장하고 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장하면 좋을까? 사유를 해서 명상적으로 나오는 것이 좋다. 나는 이 장의 주인이다.(정체) 이 장에 있는 자들의 행복을 내가 책임진다. 주인인 내가 이 장를 천국으로 만들리라.(대원) 이 사람들의 행복을 끌어올린다.
삶의 5대원리의 체는 정체, 대원이고 용은 수신, 화합, 작선이다.
삶의 5대 원리는 벼리 중에서도 벼리 가치관이다. 진정 그렇겠네. 하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거듭 사유하고 관행하여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성하며 살아가겠다.
16. 동사섭의 행복론: 행복공식과 새가지 행복론
행복이란? 원하는 것이 성취될 때 오는 좋은 느낌이다. 행복=소유/욕구
구현행복론: 미래에 무엇을 이루는 것, 함정은 구현이 잘 안 된다, 스트레스가 많다. 구현의 5대원리
지족행복론: 이미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다.
초월행복론: 욕구를 0으로 줄이면 행복은 무한대이다.
지족의 바탕 위에 구현해가고 초월 행복론으로 걸림없는 자유로움을 살 수 있는 최고의 행복론이다.
17. 조바라밀 명상으로 걸림 해결하기
“네”하고 그래도 하는 것에 한 깨달음이 있다.
보리방편문의 공성상 일여철학
지금 여기 걸림없는 자유함을 범 인품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마음 공부촌에 오는 것이다. 공부인은 아주 작은 걸림도 민감하게 느끼고 해결해야 한다.
사성제 중 고제: 내가 지금 고통 속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어항 속의 물고기 보듯 확연하게 본다.
걸리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어서 4가지 조바라밀로 해결하라.
일념즉시 무량겁: 한 찰나가 무량겁이다. 한 찰나가 영원이다. 공표치기를 할 때마다 한 생의 평화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온다, 간다, 걸림없다, 한 생 잘 살았다.)
서하모니님의 진정성 있는 나눔이 감사하고 감동이었다. 서하모니님 덕분에 닫혀있던 내 아픔도 밖으로 드러나 치유될 수 있었다.
18. 좌종소리 쳤을 때 큰 스님: 없쟎아, 이것 뿐! 실체성을 부정, 존재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지금 여기 걸림없는 자유함이 어느 정도이냐?하면 항상 5를 준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체험 자체가 항상 5가 되긴 어렵다. 이때 느낌은 엔카운터적인 느낌으로 138억년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나 깨달음의 차원에서는 항상 5점이다. 이 순간 내가 깨달음(이 천하가 온통 공하다, 공하기 때문에 청정이다. 여몽환포영이다)을 선언할 때의 명명백백한 느낌이 바로 해탈이다.
체험적으로는 5점이 안되더라도 깨달음 차원에서는 항상 5점이라는 말씀에 그렇지! 하며 정신이 번쩍 든다.
19. 염체론
사실이 아니라 생각이 있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 관념이다.
소박실재론: 볼펜이 있다. 이 볼펜은 사실이냐? 생각이냐?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이다.
사실 때문에 행불행 한 것이 아니라 생각 때문에 행불행 한 것이다. “이 볼펜이 있다.”는 생각을 해야 사실이 생긴다. 어머니를 떠올린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으면 사실이 아니다. 연기성이 딱 오는가? 우동이 먹고 싶다와 같은 희노애락의 느낌과 생각은 염체이다. 어머니라는 사실이 있더라도 내가 떠올리는 어머니는 염체이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 하나님 한다. 결국 자기의 염체를 사실이라 한다. 진짜 사실은 뭐냐? 영원히 알 수가 없다. 누가 생강님인가? 관점은 골백만가지이다. 무유정법이다. 말을 했다면 틀린 것이다. 대오각성 해야 한다. 소박실재론의 습관을 극복하기 위해 반복관행 해야 한다. 사실이냐? 생각이냐? 깨달음 차원에서 확실히 해라.
일수사견: 물을 네가지 관점에서 본다. 물 그 자체는 뭐냐? 공하다.
무엇을 사실이라고 단정하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게 된다. 칸트는 “물 자체다.”라고 했다. 어는 부분에도 힘주어 애기할 일이 아니다. 자기 관점에서 보고 정당시하지 마라. 내가 뭐라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나의 염체일 뿐이다.
사실과 생각의 사이에서 어.렵.다.
20. 단자론
신도 단자, 사람도 단자, 사람 속 세포 하나하나도 단자이다. 단자 갯수는 얼마나 되나? 무한수이다. 먼지 하나가 다 단자이다. 원자, 소립자도 단자이다. 무한 수의 단자가 자기 주관적으로 자기 염체로 우주를 이야기한다. 32명의 수련생이 자기가 생각하는 우주가 있다. 무한수의 단자가 각자 자기 관점으로 우주를 바라보기 때문에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은 무한수다. 단자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집착할 것이 없다. 걸림없는 자유감이 느껴지는가?
단자론적 관점에서 보니 정말 고정된 관점이라 없다는 것이 확연해지면서 시원하다.
21. 촉수구조
식이 6경(안이비설신의)을 통해서 6근(색성향미촉법)을 촉하는 것을 삼사화합이라고 한다.
촉이 되자마자 느낌이 따른다. 느낌이 없을 수 없다. 절대적이다. 왜 느낌을 이토록 이야기 하는가? 깨달음에 상응하는 느낌을 느껴야 한다. 저 사람은 내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느낌을 표현하고 공유하라. 내 인생의 중요한 10사람을 정해서 적극적으로 공유하라.
느낌에 대해 유념할 점
모든 감각인지 과정에는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따라온다. 느낌 좋은 촉이 행복이니 느낌 좋은 촉을 유념해서 시행하라. “이미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구나.”를 촉한다. “천하는 이대로 공하다. 고로 청정일 뿐이다.” 이런 깨달음, 법리를 촉한다. 촉수구조에 눈을 떠야 행복해탈에 눈뜨는 것이다.
느낌 좋은 촉을 유념해서 시행하라. 지족과 공리를 촉하여 행복해탈에 눈뜨라“는 말씀이 큰 깨달음이 된다.
22. 분반활동과 아하점, 느낌점
분반에서 중급과정 필수 인문학을 사유한 만큼 발표하고 나누면서 법리가 좀 더 시원해졌고 머리에 쏙쏙 들어와서 재미있었다. 스피치의 힘에 새삼 놀랐다.
농부님의 질문으로 시작되어 비아명상이 이론적으로 이해되고 실습으로 체험되어 기쁘고 감사했다. 또 농부님과 이해한 것을 나누며 명료화해가는 사유과정이 즐겁고 뿌듯했다. 농부님 감사합니다.
이번 중급과정에서 지족을 99.99%로 끌어올릴 수 있어 기뻤다. 비아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가 아하 되고 실습되니 새로운 관점의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내가 전혀 모르던 차원으로 새로운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큰 스님께서 색즉시공을 이해하셨을 때 무엇인가 딱딱한 세상이 가벼워지고 보들보들해진 것 같고 투명 비닐보자기로 쌓여 있던 몸의 비닐보자기를 확 걷어버린 것처럼 뭔가 툭 트인 느낌이셨다고 하셨는데 이번 중급에서 내 마음이 그랬다. 우주와 사물이 텅 빈 느낌 혹은 이것은 연필이다 하는 경계가 조금 느슨해져 연결된 듯한 느낌이 새롭고 흥미롭다. 나지사, 죽음명상도 좀 더 면밀히 점검하고 전환하며 걸림을 해결할 수 있어 시원했다. 4대 조바라밀은 나의 행복해탈을 위한 강력한 방편이니 꾸준히 공표치기하고 사유해서 좀 더 확연한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제48회 동사섭 중급과정을 이리로 봐도 저리로 봐도 공하다는 것을 자세하게 열정으로 이끌어주신 큰스님과 차근차근 안내해주고 도와주신 지도자분들, 함께 공부하고 사유하고 나누었던 도반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48회 동사섭 중급과정 소감문
표현 박영애
여름휴가 4박5일 동안 동사섭 중급과정에 참여한 소감문이다.
1. 조바라밀(지족명상, 비아명상,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1.1 개념 및 원리
가. 지족명상
- 지족명상은 이미 기존,기성을 바탕으로 충분히 누리면서 미성을 구현해가는 명상이다.
지족명상에는 임의형, 집중형, 체계형이 있다.
임의형에는 보이는 것 하나하나씩 감사하는 것이다.
집중형은 사물부터 사람, 나 원심형으로 들어오면서 명상한다.
체계형은 혼, 몸, 가족, 소속공동체 등에서 행성까지 확대시키며 하는 명상을 말한다.
그리고 있고 없음의 차이를 명상해보면 충분히 지족이 된다.
나. 비아명상
실체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논리를 사유하는 명상
몸은 지수화풍일뿐, 나라고 할 것이 없으며, 마음은 수상행식으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비아이다.
환경. 환경일 뿐 내가 아니다.
몸. 몸일 뿐 내가 아니다.
마음. 마음일 뿐 내가 아니다.
식주체기능. 식주체기능일 뿐 내가 아니다.
순수의식. 순수의식일 뿐 내가 아니다.
묘유. 묘유일 뿐 내가 아니다.
결국은 나라고 할 그 무엇도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다. 나지사명상
분노염체를 정화하는 방법이다.
...구나하면서 바라본다.
겠지 하면서 바라본다.
그만하니 ...감사한다.
보조수단으로 나의 부덕이요, 그의 아픔이다하면 더 위력적이다.
라. 죽음명상
삼독(탐,진,치)중 탐심을 정화하는 명상법
죽음이 지금여기에 있다고 실감한다.
죽음이 수용되지 않는 사슬들을 직면한다.
사슬을 전환한다.
전환될 때 따르는 해탈감을 느낀다.
명상에 따르는 의미들을 명상 공덕 하나로 정리한다.
무엇을 하고 싶을 때 싶음의 욕구가 죽음이 편하지 못하다.
욕구대로 했을 때 업장이 두터울텐데 욕구 성취하지 않고 죽으니 업장을 두텁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명상한다.
책임감이 기질에 따라 심하게 큰 경우가 있다. 책임감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야 할 때 여기까지가 내 몫이다라고 명상한다.
존재욕구가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변화가 있을 뿐이라고 명상한다.
1.2 감동(아하점)
지족명상에서 보조수단으로 있고 없음을 차이를 명상할 때 지족감이 더 충만함이 아하된다.
비아명상에서는 지수화풍 수상행식했을 때 나가 아니라는 큰 자각이 온다.
나지사명상에서 구나,겠지,감사와 나의 부덕이요 그의 아픔이라고 명상을 하니 이해 안 될 것이 없는 것이 확신된다.
죽음명상에서 딸에 대한 책임감에서 죽기 어려웠으나, 지금 바로 죽어야 할 때 여기까지가 나의 몫이다라고 하니, 죽음을 받아들여지는 아하를 경험되어서 좋았다.
1.3 실천의지
걸림에 든 순간에 지족.비아.나지사.죽음명상으로 탐.진.치를 해결하는 백신을 가지고 가니 든든하다.
탐욕, 탐 – 죽음명상
어리석음, 치 – 비아명상
분노, 진 –나지사명상으로 해결한다.
2. 중고급과정 필수 인문학
2.1. 개념 및 원리
가. 번뇌구조
번뇌를 짓기이전 개념이전에서 실체사고를 하면서 번뇌는 시작된다.
실체시하면서 가치를 두고 좋으면 소유하고 싶어 하고, 싫으면 배척할려고 하는 가치사고가 생긴다.
그리고 좋은것은 소유하고 싶어하고 싫은것은 배척하고 싶어하면서 성취되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나는 불만사고가 생기게 된다.
지족, 나지사, 비아명상으로 해결한다.
o 삶의 오대원리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
정체 : 주인정신 부정적자아관은 지양하고, 긍정적자아관을 토대로 초월적자아관으로 무한 정체성을 연다. 묘유적 자아관으로 무한자아 아이덴티티를 취한다. 수심명상 산책을 명상한다.
대원 : 구류중생을 다 제도하리라고 하는 큰 대원관을 염한다.
수심 : 안으로 수심하여 마음관리 잘하고, 밖으로 화합하여 관계천국이루며 작선 잘하여 세상천국 이룬다.
o 해오해탈주의 5요
이성이 법을 사유하여 이해했을 때 느낌이다.
o 행복론 : 행복공식과 3가지 행복론
행복이란 원하는 것이 성취되었을 때 오는 좋은 느낌.
구현행복론은 미래에 욕구를 성취하여 행복해지겠다는 것.
지족행복론은 이미 넘치는 소유속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
초월행복론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리.유식.자성.돈망으로 초월하는 것을 말한다.
o염체론은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내 주관적인 느낌의 생각이다.
o 단자론은 신도 하나의 단자. 사람도 하나의 단자. 단자수는 무한수. 단자론에서도 집착 할 바 없음으로 걸림없는 자유로 수렴한다.
o 촉수구조는 모든 감각인지 관정에는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수반된다. 식주체기능이 육근을 통해 육경을 촉할 때 법0이면 무위법의 해탈이요, 법1이면 유위법의 무한긍정이다.
2.2 실천의지
번뇌구조와 수심체계, 촉수구조등이 유위의 삶에서 역경계에 접했을 때, 잘 적용하여 궁극적으로는 공리를 깨달음으로 응무소주 이생기심 할 힘이 생겨서 행복하다.
3. 기타(분반실습, 수행점검표, 스피치, 근황나눔 등)
생명의 탄생 동여상을 보았을 때 탄생의 신비감과 생명의 존귀함이 크게 다가 왔으며 사람에 대한 존경심 우호감이 일어나고 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자존감이 크게 증폭되어서 행복하다.
물컵놓기 동영상에서 컵에 들어있는 물의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들고 있는 시간이 문제다라고 했을 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마음의 무게들이 영상물처럼 회상된다. 붙들고 있지 않으면 해발이다라고 하는 메시지에서 크게 아하가 되었다.
물컵을 놓아야 걸림없는 자유다.
.
이제 오랫동안 들고 있던 크고, 작은 마음의 무게를 놓고, 걸림없는 자유를 누리자.
소분반에서 우리분반에서는
일우님과 정안님, 만득이님, 연꽃님, 백미님, 연화님, 지훈님, 성불화님, 마하님, 표현님이였다.
10대행복마중물을 나누었을 때 도반한사람 한사람에게 관심이 가면서 깊은공감과 따뜻한 기운이 감들 느꼈고, 나 또한 따뜻한 기운이 빵빵하게 받아, 지족감이 더 중폭되어서 좋았다.
특히 만득이님의 또박또박한 어투와 말하는 음성이 좋다는 칭찬이 지족감을 한층 더 증폭시켜 주었다.
아, 행복하다.
48회 중급과정을 4박5일 동안 이끌어주신 거울님과 돕는이분과 도반님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주신 보살님들께도 감사를 올립니다.
늘 언제어디서나 걸림없는 자유를 누리시길 기원하는 맘이 올라온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