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한 악을 심히 크게 느낀다는 것은 어리석음 중에 큰 어리석음입니다. 나아가 악을 지양하기 위해서 악 자체를 잡고 싸우는 것은 또 하나의 어리석음이지요.
세간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공부 길은 구름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당연하게 들립니다. 불성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 탐진치 번뇌 때문이라면 탐진치를 제거하여 불성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바람직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이 논법은 인류 역사와 인간의 삶 전반에 만연해 있는 삶의 원리 가운데 하나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원리가 적용되는 많은 경우에 중대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사계의 선각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수련 때마다 인류 역사가 범해 온 두 가지 오류를 지적합니다. 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별해 놓고 악에 대한 인식을 사실보다 과민할 정도로 크게 느낀다는 점과 세상을 선하게 하기 위해 악과 싸우는 점입니다. 선악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지만 선악의 구별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악은 선에 비해 극히 미미합니다. 미미한 악을 심히 크게 느낀다는 것은 어리석음 중에 큰 어리석음입니다. 나아가 악을 지양하기 위해서 악 자체를 잡고 싸우는 것은 또 하나의 어리석음이지요. 물론 단적인 말은 아닙니다.
-용타스님의 <10분 해탈> 중에서-
로터스
선악 구별 자체가 오류! 불가피하게 구별하더라도 극히 일부분인 악을 크게 느끼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그러한 악을 지양하기 위해 악과 싸우는 것도 어리석음이다. 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